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개화기 미술품에 새 생명을

LIFESTYLE

개화기 미술품 컬렉터 황필홍에게 컬렉팅은 개인의 취향 혹은 금전적 투자와는 다른 맥락이다. 미술 작품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막연하게 자리 잡은 애국심의 발현이자 꿈의 실현이다.

 

금요일이었던 올해 현충일. 주말과 이어진 연휴로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휴가를 보낼 것인지에 대해 말했다. 무심코 켠 TV 뉴스는 연휴 끝 귀경길 도로 정체에 대해서 들려줬다. 나라에서 지정한 기념일 풍경도 이와 같은데 평소 애국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많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화기 미술품 컬렉터로 잘 알려진 단국대학교 철학과 황필홍 교수는 예외적 인물이지만 말이다. 흔히 미술품이 좋아서 한 점씩 사 모으다 컬렉터가 됐다면 그는 출발부터 남다르다. “어린 시절 국사를 처음 배울 때부터 개화기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어요.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미술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던 40대 초반, 한 일간지 귀퉁이에서 인사동에서 개화기 미술품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단숨에 전시장을 찾은 그는 역사책에서 보던 인물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이라고, 올 것이 왔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개화공정미술’이라는 단체를 출범하고 본격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선 지 어느덧 15년 정도가 흘렀다. 10여 점의 미술품 구입을 시작으로 황필홍 교수의 소장품은 현재 1000여 점에 이른다. 보통 개화기를 1850~1860년대부터 1910년까지로 보는데, 그는 1800년부터 약 110년 동안을 개화기로 보고 그 시기의 작품을 수집해왔다. 꾸준히 미술품을 수집하면 취향이 생기고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기 마련인데, 개화기의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매혹시켰을까?

“더 오래전 과거에도 작은 규모의 교류는 있었지만 동서양이 문명대 문명, 국가대 국가로 만난 최초의 시기죠. 일본에 힘없이 나라를 뺏겨 우리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소홀히 다뤘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면 그 시절에도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고 애국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숨기려 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황필홍 교수는 젊은이들에게도 막연하게 나라 사랑을 강조하는 것보다 작품을 통해 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앞선 세대의 역사에 대한 정리와 평가는 다음 세대, 후손이 해야 하는데 개화기는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품에 대한 아쉬움과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왔다.

1 개화기 미술품은 아니지만 매우 희소성이 높은 작품인 인조의 교서. 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30명이 경쟁을 벌였다.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 김기종에게 상을 준다는 내용의 증서로 왕의 도장인 시명지보가 찍혀있다.
2 황실에서 미국 시계 전문 브랜드에 주문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커플 시계. 시계와 케이스를 각각 다른 회사에 맡겼으며 여자용은 보증서도 따로 있고 섬세한 배꽃 무늬를 새겨 작품성이 높다.

국사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듣는 것처럼 한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황필홍 교수지만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기에 미술품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도 컬렉터라면 한 번쯤 만날 법한 위작을 구입해 한바탕 마음고생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위작 판매로 제 사례가 일간지에 실릴 만큼 화제가 됐어요. 구입 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 감정을 받았는데, 위작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컬렉터라면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이론과 실물 공부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꾸준히 많이 보면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 직관력이 생깁니다.” 위작임이 밝혀져 보상을 받긴 했지만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그 뒤로 더 많이 보고, 작품을 구입하며 공부했기에 지금은 개화기 시서화 계통은 90% 이상 순도를 감정할 수 있다. 일찍이 비싼 수업료를 잘 치른 셈이다. “경매사든 화랑이든 팔려는 쪽보다 작품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작품이 언제, 어느 정도의 가격으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죠. 직관력, 관찰력, 지식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동시에 작품 가격이 합당한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겠죠.”

좋은 작품을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황필홍 교수에게도 놓쳐서 두고두고 속상한 작품이 있다. 조선 후기의 위대한 화가로 알려진 심정 안중식의 ‘노안도’.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을 노안도라 하는데 안중식은 산수화로 유명하지만 노안도도 그에 못지않다. 안중식의 노안도가 어느 화랑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살까 말까 고민하며 며칠을 보낸 사이 공공 미술관에 팔려버렸다. 개인에게 팔렸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다시 사오겠지만 미술관에 팔렸으니 영원히 놓친 것이다. 약 13년 전의 일인데, 지금은 화랑에서 처음 그에게 제시한 금액의 8배 가치로 올랐다며 웃었다. “아까웠지만 제가 알아본 그 작품의 가치를 다른 사람도 공감한다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죠.”

개화기 미술 작품에 대한 그의 자긍심은 소장품 리스트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황필홍의 인사동 사무실에는 흥선대원군의 ‘총난도’와 백범 김구 선생의 ‘헌신조국’ 서화가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는 “압록강 아래로는 흥선대원군의 난 그림이 최고다”라 말을 했다. 한반도에서 최고라는 뜻이다.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본 흥선대원군의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 달리 섬세하면서 시원하게 뻗은 난 그림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곧고 힘 있는 글씨에선 그의 굳은 신념과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헌신조국’이라는 말은 인생과도 꼭 닮았다. “역사적 의미가 있고, 여러 작품 중에서도 그 인물이 그린 최고 작품을 수집하려고 노력합니다. 비슷한 장르의 개수가 너무 많은 작품은 피하려 하죠.”

미술품 수집은 그를 이처럼 울고 웃게 만든다. 교수직 정년퇴임이 앞으로 6년 정도 남았지만 그는 이후에 컬렉터로서 해야 할 일 때문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개화기 작품 전문 미술관을 설립하고 해외 유명 작품이 우리나라에 순회 투어를 오듯 ‘개화기 명작 300선’ 같은 타이틀을 달고 전 세계 전시 투어도 할 계획이다. “개화기 미술품을 알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친일 청산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왜 애국지사들을 칭찬하는 데는 소홀할까요? 개화기 미술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자랑스럽게 알리고 싶어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줄 겁니다.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죠.” 미술품 수집이 개인의 만족, 투자의 의미를 넘어 인생 철학이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언젠가 ‘개화공정미술’ 미술관에서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를 다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에디터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