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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에 중독되다

LIFESTYLE

길고 긴 여정 끝에 비로소 또 하나의 문 앞에 도착한 이병우. 그가 고백한다. “나는 기타를 치기 위해 우주에서 왔다.”

 

유독 재주 많은 사람이 있다. 한 가지만 죽어라 노력해도 성공하기 힘든 세상에, 슈퍼맨처럼 다방면을 오가며 건드리는 족족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 이병우가 그렇다. 그에겐 너무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기타리스트부터 작곡가와 영화음악 감독, 예술감독, 기타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붙잡고 파헤쳐도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다만 어떤 타이틀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이병우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기타 치는 사람’이다. “요즘 젊은 분들 사이에서는 ‘어? 저 사람이 기타도 쳐?’ 이런 식의 반응이 많아요. 지난 10년간 기타 치는 모습을 별로 안 보여줘서 그런가 봐요. 사실 제가 해온 모든 작업은 기타에서 시작한 건데 말이에요.”
1986년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함께 포크 밴드 ‘어떤날’의 첫 앨범을 내놓은 이후 이병우는 국내 음악사에 한 걸음 한 걸음, 지워지지 않을 깊은 족적을 남겨왔다. 대중음악가로 명성을 쌓던 도중 갑자기 유학길에 올라 예일고든 콩쿠르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자로는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장화, 홍련>(2003년), <괴물>(2006년), <마더>(2009년) 등 20여 편의 영화음악을 선보이며 국내 영화음악계에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20대 초반에 작업한 2장의 <어떤날> 앨범이 여전히 ‘한국 대중 음악 100대 명반’ 4위와 11위를 차지하는 한편, 다수의 영화 OST 앨범이 미국과 아시아에서 발매되었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의 예술감독을 맡아 개·폐막식의 모든 행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무수한 장르와 표현 영역을 넘나들며 독창적 음악 세계를 이끌어온 전방위 아티스트. 오늘날 이병우가 ‘경계를 허무는 예술가’로 평가 받는 이유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다. 팝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헤비메탈과 록 등 천천히 장르를 넓혀가긴 했지만, 사실 활동 초기에만 해도 이병우에게 클래식음악이란 쉬이 건널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클래식에도 제가 대중음악에서 끌리는 것 같은 요소가 있는 거예요. 저를 못살게 구는 멜로디나 화성말이에요. 작곡가를 보면 고리타분한 학교 선생님같이 생겼는데 만드는 음악은 완전히 사람을 미치게 하니까, 이게 대체 뭔가 싶었죠.” 뒤늦게 유학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이다. 필요하고, 또 궁금해서. 지난 30년 가까이 이병우의 선택은 대체로 그렇게 즉흥적이었다. 처음 영화음악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도 “안해본 일이라” 수락했고, 또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계속했다. “일단 어떤 영상에 음악을 입힌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근사한 일이에요. 음악에 따라 그 영상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니까요.”
그가 말하는 영화음악의 또 다른 매력은 ‘데드라인’이다. 기간이 주어지니 어찌 됐든 작업을 해야 하고, 그 덕분에 매번 결과물이 나온다는 거다. 5년이든 10년이든 한없이 길어지는 앨범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그의 팬들에겐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병우는 어떤 작업이든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편이다.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음악을 하면서 기타 솔로에 대한 모티브를 얻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제가 집중력이 좀 부족해요. 모든 일에 순서가 필요한데, 전 그때그때 불을 끄는 스타일이에요.” 재미있는 건, 그 부족한 집중력 덕분에 오늘날 대중이 그의 음악 세계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이병우가 새로운 기타를 개발한 것도 디자이너가 아닌 기타 연주자로서의 아 이디어 때문이었다. 철저히 자신의 필요에 의한 도전. 그 결과물이 양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듀얼 기타’, 부피와 무게를 최소화한 ‘기타바’다. 특히 기타바의 경우 막대(bar)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본래의 목적은 예쁜 기타가 아니라 연주자의 바른 자세였다. “저는 기타를 치면서 몸이 망가졌어요. 일반 기타가 잡기는 편한데 연주 할 때 자세가 안 좋아지니까, 여기저기 아파서 오래 연습하기 힘들더라고요. 기타바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반듯한 자세로 필요한 부분만 꾸준히 연습할 수 있다는 거죠.”

“이번 앨범에는 스토리를 넣으려고요.
‘나는 기타를 치기 위해 우주에서 왔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으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 기타 연주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을 때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 거예요.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

 

한편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은 그의 말에 따르면, 원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자꾸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으니까 아예 예술감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경우다. 그는 어깨의 힘을 뺀, 재미있는 개막식을 만들고 싶었다. 주제가는 물론 전체적 스토리도 직접 만들고, 원하는 CF 감독을 찾아다니며 영상 제작을 요청했다. 물론 뻔한 행사용 음악 대신 자신의 영화음악을 곳곳에 활용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렇기에 만족도는 더 높았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현재 이병우는 기타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기타 중독’이란 타이틀로 10월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그의 기타 솔로와 함께 12월 개봉 예정인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OST 등 다양한 영화음악으로 채울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어봐요. 제대로 기타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그런데 이 ‘제대로’란 단어는 너무 난해하잖아요. 결국 ‘여러 가지를 해보니 이런 방법이 제일 좋더라’라는 걸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기타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고민이 많았죠.” 그가 이번 공연에서 기타 자체를 부각시킨 건 그런 고민의 결과다. ‘과연 제대로 기타를 친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오랜 여정에 비로소 답을 내릴 때가 되었다는 것. 공연과 맞물려 새로운 솔로 앨범을 발표하려는 계획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5집 <흡수> 이후 무려 11년 만에 내놓는 6집 앨범의 타이틀은 ‘우주 기타’다. “사람들은 흔히 우주가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우주 안에 존재하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에요.” 처음기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지 39년, 이제야 그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의 스타일로 기타를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병우에게 기타란 삶의 도구다. 그는 기타를 통해 음악과 소통한다. 다른 뮤지션의 음악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스스로 그런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오랜 시간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업을 해왔지만, 그의 목표는 단 하나다.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음악. “이번 앨범에는 스토리를 넣으려고요. ‘나는 기타를 치기 위해 우주에서 왔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으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 기타 연주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을 때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 거예요.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 기타리스트’ 혹은 ‘영화음악의 거장’이라 불리면서도 한편으론 우주인 흉내를 내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50세 남자. 그는 지독한 기타 중독자 이병우다.

에디터 류현경
사진 김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