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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살아간다는 것

LIFESTYLE

문은 두드리다 보면 언젠가 열린다. 매 순간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삶, 김보미에게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최초’란 역사를 바꾸는 말이다. 모든 시작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일반화되기 마련이지만, 그 첫 이름만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김보미에겐 ‘최초’란 꼬리표가 2개나 따라다닌다. 빈 소년합창단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최초의 동양인 지휘자. 적어도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애호가라면 이 말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전 세계 ‘천상의 하모니’를 대표하는 음악 도시 빈의 자부심, 빈 소년합창단이 창립 510여 년 만에 역사를 새로 쓴 순간이니까.
빈 소년합창단은 단순한 합창단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일종의 문화사절단이다. 해외 국빈들의 방문 일정엔 어김없이 합창단이 있는 아우가르텐 궁전이 포함되고, 단원들이 해외 공연을 나가도 그만큼 국빈대접을 받는다. 수세기를 이어온 위상은 유니폼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 국기를 새긴 유니폼을 입는 건 자국 내에서도 경찰과 빈 소년합창단뿐이다. 매 공연을 지휘하는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로서 이토록 막중한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기란 쉽지않다. 실제로 김보미에 대한 해외 인사들의 첫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어? 오스트리아인이 아니잖아?’ 오스트리아를 대표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한국인. 2012년 9월 임기를 시작한 이후 한결같이 그녀를 자극하는 표현이다. “어깨가 무겁죠. 매 공연마다 정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늘 자신을 채찍질해요.”
김보미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지휘와 연주는 물론 틈틈이 사회도 보고 어린 단원들을 챙기며 무대 안팎의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 한다. 빈 소년합창단이 ‘지휘자(dirigent)’란 표현을 쓰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카펠마이스터는 단순한 지휘의 영역을 넘어 ‘교회(kapelle)의 주인(meister)’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김보미가 맡은 모차르트반을 포함해 빈 소년합창단은 오스트리아 거장들의 이름을 딴 4개의 반으로 나뉜다. 단원들이 음악과 학업, 기숙사 생활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각 반이 학기별로 돌아가며 해외 공연을 한다. 중요한 건 모든 반이 하나의 음악적 색깔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전통 가곡과 각국 민요, 팝송과 뮤지컬,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스탠더드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다. 대신 이를 제외한 나머지 레퍼토리는 각 반의 카펠마이스터가 선택할 수 있고, 마음껏 편곡도 가능하다. 합창단원을 선발하는 것 역시 그들의 재량이다.

 

“지휘자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자신의 연주에만 몰입하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중요해요.
지휘자의 마음가짐이 단원들의 연주로 이어지죠.”

물론 그간의 과정이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지난 510여 년간 빈 소년합창단은 온통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였다. “카펠마이스터 응시자도 이 합창단 출신이 많아요. 실제로 그들이 유리하기도 하고요. 이곳 출신이라는 말은 전반적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엄청난 장점이죠.” 처음 면접을 볼 때부터 이미 김보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짜고짜 예술감독을 붙잡고는, 여성이나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예술감독은 전혀 상관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실제로 당시 합창단의 상임 고문단에서는 김보미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처럼 외국인이고, 게다가 여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녀를 적극 추천한 예술감독은 상임 고문단에게 “당신이 전부 책임질 수 있느냐”는 싸늘한 추궁을 받아야 했다. 그는 불과 몇 달 전에야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것도 슬쩍, 지나가는 말로.
노래하는 천사들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범한 꼬마가 되는 법. 임기 초반은 단원들과 김보미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일부 언론 보도처럼 신‘ 경전’까지 가진 않았지만 ‘탐색전’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만 10세 전후의 소년이 20~30명씩 모여 있으니, 멀찍이서 상상만 해도 보통 일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심이에요. 아무리 꾸짖고 야단쳐도 그게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했다면, 아이들도 분명 그걸 느끼거든요. 모든 단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서 그녀에겐 단원들과의 소통이 필수다. 개인적 대소사를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부모와도 가끔 만나 술 한잔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카펠 마이스터를 믿고 따르는 건 그다음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사실 제가 아이들을 좀 힘들게 하는 편이거든요. 연습시킬 땐 정말 혹독하게, 눈물을 쏙 빼게 하죠.”
빈 소년합창단은 4개 반을 합해 연간 400회가량 공연을 한다. 소화해야 할 레퍼토리가 많으니 아무리 연습해도 모자란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2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불러요.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을 못 가요. 일단 무대에 오르면 프로가 되어야 하죠. 그걸 가르치는 게 제 일이기도 해요.” 4년 동안 학업과 음악을 병행하며 매년 100회 이상 공연하고 3개월간 해외 투어를 다녀야 하는 소년들. 이 혹독한 스케줄을 견디게 하는 건 그들의 열정과 의지뿐이다. 김보미가 단원들을 선발할 때 가장 날카롭게 보는 것도 이 부분이다. “아이가 정말 좋아서 노래하는 건지 그걸 중요하게 봐요. 유럽에선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국 아이들은 부모에게 등 떠밀려 오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그런 아이들은 중간에 못 버티고 나가죠.” 현재 모차르트반 단원은 25명. 오스트리아 교육과정으로 보면 중등 과정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어린이다. “나이는 어려도 자기주장이 강해요. 자기감정에도 솔직하고, 굉장히 직설적으로 말하죠. 그러니까 그들을 지휘하려면, 흔한 말로 좀 쿨해야 해요.”
김보미가 빈 소년합창단에 합류한 지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두 차례 해외 장기 투어를 마쳤고, 오스트리아에서 진행한 크고 작은 공연까지 합하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합창단에 열중하다 보니 개인적 음악 활동은 많이 줄었다. 아주 드물게 솔로 공연이나 반주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빈에 머무는 시기가 일정치 않아 스케줄 잡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아직 김보미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5학기 만에 자퇴하고 음대 입시에 도전하기까지 그녀가 받은 음악 교육이라곤 남들 다 하는 피아노 레슨이 전부였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그녀를 이끈 건, 그저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열망. 그렇게 오랜 시간 참아온 허기를 채우듯 그녀는 다양한 음악 공부에 전념해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의 유학 생활은 물론 오르간과 피아노, 합창과 독창, 틈틈이 시간을 쪼개가며 배운 다른 많은 악기까지, 모든 것이 도전이고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합창단 일이 너무 행복하다며 웃는 김보미. 그녀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지금 그녀가 서 있는 빈 소년합창단 카펠마이스터의 자리처럼. “제가 바라는 건 인간미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무대에서 하는 음악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거든요. 지휘자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자신의 연주에만 몰입하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중요해요. 지휘자의 마음가짐이 단원들의 연주로 이어지죠. 그래서 항상 겸손하고 인간미 있는 음악가가 되는게 제 목표입니다.”

에디터 류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