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밤거리보다, 아트 바젤 홍콩 2014
미안하지만 아트 바젤 홍콩을 돌아보는 3일 내내 홍콩의 밤거리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더 화려하고, 더 근사하고, 더 황홀한 미술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었으니까. 대신 홍콩의 밤은 앱솔루트 아트 바가 책임졌다.
1 아시아 최강의 아트 페어로 우뚝 선 아트 바젤 홍콩 (Art Basel in Hong Kong 2014) /ⓒ MCH Messe Schweiz (Basel) AG
2 전시장 정중앙에 설치돼 많은 주목을 받은 구원다의 작품 ‘United Nations: Man and Space’ /ⓒ MCH Messe Schweiz (Basel) AG
왕가위 영화와 장국영, 세계적 명성의 레스토랑과 즐비한 맛집, 면세 쇼핑 파라다이스 그리고 현기증 나는 고층 빌딩과 레이저 쇼처럼 반짝거리는 야경. 아직도 홍콩을 이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이제는 홍콩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봐야 할 때다. 바로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 때문. 아시아 최강의 아트 페어로 꼽히는 이 행사가 홍콩의 새로운 매력으로 등장했다.
아트 바젤 홍콩 2014를 둘러본 이라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겨우 두 번째로 열린 아트 페어라고?”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난해 아트 바젤이 홍콩 아트 페어를 인수한 뒤 열린 두 번째 행사다. 아트 바젤, 아트 바젤 마이애미를 운영하던 스위스 MCH 그룹이 홍콩을 거점으로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홍콩 아트 페어는 아트 바젤 홍콩으로 거듭났다. 기존의 홍콩 아트 페어를 이끈 디렉터 매그너스 랜프루는 아트 바젤의 홍콩 지역 디렉터로 타이틀을 바꿔 달았다. 아트 바젤의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 아트 바젤 홍콩 2014에서 제대로 느꼈다. 국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아트 페어도 불황 속에서 꾸준히 선전하고 있지만 아트 바젤 홍콩이 3년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장은 우리 미술 시장에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몇 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는지, 총판매 금액이 얼마인지 논하는 숫자적 기록뿐 아니라 아트 페어 기간에 진행한 프로그램과 짜임새 있는 행사 운영까지 두루두루 살펴 하는 말이다.
1 리먼 머핀 갤러리에서 가지고 나온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 MCH Messe Schweiz (Basel) AG
2 PKM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원우 작가의 설치 작품 (A Riding We Will Go, 2014) /ⓒ MCH Messe Schweiz (Basel) AG
5월 14일 중국, 싱가포르,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를 위한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홍콩에 머무는 3일 동안 행사가 열리는 홍콩 컨벤션 & 익스비션 센터를 하루도 빠짐없이 찾았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은 화이트큐브, 페이스, 가고시안, 리먼 머핀, 페로탱 등 유명 갤러리의 부스를 모은 갤러리(Galleries), 아시아 지역 47개 갤러리가 속한 인사이트(Insight), 신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y)까지 크게 3개 섹션으로 나눠 총 39개국 24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국제갤러리, 갤러리PKM, 박여숙화랑, 학고재갤러리, 원앤제이 등 10개의 한국 갤러리도 다양한 작가의 작품으로 부스를 채우고 컬렉터를 맞이했다. 샤갈, 데이비드 호크니, 페르난도 보테로, 앤디 워홀, 바스키아 등 미술계의 슈퍼스타부터 이제 막 작품값이 오르고 있는 신인 아티스트의 작품까지 빼곡히 2개 층에 걸쳐 전시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VIP 프리뷰에선 작품을 발 빠르게 구입하는 컬렉터들의 바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고, 이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변함없었다. 특히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중국의 젊은 컬렉터가 많이 보였다. 많은 갤러리가 상하이, 베이징에서 온 컬렉터와의 거래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한국 컬렉터도 빠질 수 없다. 행사장 곳곳에서 영어, 중국어만큼 자주 들린 말이 한국어였다. 한국에서 아트 투어를 온 이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갤러리에서 한국 컬렉터를 중요한 고객으로 손꼽기도 했다.
1 페더 빌딩에 위치한 리먼 머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헤르난 바스(Hernan Bas)
2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중국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 MCH Messe Schweiz (Basel) AG
3 신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 섹션 우승자로 선정된 익스페리멘터 갤러리 (Experimenter Gallery) 아티스트 나디아 카비-링케 /ⓒ MCH Messe Schweiz (Basel) AG
아트 바젤 홍콩은 작품을 사려는 컬렉터와 현대미술 트렌드를 읽고 싶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미술 애호가를 위한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작품 판매는 물론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미술 평론가, 저널리스트 등 미술 관계자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실질적 비즈니스가 활발히 이뤄졌다. 행사 기간에 홍콩 곳곳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VIP 컬렉터를 위한 아트 토크 행사와 프라이빗 디너가 이어졌고, 이는 구매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아트 페어를 중심에 놓고 도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협조한 셈이다. 아트 바젤 홍콩은 지갑을 여는 고객을 살뜰히 살피는 서비스를 보여주면서 공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각국의 유명 큐레이터가 진행한 아트 토크 ‘Conversation & Salon’과 아티스트가 소개하는 아트 필름 상영 등 일반 관람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해 높은 참석률을 보였다. SNS에 강한 젊은 층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멀티스크린으로 인스타그램 아트 바젤 계정을 팔로하고, 해시태그로 #artbasel을 사용한 사람들이 업로드한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유튜브 아트 바젤 공식 채널은 행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짧은 동영상을 발 빠르게 제공했다. 이 모두가 아트 페어다운 감각적인 홍보 방법이었다.
잘 만든 행사가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은 홍콩 컨벤션 & 익스비션 센터 바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 아티스트 구원다(Gu Wenda)의 거대한 설치 작품 ‘United Nations: Man and Space’는 행사장 정중앙 천장에 위치해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얼핏 보면 결이 거친 한지 같지만 색색의 인모를 모아 나라별 국기를 만들고,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하나로 이어지는 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아트 바젤 홍콩과 같은 시기에 홍콩 한아트 TZ 갤러리(HanArt TZ Gallery)에서 구원다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처럼 행사 기간 내내 굵직한 홍콩 내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특별 전시를 기획하며 아트 페어 특수를 놓치지 않았다. 리먼 머핀 갤러리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헤르난 바스(Hernan Bas)의 개인전을 선보였는데, 그의 작품은 리먼 머핀의 행사장 부스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걸려 있었다. 당연히 이 작품은 중국의 한 컬렉터에게 팔렸다.
1 앱솔루트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아트 바를 완성한 홍콩 아티스트 나딤 압바스
2 지하 벙커 컨셉의 앱솔루트 아트 바
3 아트 바에서 특별히 선보인 칵테일이 인기를 끌었다.
4 나딤 압바스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아트 바에서 상영했다.
“아트 바는 단순히 행사와 스폰서의 관계를 넘어 앱솔루트가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행사였다.”
낮에 홍콩 컨벤션 & 익스비션 센터와 가고시안, 리먼 머핀, 펄 램 갤러리 등이 모여 있는 페더 빌딩을 오가며 작품 속에 빠져 있었다면 밤의 주인공은 단연 앱솔루트 아트 바(Absolut Art Bar)였다. 공식 스폰서인 앱솔루트의 아트 바는 홍콩의 주목받는 아티스트 나딤 압바스(Nadim Abbas)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었다. 나딤 압바스는 런던 첼시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설치미술, 영상을 넘나들며 홍콩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앱솔루트 아트 바는 그가 평소에 관심이 많은 전쟁과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지하 벙커를 컨셉으로 꾸몄다. 공사를 덜 마쳐 전기선이 늘어진 천장과 노출 콘크리트 벽면, 실제로 지하에 기어다닐 것 같은 쌀바구미를 가득 프린트한 포대가 쌓여 있어, 분명 코즈웨이베이 사운드윌 플라자(Soundwill Plaza) 17층인데도 들어서는 순간 벙커에 숨어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파티의 서버들은 핼러윈데이에 선보이는 기이한 분장으로 손님 사이를 오가며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앱솔루트의 스페셜 바텐더들은 아트 바를 위해 특별한 칵테일 4종을 준비했는데 석류·레몬·인삼을 넣어 만든 스페이스 칵테일, 마지막에 칼슘 캡슐을 넣어주는 CA+ 칵테일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스페이스 칵테일은 짙은 붉은색으로 비닐 팩에 담겨 있었는데, 마치 수혈할 때 쓰는 혈액팩처럼 연출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강렬한 맛의 앱솔루트 보드카 칵테일로 수혈하고 이 밤을 끝까지 즐기라는 뜻이었을까?
아트 바는 단순히 행사와 스폰서의 관계를 넘어 앱솔루트가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행사였다. 브랜드와 아트가 만났을 때 균형을 잃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 앱솔루트 아트 바는 예술적 공간을 만들고, 그 안을 그들이 가장 잘하는 근사한 파티로 채웠다. 비운 칵테일 잔이 곳곳에 쌓이고 파티가 절정에 이를 즈음,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트 바젤 홍콩에서 보낸 낮과 밤이 넘치도록 아름다웠기에 마지막 밤이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앞으로 홍콩 여행을 계획할 때는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기간을 반드시 체크할 생각이다. 한 가지 팁을 덧붙이면, 2015년부터 아트 바젤 홍콩은 올해보다 두 달 빠른 3월에 열릴 예정이다. 고로 내년 3월엔 홍콩 여행을 위한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어쩌면 돌아오는 길에 쇼핑백과 작품을 같이 들고 올지도 모를 일이다.
에디터 이혜진 (h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Art Basel in Hong Kong, 앱솔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