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McQueen 스티브 매퀸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 스티브 매퀸. 1999년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터너상을 수상하고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영화감독으로 예술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 다재다능하다는 단순한 말로는 이 남자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1,2 에스파스 루이 비통 도쿄에서 개인전 을 개최한 아티스트 스티브 매퀸 /ⓒ Louis Vuitton / Jeremie Souteyrat Courtesy of Espace Louis Vuitton Tokyo 3 Ashes, 2014 도쿄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신작 비디오 아트 ‘Ashes’를 최초로 공개했다. / ⓒ Louis Vuitton / Jeremie Souteyrat Courtesy of Espace Louis Vuitton Tokyo
얼마 전까지 포털 사이트에서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을 검색하면 1960년대에 활약한 전설의 액션 배우가 먼저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2014년을 살아가는 대중,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에게 스티브 매퀸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노예 12년>의 감독 말이죠?” 그는 차기작이 가장 기대되는, 현재 영화계 이슈의 중심에 있는 영화감독이다.
1999년 터너상 시상식,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 순간적으로 의아해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해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는 트레이시 에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제치고 수상 소감을 밝힌 이는 스티브 매퀸이었다. 작가가 직접 출연한 ‘Deadpan’(1997년)을 포함해 ‘Drumroll’(1998년), ‘Prey’(1999년) 3편의 영상 작품으로 터너상을 수상한 이후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그의 커리어는 기복을 찾아볼 수 없이 승승장구해왔다. 욕심 많은 이 남자는 활동 영역을 더 확장해 2008년 장편영화 <헝거(Hunger)>를 발표했다.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다 세상을 떠난 IRA 단원 보비 샌즈의 실제 옥중 투쟁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같은 해에 열린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두 번째 영화 <셰임(Shame)>은 스티브 매퀸이 단순히 세련된 영상 연출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짚어낼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한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더 많은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지만, 스티브 매퀸은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해 꾸준히 질문을 던져왔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세 편의 영화에 비해 그의 영상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 모호하고 시적인 면도 있다. 제작비가 부족해 그렇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지만 직접 영상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육체와 자아에 대한 집중적 탐구를 이어나간다. 굳이 아카데미 영화제 최초로 예술작품상을 수상한 흑인 아티스트라는 표현으로 그를 칭찬하지 않아도, 스티브 매퀸은 상업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경계를 두지 않고 탁월한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부터 에스파스 루이 비통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스티브 매퀸 개인전 < Steve McQueen >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루이 비통의 지원으로 제작한 신작 ‘Ashes’를 이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했는데, 오랜만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선보인 작품임에도 역시 호평을 받았다. 오프닝 행사로 열린 아티스트 토크에 스티브 매퀸의 오랜 지인이자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오쿠이 엔위저가 진행자로 참석했다. 그는 스티브 매퀸이 폭넓고 복합적인 시선을 가졌으며,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들과 달리 작품에 사용하는 미디어를 꾸준히 재발견하고 다른 질문을 던짐으로써 뛰어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고 평했다. 8월 1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올가을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 기간에 토머스 데인 갤러리(Thomas Dane Gallery)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스티브 매퀸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지금 머지않은 시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아티스트의 현재를 목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Ashes, 2014 도쿄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신작 비디오 아트 ‘Ashes’를 최초로 공개했다. / ⓒ Louis Vuitton / Jeremie Souteyrat Courtesy of Espace Louis Vuitton Tokyo 2 Five Easy Pieces, 1995 스티브 매퀸은 작품에 꾸준히 등장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이어왔다. / courtesy the artist,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3 Giardini, 2009 2009년 뉴욕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 courtesy the artist,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당신은 현대미술계에서 손꼽히는 비디오 아티스트이면서 동시에 영화감독으로도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치 않은 경우인데,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나요?
저는 사실 두 장르의 작업을 하면서 어떤 차이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영화는 대규모 세트장에서 촬영하지만 예술적 감수성은 동일합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작품의 본질에 닿기 위해 하는 작업도 같고요. 가끔 영화를 촬영할 때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기도 합니다. 그저 촬영 환경의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제가 특정 방향으로 리드하면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도 잘 따라오죠.
개인 작업과 달리 영화는 흥행에 대한 부담을 버릴 수 없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팀을 이뤄 만들기도 하고요. 성공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물론 재정적 측면은 다릅니다. 그게 비디오 아트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데 2000만 달러가 들기도 하고,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인데 어느 정도 흥행에 대한 압박도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아티스트로서 개인 작업을 할 때와 다르긴 하죠. 하지만 이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사실 크게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인데, 저는 늘 예술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전부죠.
그림, 사진, 영상,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작업하지만 가장 즐기는 것이 영상 같은데, 영상의 어떤 면이 당신의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나요?
제가 영화로 작품 활동 영역을 넓힌 계기, 그러니까 영화와 비디오 아트 두 장르를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은 영상을 만드는 작업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작가가 영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주로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용도였어요. 저는 파인 아트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영상을 만드는 자체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 둘을 한데 엮어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얻는 아이디어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했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연출된 상황에 따른 뚜렷한 차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로 관객을 만나는 것과 전시회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장편영화에서는 스토리가 주가 됩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며 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님이 당신을 기다리죠. 제게 장편영화는 소설과도 같아요. 그리고 비디오 아트는 시라고 할 수 있죠. 모든 사람이 시를 읽진 않아요. 날이 갈수록 소수의 사람만 시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음미하려 합니다. 시와 소설의 비유는 제가 비디오 아트와 장편영화를 만드는 접근법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1 Prey, 1999 ‘Deadpan’, ‘Drumroll’과 함께 1999년 터너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 / courtesy the artist,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2 Deadpan, 1997 Installation Image, History in the Making: A Retrospective of the Turner Prize, 2008, Mori Art Museum. Photo: Watanabe Osamu.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Mori Art Museum, Tokyo 스티브 매퀸은 이 작품으로 1999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 courtesy the artist,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3 <셰임>은 스티브 매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이다.
빠른 이해를 도와주는 비유이기도 하네요. 커뮤니케이션 방법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가끔 시가 소설이 되기도 하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있을 때도 있죠. 저에게 사실상 예술과 영화의 ‘이혼(divorce)’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영화에서는 스토리를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죠. 제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생각해요. 시에서 제가 좋아하는 점은 특유의 간결성과 추상성이에요. 몇 소절에 전 세계를 담아낼 수 있죠. 36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이 아니더라도요. 세 줄에도, 한 구절에도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게 시예요. 더 촘촘하고, 정밀하고, 그저 다를 뿐이죠.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감독이나 아티스트가 있나요?
1990년대 초반 제가 아티스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때 데릭 저먼(Derek Jarman)과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영화나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같은 아티스트의 미술 작품을 많이 봤어요. 그 당시 영화계 일각에서는 단지 스토리만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특정 상황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온갖 종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제가 또 영향을 받은 영화감독으로 장 비고(Jean Vigo) 감독이 있어요. 그는 프랑스 국적이면서 동시에 무정부주의자였는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가피한 시대상 같은 것을 그려냈죠. 스탠리 브래커지(Stanley Brakhage), 마이클 스노(Michael Snow)같이 실험적이고 흥미로운 감독의 작품도 즐겨 봤습니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 모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흥미를 자극하는, 관심을 끄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요? <헝거>, <셰임>,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까지 작품의 주인공이 한결같이 기구한 사연을 지녔거나 흔히 볼 수 없는 인물입니다.
셋 모두 ‘감금’된 상황에 처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중력에 관해 얘기한다고 할 수 있죠. 각자 처한 상황에 맞서 싸워나가는 과정이에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요. <헝거>에서 보비 샌즈는 자신의 몸을 무기로 쓰죠. 메이즈 교도소는 북아일랜드에서도 경비가 가장 엄중한 곳이에요. 그 안에 갇혀 있을 때, 가지고 있는 것이 당신의 몸밖에 없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한계를 초월해나갈 수 있을까요? 그는 먹기를 거부하죠. 반면 <셰임>의 브랜든은 하루 24시간 모든 것이 가능한 뉴욕이라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스스로를 섹스에 가둬버려요. 그렇게 자유(섹스)의 포로가 되죠. <노예 12년>은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 피노키오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명의 사기꾼이 솔로몬 노섭을 속여서 노예의 소굴로 납치해가죠. 그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아 항해하는지, 어떻게 비인간적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한 얘기예요. 제게 이 세 영화는 모두 ‘중력에 대한 감각(sense of gravity)’으로 엮여 있어요.
1 <노예 12년>으로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 예술작품상, 미국 최대의 독립영화상인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다. 2 Portrait as an Escapologist, lambda print on photographic paper, 2006 스티브 매퀸이 직접 출연한 작품 / courtesy the artist, Thomas Dane Gallery, London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당신의 영화는 보고 나서 생각할 것이 많아요. 작품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나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예로 들어 얘기하면, 제 생각에 다큐멘터리는 누군가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그려내고 기록하는 거죠. 파스타 만드는 방법을 보여줄 수도 있고,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해 다룰 수도 있을 거예요. 저에게 제가 하는 작업은 무언가에 대해 조사하고 실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지, 그곳에 어떻게 갈지 등을 그리고 그다음 움직임에 대해 고민하는 겁니다. 복잡한 관계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요. 붓도 마찬가지죠. 붓으로 풍경화를 그릴 수도 있지만 다른 그림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는 수단은 하나여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죠. 저는 단지 카메라를 가지고 그 모든 것을 할 뿐이에요.
< Queen and Country >전에서 선보인, 군인들의 얼굴을 새긴 우표로 만든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 궁금합니다.
2003년에 이라크에 갔습니다. 그 당시 6일 정도만 필드에 나갈 수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군인들이 저를 바짝 따라다녔어요. 군인들의 동료애가 무척 강하다는 것을 느낀 것 말고는 원하는 만큼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그곳에서 촬영한 몇몇 컷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좌절감을 느꼈고 걱정도 됐습니다. 그때 문득 전쟁 중 오가는 편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편지는 기억이나 소통에 관한 것이라 여겼고 우표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영국에서 우표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려면 왕실 사람이거나 죽어야 가능하거든요. 만약 누군가의 얼굴을 우표에 새겨야 한다면 여왕이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국방부에 가서 그 얘길 하니 “풍경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서 제가 답했죠.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창피합니까?”
그들은 제가 참전한 군인 가족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도록 주소를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소 찾기를 도와줄 사람을 고용했고, 당시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 작품에 대해 설명한 편지를 군인 가족들에게 보냈어요. 결과는 긍정적이었어요. 93%의 가족이 참여하고 싶다는 답변을 보냈고, 500여 명의 친척과 가족이 모였죠. 굉장히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비롯한 예술 작품이 사람들에게 힐링 프로세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나요?
군인 가족도 서로 처음 만난 것이었고,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우표에 대한 아이디어가 맘에 든 이유는 편지에 붙이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멀리 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표를 통해) 나라의 혈류가 흐르는 작품을 만드는 아이디어였죠. 당시 작품 가격이 아니라, 예술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몇몇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예술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TV 뉴스나 일간지, 다큐멘터리 등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와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어떤 것 말이에요.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루이 비통, 토머스 데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