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 Wylie 로즈 와일리
로즈 와일리는 영국에서 가장 성실한 작가다. 보통 서너 장의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엉덩이가 캔버스 위를 크게 대여섯 번 움직이고 나면, 스스로도 더는 캔버스 위에서 쭈그려 앉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자녀들이 다 커버린 1980년대 이래 그녀는 매일 그렇게 그림을 그렸고, 수백 점에 이르는 작품을 집 안 창고에 빼곡히 쌓아둔 채 매달 그 그림을 걸 곳을 찾아다녔다. 그런 그녀의 삶은 2011년 폴 햄린 재단상(Paul Hamlyn Foundation Award)을 받은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1 영국 켄트(Kent)의 집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로즈 와일리
2 지난해 5월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개인전에서 아트 토크를 진행하는 로즈 와일리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을 비롯한 유럽의 크고 작은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가 로즈 와일리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어제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작품을 보내달라는 것.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들은 체하지 않고 ‘대작’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낸다. 그녀가 대작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걸 더 크게 과장하고, 전혀 주의를 끌지 못하는 걸 더 방대하고 매력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독특한 미니멀리즘 때문. 올해로 그녀의 나이 80세. 영국 미술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짐작하지 못한다.
1 지난해 5월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개인전 전시장 전경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2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Inglourious Basterds’(2010)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3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전시한 ‘Brad’s Art’(2012)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1960년대에 자녀 양육 문제로 20년쯤 작품 활동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캔버스 앞으로 돌아오게 됐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무언가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죠.
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스스로 늘 작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보시다시피 실제로도 작가가 됐고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제가 작가가 된 게 그리 놀란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남동부 켄트(Kent)의 시골 마을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작품도 그 지역의 영향을 받았겠죠?
켄트도 켄트지만, 저는 현재 제가 사는 낡은 집과 정원을 무척 좋아합니다. 나무와 산딸기로 가득하죠. 아, 그리고 전 그늘진 음지에 있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집 안에도 그런 곳이 좀 있고요.
영화배우, 시사, 동물, 축구 선수, 마릴린 먼로, 발레리나, 고대 벽화, 군인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습니다. 실제로도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있나요?
사실 셀레브러티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아이콘을 작품 소재로 쓰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죠. 축구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좋아해서 그린 것뿐입니다. 저는 ‘공공 현상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요.
많은 이들이 당신의 작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림이 ‘쉽게’ 읽히는 것이 작가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작품이 ‘쉽게 읽히는 것’에 대해 따로 고민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모든 작품이 ‘쉽게 읽히는 그림의 전형’이 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그간 작품의 가독성과 정확성(Particularity)을 추구해왔습니다. 사실 제 작품에서 정말로 알아야 할 것은 ‘주제’가 아닙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물이나 사람에게 관심을 둬야 하죠.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느끼고, 이해해야 제 그림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1 Queen of Sheba and John Terry, 2012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2 국경선 근처에서 노래하고 있는 북한 아이들을 그린 작품 ‘Korean Children Singing’(2013)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3 Elizabeth & Henry, 2013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를 나무로, 스커트를 스커트로 느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 작품은 결코 제너럴리스트를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저는 작품 속 특정 오브제가 처음 본 그대로 작품에서 읽혔으면 합니다. 가령 제가 캔버스에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면,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 일반적인 나무의 움직임을 느끼길 바라는 거죠. 거기에 추상 따윈 없습니다.
작품에 텍스트를 적어 넣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맞습니다. 그것 역시 제가 추구하는 ‘정확성’에 이르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사람 혹은 나무에 대한 묘사를 작품 속에 그대로 적는 거죠. 텍스트는 제가 관찰한 사물의 특정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인터넷에선 그런 이유로 당신의 작품을 바스키아와 비교하기도 하더라고요.
바스키아요?(웃음) 필립 거스턴 얘긴 안 하던가요?
주로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림을 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더 편해서인가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면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거든요. 따로 청소할 필요가 없죠. 캔버스를 여러 개 포개놓을 수도 있고요. 아,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네요. 그림을 마음대로 밟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Korean Children Singing’이란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에 등장한 건 북한 아이들 같더라고요.
네. 국경선 근처에서 노래하고 있는 북한 아이들입니다. 텍스트로 뭔가 설명하려다 그냥 그 아이들만 그려놓았죠. 어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다양한 시점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처음부터 북한 아이로 보이던가요?
아니요.
그렇죠? 저도 최대한 덜 규정하고, 덜 강조하는 의미로 그린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 뒤에 야자수는 왜 그린 건가요? 그건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야자수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아이들 뒤로 보이는 야자수는 각각 런던의 빅벤 근처, 유아용 동화책, TV 광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야자수는 다른 제 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는 오브제죠. 반복적이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의미해요.
1 미술관에서 로즈 와일리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있는 꼬마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2 Pin-Up and Porn Queen, 2006 /Courtesy of Choi & Lager Gallery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영감을 받아 그린 ‘Inglourious Basterds (거친 녀석들)’에선 나치복을 입은 군인을 묘사했습니다. 이 또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려 한 건 아니었겠군요?
제가 그 그림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타란티노에 대한 깊은 존경과 오마주였습니다. 저는 타란티노가 만든 ‘복수 시리즈’ 영화의 광팬이거든요. 사람들이 종종 그의 작품을 두고 어떤 정치적·인종적 해석을 하는 걸 보면 그저 재미있습니다.
영화 말고 또 즐겨 보는 것이 있나요?
종종 만화를 봅니다. 만화는 아주 원소적인(더 쪼갤 수 없는) 예술 장르입니다. 먼저 보여주고 싶은 명확한 관점을 선택하고, 그걸 과장된 방법으로 포장해 관객에게 전하죠. 만화의 언어는 제가 작품을 완성하는 방법과도 유사하죠.
어떤 만화를 좋아하는데요?
저는 <사우스파크> 마니아입니다.
좋아하는 문학작품은 뭔가요?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토마스 만의 작품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요샌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거의 읽지 못합니다.
올해로 벌써 80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힘에 부치진 않나요?
저는 작은 자동차 하나를 그릴 때도 무척 신중합니다. 그것을 지구에서 단 한 번도 그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50번이고 다시 그리죠. 그렇게 그린 뒤에도 실패했다는 판단이 서면 캔버스에 새로운 조각을 덧대고 다시 그립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반복한다고 피로해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만약 제 그림을 어딘가에서 괜찮게 봤다면, 제가 피로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과 끝은 힘들기 마련이니까요.
2011년 폴 햄린 재단상을 받고 기분이 어땠나요? 혹시 당시의 수상 소감을 기억하세요?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상금도 어마어마했죠. 하지만 수상 소감은 전혀 기억나지 않네요. 다만 그 상을 받기 전 뭔가 적어내야 했는데, 그게 너무 길어서 며칠이 걸린 건 기억하고 있어요.
올해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열릴 개인전을 위해 괜찮은 작품을 최대한 많이 그리는 겁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당신처럼 꿈을 이루며 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좋아하는 게 있다면 꾸준히 노력해 쟁취하세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Choi & Lager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