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을 쥔 심사위원
매년 열리는 미술상 시상식, 각 미술상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최종 선택권을 지닌 심사위원들은 대중에게 가려져 있었다. 합당한 영광과 논란의 양날 검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심사위원, 그들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1 2013년 터너상 후보에 올랐던 리넷 야돔-보아키예의 작품을 감상중인 관람객들 /Lynette Yiadom-Boakye , Installation view Tate Photography Lucy Dawkins
2 터너상 수상자인 로르 프루보의 작품 ‘Wantee’ /Laure Prouvost Wantee, 2013, Installation view Tate Photography Lucy Dawkins
스캔들의 종언, 공감의 시대
미술상의 꽃이라 하면 역시 상을 받는 주인공, 최종 수상자라 할 수 있다. 미술상의 권위와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그해 수상자에 대한 관심도 비례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결과다. 그에 반해, 꽃을 심사해 꽃 중의 꽃을 선정하는 심사위원들을 조명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미술상의 성격과 그해 미술계의 동향을 파악해 최고의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정 결과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질타와 논란을 피할 수 없고, 심한 경우 선정 과정을 둘러싼 루머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서 깊은 미술상, 영국의 터너상도 매년 무성한 스캔들과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술상이 하나의 문화 행사로 자리 잡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피해갈 수 없다. 이에 미술상과 관련해 국내외 심사위원의 구성과 심사 과정 등을 살펴보고, 과거 심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돌아보며 미술상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자.
심사위원의 선정과 구성
대개 미술상 심사위원은 심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미술계의 저명인사로 구성한다. 사회적 지명도나 경력만으로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비평가, 큐레이터, 교수, 작가 등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다. 그들의 신뢰할 수 있는 미학적 안목과 동시대 미술계의 동향을 읽어내는 능력에 의해 수상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선정과 위촉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개 비슷한 기준을 따른다. 대표적 해외 미술상인 터너상, 휴고 보스상, 막스 마라 여성 미술상은 물론 국내의 대표적 미술상인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에르메스 코리아의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송은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송은미술대상, 두산 그룹의 두산연강예술상 모두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매년 심사위원을 새롭게 위촉한다. 또한 큐레이터, 평론가, 교수 등 현장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로 심사위원을 구성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신경 쓴다. 막스 마라 여성 미술상과 같이 특정 조건이 따르는 상은 다른 심사위원 선정 기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여느 상과 다름없는 선정 방법을 따른다.
공정성을 위해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다양성을 추구하는 한편, 심사 과정을 통해서도 내실을 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을 고안한다. 국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송은미술대상은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1·2차로 나눠 심도 있게 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함께 심사에 참여하는 위원의 제스처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각자 심사를 진행할 수 있게 배려한다. 올해의 작가상은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미술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개방적 시스템을 갖추었다. 미술계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현장의 소리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으며, 작가 추천 과정도 미술관 학예사가 추천하던 기존 방식을 확장해 10인의 전문가로 추천위원단을 구성한다. 추천된 작가 중 후보자를 선정하는 심사 과정 역시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조직, 제도의 취지를 이어갈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이 운영위원회, 추천위원단, 자문위원 등 공정성을 위한 2중, 3중의 장치를 두고 작가 추천과 선정에 공정성을 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미술상이 단지 수상자 한 명을 선정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를 넘어 심사 과정에서도 미술계의 소통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2013년 터너상 후보였던 데이비드 슈랭글리의 작품 ‘Life Model(2012)’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젤과 종이가 마련되어있고 완성된 그림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David Shrigley Life Model, 2012, Installation view Tate Photography Lucy Dawkins
2 리넷 야돔-보아키예의 전시 에 걸린 초상화는 인물에 대한 신선한 해석과 거친 붓터치가 특징이다. /Lynette Yiadom-Boakye , Installation view Tate Photography Lucy Dawkins
심사를 둘러싼 스캔들
하지만 아무리 공정성을 기하려 해도 개개인이 심사하고 선정하는 이상 특정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 최대한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미술상 조직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매년 미술상 후보자를 발표할 때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터너상 같은 경우는 채널 4의 후원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시상식을 전국에 생중계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대체로 평론가들이 지면을 통해 시상식 리뷰를 소개하며 결과를 주지시키는 일방적 형식이었다면, 대중매체와 시상식의 만남으로 수상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수상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비평을 넘어 현대미술에 대한 반달리즘적 반응도 쉽게 감지된다. 이는 매년 시상식과 함께 단골 기삿거리로 스캔들처럼 등장하곤 했다.
터너상이 자리를 잡아가던 초기, 1980년대 후반에는 많은 평론가가 수상자뿐 아니라 심사위원과 수상자 선정 방법에 대해 반기를 들었는데, 첫해 수상 후보자와 심사위원을 통틀어 여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고, 계속 논란이 불거져 심지어는 심사위원이 작가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기사가 한 타블로이드에 실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스캔들과 논란이 늘 부정적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그 덕에 그동안 단골로 등장하던 후보자의 성비나 장르의 편중 면에서 고른 안배가 이루어진 동시에, ‘충격적(Shocking)’ 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Controversial)’ 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킨 이전 작가들과 달리 미학적 탐구와 지적 성찰이 돋보이는 작가가 선정되기 시작했다. 첫해에 후보자는 물론 심사위원도 모두 남성으로 구성된 남성우월주의(?) 어워드에서 10여 년이 흐른 1997년에는 사상 최초로 모든 후보자를 여성 작가로 채웠으며, 1994년 레이철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가 수상을 거머쥔 이후 2013년도 수상자 로르 프루보까지 총 5명의 여성 작가가 터너상을 수상했으니, 대중의 시선과 평단의 혹평이 무섭긴 한가 보다. 초기 터너상이 자극적인 스캔들과 잡음으로 유명세를 탔다면, 최근에는 스캔들 없이 후보작의 작품성과 미술계의 다양한 이슈를 전면에 부각해 전무후무한 성과를 올리며 진화하고 있다.
진통을 거쳐 소통으로
국내에서도 점차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술상에 대한 인식도 향상되고 있다. 특히 대중매체 SBS와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진행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통해 앞으로 미술상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관심은 더욱 높아지리라 기대한다. 숱한 진통을 겪으며 진화해온 해외 미술상의 선례를 잘 살펴보고 그 안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아 수용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다. 심사 과정을 공개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굳건히 하고, 후보자 간 경쟁을 부각하고 심사위원의 평가를 내세우는 형식적인 연례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계의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여 공감대를 형성하며 현대미술이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이끄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때, 미술상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문화 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고현경
글 박가희(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사진 제공 Turner Prize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