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ing of Local Design
동남아시아 최대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예술적으로 심심하던 자카르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 디자이너, 아티스트, 건축가가 협업한 감각적인 디자인 호텔과 바가 속속 들어서면서 볼거리, 즐길 거리가 한층 풍성해졌다.
자카르타는 인구 1000만이 넘는 동남아시아 최대 도시다. 인구 수나 면적 면에서 서울을 앞지른 초대형 도시지만 문화·예술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소 도시인 욕야카르타나 반둥에 주도권을 뺏긴 지 오래다. 도시 규모에 비해 번듯한 미술관 하나 갖추지 못한 이 회색 도시에 최근 크고 작은 예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천연자원과 인구 1억 명이 넘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인도네시아의 거부들은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부동산·금융계의 가장 큰 고객이자 투자가다. 같은 이유로 인도네시아 컬렉터들은 동남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막강한 바잉 파워를 자랑한다. 슈퍼 컬렉터들이 주로 거주하는 자카르타에 예술의 바람이 부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의 부동산 붐과 맞물려 크고 작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끊임없이 들어섰지만 성장만을 목표로 한 자카르타는 취향 없는 무채색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문을 연 공간을 보며 인도네시아 로컬 디자인의 작은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 인도네시아 사람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수공예 실력을 자랑한다. 목공예에서 패브릭에 이르는 전통문화의 저력이 이제 젊고 신선한 지역 예술가들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몸값이 비싼 해외 디자이너를 데려오던 예전 관행을 벗어나 최근 현지의 젊고 신선한 감각을 지닌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가 협업해 문을 연 공간에서 그런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부터 두각을 드러낸, 디자인과 예술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자카르타의 실험적 공간을 찾아가봤다.
1 컬러풀하고 감각적인 아르토텔 자카르타 탐린의 전경
2 아르토텔 자카르타 탐린은 각각의 룸도 아티스틱한 분위기로 꾸몄다.
아르토텔 자카르타 탐린(Artotel Jakarta Thamrin)
2년 전 수라바야에 1호점을 열고 작년 자카르타 중심지인 탐린 지역에 2호점을 낸 아르토텔은 현지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와 협업해 완성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최초로 아트 호텔 개념을 도입한 아르토텔은 순수한 인도네시아 로컬 브랜드다. 아르토텔은 수라바야의 JW 메리어트 호텔을 소유한 컬렉터의 두 자녀가 운영 중이다. 오래된 건물을 개·보수하는 단계부터 7명의 인도네시아 예술가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통해 호텔 내·외관을 거대한 갤러리로 변신시켰다. 호텔 외관을 감싸고 있는 작품은 자카르타 출신 그라피티 예술가 다르보츠(Darvotz)의 작품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와 색채로 아르토텔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위한 캔버스일 뿐이다(This world is but a canvas to our imagination)’라는 아르토텔의 모토처럼 7명의 예술가는 호텔 로비부터 레스토랑, 객실 하나하나까지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 객실 내 의자와 테이블, 램프에 이르기까지 지역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손길로 꾸민 아르토텔은 2년 후 발리에 3호점을 열 계획이다.
1 자카르타 현지의 아트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코센타 호텔을 선택할 것
2 하운즈투스 패턴의 바닥이 인상적인 코센다 호텔 라운지
코센다 호텔(Kosenda Hotel)
아르토텔에서 걸어서 10분, 지난해 9월에 문을 연 코센다 호텔은 오너 루벤 코센다의 이름을 딴 부티크 호텔이다. 자카르타 전통 가옥 베타위(Betawi)에서 빌려온 다이아몬드 모양이 호텔 인테리어의 주요 컨셉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 문양은 호텔 외관은 물론 패브릭과 램프, 쿠션과 문고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오너 부부의 1950년대 빈티지 가구 컬렉션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섬유 사업을 하는 남편과 전직 패션 디자이너인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자카르타의 디자인, 미술, 건축 분야 예술가들이 집결하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호텔 로비나 리셉션 공간은 없다. 오랫동안 부부가 컬렉팅한 빈티지 디자인 소품과 가구로 꾸민 라운지는 거실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실제로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는 물론 노트북을 켜고 미팅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코센다 호텔 역시 지역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가 협업한 결과다. 오너의 취향과 섬세함을 더한 코센다 호텔 인테리어의 정점은 1층 로비에서 8층까지 이어진 벽이다. 마치 공사를 하다 만 것처럼 마감한 벽은 버려진 각목 조각을 재활용해 완성했다. 벽 디자인은 즉흥적인 아이디어였음에도 복잡한 거대 도시 자카르타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앤티크 샹들리에를 볼 수 있는 포테이토 헤드 거라지
포테이토 헤드 거라지(Potato Head Garage)
아르토텔에서 체크인하고 코센다 호텔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 후 저녁식사를 위해 포테이토 헤드 거라지로 향한다. 고급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이 초대형 레스토랑은 2013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발리 최고의 명소인 비치 클럽을 운영 중인 젊은 오너들이 새로 오픈한 이곳은 세련되고 펑키한 분위기 덕분에 젊은 고객이 식사와 파티를 즐기는 사교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거라지(Garage)는 오픈과 동시에 자카르타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본래 체육관으로 지어 뮤직 홀로 사용하던 이 건물은 일단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2000평에 이르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 그 규모에 놀라 절로 탄성이 나온다. 유럽과 러시아에서 모은 수십 개의 거대한 앤티크 샹들리에가 19세기 빅토리언 스타일로 꾸민 레스토랑을 화려하게 빛내고 그 외에도 러시아에서 가져온 교회 재단과 앤티크 테이블 장식, 타일, 곳곳에 걸린 다양한 사진과 회화 등을 돌아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 포테이토 헤드의 디자인도 지역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손길로 완성했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닙 앤 드램엔 반드시 들러보자.
닙 앤 드램(Nip & Dram)
포테이토 헤드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엔 자카르타 최초이자 유일한 싱글 몰트위스키 바, 닙 앤 드램으로 향한다. 닙과 드램은 싱글 몰트위스키 양을 측정하는 단위다. 즉 싱글을 기준으로 2분의 1이 닙, 닙과 싱글 사이를 드램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생산한 150종이 넘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불교 국가 부탄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를 생산한다는 흥미로운 사실. 싱글 몰트위스키를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샘플러 메뉴를 제공한다. 아늑한 조명과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닙 앤 드램에서 싱글 몰트위스키 한잔에 시가를 곁들인다면 자카르타의 여유로운 밤은 당신 것!
에디터 고현경
글 김정연(스페이스코튼시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