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예술이라 부르리

ARTNOW

한동안 침체돼 있던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가 부활했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14년 S/S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는 이제 백발이 된 거장들의 활약과 오랜만에 컴백한 디자이너들의 반가운 컬렉션으로 빛났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그 특별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칼 라거펠트는 2014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런웨이를 위해 그랑 팔레를 모던한 분위기의 클럽으로 변모시켰다.

오트 쿠튀르 드레스, 오트 쿠튀르 향수, 오트 쿠튀르 디자인….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화려한 수식어 ‘오트 쿠튀르’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패션쇼가 얼마 전 파리에서 열렸다. 그 영광스러운 런웨이를 장식한 브랜드는 샤넬, 발렌티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장 폴 고티에, 스키아파렐리, 알렉시스 마빌, 아르마니 프리베, 지암바티스타 발리, 디올, 아틀리에 베르사체, 빅터 앤 롤프 등. 본래 고급 재봉을 뜻하는 오트 퀴튀르는 디자인을 보고 바로 물건을 구매하는 기성복과 달리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본 후 구입하고 싶은 옷이 있으면 직접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 맞추는 최고급 의상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하이엔드 패션과 명품 패션, 최고급 패션을 지칭한다. 단순한 맞춤복이 아니라 독창성과 예술성, 장인정신, 전통성 등 파리의상조합의 까다로운 규정과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오트 쿠튀르로 인정받는다. 이를테면 아틀리에가 파리에 있어야 하고, 15명 이상의 직원과 전속 모델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등이다. 오트 쿠튀르 의상은 편안한 착용감이나 효용성보다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다. 다루기 힘든 소재나 디테일도 아름답다면 오트 쿠튀르에서는 환영이다. 한 벌 가격이 수억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시퀸 몇만 개를 핸드메이드로 수놓기도 하고 꽃이나 나비, 레이스 등을 장식하는 데 수백 시간씩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자존심 그 자체다. 따라서 높은 가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소화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런 이유로 팔기 위한 옷보다는 예술 작품의 성격이 강하다. 오트 쿠튀르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기성복, 일상에서 입기 위한 옷을 의미하는 ‘프레타 포르테’ 또는 ‘레디투웨어’가 있는데, 요즘 프레타 포르테와 레디투웨어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양하고 독특한 디자인, 예술적인 면에서는 오트 쿠튀르의 매력을 따라갈 수 없다.

1 스포티한 감각의 메탈릭 컬러 액세서리를 매치해 반향을 일으킨 샤넬 2014년 S/S 오트 쿠튀르 룩 2 샤넬 2014년 S/S 오트 쿠튀르 룩. 화려한 깃털 장식이 블랙 컬러와 만나 카리스마 넘치는 이브닝 가운에도 오트 쿠튀르 특유의 섬세한 세공을 더한 스니커즈를 매치해 눈길을 끌었다. 3 샤넬 2014년 S/S 오트 쿠튀르 룩. 아이콘인 트위드 소재 의상은 허리를 강조한 실루엣으로 스타일리시함을 살렸다.

오트 쿠튀르 쇼는 소수의 고객을 위한 고급 맞춤복을 선보이기 때문에 각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개성과 장인정신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오직 파리에서만 진행하고, 유명인사만 관람이 가능하며 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의 수준도 엄격하게 관리한다. 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남다른 권위와 자부심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패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오트 쿠튀르의 시초는 19세기 나폴레옹 3세 비(妃)의 전속 드레스 메이커 찰스 프레드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다. 17세기 말부터 프랑스의 유명 재봉사들은 명망 있는 고객을 확보한 다음 직접 자신의 메종(Maison)으로 초대해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 왕실에 고용된 드레스 메이커 워스는 자신의 의상을 살아 있는 모델에게 입혀 패션쇼를 연 최초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오늘날과 같이 정기적으로 1년에 두 번씩 패션쇼를 열어 왕족이나 상류층 고객을 확보하며 명성을 알렸다. 1910~1930년대에 활동한 폴 푸아레(Paul Poiret),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마들렌 비요네(Madeleine Vionnet)를 비롯해 1940~195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피에르 가르댕(Pierre Cardin),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등의 디자이너는 상류층 귀족을 주고객으로 오트 쿠튀르의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도 매 시즌 오트 쿠튀르가 열리고 있는데, 의상의 대량판매보다는 트렌드를 결정지을 만한 디자인의 디테일과 소재의 활용 그리고 예술로 승화한 패션을 선보이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오트 쿠튀르라는 패션계의 화려한 전통도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세계적 경제 불황의 여파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어떤 이들은 오트 쿠튀르의 종말이다, 쇠퇴기다 하며 섣부른 결론을 내놓았고, 최근 쿠튀르 수준으로 진화한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으로 인해 그 간극이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단 패션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던 오트 쿠튀르 무대의 축소는 다행히 2013년 F/W 시즌을 기점으로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년간 프리랜서로 활동한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전설적 쿠튀리에 스키아파렐리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돼 첫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1920년대 초현실주의 패션인 쇼킹 핑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특유의 섬세한 비딩과 고급스러운 소재가 돋보이는 의상을 대거 소개하며 그의 건재함을 알렸다. 네덜란드 출신 듀오 디자이너 빅터 앤 롤프도 13년 만에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들에게 2013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을 터. 또한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처음 데뷔한 로렌스 쉬와 이칭 인 등 중국 출신 디자이너의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디올 2014년 S/S 오트 쿠튀르 룩. 건축적 느낌의 펀칭과 3D 장식 그리고 스팽글과 비즈 등 독창적이고 화려한 디테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얼마 전 패션계의 핫이슈를 장식한 2014년 S/S 시즌 오트 쿠튀르 패션쇼가 막을 내렸다. 운동화 신은 모델들이 등장한 샤넬의 혁신적인 무대, 건축적 펀칭 장식으로 1960년대를 재해석한 디올, 특유의 우아한 실루엣과 복고적인 느낌의 의상으로 수놓은 아르마니 프리베 등 디자이너들은 때로는 미래지향적으로, 때로는 고전적으로 2014년 버전의 ‘귀족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오트 쿠튀르를 재정의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이번 컬렉션에서 오트 쿠튀르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의상을 대거 소개했다. 런웨이 무대 위에 현악단과 함께 다양한 연주자를 세워 눈길을 끌었고, S/S 시즌에 맞게 차분한 분위기의 밝은 핑크·그레이·아이보리·민트를 주로 활용한 가운데 브랜드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블랙 & 화이트 드레스도 빼놓지 않아 샤넬 특유의 위엄을 뽐냈다. 아울러 샤넬에서 빠뜨릴 리 없는 트위드는 한층 트렌디하게 변신시켰다. 무릎길이의 스커트와 크롭트 톱으로 제작한 트위드 투피스는 여성의 아름다운 보디 실루엣을 살리면서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쇼에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오트 쿠튀르 의상에 스포티브한 감각을 더한 점이다. 샤넬의 실험적 컨셉을 반영한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 허리에 착용한 힙색으로 완성한 스포티브 룩을 통해 오트 쿠튀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것. 여기에 런웨이에 오른 모델 모두 펑키한 헤어스타일에 스니커즈를 신고 경쾌하게 무대를 거닐어 스트리트풍의 활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목을 모았다. 한편 디올은 건축적인 느낌의 펀칭 장식을 가미해 고전과 현대를 조화롭게 아우른 점이 단연 눈에 띄었다. 눈부시게 흩날리는 옷에 매단 입체적 펀칭 장식과 새하얀 아일릿 원피스에 가는 실로 섬세하게 바느질한 클로버 장식 등이 돋보이는 오트 쿠튀르 의상이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특히 모던한 크롭트 톱과 미니스커트의 만남, 똑 떨어지는 박스 형태의 모즈 룩 등으로 1960년대를 주름잡은 실루엣을 다양하게 소개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 앞은 초미니고 뒤는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비대칭형 드레스, 한쪽 어깨 장식을 과감히 제거한 대각선 실루엣의 실크 드레스, 가슴 라인을 깊이 판 브이넥 뷔스티에 드레스, 커다란 주름 장식이 등을 따라 날리는 H라인 드레스 등 디올 특유의 드레시한 의상을 선보여 기대에 부응했다. 여기에 비즈 장식 스니커즈나 무릎을 감싸는 스트랩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파스텔 톤 스틸레토 힐을 더해 캐주얼한 무드를 녹여냈다.

아르마니 프리베 2014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백스테이지에서 포착한, 눈부신 광택과 신비로운 컬러가 눈길을 끄는 룩. 실크 소재 반다나 스타일링과 어우러진 에스닉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번 아르마니 프리베 컬렉션에서 복고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오트 쿠튀르 의상을 선보였다. 독창적인 소재의 튜브톱 드레스와 투피스는 보디라인을 드러내 여성미를 강조했고, 신비롭고 은은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오묘한 매력을 자아냈다. 반다나처럼 연출한 헤어 액세서리와 클러치, 슈즈 등은 의상과 같은 소재를 사용해 통일감을 주었고, 컬러풀하고 화려한 패턴과 플라워 프린트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투피스 역시 코르사주 장식과 볼드한 액세서리를 매치해 클래식한 감성을 한층 고조시켰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분위기의 의상이 주를 이루면서 여성의 매혹적인 보디 실루엣을 가감 없이 드러내 반전의 매력을 선사했다.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숨은 재미로 디자이너가 발탁한 역대 뮤즈를 보는 것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요즘 가장 핫한 모델인 샤넬의 최연소 뮤즈 카라 델레바인은 이번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 쇼에서 칼 라거펠트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했다. 카라 델레바인은 현재 가브리엘 코코 샤넬과 닮은 이미지를 추구하는 샤넬의 뮤즈 중 확연하게 현대적이고 개성 강한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화려한 나비를 테마로 생동감 넘치는 디자인을 선보인 장 폴 고티에의 컬렉션에서는 관능미의 대명사 디타 본 티즈가 그의 ‘나비부인’으로 오랜만에 런웨이에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오트 쿠튀르 패션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직 마네나 르누아르 같은 당대 최고 화가들의 작품 속 귀부인들을 통해서만 오트 쿠튀르 의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9세기 귀부인들이 단 한 번의 파티를 위해 주문한, 르네상스 시대 화려함의 극치인 수공예 레이스와 비단으로 완성한 오트 쿠튀르 드레스가 어떻게 시대에 맞게 변화해왔으며 변화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 원동력이 시대적 제약이든 미적 관점의 차이든 결과물은 인간 본연의 예술적 감수성과 창의성을 녹여낸,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의상이기에 영원히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정새미(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