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간 예술
예술이 미술관을 떠나 강으로 간다. 다른 예술 . 조각 공원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강변 예술 공원을 찾아서.

요크셔 조각 공원 전경. 탁 트인 자연 경관과 헨리 무어의 작품이 조화를 이룬다.
몇 년 전, 한 아티스트의 프로젝트에 동행해 뉴욕에 머무를 당시, 퀸스 롱아일랜드 시티 동쪽 강변에 있는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을 자주 찾았다. 뉴욕엔 그리 크지 않지만 10여 개에 달하는 조각 공원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이다. 연간 방문객 수는 9만 명으로 세계의 유명한 조각 공원에 비하면 부족하나 낮은 접근성과 인지도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수다. 근처에 있는 레이니 공원과 더불어 지역 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원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공원을 좋아하지만 사실 공원의 첫인상은 폐허를 연상시켰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1년이 흘러 모습을 짐작할 수 없지만 당시 솔직한 인상이 그랬다.
처음엔 당시 지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술 공원이 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노구치 뮤지엄이 자리한 탓에 동선을 짜기도 좋아 뮤지엄 바깥에서 생생한 예술을 보여주겠다는 말로 자신만만하게 룸메이트를 꿰어냈다. 역에서 한참을 걸어 입구에 다다랐을 때, 친구는 의구심 섞인 질문을 던졌다. “진짜 여기 맞아?” 그도 그럴 것이, 공원 입구에 미국의 평범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빌보드가 걸려 있었다. 이제야 진정한 미국의 공공 미술을 만났다는 둥 과장된 연기를 펼치며 친구를 설득했다. 미국 전역엔 옥외광고판을 이용한 작품이 많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참고로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빌보드는 주기적으로 바뀐다.
이 공원은 1986년에 처음 생겼다. 미국인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는 과거 불법 쓰레기 매립지이자 투기장을 예술 공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지역 젊은이, 현대미술가와 힘을 합쳤다. 영구 조각품도 설치하고, 순회전도 종종 개최해 영구 설치 작품과의 조화를 시도한다. 여름엔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거나 파머스 마켓 같은 지역 커뮤니티 행사도 열린다. 둘러보니 관리가 소홀한 면이 없지 않으나 나리 워드 등 수준급 예술가의 작품이 많았다. 야외에 설치한 작품의 특성상 조금 더러워지고 녹이 스는 건 감수해야 할 단점이니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진 여느 조각 공원과 다름없다. 이 공원의 진짜 매력으로 우리의 눈이 휘둥그레진 이유는 따로 있다. 맨해튼과 퀸스 사이엔 케이블카로 (물론 지하철로도) 닿을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섬이 있다. 섬 끝에서 반대쪽 끝이 보일 정도로 작은 섬의 이름은 루스벨트아일랜드.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에선 바로 이 섬을, 섬 너머 맨해튼 동쪽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나(HANNAH)의 ‘RRRolling Stones’ 같은 벤치 작품에 앉아 풍경을 감상할 수도, 도시 풍경 아래 비토 아콘치나 나리 워드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평소 맨해튼을 벗어나 바라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좋아하던 우리는 여기가 명당이라며 환호했다. 벤치 작품에 앉아 한참을 머무르면서 야외 예술 공원의 장점을 몸소 체험했다.

1 시애틀 올림픽 공원에 있는 알렉산더 콜더의 작품.
2 심희준과 박수정의 ‘한강어선이야기 셋_해춘’을 선보인 한강예술공원.
3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에 있는 나리 워드의 작품.
한강에 예술 공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이 떠올라 무척 반가웠다. 물론 안양예술공원이나 올림픽공원처럼 한국에도 성공적인 예술 공원 사례가 많지만, 장소가 한강이라면 풍경 자체가 달라질 테니 말이다. 예술 공원을 잔디와 하늘이 맞닿은 공간에 조성한다면, 강과 하늘이 맞닿은 풍경에 자리할 예술 작품은 또 다른 장면을 선사하리라. 그리고 지난 8월 25일, 드디어 서울시가 이촌과 여의도 일대에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한강예술공원이 개장했다. ‘한강_예술로 멈춰. 흐르다’라는 주제로 “시민이 일상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걸었다. 한강예술공원 곳곳에 국내 30팀과 해외 7팀이 참여했고, 이촌에 24점, 여의도에 13점, 총 37점의 다양한 공공 미술품을 설치했다. 준비 기간만 2년에 달하고, 총 102억 원의 사업비를 들였다. 작품 제작이나 선정 과정에도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고, 대부분 만질 수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앉거나 누울 수도 있는 작품을 대거 선보였다.
공원은 ‘활기차고’, ‘여유로운’, ‘설레고’, ‘비밀스러운’이라는 주제로 구역을 나눴다. 일부 작품은 시민이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었고, 대부분 한강이 아니면 불가능한 시도를 선보였다. 직접 기대거나 체험하는 작품이 많은 만큼 안전 문제에도 신경 썼다. 엄격한 사전 검수와 안전성 검사를 거쳤다. “한강이 기능 중심의 공간을 넘어 예술적 공간으로 거듭났다”는 윤영철 한강사업본부장의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주요 작품의 면면은 이렇다. 이용주의 ‘뿌리 벤치’(2018년)는 나무뿌리가 뻗어나가는 모양새를 형상화한 대형 벤치로 한강예술공원의 대표적 쉼터 역할을 자처하고, 공공 미술가 루크 제럼과 에이치엘디(HLD)가 함께 만든 ‘리버 파빌리온-온 더 리버’(2018년)는 바지선을 활용해 관람객이 물 위를 직접 걸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강승현 . 박태형의 돔 형태 작품 ‘에어 가든’(2018년)은 한강변에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이용해 풍선과 사람의 움직임을 연결했다. 무한한 쉼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추후 한강예술공원의 상징물을 꿈꾸는 모토엘라스티코의 ‘스크롤-흐르는 이야기’(2018년)도 놓쳐서는 안 된다.
오픈하고 한 달가량 지난 지금, “시민에게 문화 예술 체험 기회를 주고 일상 속 쉼터로 이용할 수 있는 예술 쉼터를 조성하겠다”는 한강예술공원의 포부는 어느 정도 들어맞은 듯하다. 하필 오픈을 앞둔 시기 역대급 태풍 예보가 있었고, 지용호의 ‘곰’ 작품이 흉물스럽다며 시민의 원성을 사는 등 출발이 어수선하긴 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며 나들이하기 좋은 요즘,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한강예술공원을 방문해 다양한 작품으로 예술적 쉼을 경험하길 바란다”는 윤영철 한강사업본부장의 말처럼, 이제는 한강을 거닐며 작품을 즐길 일만 남은 듯하다. 런던 올림픽과 함께 조성한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예술 공원을 넘어 루이 비통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쇼장으로도 이용하는 생폴드방스 마그 미술관 공원, 요크셔 조각 공원, 뮌헨 현대미술관과 협력해 2년에 한 번씩 작품을 교체하는 쾰른 조각 공원, 명실공히 도시의 상징이 된 뮌스터 조각 공원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유명한 예술 공원이 많지만, 이렇게 강변을 따라 조성한 조각 공원의 매력도 만만찮다. 시애틀의 올림픽 조각 공원도 엘리엇베이의 동쪽 강변에 조성했다. 과거 산업지구에 조성한 이 공원은 알렉산더 콜더, 토니 스미스, 리처드 세라 등 걸출한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하며, 작품 뒤로 보이는 올림픽산과 해 질 녘 노을이 장관을 선사한다. 호주의 마거릿리버 조각 공원은 해밀턴베이에서 자동차로 2분 거리에 있다. 이곳은 유명한 캐릭터 호머 심슨 조각 등 대중 친화적 작품이 많고, 나무와 돌로 만들어 자연 친화적이다. 예술 작품과 함께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제 관람자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예술에 익숙하다. 1960년대 예술운동이 사회의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정치적 움직임과 연계해 공공장소에 예술을 개입시킨 이래 다양한 기념비적 작품이 우리 삶에 파고들었다. 어쩌면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뮤지엄 밖 예술’이지만, 그만큼 예술이 자연과 우리 삶의 일부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는 의미일까? 조각 공원은 예술, 인간, 자연의 관계를 집약한 산물로 세계 곳곳에 자리해왔다. 갓 태어난 한강예술공원이 주변 경관과 상호작용하는 조각 . 예술 공원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길 바란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