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상 수상 후
미술상을 거머쥔 후 국제적 명성을 얻은 아티스트들은 과연 이후에도 그 상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을까? 상은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짐이 되었을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중국 현대미술상 CCAA 2008년 수상자 류웨이, 2002년 제4회 휴고 보스 미술상 수상자 피에르 위그, 2003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서도호, 1999년 터너상 수상자 스티브 매퀸, 2004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은 박찬경
영화계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다면 미술계에는 영국의 터너상이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동시에 권위까지 인정받는 상.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이 주관하며 1984년 제정한 후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애니시 커푸어에 이어 2013년 로르 프루보까지 현대미술계의 굵직한 아티스트를 발굴해 대중의 주목을 끄는 데 기여하고 있다. 터너상 수상자 중 최근 가장 흥미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이다. 1996년 런던 앤서니 레이놀즈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며 데뷔한 그는 비디오 설치 작품 ‘Deadpan’(1997년)과 ‘Drumroll’(1998년)로 같은 해 후보에 오른 트레이시 에민을 제치고 1999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스티브 매퀸은 최근 뛰어난 영화감독으로 대중에게 더 친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데뷔작 <헝거(Hunger)>로 그해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고 미하엘 파스벤더 주연의 <셰임(Shame)>(2011년)으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최신작인 <노예 12년(12 Years a Slave)>(2013년)으로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으며 유수의 국제영화제 상을 휩쓸고 있다. 이쯤 되면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아티스트다. 특히 한 섹스 중독자의 공허한 내면을 그린 <셰임>은 스티브 매퀸의 탁월한 비주얼 감각이 두드러지는 수작이다. 작년에는 스위스 바젤에서 3월부터 9월까지 20편이 넘는 영상과 설치 작품을 모아 회고전 형식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터너상은 일찌감치 스티브 매퀸의 눈부신 재능을 알아본 것을 한껏 뿌듯해하고 있지 않을까?
올해 1월 초까지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비디오 아트의 대가로 한 단계 발돋움했다는 호평을 들은 프랑스 아티스트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2002년 제4회 휴고 보스 미술상 수상자다. 비디오 아트 작품 ‘Les Grands Ensembles’(1994~2001년)과 조각 작품 ‘L’Expedition Scintillante, Act II: Untitled(light show)’(2002년)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수상 기념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 후에도 조각, 비디오, 인형극,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남극 탐험 다큐멘터리 ‘A Journey That Wasn’t’(2005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전체를 거대한 숲으로 변신시킨 설치 작품 ‘A Forest of Lines’(2008년)를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피에르 위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깊숙이 파고들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최대한 희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예를 들면 영상에 나온 개가 전시장 주변에 실제로 돌아다니는 등 눈앞에 보이는 것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작품을 선보인다. 현재 스위스 사스피의 유러피언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예술 세계는 더욱 무궁무진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미술계의 큰손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울리 지그가 제정한 중국 현대미술상 CCAA의 2008년 수상자 류웨이(Liu Wei). 중국 현대미술 2세대 작가 중 가장 촉망받는 블루칩 아티스트로 대형 설치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CCAA 수상 이후 파리, 런던, 서울, 뉴욕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 특유의 집단주의에 대한 냉소적 시선을 담은 작품을 주로 선보인 그는 최근 거대 담론이나 사상이 아닌 인간의 내면, 삶의 본질로 시선이 옮아갔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상 기념 전시회를 연 중국 울렌스 현대미술 센터에서 2010년에는 게스트 큐레이터로 참여해 신인 작가 왕위양(Wang Yuyang)과 후샹첸(Hu Xiangqian)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2013년 샤르자 비엔날레에서도 그의 대형 설치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 미술계를 넘어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류웨이는 여전히 젊은 작가고 아직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많이 남은 듯하다.
1 박찬경, 노르베르트 베버 아카이브 성 오틸리엔 수도원, 2011 /사진 제공 에르메스
2 스티브 매퀸 감독 영화 <셰임(Shame)>. 화려한 도시 속 공허함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했다.
3 2012년에 열린 박찬경과 나타샤 니직 2인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에르메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미술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과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이다. 특히 2000년부터 시작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단시간에 권위를 인정받으며 해마다 누가 수상할지 미술계와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금까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를 살펴보면 1회 장영혜를 시작으로 김범, 박이소, 서도호, 박찬경, 구정아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2013년 수상자는 정은영이었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당시에도 물론 훌륭한 작품 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이지만 수상 이후 대중적으로 더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2003년 수상자인 서도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슈퍼스타가 됐다. 2012년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집 속의 집>은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흥행 전시로 등극했다. 또한 2013년에 ‘레드닷 디자인상’, <월스트리트 저널>의 ‘혁신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해외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증명했다. 2004년 수상자인 박찬경의 행보 역시 흥미롭다. 수상 당시에는 미술평론가에게 왜 상을 주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 후로 순수 창작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과 영상 작업을 주로 해온 그는 충북 계룡산 신도안 지역에서 다양한 민속신앙, 종교 집단의 활동에 대해 다룬 ‘신도안’이라는 작품을 2008년에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친형인 영화감독 박찬욱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작품 <파란만장>으로 2011년 제61회 베를린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제영화제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작품이 수상한 것은 <파란만장>이 세계 최초다.
이처럼 상을 받은 아티스트의 이후 행보에 꾸준히 주목해야 한다. 수상자로 선정할 때는 아티스트의 현재를 칭찬하는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 보여줄 활동에 대한 기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큰 상을 받은 후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확장시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며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미술계와 대중이 바라는 것은 같다. 작가의 재능이 수상에 함몰되지 않고 세상에 없던 신선한 자극을 보여주길 원한다. 상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 테니까.
에디터 고현경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