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2014-2015 F/W Trend
매 시즌 트렌드를 제시하는 세계 4대 패션 위크는 보헤미안, 매니시, 스포티즘, 그레이와 아이보리 키워드 외에도 지역 특유의 개성을 발현하는 무대다. 지난봄, 뉴욕에서 런던과 밀라노를 거쳐 파리로 이어진 2014-2015년 F/W 캣워크에서 발견한 도시별 패션 취향!
New York – Keyword: Lux Sportism
전 세계 4대 컬렉션의 시작을 알리는 뉴욕. 랄프 로렌, 도나 카란,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등 실용성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이너들이 포진한 이곳에서 만난 가을·겨울 패션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면 ‘패션은 환경을 반영한다’가 가장 적합하겠다. F/W 시즌을 위한 패션 위크가 열리는 2월에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짐작했겠지만, 매년 겨울 맨해튼을 강타하는 극소용돌이(polar vortex, 폴라보텍스)로 인한 한파에 대적하는 웨더 프로텍티브(weather protective) 드레싱이 등장한 것! 극한의 환경에 대비하는 실용적 패션을 의미하는 이름을 단 패션은 아웃도어의 하이테크놀로지를 적용한 첨단 소재와 디자인을 차용하되 일상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레이어링 가능한 오버사이즈 코트, 한층 슬림하게 완성한 패딩과 퍼 아우터를 접목한 것으로 마치 고급스럽게 진보한 아메리칸 스포츠웨어를 보는 듯하다. 이 밖에도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독창성을 담은 옷 입기 방법을 선보이는 중이다. 물론 그럼에도 공통된 아이디어가 있으니, 바로 레이어링 보온성은 극대화하면서 부피감과 무게감을 덜어낸 넉넉한 사이즈의 니트와 패브릭 아이템을 겹쳐 입은 알투자라와 마크 제이콥스의 모델들은 별다른 보조 장치 없이도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 여성의 페미닌한 감성을 자극했다.
London – Keyword: Mix & Combine
비비안 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버버리 프로섬, 자일스, 마리 카트란주 등 영국 디자이너 레이블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느낌 그대로다.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움과 키치함, 정교한 기술과 소박한 핸드크래프트 등 극단적 요소가 충돌할 때 탄생하는 색다른 조화를 보여주려 한 듯 무척 실험적이다. 이를테면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하우스의 오랜 역사가 깃든 클래식의 지존과도 같은 트렌치코트에 19세기 초 영국에서 활동한 예술가 집단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핸드 페인팅 프린트를 적용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핸드 페인트 프린트의 디테일이다. 어린이 미술 대회에서 볼 법한 투박하고 해맑은 패턴을 하이엔드 소재와 감성의 의상과 믹스했는데, 이렇듯 대범한 시도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런던의 거리 풍경과 무척 닮았다. 런던 패션 위크의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마리 카트란주 역시 어깨에서 발끝까지 유연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의 고풍스러운 드레스(프렌체스카가 떠오르는!)에 도로표지판, 화살표, 화장실 표시 모양의 배지와 장식 등을 콜라주 형태로 붙여 개성을 과시한다. 그리고 이는 상반된 것을 성격 좋게 조화시키는 런던 컬렉션의 특징과 교집합을 이루는 동시에 디지털 프린트로만 기억될 뻔한 디자이너의 필모그래피에 전환점이 될 만큼 예상 밖의 긍정적 행보였다.
Milano – Keyword: Contemporary Daywear
스웨터와 스커트, 드레스와 코트 등 밀라노 컬렉션 무대에 등장한 옷은 지금 당장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실 감각 풍부한 실용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1920년대, 1930년대, 1970년대를 풍미한 예술 사조인 구성주의와 아르데코 등에서 영감을 얻어 레트로 스타일과 아티스틱한 터치를 더했지만 일상성과 편안함을 유지한 것이 장점이자 특징. 어떤 패션 평론가는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로 편 가르기 하듯 극적으로 양분된다고 평했지만 그럼에도 이곳 디자이너들의 의상은 웨어러블했다. 보석이나 레이스로 요란하게 치장해도 옷의 기본적 형태는 해치지 않기 때문! 컬러는 오렌지, 레드, 핑크, 오트밀 등 따뜻한 색상을 중심에 두고 그린과 블루 등의 보색을 포인트로 사용했으며, 그레이는 깊고 진한 차콜 그레이부터 라이트한 멜란지 그레이까지 다양하게 변주해 모던한 느낌을 강조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소재는 펜디를 필두로 프라다, 마르니, 에밀리오 푸치 등 무수히 많은(거의 대부분!) 디자이너의 컬렉션에서 퍼가 각광받았다. 테디베어 느낌이 나는 구찌의 양털, 토즈의 반질반질 잘 다듬은 밍크, 로베르토 까발리의 와일드한 폭스 등은 디자이너들의 저마다 다른 취향을 보는 듯 흥미로웠다.
Paris – Keyword: Perfect Tailoring
세계 4대 패션 위크 중에서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파리다. 샤넬의 블랙 리틀 드레스, 디올의 개미허리와 풍성한 스커트의 미학을 보여주는 뉴룩, 생 로랑의 팬츠 슈트 등 패션의 역사에서 중요도 별표가 왕창 붙는 아이템과 스타일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파리 패션은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며 위세를 떨쳤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루이 비통으로 컴백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1960년대를 테마로 한 소녀풍의 실용적 스타일을 선보일 때, 페미닌한 방향으로 돌아선 리카르도 티시가 나비와 레오퍼드 패턴으로 우아함을 예찬하는 순간,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디자이너로 추앙받는 셀린느의 피비 파일로가 193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여류 아티스트를 환생시킨 무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또 오트 쿠튀르라는 단어의 본고장답게 알렉산더 맥퀸, 로샤, 랑방 무대에서는 정성으로 만들고 인내로 탄생시킨 쿠튀르 디테일을 적용한 점도 돋보였다. 한편 파리 컬렉션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한 쇼장 디스플레이도 볼거리다. 초대형 샤넬 마트를 개장한 샤넬, 무대에 금빛 기둥을 세운 생 로랑의 에디 슬리먼, 데이비드 린치의 조각상으로 캣워크를 수호한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과 캐럴 림 등 이들이 선보인 새로운 패션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성에게 패션 판타지와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