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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부르는 수다

LIFESTYLE

여행이 정말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할 때, 탁재형만큼 확실한 조언자도 드물다.
그와의 수다는 다양한 물줄기를 타고 흘러 결국 하나의 거대한 열망에 이른다.
‘떠나고 싶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와 실제 여행을 떠나는 자.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는 과정은 지극히 합당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결정한 뒤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이를테면 최근 <탁PD의 여행 수다>를 출간한 탁재형 PD는 한번 고민해서 답이 나오면, 이후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는 타입이다. 그가 오랜 시간 여행 다큐멘터리에 매진해온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는 지금껏 그 ‘재미’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기들이 원하는 소위 ‘정상적’ 공채코스를 외면한 채(그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다) 외주 편집실에서 영상 편집을 시작했고, <도전! 지구탐험대> 조연출을 거쳐 2002년 으로 다큐멘터리 PD에 데뷔했다. 이후 10여 년간 <세계테마기행>, , , 등 무수한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물론 ‘여행의 재미’만 보여주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대중과 나누고 싶은 건 여행에 대한 좀 더 다양한 담론. 대표적 예가 김진혁PD와 함께한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이다. 탁 PD는 오늘날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언가가 여행이라고 믿는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예요. 인연과 취향. <행복해지는 법>을 연출하며 생각한 건데, 취향이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이터베이스예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해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를 내 앞에 가져다 놓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분류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어떤 경향성이 드러날 거예요. 그게 취‘ 향’이죠. 취향을 명확히 알면 얼마든지 소박하게 행복해질 수 있고, 또 취향이 다양해지면 그만큼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전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대중에게 ‘떠나라’고 독려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호기심을 가지라고. 지난해부터 사진작가 전명진과 함께 팟캐스트 <탁PD의 여행 수다>를 진행하기 시작한 건 그래서다. 매번 게스트를 초청해 여행지에 대한 수다를 나누는데, 최근 출간한 동명의 책은 방송에 등장한 여행지 중 10곳을 골라 글로 정리한 것이다. 각 장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추가하고 사진을 보강했을 뿐, 대부분의 텍스트는 방송 속 수다를 그대로 옮겼다. 그는 <탁PD의 여행 수다>가 하나의 팟캐스트 또는 책이 아니라 여행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제시할 수 있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행이란 롤플레잉 게임에 접속하는 것과 같아요. 이왕 현실에서 떨어질 거면 정말 완벽하게 캐릭터에 몰입하고, 그 안에서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게 좋겠죠. 그러다 보면 일생일대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고요.” 그는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는가, 떠나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6월 말, 탁 PD는 7년을 몸담은 프로덕션 ‘김진혁공작소’를 그만두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항상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엄밀히 말하면 ‘출장 다니는 사람’이지 ‘여행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그런 면에서 이제 좀 떳떳해졌다며 웃는 탁 PD. “당분간 ‘자발적 백수’ 생활을 선택한 만큼, 스스로에게 더 이상 핑곗거리가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요.”

탁 PD가 추천하는 겨울 여행지

 

뉴질랜드 북섬 뉴질랜드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여서 추운 겨울에 가도 화창한 여름의 자연을 즐길 수 있어요. 특히 위도가 낮은 북섬이 남섬에 비해 기후가 온화하죠. 뉴질랜드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캠퍼밴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홀리데이 파크’라 부르는 캠퍼밴 전용 숙박 시설이 어디든 있기 때문에, 캠퍼밴에 물과 전기를 공급받으며 쾌적하게 머물 수 있죠. 아름다운 곳을 꼽자면 끝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모래사장이 약 150km에 걸쳐 이어진 북섬 최북단 서쪽의 나인티마일 비치를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깨끗한 바다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사막의 모래언덕을 함께 즐길 수 있어요. 모래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샌드보딩도 꼭 해보시길 바라요.

 

독일 남부 독일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조인 나라죠. 독일어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바이나흐트마르크트(Weihnachtsmarkt)’라 하는데, 특히 독일 남부에는 로텐부르크, 뷔르츠부르크, 뉘른베르크 등 재미있고 지역색 강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소도시가 많아요. 그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도시는 로텐부르크예요. 도시 전체가 동화책의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트리에 사용할 각종 장식과 호두까기 인형을 구경하다 보면, 마을 광장에서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맥주를 마시는 로텐부르크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거예요.

 

미국 뉴욕 우리를 둘러싼 문화 환경에는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죠.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국, 특히 뉴욕에 가면 가끔 뭔가 ‘원조’의 분위기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시즌이면 유독 그렇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뉴욕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해요.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은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해서 모든 백화점과 상점이 일제히 특별 세일을 시작하는 날이에요. 사람들은 그 전날 밤부터 원하는 물건을 파는 상점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곤 하죠. 패션, 잡화, 장난감, 전자 기기 등을 반값 이하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널렸으니 쇼핑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때를 놓치지 마세요.

탁 PD가 추천하는 여행의 기술
모든 일정을 너무 완벽하게 정해놓고 떠나려 하지 마세요. 비행기 티켓, 첫날과 마지막 날 호텔 정도만 예약하고 가도 충분해요. 그래도 첫날 머무는 곳은 정해놓아야 불필요하게 헤매지 않겠죠. 이때는 숙소를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지역에 정하세요. 그런 곳에는 반드시 현지 여행사가 몰려 있기 마련이고, 거기서부터 여행을 풀어나가도 충분해요. 영어 때문에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급한 건 그들이니까 알아들을 때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로 응대해줄 거예요.

탁 PD가 추천하는 여행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제 여행과 글쓰기의 원점에 있는 책이에요. 이 책만큼 격렬히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은 본 기억이 없어요. 사‘ 람이란 때로는 떨치고 떠나야 살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죠. 사진작가 김홍희의 사진 산문집 <방랑>도 참 좋아해요. ‘방랑’이란 정처(定處)가 없다는 말이잖아요. 그만큼 비일상에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돌아다님’, 그런 방랑을 저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어요.

에디터 류현경
사진 김보라(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