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파리의 그해 가을
“올가을 아트 신을 뜨겁게 달굴 두 아트 페어를 보면 이제 아트 페어는 더 이상 컬렉터만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월 중순은 유럽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으로 무장한 런던의 프리즈 아트 페어(Frieze Art Fair, 이하 프리즈)와 파리의 FIAC가 연이어 열리는 시기다. 올해로 창립 11주년을 맞는 프리즈는 젊고 실험적이며 저항적 하위문화를 주제로 한 뉴미디어 텍스트와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예술에 개방적인 반면, 41회를 맞는 FIAC의 경우 1970년대 유럽 미술의 전위적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까닭에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고 할 수 있다. 10월 16일과 23일, 일주일 전후로 개막 예정인 이 두 아트 페어는 미술 애호가나 컬렉터를 위한 비즈니스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자리인 동시에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생태적 성향을 기반으로 하는 메트로폴리탄 축제로서 의미가 깊다.
실험적 예술의 장,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
프리즈는 1991년 매슈 슬로토버(Matthew Slotover)와 어맨다 샤프(Amanda Sharp)가 만들었는데, 당시 대표적 현대미술 매거진 <프리즈>도 함께 런칭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3년 본격적으로 프리즈 런던을 개막했고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주요 아트 페어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5월에는 뉴욕 맨해튼 소재 랜들 아이슬란드에서 열리는 프리즈 뉴욕을 런칭했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전시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의 비영리 전시 ‘프리즈 프로젝트’ 그리고 작년부터 고대미술과 근대 순수 회화 및 조각을 위주로 하는 ‘프리즈 마스터스’를 순차적으로 개최하 며 현대미술의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장의 어린이 관객
올해 첫선을 보이는 섹션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장르를 표방하는 ‘프리즈 라이브’다.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프리즈 라이브는 참가 갤러리 중 6개 갤러리에서 선정한 혁신적 퍼포먼스 작가와 그룹이 알렉산더 맥퀸의 후원으로 개막 예정이다. 이 흥미로운 시도는 문자 그대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다. 올해 6월 아트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14개의 방(14 Rooms)’에 버금가는 대안적 시도로 추후 어떤 독자적 노선을 걸어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섹션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 작가와 갤러리가 아트 페어의 중심을 이루는 물리적 여건, 즉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말은 곧 부스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 기존 아트 페어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이자 새로운 방식의 퍼포먼스 쇼케이스를 소개하는 이 섹션은 전시장 외에 런던 시가지와 근교에서 예측하지 못한 즉흥적 퍼포먼스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아트 페어가 무엇인지 보여줄 예정이다. 조애나 스텔라 세윅카(Joanna Stella Sawicka) 프리즈 부총괄 디렉터의 말을 빌리면 이번 프리즈 라이브는 야심차고 실험적인 프리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여 갤러리를 통한 작품들이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고, 동시에 그 전신인 프리즈 프로젝트의 역사와 주요한 궤적을 연결하는 강력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참여 작가 중 눈에 띄는 작가는 디제잉과 패션, 디자인, 뮤직비디오 등 다각적 시도로 미술계에 데뷔한 지 불과 3년 만에 감각적 프로듀싱으로 주목받은 다국적 작가 그룹 샨자이 비엔날레다. 샨자이 비엔날레는 아트 페어의 속성에 걸맞은 상업적 브랜드와의 다양한 협업으로 그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일본계 형제 작가 이아이(Ei)와 도무 아라카와(Tomoo Arakawa) 그룹 유나이티드 브러더스가 투명한 비닐을 캔버스 삼아 그 표면에 기하학적 이미지를 아크릴로 제작한 작품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이 형제는 회화 작업외에도 사운드 작업의 일환으로 드럼 및 전자기타 연주와 동시에 이를 실시간으로 영상을 통해 중계하는 비디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캐나다 출신 태머라 헨더슨은 인테리어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구성, 연출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영상과 안무를 기반으로 하는 애덤 린더 등도 이번 프리즈 라이브에 참여해 힘을 실을 예정이다. 프리즈 라이브와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건‘프리즈 프로젝트’다. 런던 시내 곳곳에 야외 조각과 커미션 작품을 설치해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큐레이터 니콜라 리의 기획으로 무용과 영화, 음악 등을 아우 르는 전방위적 다원 예술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국내 다원 예술 축제 ‘봄’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제롬 벨과 런던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 안무, 예를 들면 아이스링크에서의 스케이팅을 접목하고 온몸의 문신을 안무 이미지로 활용한 현대무용단 댄스 엄브렐러의 협업 작품이 기대되는데, 이들은 이전에도 정신지체아와 함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공연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리버풀 비엔날레의 닉 마커스, 노던 발레시어터 소피아 알마리아와 조너선 버거 등 각 기관과 작가가 협업한 작품도 있다. ‘living stage’라는 주제로 일상의 움직임을 발레 형식 퍼포먼스로 창작하는가 하면, 조너선 버거는 1970년대 미국의 퍼포머이자 엔터테이너 앤디 코프먼의 생애를 향수로 조향한 개념적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뿐 아니라 프리즈는 격년으로 새로운 건축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실내·외 전시 공간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올해는 디자인 그룹 비트라, 에이스 호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등을 설계·건축한 ‘유니버설 디자인 스튜디오’를 선정해 새로운 아트 페어 공간을 예고하고 있다.
혁신과 전통을 한자리에, FIAC
올해로 41회를 맞는 프랑스의 대표적 아트 페어 FIAC는 ‘(OFF) ICIELLE’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전시 섹션을 준비 중이다. 젊은 신진 작가와 갤러리를 발굴하고 기존에 노출 기회가 적었던 작가를 재조명하는 섹션이다. 공‘ 식적’을 뜻하는 단어의 OFF에 괄호를 쳐서 명명한 특별 섹션 ‘(OFF)ICIELLE’는 ‘Ouvertures/Openings’라는 전시명으로 큐레이터 메디 브릿(Mehdi Brit)이 총괄하며 루브르 박물관과 협력해 기획한 퍼포먼스 프로그램, 근·현대미술관 그랑 팔레와 대표적 국립 미술학교 에콜 드 보자르의 전시로 구성한다. 기존 아트 페어에서 통용되던 형식성을 무너뜨린 이 이례적인 예술 프로그램은 10월 23일 갤러리 특구의 상업 화랑이 연합, 네트워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갤러리스 나이트(Gallery’s Night)와 함께 본격적으로 개막할 예정이다. FIAC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광주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한 후안 루와 뮤제드 아르테모데나 파리의 큐레이터 앤 드레센,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2년 개관한 다시아 스페이어(Darthea Speyer)의 컬렉션 및 크리스티 옥션과 협업해온 파리의 컨셉 갤러리(Concept Gallery) 디렉터 올리비에 앙토니, 그리고 개인 소장가이자 FIAC의 막대한 후원자인 조세 젠솔렌 등이 속한 큐레이터 위원회를 소집했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애정을 쏟고 있다. 이들이 선정한 게오르크 바젤리츠,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존 코프먼 등의 설치 및 야외 조각 작품은 아트 페어가 열리는 자르디니 근교 외에도 파리의 역사적 중심지 툴레리스 가든에서 관람할수 있다.
프리즈 아트 페어와 피아크 전시장 전경
프리즈 아트 페어와 피아크 전시장 전경
FIAC의 기본 행사는 그랑 팔레 내 부스에서 열리는 ‘더네이브 앤 살롱 도뇌르(The Nave& Salon d’Honneur)’다. 매년 135개의 국제적 갤러리가 함께하는데, ‘라파예트’ 섹션에는 보다 젊고 혁신적 시도를 하는 갤러리들이 FIAC의 후원으로 참여한다. 야외 조각과 공간 특정적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오르 레뮈르(Hors el s Murs)’ 섹션은 매년 50만 명의 관람객으로 성황을 이루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보트 셔틀을 이용해 지도에 따른 작품 설치 장소를 탐방하도록 구성했다. FIAC는 탄탄한 역사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그 명맥을 새롭게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건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다. 퐁피두 센터와 AIDFA(Association for the International Diffusion of French Art, 1994년 주요 컬렉터와 후원자에 의해 발족한 프랑스 미술 활동의 세계화를 위한 국제 협력 기구)가 공동 주최하는 이 어워드는 올해 1984년생인 최연소 후보 테오 메르시에(Theo Mercier), 쥘리앵 프르비외(JulienPrevieux), 듀오 플로리안과 미카엘 퀴스트레베르트(Florian and Michae..l Quistrebert), 그리고 에바리스트 리셰(Evariste Richer) 이렇게 4명의 수상 후보를 선정했으며 이들은 그랑 팔레에서 전시를 하게된다. 흥미로운 건 심사위원을 3명의 기관장과 3명의 컬렉터로 구성했다는 점. 미술계의 시장성과 기관의 작품 소장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고려하는 취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수상자는 아트 페어 폐막전날 발표할 예정이다. FIAC는 이 외에도 젊은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영 큐레이터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해 비평가와 전시 기획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국제적 미술 기관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지향한다.
실라 힉스 ‘Baôli’
래티파 이채이크호 ‘Ladó possession’
안토니 곰리의 ‘Nother Time’, 이 세작가들의 작품은 피아크에서 만나볼수 있다.
올가을 아트 신을 뜨겁게 달굴 두 아트 페어를 보면 이제 아트 페어는 더이상 컬렉터만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아트 페어라는 구조의 특수성은 시장의 흐름에 가장 강력한 파급 효과를 미친다. 동시에 아트 페어에서 기획한 전시와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존 전시와 달리 단기간에 새롭게 시도하고 개척하는 예술의 영역에 대한 반응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기관이나 비엔날레 같은 미술 행사와 달리 각국의 갤러리가 서로 교류하고 각각 고유의 개성과 커리어를 자축하고 독려하며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 때문에 더 이상 아트 페어의 전시나 행사는 규모와 자본력으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트 페어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과 배출해낸 작가들의 활동에 질적 성장이 따르고, 그것이 향후 실효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프리즈와 FIAC가 새롭게 마련한 퍼포먼스 섹션과 장르 간 복합적 협업이 지향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는 단순히 희귀한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험적 시도가 실제로 관람객에게 전달되어 교감할 수 있는 가치를 증명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전민경(국제갤러리 PR 디렉터) 사진 제공 프리즈, FI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