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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 프로망 Jean-Louis Froment

ARTNOW

프랑스 파빌리온 큐레이터,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고문,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 고문,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총괄 큐레이터로 재직하며 건축과 패션 그리고 다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큐레이팅한 장-루이 프로망이 샤넬과 함께 여섯 번째 전시를 선보인다. 8월 30일부터 10월 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전>이다.

2007년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상하이와 베이징, 광저우, 파리에 이은 여섯 번째 <문화 샤넬전>이 드디어 서울에서 열립니다. 기존 전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서울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전>은 메종 샤넬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자 기획한 전시예요. 전시 이름 그대로 ‘컬처 샤넬’의 의미를 전하려 합니다 . 샤넬이 창조한 모든 오브젝트의 이면에는 유서 깊은 전통과 역사가 깔려 있습니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죠.

샤넬은 이미 전 세계인이 대부분 아는 브랜드 아닌가요? 그럼에도 아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 보네요.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숨은 역사는 일반 대중은 물론 심지어 샤넬의 고객에게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패션 제품은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창조하지만 샤넬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샤넬은 패션, 특히 명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습니다. 샤넬은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그 이면에 진정한 문화와 역사가 깃든 브랜드이기 때문이죠. 전시를 통해 그 점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문화 샤넬전>은 각 도시의 박물관에서 관람객과 만났습니다. 도시를 상징하는 여러 장소가 있을 텐데, 그중에서 박물관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샤넬의 역사는 프랑스 문화유산의 일부입니다. 샤넬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죠. 샤넬은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분명한 ‘전과 후(before & after)’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존에 우리와 세상이 맺은 관계를 바꾸어놓았죠. 샤넬의 그런 역사적 의미를 볼 때 박물관이 알맞은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선택하셨네요. 샤넬과 자하 하디드는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것 같아요.
네. 둘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요. 그녀가 설계한 이동식 파빌리온인 샤넬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 외에도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서로 꾸준히 교류하고 있죠. 이제 그 무대를 서울로 옮겨보려고 합니다.

자하 하디드의 DDP는 모더니즘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기존 <문화 샤넬전>이 열린 박물관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샤넬과 자하 하디드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자하 하디드의 DDP는 서울시에도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DDP를 보면 서울시와 대한민국의 야망 같은 것이 느껴지거든요. 도시 한복판에 아주 강렬한 모더니티의 상징적 이미지를 세운 건 서울로서는 분명 하나의 도전이었을 거예요. 그 도전과 모험에 샤넬도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도 DDP는 엄청나게 큽니다. <문화 샤넬전>을 치르기에 완벽한 장소라고 할 수 있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

칼 라거펠트가 샤넬을 위해 디자인한 2001년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화이트 스웨터와 에나멜 가죽 가방, 호스트 P. 호스트의 가브리엘 샤넬 초상을 팝 아트 스타일로 스케치, 2013년 봄/여름 레디투웨어, 팝 아트 컬러로 선보인 ‘보이 브릭’ 가방. 파리, 샤넬 컬렉션

에드 페인거쉬, 테네시 윌리엄스의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의 시사회 전에 샤넬 N°5를 뿌리고 있는 마릴린 먼로, 1955.03.24, 사진

뉴욕-마가렛 브루클린 호텔에서 바라본 맨해튼 남쪽 스카이라인 전경, circa 1930, 엽서, 파리, 샤넬 컬렉션

레옹 포레, 페미나 ‘도빌의 공토비롱 가에 있는 장신구 가게에서’, 1913. 09. 01,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레네 베르 마담의 가게에 있는 마드모아젤 르 마르구앵, 1893, 갈색 잉크, 흑연, 파리, 오르세 미술관

조르주 구르사, 일명 셈, 바다 위의 탱고빌, 가브리엘 샤넬과 탱고를 추고 있는 켄타우로스 형상 보이 카펠, 1913, 쉬크세 출판사, 파리, 마르땅 구유-보샹 컬렉션

작자 미상, 1913년 8월에 출간한 셈의 삽화집 <바다 위의 탱고빌>을 읽고 있는 도빌의 우아한 여성들, 도빌, 이브 오블레 컬렉션

전시의 주제가 ‘장소의 정신’입니다. 샤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들을 모은 전시라고 보면 될까요?
샤넬에게 영감을 준 흔적, 사인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도 마드모아젤 샤넬이 머무른 파리의 이 아파트에서 진행하는 겁니다. 이 아파트에는 샤넬의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녀가 거쳐간, 그리고 그녀가 상상한 모든 장소의 흔적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죠.

‘장소의 정신’이라는 주제는 매우 개념적이에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요?
‘장소의 정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모두를 의미합니다. ‘장소’는 볼 수 있지만 ‘정신’은 볼 수 없거든요. 샤넬이 거친 창조의 과정, 그리고 그 결과물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머문 장소에서 받은 영감과 그곳에서 상상한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샤넬의 모든 오브젝트에는 장소와 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는 셈이죠.

예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바진 수녀원에서 자란 영향으로 옷에 화이트와 블랙을 주로 사용한 것이라든가, 수녀원의 벽을 장식한 해·달·별 문양이나 십자가에서 영감을 받아 주얼리에 그 모티브를 자주 응용한 것 등 그녀가 창조한 모든 오브젝트뿐 아니라 오늘날 샤넬에서 발표하는 제품에도 하나같이 샤넬의 정신과 역사적 스토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샤넬 주얼리에 자주 등장하는 사자 모티브도 같은 선상에 있는 건가요?
그렇죠. 샤넬의 별자리가 사자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제품에 사자를 활용했죠. 그런 것이 바로 장소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 샤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결국 ‘보이지 않는 장소’인 셈이죠. 그럼 보이지 않는 장소란 무엇일까요? 여기 샤넬 아파트의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 그 안의 내용이 바로 보이지 않는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 샤넬은 시를 무척 좋아했어요. 시와 그녀의 아이디어가 만난 곳,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 곳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장소죠.

샤넬은 당대 예술가와 무척 가깝게 지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녀도 그들과 같은 지식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샤넬은 직감적인 사람이었어요. 지식이 많다기보다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직감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죠. 그녀가 가장 좋아한 것이 시와 음악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 그 둘은 예술 분야에서도 특히 추상적인 장르입니다. 우리의 사고 영역을 가장 넓게 가져갈 수 있는 장르죠.

다시 <문화 샤넬전>의 주제로 돌아와서, ‘장소의 정신’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직관적인 테마인 것 같아요. 한국 관람객에게 혹시 어렵게 느껴지진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문화 샤넬전>은 뭔가를 가르치려는 전시가 아닙니다. 마케팅을 위한 전시도 아니죠. 말 그대로 ‘문화전’입니다. 한국인이 미국 소설을 읽을 때 ‘이 작가가 한국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을까?’라고 생각하지 않듯 저도 전시 큐레이팅을 할 때 한국 관람객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관람객은 그냥 관람객이에요. 관람객이 이 전시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으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관람객의 감정이 흔들린다거나, 아니면 관람객 본인의 느낌대로 샤넬의 스토리를 재구성했으면 합니다.

맞아요. 예술 작품은 해석의 역사가 더해질 때 제 가치를 발하죠.
네. 예술 작품의 파워는 ‘얼마나 많은 해석이 가능한가’에 의해 좌우됩니다. No5 향수가 시장에 나온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팔리고 있잖아요. 오랜 시간 동안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향수를 찾는 사람들이 100년 동안 각각 자기만의 해석을 더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루이 프로망, 전시 큐레이터

이번 <문화 샤넬전>에서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있나요?
샤넬과 교류한 예술가의 작품, 샤넬의 아파트에 있던 다양한 오브젝트 , 샤넬의 의상과 주얼리 등을 선보일 예정인데, 전 세계인이 입고 다니는 평범한 옷 하나도 함께 전시할 거예요. 블루와 화이트가 어우러진 스트라이프 티셔츠입니다. 마린 룩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옛날 선원들이 일할 때 입은 옷이지만 이제는 여성들이 즐겨 입습니다. 아니, 전 세계의 남녀노소가 입을 뿐 아니라 장 폴 고티에는 이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패션의 한 상징으로 만들었죠.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어떻게 이런 위치에 서게 됐을까요? 1920년대에 샤넬은 이 티셔츠를 여성을 위한 옷으로 만든 후 직접 입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샤넬이 프랑스 문화유산의 일부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전시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샤넬의 백그라운드를 미리 알고 가면 전시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번 전시는 구성이 잘 짜여 있습니다. 주제별로 10개의 챕터로 나누고 관람객이 샤넬의 여정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시기별로 구분해놓았어요. 유년기를 비롯해 베니스와 뉴욕, 파리의 삶과 그 장소를 통해 샤넬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반대로 그 지역은 샤넬에게서 무엇을 얻었는지 같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50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젝트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브랜드를 아트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느껴질 정도로 최근 여러 패션 하우스에서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일단 예술과 패션은 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20세기의 유명한 디자이너 역시 예술품 수집가가 많습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예술가의 작품을 디자인에 활용하죠. 브랜드를 말할 수는 없지만 브랜드와 현대미술 작가의 협업 제품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샤넬은 하지 않았어요. 왜냐고요? 샤넬은 발명가거든요. 샤넬은 한 번도 예술가가 창조해낸 이미지를 가져와 쓴 적이 없습니다. 이미지를 재생한 적도 없죠. 진짜 예술가답게 새로운 것을 발명했습니다. 매번 새로운 창조물을 선보였죠. 그런 의미에서 샤넬은 예술가였어요. 샤넬은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만한 것을 창조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요즘 패션계에서는 전시회가 참 많아요. 브랜드 전시도 많고요. 하지만 그중 어떤 전시도 앞에 ‘문화’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간 해외의 굵직한 비엔날레와 전시를 기획했고,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거치며 많은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순수 현대미술 전시 큐레이팅과 패션을 가미한 전시 기획을 할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샤넬을 단순한 패션 브랜드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전시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저는 ‘해석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순수예술 전시의 경우 예술가의 비전을 정리해주는 작업을 하지만, <문화 샤넬전>은 샤넬의 비전을 파고들어 그 안에서 제 자신의 비전을 표현하죠. 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현대미술 작가들은 대부분 아직 살아 있지만 샤넬은 이미 돌아가셨죠. 그래서 <문화 샤넬전>을 기획할 때 제 운신의 폭이 훨씬 넓은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쁜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거죠.(웃음)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