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 Hye Hong, 홍승혜
홍승혜 작가는 캔버스와 붓 대신 컴퓨터와 포토샵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미 1997년부터 그래왔다. 모니터에 사각형의 인공적 이미지를 띄워 직관적으로 마우스를 누르면, 포토샵의 기하학적 픽셀 이미지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다 급하게 모양을 바꾼다. 그중 ‘이거다’ 싶은 이미지를 포착해 조각과 설치, 영상 등으로 만드는 그녀의 작업은 생명체의 기하학적 형태와 그 형태들이 만드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는 주제 아래 끊임없이 진화해온 그녀가 오는 7월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녀의 말을 빌려 이 전시를 소개하면 ‘스스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회고전 성격이 짙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전시가 과거의 작업을 그대로 나열하는 여느 전시와 달리 ‘회고’ 또한 하나의 진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시라는 것. 손이 아닌 머리로 미술을 하는 작가 홍승혜를 만나본다.
홍승혜 작가의 작품을 17년째 제작하고 있는 경기도 일산의 한 공방에서.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 1997년 이후 붓과 물감을 버리고 컴퓨터와 기계로만 작업했습니다. 손으로 하는 회화 작업이 그리울 것도 같은데요?
여전히 손맛을 보여주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초기엔 저도 물감을 섞어 화폭에 바르는 화가였죠. 하지만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발견했고, 눈물을 머금고 붓을 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 후엔 손으로 글쓰기가 힘듭니다. 몸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 맛’의 매력은 뭔가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속도감과 정밀함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계획적인 작업보다 예측 불가능한 작업을 선호하는데, 이 경우 직관과 순발력은 매우 유용하죠. 수학적 비례가 중요한 제 작업에서 수작업은 기계의 정밀함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처음 ‘픽셀’을 발견한 당시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인가요?
가벼운 벽돌로서의 픽셀은 조형적이고 구축적인 사고를 하던 제게 커다란 발견이었습니다. 모니터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간 평면, 입체, 영상 작업으로 구현해왔죠. 또한 오브제에서 공간으로, 순수 조형 작업에서 실용적 사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최적화(optimization)’에 대한 관심이죠. 최적화란 제 미술적 개입이 공간과 완벽하게 공존하며 기능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주변과 얼마나 잘 화합하고, 그러면서도 쓸모가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죠.
Green Area, Sticker on floor, goldcrests, pots, 273×273cm(Dimension Variable), 2012

1 Column Sculpture, Column painting, 50×325cm, 2012
2 Organic Geometry, Lobby wall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tiy of Technology, Seoul, 2005
컴퓨터로 작업하다 ‘이거다’ 싶은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나요?
계획한 지점에서 사고로 또는 실수로 벗어났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작업은 만드는 일보다 발견하는 일이 더 재미있습니다.
주로 컴퓨터로 작업하지만, 작업 외적인 부분에선 ‘컴맹’으로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컴퓨터 다루는 기술을 배운다면 다른 작품이 나올 것도 같은데요?
지금껏 기술을 먼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게 분명할 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을 찾게 되죠. 목적이 없으면 아무리 배워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전 지금 다룰 줄 아는 도구만으로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입체 작업을 좀 더 쉽게 하려고 요샌 구글에서 나온 ‘스케치업’을 배우고 있어요.
얼마나 배우셨나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전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업도 처음엔 제 옆에 그걸 잘하는 친구를 두고 이걸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주문하며 한 겁니다. 남에게 그걸 계속 시키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로감도 금방 찾아왔죠. 그래서 결국 2003년부터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직접 배웠습니다. 마흔 중반이 다 돼서요. 제 작업은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손을 써야 해요.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선 실기보다 대화 위주로 학생들과 수업한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행동을 촉발하는 수단으로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론을 부정하죠. 사실 실기보다 중요한 이론은 없습니다. 그 둘이 끊임없이 치고받을 때 미술의 진화가 이루어지죠.
몇몇 작가들이 미술가 홍승혜를 지적인 면과 관념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생각나네요. 감각의 세계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공상태에서 질식하지 않기 위해 감성과 이성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그 두 사람은 친구일 수밖에 없었죠. 하나의 인격을 단적으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최근 3D 프린터 기술이 날로 진보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컴퓨터로 작업해온 미술가로서 기하학적 조각을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3D 프린터의 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입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관심이 있지요. 다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기계의 속성을 어떻게 인간의 속성과 결부시킬 것인가가 숙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00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전 전경

Organic Geometry, Polyurethane on aluminum plate, 116.7×116.7cm each, 2004
따지고 보면 컬렉터의 구미를 당기는 작업을 해온 것 같진 않습니다. 미술가로서 이 부분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특별히 불특정 다수의 취향을 대변하는 작업을 해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문제일 겁니다. 미술은 어차피 경향이 같은 사람들과의 소통이죠. 그 숫자는 제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학적 작업을 오랫동안 지속해왔으니, 음악도 클래식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바로크 음악을 자주 들어요. 바흐, 장 필리프 라모 같은 이들의 음악을. 그들의 음악이 유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관절이 보이는 음악이죠. 특히 바흐는 기하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음악이 수학과 많이 결부돼 있습니다.
2009년엔 바흐의 음악을 사용한 작품도 발표하셨죠?
당시 제가 발표한 ‘음악의 헌정’은 바흐의 ‘음악의 헌정’이란 곡을 시각적으로 변환한 것입니다. 조형적 질서와 음악적 질서의 유사성에 관해 얘기한 작품이었죠. 제 작업이 공간을 가르는 것이라면,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은 시간을 가르는 작업입니다. 바로크 음악은 그중에서도 제 시각적 정서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죠.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바로크 음악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손이 자꾸 그쪽으로 가요.
직접 작곡할 생각은 없나요?
솔직히 말하면 작곡을 할 용의도 있습니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보니 음악을 직접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사실 피아노도 조금 치거든요.(웃음) 전문가처럼 잘하진 못하지만, 저를 위해 연주할 수 있는 정도는 돼요. 음악이 될지 사운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덤벼보고 싶긴 하네요. 7월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해주세요. 2008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파편(Debris)>을 통해 지난 시간의 작업을 해체하고 재구성했습니다. 이번 전시도 과거의 대표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변주, 중첩하고 나열해 무채색의 공간을 연출하는 ‘회상’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전시 이름도 ‘회상’이죠. 1997년 ‘유기적 기하학’ 연작을 시작한 후 발표한 일련의 작품을 다시 불러와 변주하고, 회상적 어조의 ‘올드 무비’ 같은 공간을 연출할 생각입니다. 자꾸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개인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죠. 평면, 입체, 벽화, 영상 등 모든 매체를 총망라할 계획입니다.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전시만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기존 전시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에서는 ‘유기적 기하학’의 진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달라요. 그러나 과거의 작품을 나열하는 ‘회고전’과 달리 ‘회고’ 또한 하나의 진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문득 미술가 홍승혜의 주제 의식이 궁금해지네요.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가 될까요? 제 작업은 제 삶의 행보와 많이 닮았습니다. 벌써 제가 50대 중반인데 전시도 ‘회상’이란 이름으로 하잖아요. 이제 한 번쯤 뒤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니 기존의 것을 모두 부수고 싶기도 하고, 재구성해 다시 출발하고 싶기도 하죠. 이번 전시 이후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작업을 지속하며, 제 삶의 행로를 암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기적 기하학’은 앞으로 언제까지 더 진화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10년은 거뜬합니다.(웃음)
홍승혜 개인전 <회상>
7월 10일부터 8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홍승혜 작가의 회고전 성격 전시 <회상>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지난 10여 년간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조각과 영상, 설치 작품 등을 총망라할 예정이다. 문의 735-8449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이영학(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