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샤넬을 읽다
샤넬이라는 브랜드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져본 사람이라면 샤넬을 왜 단순히 ‘패션’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지 알 것이다. 살아생전 가브리엘 샤넬 여사가 추구한 여성 패션에 대한 혁명적 도전과 용기, 밤낮으로 고민하며 얻은 디자인 철학, 그렇게 쌓인 브랜드 가치,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이 디자이너에서 벗어나 예술가로서 걷고자 한 고집스러운 족적이 함께하기에 샤넬은 패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에게 오래도록 무형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샤넬의 가치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화 샤넬전 : 장소의 정신>의 서울 상륙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흥미롭다.
200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번 전시를 큐레이팅한 장 루이 프로망은 “가브리엘 샤넬에게 의미 있는 장소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를 뛰어넘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산하는 곳이죠. 그래서 샤넬 여사는 과거 그곳에 머물며 그 장소가 주는 초자연적 힘을 현실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샤넬 하우스의 작품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문화 샤넬전>에서 소개하는 공간은 특히 가브리엘 샤넬의 낭만적 만남과 관련된 곳이 많다. 그런 만큼 관람객에게 전시장에서 샤넬의 족적을 따라 마음속으로 ‘사랑의 지도’를 그려가며 샤넬의 은밀한 삶에 동참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거기에 소뮈르와 브리브, 오바진, 물랭, 파리, 도빌, 베니스, 이튼 홀, 할리우드, 뉴욕 등에서 샤넬이 보고 느끼고 만나고 헤어진 다양한 경험이 그녀의 작품 속에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예리하게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전시 감상법이 될 것이다.
유년기의 인상, 오바진의 규율, 다름이 주는 자유, 성에서의 삶, 파리에서의 독립, 베니스의 보물, 러시안 패러독스, 블루 트레인, 새로운 세계, 샤넬 정신까지 10개의 시퀀스를 50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제로 구성한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 지금부터 샤넬이 실제로 걸어온 삶의 여정, 상상의 여정을 소개한다.
1 샤넬 봄·여름 레디투웨어 컬렉션, 수영복을 입은 베하티 프린슬루, 카밀라 아크란스, 2007 ©Camilla Âkrans/Elite Paris 2 구약성서, 파리, 런던, 뉴욕, 브루노프, 1904, 갈색 장정, 뒷면은 금색 밀이삭 장식, 표지 가장자리는 포도나무 가지 장식, 파리 샤넬 컬렉션,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 ©Collection CHANEL/Photo Thierry Depagne 3 건초 만드는 여인, 카미유 피사로, Circa 1890, 에칭, 셰르부르옥트빌, 토마 장리 미술관 ©Claire Tabbagh
1. 유년기의 인상(Childhood Impressions)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로 꼽히는 1883년, 샤넬은 프랑스 남서부 소뮈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으로 농업이 서서히 쇠퇴해가는 중이었다.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자 농촌 지역은 점점 황폐해졌고 생활이 불안정해진 농민은 자연스레 도시나 신흥 산업 지역으로 이주해 살길을 찾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대 신흥 산업자본가 계층은 파리에서 열리는 살롱전을 찾아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농민의 모습과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향수에 젖었다. 이삭 줍는 여인, 건초 만드는 여인, 밀이삭 터는 여인은 1800년대 후반 당대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을 통해 불후의 형상으로 남았고 이런 경향은 1900년대 초반 인상파 화가에게 이어지며 여러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농촌 출신 부모님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한 샤넬도 훗날 단추와 주얼리, 자수 등에 ‘밀’을 자주 사용하며 농촌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1 사도들의 성유물함, 작자 미상, 12세기 후반, 에나멜을 입히고 금박을 새긴 주물 구리, 오바진 성당 ©REGION LIMOUSIN. Service de l’Inventaire et du Patrimoine Culturel. Philippe Rivière 2 오바진 수녀원 바닥의 별 문양 디테일, 프랑수아 부아롱, 2014, 종이에 흑연, 파리 샤넬 컬렉션 © François Boisrond 3 꼬메뜨 브로치, 가브리엘 샤넬, 1932, 마드모아젤 샤넬이 <비주 드 디아망> 전시를 위해 만든 꼬메뜨 브로치, 28개의 올드 마인 컷 다이아몬드(5캐럿)를 세팅한 플래티넘 브로치, 파리 샤넬 컬렉션 ©CHANEL/Photo Didier Roy
2. 오바진의 규율(Rules at Aubazine)
샤넬은 열두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 의해 자매들과 함께 오바진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아원을 떠나며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결핍이 주는 고통의 무게는 어린 샤넬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지만 그곳에서 배운 바느질은 후에 패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늘 가까이서 봐온 수녀복과 고아원복은 화이트 앤 블랙 슈트의 모티브가 되었고,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얽힘 문양은 샤넬이 시그너처로 삼은 더블 C 로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오바진의 문장(紋章)과 수녀원 바닥을 장식한 해, 달, 별 문양은 과감한 주얼리 작품에 영감을 제공했다. 오바진 덕분에 샤넬의 상상력이 더욱 풍부해진 셈이다.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개를 위한 애가(펠릭스 보멘과 샤를 블롱드레 작사), 에두아르 데랑사르, 1878, 파리 프랑스 국립도서관 ©BnF
3. 다름이 주는 자유(The Freedom of Difference)
스무 살이 된 샤넬은 수녀원에서 나와 물랭의 한 의상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물랭에는 기병부대가 주둔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명문가 자제였다. 그녀는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당시 노래에도 재주가 있던 그녀는 ‘라 로통드’라는 작은 뮤직홀에서 ‘코-코-리-코’와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라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 뭇 여성과 확연히 대비되는 외모로 인기가 높은 그녀에게 군인들은 ‘코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코코 샤넬’도 거기서 비롯된 별칭이다. 물랭의 생활에 염증을 느낀 샤넬은 1906년 온천 도시 비시로 떠나 여러 뮤직홀을 돌며 가수로서 성공을 꿈꿨지만 실패하자 다시 물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파리에 입성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그녀는 그 기회를 제공해줄 젊은 장교 에티엔 발장을 만났고, 그는 샤넬의 인생에 첫 번째 후원자가 되어 그녀가 본격적으로 패션에 눈을 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1 루아얄리유 살롱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 에티엔 발장 그리고 보이 카펠, 작자 미상, Circa 1912, 개인소장 ©All rights reserved 2 헬레나 크리스텐센, 카메론 알보르지안, 데이비드 메이와 함께한 S/S 샤넬 레디투웨어 컬렉션 광고, 샤넬의 칼 라거펠트, 1990, 파리 샤넬 컬렉션 ©CHANEL/Photo Karl Lagerfeld
4. 성에서의 삶(Life at the Cha^teau)
샤넬은 콩피에뉴 숲 외곽에 위치한 에티엔 발장의 대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유한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인 에티엔 발장은 마장(馬場)을 소유하고 있었다. 기병부대의 명예 장교인 그는 넓은 정원이 딸린 대저택과 경마장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런 생활을 함께 즐기던 샤넬은 기존의 긴 치마 형태의 여성용 승마복 대신 남자들이 입는 재킷에 착 달라붙는 바지를 입어 남다른 스타일을 선보였다. 경마장에서도 그녀의 단순한 옷과 작고 둥글납작한 모자는 귀부인들의 화려한 벨에포크풍 드레스나 과한 장식이 달린 모자와 확연히 차별화됐다. 하지만 샤넬은 한가롭게 무위도식하는 삶에 금세 싫증을 느꼈다.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때마침 손수 디자인해 만든 모자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모자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겠다고 판단한 그녀는 1908년 에티엔 발장의 친구인 아서 카펠, 일명 보이 카펠을 만나게 된다. 사업가이자 유명한 폴로 선수인 그와 샤넬은 깊은 사랑에 빠졌고, 보이 카펠은 샤넬의 연인이자 재정적 후원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1 1913년 8월에 발표한 셈의 최신 삽화집 <바다 위의 탱고빌>을 읽고 있는 도빌의 우아한 여성들, 작자 미상, 도빌 이브오블레 컬렉션 ©Collection Yves Aublet 2 바다 위의 탱고빌, 가브리엘 샤넬과 탱고를 추고 있는 켄타우로스 형상의 보이 카펠, 조르주 구르사(일명 ‘셈’), 1913, 에디시옹 수셰, 마탕 고요-보샹 컬렉션, 파리 ©All rights reserved
5. 파리에서의 독립(Independence in Paris)
1910년 보이 카펠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샤넬은 파리 캉봉 가 21번지에 모자 전문점 ‘샤넬 모드(Chanel Modes)’를 열었다. 깃털과 리본 하나로 단순하게 장식한 챙 넓은 모자로 당시 저명인사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샤넬은 세련된 감각을 발휘하며 당시 유행한 모든 것, 특히 폴 푸아레의 작품을 뒷전으로 물러앉게 만들며 1913년 여름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근사한 휴양도시 도빌에 첫 매장을 열었다. 샤넬은 그곳에서 모자와 함께 어부의 작업복에서 영감을 얻은 저지 소재 튜닉, 스트라이프 셔츠, 통 넓은 바지, 비치 파자마에 이르기까지 남성용 속옷 원단으로 사용하던 저지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의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는 실루엣에 여성들은 환호했다. 샤넬과 보이 카펠은 그곳에서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커플이기도 한데, 특히 샤넬이 도빌의 폴로 경기장에서 반인반마의 모습을 한 뛰어난 폴로 선수 보이 카펠에게 납치당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가 셈의 그림이 아주 흥미롭다.
1 캉봉 가 31번지 그녀의 집 거실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 초상, 마이트 드 뒬멘, 1957, 파리 샤넬 컬렉션 ©Mike de Dulmen/All rights reserved 2 ‘콩스텔라시옹 뒤 리옹’ 목걸이, 샤넬 화인 주얼리, 2012, 32.9캐럿 쿠션 컷 옐로 다이아몬드 1개, 34.6캐럿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159개, 총 10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878개, 총 5.9캐럿의 라운드 컷 옐로 다이아몬드 32개, 그리고 307캐럿의 노란색 석영을 세팅한 18캐럿 화이트 골드와 옐로 골드, 파리 샤넬 컬렉션 ©CHANEL Joaillerie 3 산 마르코 동신회의 형제들을 보호해주는 산 마르코의 사자, 작자 미상, 14~15세기, 얕은 돋을새김, 이트리석, 베니스 코레르 박물관 ©2014 Fondazione Musei Civici di Venezia/Photo Archives
6. 베니스의 보물(Golds of Venice)
1919년 12월 22일, 보이 카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샤넬의 절친한 친구 미시아와 그녀의 남편 조세 마리아 세르는 샤넬을 설득해 함께 베니스로 간다. 그녀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보물들에 감탄했고, 토르첼로 성당의 빛바랜 금빛 모자이크와 화려한 귀족들의 저택에 경탄했다. 서서히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베니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라는 점, 그리고 자신의 별자리 또한 사자자리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사자 모티브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투피스의 단추나 핸드백의 잠금쇠, 그녀의 초상을 새긴 주얼리 등에 사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세르 부부의 소개로 그녀는 베니스에서 러시아 발레단을 창단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만나 훗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데,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샤넬은 베니스에 푹 빠졌고, 그 후 베니스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가 됐다.
1 비아리츠의 등대, 팔레 호텔과 그랑드 플라주(해변) ©Glow Images 2 비아리츠의 가브리엘 샤넬, 1920, 재인화본, 작자 미상, 파리 샤넬 컬렉션 ©CHANEL-Collection Bernstein-Grüber
7. 러시안 패러독스(The Russian Paradox)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보이 카펠이 휴가를 얻어 샤넬을 비아리츠로 데려간 적이 있다. 비아리츠는 그곳에 많은 별장을 소유한 러시아 귀족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는데, 당시 샤넬은 보이 카펠의 재정적 후원에 힘입어 그곳에 첫 번째 의상실을 열었다. 보이 카펠이 죽고 1921년 비아리츠를 다시 찾은 샤넬은 예전에 알고 지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재회하고 1922년까지 그와 연인 관계를 이어갔다. 드미트리는 러시아 황궁의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를 샤넬에게 소개했고, 샤넬은 그에게 자신의 첫 번째 향수 N˚5의 조향을 의뢰했다. 샤넬 N˚5는 알데히드라는 합성 향료를 이용해 향을 조합한 덕분에 최초의 ‘추상적 향수’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크게 성공했다. 샤넬은 단순한 사각형 향수병에 특유의 심미적 철학을 반영한 라벨을 붙이고 블랙 왁스 찍은 인장 위에 심플한 C를 새김으로써 그녀의 소유임을 표시했다.
로크브륀에 있는 라 파우자 정원에서의 살바도르 달리, 누마 블랑 피스, 1938, 파리 샤넬 컬렉션 © All rights reserved/Droits d’Image de Salvador Dali réservés. Fundacio Gala-Salvador Dali, Figueres, 2014
8. 블루 트레인(The Blue Train)
1922년 12월에 개통된 ‘블루 트레인’은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에서 파리를 거쳐 지중해 연안 코트다쥐르까지 운행하는 호화 야간열차의 별칭이었다. 블루 트레인은 1920년대 상류층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1924년 6월 20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극 <블루 트레인>은 이 기차에서 제목을 따왔다. 디아길레프는 장 콕토에게 무용극 각본 집필을 의뢰했고, 큐비즘 조각가 앙리 로랑스가 무대 디자인을 맡았으며, 파블로 피카소가 무대 장막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샤넬은 무대의상을 맡아 평소 디자인한 여성복을 본뜬 스포티한 느낌의 저지 소재 의상을 무용수에게 입혔다. 가브리엘 샤넬이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었다. 공작의 가식 없는 우아함과 차분한 매너에 담박에 매료된 그녀는 체셔의 이튼 홀과 스코틀랜드에 있는 공작 소유 대저택 등에 머물며 영국 시골에서 여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즐겼다.
1 테네시 윌리엄스의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의 시사회 전에 샤넬 N°5를 뿌리고 있는 마릴린 먼로, 에드 페인거쉬, 1955년 3월 24일 ©Michael Ochs Archives/Getty Images/photo Ed Feingersh 2 뉴욕-마가렛 브루클린 호텔에서 바라본 맨해튼 남쪽의 스카이라인 전경, Circa 1930, 엽서, 파리 샤넬 컬렉션 ©All rights reserved
9. 새로운 세계(The New World)
1925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유럽에서는 ‘아르데코’ 양식이 승승장구하게 된다. 아르데코는 모더니즘 건축과 장식미술, 회화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최고로 세련된 형태를 이끌어냈는데, 이는 샤넬이 추구한 미니멀리즘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1921년에 출시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둔 ‘샤넬 N˚5’의 단순한 향수병 디자인이나, 1920년대 초반에 디자인한 리틀 블랙 드레스가 그 대표적 예다. 뭇 여성을 사로잡은 리틀 블랙 드레스를 보고 1926년 10월 미국판 <보그>는 대량생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에 빗대어 ‘샤넬의 포드’라는 찬사를 보냈다. 1924년 샤넬 N˚5의 미국 진출과 더불어 샤넬의 성공은 확고해졌고, 샤넬의 인기는 1945년 아내에게 N˚5를 선물하려는 미군이 매장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광경을 통해 재차 확인됐다. 샤넬은 할리우드의 거물 새뮤얼 골드윈의 영화 세 편의 의상을 디자인했고, 미국 언론에서는 그녀의 작품에서 풍기는 모던함과 ‘힘을 뺀 우아함’을 높이 평가했다. 수십 년 후 샤넬 N˚5 향수 몇 방울만 걸친 채 잔다고 털어놓은 마릴린 먼로나 향수병을 작품 속에 영원히 남긴 앤디 워홀, 샤넬 슈트를 입은 재클린 케네디의 이미지를 통해 미국에서 샤넬 파워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1 브라운과 베이지 컬러의 모직 재킷을 입고 캉봉 가 31번지부티크의 계단 밑에 서 있는 마드모아젤 샤넬, 세실 비통, 1935, 파리 샤넬 컬렉션 ©Cecil Beaton/Vogue Paris 2 계단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의 사진, 파리 캉봉 가 31번지, 더글러스 커클랜드, 1962, 로스앤젤레스 더글러스 커클랜드 컬렉션 ©Douglas Kirkland 1962 3 파리, 캉봉 가 31번지 부티크 계단, 커티스 모팻, Circa 1925,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10. 샤넬 정신(The Style of CHANEL)
1918년, 샤넬은 파리 캉봉 가 31번지에 있는 건물을 구입해 매장과 작업실, 사무실을 두고, 2층에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모든 벽면에 거울을 붙이고 화이트를 메인 컬러로 선택해 블랙으로 포인트를 줬다. 각 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의 벽면을 따라 이어 붙인 거울 덕분에 샤넬은 계단 꼭대기에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아래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동시에 손님들은 패션쇼 당일, 새로운 의상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모델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샤넬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그곳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장 콕토, 피에르 르베르디, 폴 모랑이 샤넬에게 헌정한 책과 가구들은 그녀의 미학적 행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스와 중국 고미술품, 베니스의 흑인상,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선물한 은도금 박스, 크리스털 원석으로 만든 샹들리에, 금박 콘솔, 퀼팅 쿠션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소파 등 그 모든 것이 샤넬에게는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한 원천이었다. 샤넬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틀어박혀 책을 읽고, 일하고, 손님을 맞고, 꿈꾼 이 아파트는 지금도 여전히 샤넬의 세계를 한눈에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