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 Ham 함진
아티스트 함진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조각을 만드는 남자다. 손톱보다 작은 초미니 사이즈로 만든 우스꽝스러우면서 기이한 인간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강렬한 서사로 다가왔다. 폭탄 위의 도시에서 오늘도 생존을 위해 달려가는 도시인, 파리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사람, 귓속에 동굴을 품고 있는 인간의 섬뜩한 얼굴. ‘인간 삶의 모순과 다양한 감정의 기억’을 담은 그의 전무후무한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도쿄 모리 미술관, 에스파스 루이 비통 파리에서 열린 굵직한 전시를 전방위로 누볐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뜨거운 주목을 받으며 미술계를 점령한 그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우리에게 익숙한 구조나 방식의 경계를 뛰어넘고 싶다”며 치열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변화는 “나에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 내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걸 함진은 여러 번 강조했다.
Somewhere in the Body, Polymer clay and wire, 70×55×46cm, 2013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예전 작품에 비해 최근 작품은 사이즈가 조금 커졌어요. 무채색, 반추상적 형태 등에서도 많은 변화가 보이고요.
예전에 작업할 땐 1cm도 안 되는 조각에 스톱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표정이나 몸짓까지 리얼하게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관람객은 갤러리의 텅 빈 공간에서 작품을 찾기 위해 바닥이나 계단을 잘 살펴봐야 했죠. 그런데 오랫동안 작업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지겨워진 순간이 왔어요. 그래서 작업을 멈추고 난생처음으로 드로잉과 그림에 도전해봤는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때부터 사이즈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하자는 생각으로 만들다 보니 인물이 좀 뭉개지고, 추상적인 형태도 나타났죠.
아티스트에게 작품의 변화는 내면의 변화를 동반할 것 같아요.
그 작업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어떤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동안 시장을 크게 의식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좋은 작품이 뭔지, 잘 만든다는 게 무엇인지 등 많은 고민이 찾아오더라고요. 몸이 안 좋아질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깨달은 건 어차피 제 작업이 사회적·역사적 메시지를 던지거나 개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즐겁게 제 얘기를 해보자는 거였어요. 요즘 제 목표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얼마 전 뉴욕에서 전시를 마쳤다고 들었어요. 반응이 어땠나요?
뉴욕 사람들이 제 작품을 참 좋아하더라고요. 하루에 400명 정도의 관람객이 다녀갔어요. 제 작품이 유머러스하면서도 괴기한 면이 있잖아요. 미국 사람들이 그런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귀엽다고만 할 순 없는 생명체 같은 것, 심슨이나 스펀지 밥처럼요.
전시 전 6개월간 뉴욕에서 레지던시를 하셨는데 그곳에서 현대미술의 강한 기운이 느껴지던가요?
어느 날 갤러리 근처로 산책을 나갔는데 한 건물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거예요.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우산을 들고 사람들이 하염없이 기다리길래 뭔가 궁금해서 봤죠.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인기가 대단했죠. 그때 여기가 뉴욕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뉴욕의 메이저 갤러리는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되고, 홍보의 힘에 전시의 성공 여부가 좌지우지되더라고요.
전작과 최근작 대부분에 인간의 형상이 등장해요. 인간이라는 주제가 늘 흥미로운가요?
제 작업에선 인간이 아주 중요해요. 가장 관심이 많은 건 나 자신이고, 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재미있어요.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제 또래 여자 두 분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리고 성형수술을 하러 가더라고요. 순간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봤는데, 그 지점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 거죠. 내 생각이 사회적 관념에 의해 습득된 건 아닐까? 오래 살기 위해 인공 심장을 다는 것과 성형수술이 궁극적으로 차이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이어가게 하는 인간의 삶이 늘 흥미롭기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이전보다 커지긴 했지만 이번 뉴욕 전시에서도 관람객을 위한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고 들었어요. 당신의 작품은 갤러리 벽이 아닌 계단이나 벽의 모서리 같은 곳에 놓여서 일면 관람을 불편하게 해왔어요. 의도한 불편함인가요?
맞아요. 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정말 좋아해요. 곤충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잖아요. 숲 속에 가더라도 사람들은 경치를 보는데 저는 쭈그리고 앉아서 나무 밑에 자란 이끼나 그 사이의 작은 버섯,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같은 걸 봐요. 거기엔 웅장한 랜드스케이프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하고 다양한 시점이 존재해요. 관람객도 그런 시점으로 제 작품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1 Red Piece(small), Polymer clay and mixed media, 10.5×12×13cm, 2013
2 Tale of City, Polymer clay, glue, wire and fishing line, size variable, 2013

1 Aewan #1015, C-print photograph of polymer clay sculpture on the artist’s belly button, size of photo 155×125.5cm, size of sculpture 1cm3(approximate), 2004
2 Aewan love #3, C-print photograph of a sculpture made of polymer clay, fly and mixed media, size of photo 155×125.5cm, size of sculpture 1cm3(approximate), 2004
컬렉터들도 당신처럼 그런 의외의 공간에 작품을 놓아둘지 궁금하네요.
그렇지 않던걸요.(웃음) 컬렉터 집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더라고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가 끊긴 타이밍에 그 작은 작품이 좋은 화젯거리가 된다고 하더군요.(웃음)
10년 전 인터뷰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고,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호성을 지를 만큼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 원하는 건 뭔가요?
그 당시 나의 슈퍼맨은 그런 모습이었어요. 어릴 땐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지만 3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작품을 좋아해주는 마니아가 있고,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는 것. 그런 게 멋있어 보여요.
현대미술은 관람객에게 단순히 어떤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잖아요. 때론 관람객의 반응을 계산하기도 하고 충격이나 도발 같은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하죠. 당신도 그런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예전에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미술이라고 생각하던 오만한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어려워요.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 더 어렵게 끌고 온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미식가가 될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것처럼 미술계에 몸담고 있을수록 무엇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일찍 주목을 받은 점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대학 수업 시간에 작업을 하다 커피 마시며 손에 묻은 재료를 떼어내 조물조물 만들어본 게 제 작은 작품의 시작이었어요. 하나씩 만든 걸 피자 박스 안에 담아 매일 교수님께 찾아가 보여드렸어요. 매일 가서 보여드리니 아는 큐레이터한테 한번 보여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품을 본 큐레이터가 마음에 들어해 1998년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됐어요. 1999년에 사루비아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하면서 많이 알려졌고요. 그런데 사람들의 기대라는 게 참 재미있어요. 작품이 알려진 후, 제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던 분들이 몇 년이 흐르니까 ‘작품에 변화가 없다’, ‘아직도 작은 작업만 하느냐’며 싫어하시더라고요. 변화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미술계에 알려진 순간부터 당신에겐 늘 ‘젊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녀요. 재기발랄하며 대범한 아티스트라는 뉘앙스와 함께요. 아티스트 함진의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요?
지금은 아무것도 확정되거나 완성된 게 없는 상태인 것 같아요. 예전에 사람을 작게 만든 미니어처 작품으로 제 작업 스타일을 고정하려고 한 순간이 있었어요. 유명 작가가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갖는 것처럼요. 그런데 지금은 더 노력하고 다양하게 실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조각은 태생적으로 중력과 싸우는 과정이에요. 부피를 키우거나 형태를 세우려면 골조를 계산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것을 모두 버리면서 작업하고 싶어요.
1990년대 후반에 함께 ‘젊은 작가’로 불리며 등장한 작가 중 몇몇 작가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대부분 미술계에서 사라졌어요.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 뭔가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 사랑의 기억 같은 감정을 저는 좀 엉성하게 손장난처럼 표현했잖아요. 내추럴한 감성 때문에 오래도록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작업 말고 가장 흥미로운 게 뭔가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 옷이 예뻐서 샀다면 요즘엔 제 몸을 관찰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랑 체형이 비슷한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입는지 유심히 봐요. 몸을 관찰하다 보면 인간의 유한성과 그 안의 어떤 무한성을 동시에 느끼게 돼요. 그러면서 작업에 대한 제 생각도 다잡아가죠.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잡혀 있나요?
3월엔 서울 두산갤러리에서, 5월에는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려요. 아침마다 하고 있는 수영도 계속할 거예요. 작업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도 체력은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박선영 사진 이영학(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