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from Mi Ran Jang
감사한 마음은 나의 에너지, 나의 원동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운동선수, 런던 올림픽에서 바벨에 손키스를 하며 우아한 이별의 장면을 보여준 장미란이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 첫 번째로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사함의 힘이 얼마나 큰지 들려준다.
장미란 선수는 …
1983년 강원도 원주 출생.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 금메달(세계 신기록 달성)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역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으나 그녀가 마지막 용상에서 170kg 에 실패한 후 바벨에 손키스를 남기고 기도하는 모습은 국민의 가슴속에 남았다. 2013년 은퇴 후 장미란재단을 세우고 스포츠 꿈나무를 응원하며 또 다른 삶을 시작한 그녀는 여전히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지 1년, 장미란재단을 만들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경험하고 배워나가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제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가끔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어떻게 그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고 매일 힘든 훈련을 해냈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때가 있다. 종종 선수 시절과 은퇴 후 중 언제가 더 좋은지 질문을 받는다. 내 대답은 늘 같다. 선수 시절은 선수 시절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만족스럽고 즐겁다. 훈련할 때 매일 느낀 ‘내일 피곤하면 안 된다’라는 컨디션 조절에 대한 압박과 걱정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점은 물론 좋다. 하지만 선수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기에 큰 불평거리는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난 내가 누구보다 넘치게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잊지 않았다. 여전히 감사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나에게 준 사랑을 어떻게든 다시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역시 변함없다. 행복한 선수였기에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그 행복을 전하고 싶다.
얼마 전 한 대형 서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서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느냐고 걱정스레 말했다. 처음에는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구나’ 생각했는데 더 얘기를 나눠보니 런던 올림픽 당시 내 경기를 보기 위해 런던까지 왔다는 게 아닌가! 런던 올림픽 이후 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눈물부터 나온 것이다. 일하다 피곤할 때 먹으라고 간식거리를 사서 선물하고 돌아 나오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은퇴하고 시간이 흘렀는데도 기억해주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유명한 공인, 전 국가 대표 금메달리스트 같은 수식어를 다 떠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걸 느꼈다. 선수 시절에도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고 자부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선수 시절은 내게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에게 다가와 진심을 표현해준 친구들이 있기에 나도 그 마음이 고마워 작은 것이라도 해주고 싶다. 물론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도와야겠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성숙하지도, 마음이 여물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듣고 배운 것이 자연스럽게 무르익고, 선수 생활을 하며 스스로 깨달은 점이 만나 지금의 마음가짐을 완성했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을 때도 어머니는 주변 이웃과 나누며 사는 걸 좋아하셨다.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기쁘게 나눔을 실천하신다는 걸 옆에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보다 어려운 가족에게는 우유 한 팩도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며, 먹을거리가 생기면 직접 집을 방문해 전해주셨다. 그때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운전을 시키곤 하셨는데, 당시에는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함께 가길 잘한 것 같다. 또한 늘 나에게 현역으로 활동하며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줄 때 다른 사람에게 더 잘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해도 되지만, 바쁠 때 챙기고 도와주면 더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다. 장미란재단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런던 올림픽 전이라 컨디션도 좋지 않고 훈련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시간이 흐르면 더 어려워질 수 있으니 선수 시절 내내 받은 유형·무형의 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알려주셨다. 그 이후 아버지가 물심양면 여러 방면으로 재단을 위해 애써주셨고 나도 은퇴를 결심할 수 있었다.
예전에 선수촌에서 생활하던 당시, 가끔 ‘왜 수많은 운동 중에서 이토록 힘든 역도를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당연히 있었다. 비가 오면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침대에서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하는 게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역도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운동이다. 역도는 정직하고 신사적이다. 오로지 나와 바벨뿐, 둘 사이에 어떤 개입도 없이 내 능력대로 평가받고 훈련한 만큼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서 신사적이다.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그에 비례해 기록이 나오니 거짓이 없는 정직한 운동이다. 훈련 양을 정하고 묵묵히 해나가면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얼마나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목표만큼 해낼 수 없는 날이 훨씬 많지만 해낸 날의 성취감, 기쁨이 몇 배로 크기에 계속 정진할 수 있었다. 가끔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것이 더 대단하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역도인데 다들 응원해주고,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니 감사한 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힘들고 고된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선수촌 생활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주말에 밖에 나가지 않아도 즐거웠다. 선수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은 물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 없이 내 컨디션을 관리하고 운동만 잘하면 되는데,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나.
2011년 전국체전에 참가했을 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더 힘을 낸 기억이 난다. 당시 난 체력이 떨어지고 기록도 만족스럽지 못해서 솔직히 시합에 참가하기 싫었다. 잘해내지 못하고 턱걸이하듯 빠듯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학생부터 연세 지긋한 아버님들까지 모두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셨다. 역도 경기장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기록도 중요하지만 관중은 내가 나와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적인 응원 덕분에 무사히 3차까지 경기를 마치고 내려올 수 있었다.
시합에 나가 메달을 따기까지, 여러 가지 요인과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열심히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고, 세상의 시선과 대우가 변할 때도 있다. 그런 때일수록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 자신에 대한 실망, 남은 아쉬움은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메달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원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열심히 운동해 시합에 나갈 수 있을 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때 감사하자는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연습 때 아무리 잘해도 막상 시합에 나갔을 때 그만큼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불평, 불만이 없을 수 없겠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늘 더 많은 격려를 받았고, 그 덕분에 큰 수술 한 번 없이 꾸준히 성적을 내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힘들고 약해질 때, 거기에 너무 오래 빠져 있지 말고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고 감사한 일부터 생각해보면 좋겠다. 주저앉고 싶고, 놓아버리고 싶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에디터 고현경
글 장미란(전 국가 대표 역도 선수)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