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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 Woo Chun, 천경우

ARTNOW

미디어 아티스트 천경우는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역행하며, 장노출 기법을 통해 시간성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왔다. 때로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즉흥 퍼포먼스를 기획하기도 한다. 최근엔 패션 브랜드 ‘구호’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났다. 물론 이런 다양한 행보에는 작가의 일관된 관심사가 관통하고 있다. 바로 ‘소통과 교감’에 대한 탐구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천경우 작가

최근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한 ‘Pre-sense, 2014’가 화제가 됐어요. 워낙 상업적 작업은 하지 않는 작가라 더 주목받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기업에서 컬래버레이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제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렸고요.

어떤 점이 끌렸나요?
구호 의상의 특징이 제 작업과 잘 맞았어요.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디테일이 있고, 그렇다고 사람을 압도하지도 않죠. 따로 시안 같은 것도 없었고 전적으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모델과 의상, 오브제 그리고 촬영자 사이의 교감을 바탕으로 장노출 기법을 이용해 촬영했는데, 작품이 구호 광고 이미지로 사용되어 많은 지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의상과 오브제를 잘 보여주는 건 제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왔어요. 사진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죠. 예를 들면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모델은 대부분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엔 늘 교감이 있기 마련이고, 모델도 촬영자만큼 능동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 작업에서도 모델에게 카메라의 노출 시간을 직접 선택하게 했어요. 직접 노출 시간을 선택했다는 것은 모델에게 중요한 의식적 연결 고리가 되기 때문이죠. 모델은 19분이라는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패션모델에겐 굉장히 낯선 방식의 작업이었겠네요.
모델에게도 쉬운 작업은 아니기 때문에 모델과 함께 사전에 제 작업과 관심사 등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죠. “지금까지 카메라 앞에서 옷을 잘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당신이 그 자리에 진짜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가장 좋은 작품은 그 자리에 실제로 있음이다(The best work is a presence)’예요. 저는 작업 과정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았다면 때론 시각적 결과물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사진 작업에서 중요한 건 뭘까요?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이전에 촬영할 사람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하는 훈련된 전문 모델과 되도록 작업하지 않은 이유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이번엔 전문 모델을 기용해 ‘모델을 모델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작업’이어서 흥미로웠죠. 구호 광고 외에 지금껏 전문 연기자와 작업한 경험이 딱 한 번 있는데 프랑스 여배우 이사벨 위페르와 파리에서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작업이에요. 배우에게 그동안 해온 역할과 달리 오히려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제안했어요. 촬영할 의상을 집에서 입는 일상복으로 고르기도 했고요.

일반적으로 사진은 ‘결과물’ 중심의 매체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그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군요.
더 중요시한다기보다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맞죠. 사진에서 노출 시간을 점차 늘리면서 순간(moment)에 대한 저만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빠른 시간엔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도 옆자리 사람들의 소리나 우리가 앉은 테이블, 의자, 공간이 모두 영향을 미치듯 사진을 찍을 때도 많은 요소가 피사체에 영향을 줍니다.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하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당신의 작품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습니다. 구호와 컬래버레이션한 작품에도 당신과 모델이 교감한 19분의 시간이 아름답게 농축되어 있고요. 혹시 완성된 화면을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위해 촬영 과정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부분은 없나요?
최대한 촬영 환경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하지만 인물이 대상인 작업에선 역시 가장 결정적인 건 얼굴 같아요. 사진가와 모델의 교감으로 채운 시간, 그 시간의 퀄리티가 얼굴에 드러나고, 그게 몸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체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가 많죠.

이번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미술이라는 분야를 넘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관람객과 교감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 많은 관람객과 자연스레 교감할 수 있다면 좋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공공성이란 대중의 취향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것을 말하기보다, 특정 공간이나 특정인에 국한되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품이 특정인의 컬렉션에 포함되거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이 한정된 공간과 사람만 향유하는 것이라면, 공공장소에서의 작업은 굉장히 일상적인 장소, 시간에서 작품을 만나는 것이거든요. 예술은 꼭 미술관이 아니라 퍼블릭한 공간, 심지어 매스미디어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잡지, 책 같은 인쇄 매체도 마찬가지예요. 일대일로 아주 밀접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사진은 매체의 속성상 그런 역할과 가장 밀접하다고 볼 수 있어요.

Seventeen Moments, 2-channel video, 2012

Versus, performance in Times Square, New York, 2011

BreaThings_02, c-print, 90×120cm, 2008

지난 1월 플라토와 진행한 ‘빌보드 프로젝트’가 떠오르네요. 광화문과 숭례문 사이 세종대로 세 곳의 대형 빌보드에 작품을 전시한 것이야말로 수많은 대중과의 만남을 전제한 방식이었죠.
맞아요. 제가 의도하는 만남도 있지만 스치듯 만나는 순간이 쌓이고 쌓여 저도 모르게 감지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방식은 전시장이나 콘서트장에서 예술을 의식적으로 감상하는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죠. 오히려 공공장소라 가능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예술이 삶에서 분리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우리 일상에 잠재해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동안 퍼포먼스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온 거군요. 그런 프로젝트는 사진 작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사진 작업을 하면서 완성한 이미지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자연스럽게 퍼포먼스 작업을 시작했어요. 사진은 직접적이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매체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감성적 경험을 위한 일종의 선택된 조형적 표현 방법일 뿐이거든요. 모든 매체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굳어진 방식 없이 그런 감성적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요? 그런 얼터너티브한 방법 중 하나가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어요.

2011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처음 만나는 익명의 대중이 15분간 서로의 어깨에 기대 낯선 교감을 경험하는 퍼포먼스 ‘Versus’를 진행했는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Versus’ 프로젝트는 유럽과 미국, 한국의 7개 도시에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했어요. 매번 리허설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많은 에피소드가 생길 수밖에 없었죠. 이 퍼포먼스는 물론 낯선 이와의 만남을 토대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참여자에게 자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람들이 주어진 역할만 하도록 제한합니다. 낯선 사람의 몸에 손을 대는 건 금지된 행동이죠. 따라서 처음 만난 누군가의 몸에 기대어 침묵 속에 무한한 소통과 교감을 시도하는 그 낯설고 비일상적인 순간을 통해, 반대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낯설지만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감성적으로 고조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요. 갑자기 우는 사람, 끝난 뒤에도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사실 사람들은 퍼포먼스라 하면 현장에서 뭔가 특별한 비주얼을 보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제 작업이 추구하는 궁극적 결과는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 이루어집니다. 각자 그 경험을 곱씹고 기억하면서 거기서 스멀스멀 생겨나는 것이 바로 작업의 실제 결과물이죠.

이제 당신의 작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새로운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서울에서 8명의 신진 작가와 함께 준비한 대규모 전시 < New Generation-시작 >이 한미사진미술관(6월 20일까지)과 덴마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고, 독일 브레멘(Bremen)과 괴핑겐(Goeppingen)에서도 각기 다른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지난 3년간 브레멘에서 진행한 ‘The Invisible Words’ 프로젝트를 오랜 공사 기간 끝에 올여름에 마무리해요. 그리고 10월 런던의 HADA Contemporary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조만간 새 작품집 < Interpreters >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늘 그렇듯이 여러 도시를 오가며 분주하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장승연(프리랜서) 사진 안지섭(인물) 장소 협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