쿠페의 발견
이탈리아 중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피사에서 시작된 여정이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둔 6월 말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 쿠페를 타고 피렌체로 향해 달리는 자동차 여행. 토스카나의 강렬한 여름 태양을 머금은 풍경이 유난히 자유롭고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 건, 이 우아한 쿠페를 탄 과도한 감상 때문이었을까?
언젠가 인생의 멋을 아는 노년이 되었을 때 꼭 하나 소유하고 싶었던 차가 있다. 벤츠 CL 클래스다. 대형 고급 쿠페인 이 차는 전체적으로 럭셔리한 기운이 흐르면서도 쿠페 디자인이라 과도하게 중후하거나 올드해 보이지 않았다. 힘도 좋고 스포티하지만 젠체하며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있어’ 보였다. 뒷좌석에 사모님처럼 앉아 있는 쇼퍼드리븐 카 외에 가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세컨드 카로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아직은 현실성 없는 꿈같은 소망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점찍어둔 내 미래의(?) 세컨드 카가 자취를 감춘다는 소식이 들렸고,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후속작을 컨셉카로 먼저 공개했다. 바로 플래그십 모델 S 클래스의 이름을 달고 나온 The New S-Class Coupe´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여름 이탈리아 피사에서 열리는 글로벌 런칭 행사 초대를 받고 유난히 마음이 설레었다. CL 클래스를 계승한 모델이고, 문 두 짝만 단 벤츠 최상위 모델이며, 게다가 그 차를 타고 (짧은 출장 일정이지만) 토스카나 지역을 달리는 여행이라니.
S 클래스 쿠페는 CL 클래스보다 조금 작은 듯하지만 디자인이 첫눈에 매료될 만큼 멋졌다. ‘아름답다’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전체적 윤곽이 부드럽고 섬세하면서 명료하다. 풍성한 라인이 들어간 긴 보닛에 둥근 지붕을 올리고, 좁고 늘씬한 그린 하우스와 높은 벨트 라인 등으로 감각적인 쿠페 디자인 요소를 극대화했다. 벤츠가 이 차를 통해 표현한 디자인적 우월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앞모습이다. 중앙의 세 꼭지 별을 중심으로 날개처럼 양쪽으로 길게 뻗은 크롬 루브르와 인듐이라는 희귀하고 비싼 소재를 사용해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디테일을 넣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시선을 끈다. 그보다 압도적인 건 헤드램프다. 뉴 S 클래스 세단에 적용한 눈썹 모양 디자인을 반원형 눈썹 모양 곡선으로 바꿔 세련되게 표현한 Full-LED 램프다. 기본 사양인 LED 인텔리전트 라이트 시스템과 함께 47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심은 독특한 라이트가 매혹적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그런가 하면 뒷부분은 CL 클래스나 지난해 말 선보인 뉴 S 클래스 세단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트렁크 덮개 부분의 볼륨감, 유연하게 흐르는 라인, 양쪽 램프 위로 넣은 캐릭터 라인 그리고 리어 범퍼 아래로 옮긴 차량 번호판 등 다양한 변화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이렇게 변한 후미 디자인이 다소 공격적인 앞모습과 언밸런스해 보였다. 벤츠의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그런 감상을 넌지시 얘기하니 그는 오히려 그게 매력이라고 했다. “머스큘린 스타일 앞모습과 페미닌한 뒤태, 2가지 분위기를 동시에 갖췄죠.” 듣고 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페미닌까진 모르겠지만 보면 볼수록 절제돼 있는 듯 미묘한 볼륨감이 매력적이다. 어쨌든 앞뒤 모두 쉽게 잊힐 것 같지 않은 강렬한 인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현대의 기술력을 더한 다양한 디테일을 가미했지만 사실 이 차의 전체적 모습은 1952년 처음 나온 벤츠의 300 S Coupe´를 연상시킨다. 그릴에 달린 엠블럼이 커진 것도 옛날 차를 보는 듯 클래식한 느낌이다.
피사에서 출발해 피렌체로 가는 길을 인도해줄 모델은 뉴 S 63 AMG 쿠페다. 2도어 쿠페 디자인의 S 클래스에 벤츠의 고성능 모델인 AMG 버전이라니, 멋진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츠 8기통 가솔린엔진 중 가장 파워풀하면서 연료 소비도 효율적이라는 AMG 5.5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을 얹었다고 해서, 여행길 초반부터 쏜살같이 내달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일단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이 차를 즐길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멋진 GT 성격의 차를 타고 이탈리아 도로를 달리는 것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총중량을 65kg이나 줄였다더니 차체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 확연했다. 차체 표면과 전면부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했고, 경량 리튬이온 배터리와 무게를 최적화한 AMG 고성능 컴포지트 브레이크 시스템 등으로 경량화를 달성했다. 이건 더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할 뿐 아니라 연료 소비까지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 47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심은 헤드램프 2 세련된 디테일을 곳곳에 적용한 실내 3 급격한 코너에서도 그 상태에 맞게 서스펜션이 반응해 충격을 줄여주는 액티브 보디 컨트롤 기능이 표시된 계기반 디스플레이 4 하이엔드 오디오 ‘부메스터Ⓡ’와 공동 개발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8기통 바이-터보 엔진과 조화를 이룬 변속기는 메르세데스-AMG 모델에만 장착하는 AMG SPEEDSHIFT 멀티 클러치 7단 스포츠 트랜스미션으로, 민첩하면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매직 보디 컨트롤’을 기반으로 한 AMG 스포츠 서스펜션도 훌륭했다. 지난해에 뉴 S 클래스 세단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 탔을 때 ‘마법의 양탄자’ 같은 승차감을 주는 매직 보디 컨트롤을 경험하고 굉장히 놀란 기억이 났다. 그때 만난 매직 보디 컨트롤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는 ‘눈이 달린 세계 최초의 서스펜션’이라고 자신 있게 표현했다. 프런트 윈도 상단에 자리한 카메라가 15m 전방의 도로 표면을 스캔해 서스펜션을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높은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도 바퀴만 위로 솟구쳤다 내려앉기 때문에 충격이 거의 없고 차 안에서는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뉴 S 63 AMG 쿠페 역시 이 ‘도로 표면 스캔’ 기능으로 전방 도로에 튀어나온 요철을 미리 감지하고 서스펜션 셋업을 그에 맞게 즉각 바꾸니 어떤 도로 상황에서도 승차감이 월등히 좋을 수밖에 없다. 뉴 S 63 AMG 쿠페는 여기에 세계 최초로 ‘커브 틸팅’ 기능까지 더했다. 오토바이나 스키를 탈 때처럼 급커브를 돌 때 서스펜션의 각도가 최대 2.5도까지 기울어지는 기능이다. 타이어가 회전 방향 쪽으로 누우니 결과적으로 코너를 보다 안정적으로 돌게 해주는 셈이다. 30~180km/h의 주행 속도에서 작동이 가능하다.
AMG 모델이라 외관과 실내 디자인도 한층 특별한 요소를 더했다. 라디에이터 그릴 하단에 A-윙을 장착해 전체 폭이 넓어 보일 뿐 아니라 달릴 때 차체가 노면에 더 가까이 밀착돼 보여 스포티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실버 크롬으로 넣은 AMG 사이드 실 패널과 프런트 윙에 새긴 ‘V8 BITURBO’ 로고도 AMG 모델의 특별함을 부각시킨다. 최고급 나파 가죽 소재에 장인의 손길로 섬세한 스티치를 더한, 세련미가 흘러넘치는 AMG 스포츠 시트는 고속으로 스포티하게 달려도 온몸을 단단하면서 안락하게 받쳐준다. 은도금 처리한 송풍구와 스위치 등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하는 요소도 세련된 분위기를 완성한다. 실내에서 가장 큰 변화는 기존 S 클래스 세단과는 사뭇 다른 스티어링 휠이다. 아래쪽을 반듯하게 디자인해 아연도금 스포크를 넣은 ‘슈퍼 스포츠’ 스티어링 휠은 AMG 모델이라 한층 스포티하게 마감했다. 그립 부분을 타공 가죽으로 마감했고, 스티어링 하단에선 메탈 장식과 함께 넣은 AMG 로고가 눈에 띈다. 편의성을 배려한 장치도 반나절 이상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2.3인치의 TFT 대형 모니터와 차량의 주요 기능을 손끝으로 가볍게 작동시킬 수 있는 중앙 팔걸이의 터치 패드도 갖췄다. 앞유리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띄워 현재 주행속도와 제한속도, 내비게이션 경로 안내, 주행 보조 시스템 안내 등 갖가지 교통 상황과 정보를 알 수 있다.
피사에서 피렌체까지 불과 100k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우리는 이 차를 좀 더 즐기기 위해 본사에서 준비한 시승 코스를 따라 움직였다. 예쁜 마을과 드넓은 자연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도로를 따라 달리며 주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최대출력 585마력에 최대토크 900Nm, 충분히 힘이 넘쳐도 안정된 주행을 즐기기에 딱 좋을 정도만 발휘하는 여유로운 태도가 맘에 들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는 워낙 주행 안정감이 뛰어나 나도 모르게 제한속도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디스트로닉 플러스’를 작동시키자 앞차의 주행 흐름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매끄럽게 움직인다. 배기 사운드도 운전의 재미를 더하는 데 한몫한다. 스포티한 주행을 할 때는 풍부하고 깊은 사운드로 울리며 가슴을 뒤흔들다 느긋하게 달릴 때는 그에 걸맞게 조심스럽고 절제된 음색을 들려준다. 후미 소음기(rear silencer)에 장착한 자동제어 배기 플랩을 여닫으며 주행 모드에 따라 배기음을 달리하는 AMG 스포츠 배기 시스템 덕분이다. 가장 노멀한 C(Controlled Efficiency) 모드부터 S(Sport), M(Manual)까지 주행 모드를 바꿔가며 배기음의 변화를 느껴보다 음악을 틀었다. 부메스터Ⓡ(BurmesterⓇ) 서라운드 시스템의 음향이 배기음과 뒤섞여 묘한 희열을 선사했다. 사실 CL 클래스는 벤츠의 최고급 모델이면서도 수요가 적어 존재감이 희미했다. 예전에는 럭셔리 대형 쿠페 시장이 그만큼 한정적이었고 관심도 덜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벤틀리나 롤스로이스에서도 대형 쿠페를 차례로 내놓아 인기를 끌며 점점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벤츠는 ‘그들만의’ 쿠페인 CL 클래스를 없애고 S 클래스 쿠페라는 새로우면서 안정적인 카드를 내놓았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1950년대부터 ‘빅 쿱’을 만들며 축적된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타일만 멋있고 기술적으로 올드하거나, 뛰어난 기술력을 부각시키지 못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최첨단·최신식의 The New S-Class Coupe´.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담당자가 자신 있게 “This is the best car!”라고 외친 것처럼, 이 차는 S 클래스 세단과는 또 다른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쿠페가 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든다. 언젠가 나도 부유하게 나이 들어 인생의 멋을 알게 된다면 세단보다는 이 럭셔리한 2도어 쿠페 모델을 타고 싶을 것 같다. 20대의 배낭여행과 30대에 떠나는 여행이 같은 장소라도 다른 감상을 안겨주듯, 지금 내 나이보다 한결 인생의 여유를 알게 될 노년에 이 차를 운전한다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자유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어서다. 10월 말 국내에 출시하는 모델은 The New S 63 AMG 4 Matic Coupe´. The New S-Class의 여덟 번째 모델로 라인업을 완성한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제공 메르세데스-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