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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은 거기에 있다

LIFESTYLE

‘서촌’은 ‘북촌’과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직접 걸어봐야 안다. 6월의 어느 날,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에서 걷기 시작해 해가 뉘엿뉘엿 지는 통인시장에서 산책을 멈췄다. 서촌은 가만이 있었는데, 걷는 이의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1 박노수미술관의 뒤뜰에서 내려다본 박노수미술관의 풍경
2 한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절충형 건물인 박노수미술관
3 청전 이상범 화백이 43년간 거주한 이상범 가옥은 현재 서울시에 의해 관리·보존되고 있다.

‘서촌’이라는 동네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에서 바라본 길 건너 풍경은 어쩐지 허술하다. 세종로를 따라 높게 솟은 빌딩들의 위용이 딱 광화문 앞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경복궁 돌담을 가뿐히 넘어선 플라타너스 사이로 야트막한 현대적 건물이 몇 채 보이는데, 사실 그들 대부분이 최근 10여 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옛사람들이 ‘웃대’(청계천 위쪽 지역이란 뜻) 또는 ‘상촌(上村)’이라 부르던 이 지역(인왕산의 동쪽, 경복궁의 서쪽 지역인 종로구 효자동, 통인동, 누하동 등 15개 동)을 요새 사람들은 서촌이라고 부른다.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종각의 북쪽 동네인 ‘북촌’에서 연상한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단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이 사대부들이 살던 곳이라면, 여기 서촌은 주로 문인이나 화가 같은 중인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골목마다 가득한 한옥이 대개 북촌보다 작고 낡은 이유다.
이 동네 주민인 건축가 박민영은 “서촌에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을 땐 무조건 문화재 발굴 조사를 받게 돼 있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땅이라도 옛 도성 안의 땅을 파헤칠 땐 문화재 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언젠가 통의동의 한 갤러리는 지하 공간을 활용하려고 땅을 조금 팠다가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터 유적이 나와 지하 공간을 만들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지상 건물만 지어 올렸다고 한다. 서촌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금 간 그릇 하나 예사로 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개인 주택을 미술관 전문 건축가 뱅상 코르뉘가 리모델링한 대림미술관은 서촌이 지금처럼 조명받지 못하던 2002년에 들어섰다. 오늘도 그 앞을 지나가다 습관처럼 몬드리안을 떠올렸다. 미술관 관계자라면 건물 전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우리의 전통 보자기를 본뜬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단단히 고착된 관념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미술관 옆 북쪽으로 난 골목을 걷는다. 획일적 구조의 낡은 한옥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로다. 동 규모가 작아 몇백 걸음만 걸어도 동네 이름이 휙휙 바뀐다. 골목은 마치 사다리게임이라도 하듯 코앞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 길은 아까랑 볕이 좀 다르군 하고 들어서면, 지금의 서울 것이 아닌 듯한 100여 년 전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주택인지 식당인지 헷갈리는 음식점도 있다. 한낮인데도 조용하고 문을 꼭 닫은 채 인기척 없는 집도 있다. 길이 점점 좁아지는 골목 한복판에서 ‘통의동 백송’을 만난다. 수령이 600여 년으로 수도 서울의 나이와 맞먹는 거대한 소나무. 한데 이 나무는 1990년대 초반 태풍을 맞아 고사했다. 빙 둘러싼 집들 사이 공간에 흰 표피가 일부 보이는 나무 밑둥치가 남아 있고, 주변엔 어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통의동 백송이 있는 자리를 한 번에 찾아갈 수 있다면, 분명 이 동네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영추문을 내리쬐는 서편의 햇살이 눈부신데 길 건너 낮은 건물 아래 한 남자가 의자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로 읽히는 글자는 ‘보안여관’. 시인 서정주가 80여 년 전 <예술 언어>라는 책에서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라고 언급한 그곳이다. 서정주는 1936년 보안여관에서 짐을 풀고, 시인 친구 몇몇을 모아 동인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안여관은 더 이상 여관이 아니다. 2006년 자금난이 심해져 문을 닫았다. 이후 누군가에게 매각돼 건물이 헐릴지 모른다는 소식이 몇 년 간격으로 떠돌았지만, 여관을 인수한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대표가 건물 외벽은 그대로 두고 내부에 작가들의 작품을 채우기로 하면서 보안여관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6월 1일 현재 보안여관에선 패브릭 디자이너 장응복의 따스하고 푹신푹신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층과 2층에 있는 예닐곱 개의 방을 온통 빨갛고 파랗고 하얗고 노란 침구로 채운 그녀의 전시는 언뜻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꿈>을 떠올리게 한다.

1 지금은 갤러리로 모습을 바꾼 80여 년 역사의 보안여관
2 한옥이 즐비한 영추문길 골목에서 지금 막 걸어나온 한 외국인의 모습

인왕산에서 가장 가깝게 난 필운대로 주변엔 이곳 사람들이 맘 놓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가게가 촘촘히 늘어서 있다. TV에서도 몇 번 소개한 적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헌책방 대오서점과 꼬마들이 들락날락하는 문방구, 재봉틀로 손수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공방, 초저녁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맥줏집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 동네라고 낡고 오래된 가게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이 길을 걸었는데, 그사이 카페도 많이 생겼고 분식집과 밥집(요즘 식으로 적은 양을 정갈하게 담은 찬을 내준다)도 늘었다. 직접 가죽을 떼어와 가방을 만드는 ‘부티크’ 가방 가게도 들어섰다.
창문에 오래된 때가 묻은 세탁소를 발견하곤 어린 날을 떠올렸다. 그땐 이런 세탁소에 아버지의 셔츠를 맡겼고, 교복 바지를 줄였다. 이젠 이 골목 끝자락이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5년 전에만 해도 장쾌한 골목이었다. 시원하고 탁 트인 맛이 있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구석구석 눈길 줄 만한 오브제가 없었다는 정도. 그래서 금세 질렸다. 그런데 지금의 필운대로는 발바닥과 눈의 싱크로율이 같다. 걸으면서 계속 새로운 풍광을 만난다. 눈이 발을 멈춰 세우는 건지, 발이 눈을 위해 시간을 주는 건지 자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이 골목엔 큰 가게도 없다. 다 고만고만하다. 서울에선 참 드문 골목이다. 대형 마트라는 괴물이 구멍가게를 다 잡아먹고 있는 판국에 서촌엔 아직 작은 집들이 살아 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50년 된 중국집 영화루다. 오래된 가게지만 음식점으로서 체계는 제대로 갖추었다. “어서 오세요” 하는 우렁찬 인사와 함께 자리로 안내해준다. 의자에 앉자마자 ‘뭘 시켜야 할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추간짜장’을 먹고 있다. 같은 것을 주문했다. 주문하자마자 내주는 보리차는 그 옛날 뚱뚱한 델몬트 유리병에 담겨 있다. 가게 손님들은 모두 대단히 효율적으로 고추간짜장을 먹고 있다. 보통 두어 명이 한 조가 되어 들어와선 간략하게 주문하고, 양파나 단무지로 침샘을 자극한 뒤 익숙한 솜씨로 후루룩후루룩 면발을 삼켰다. 이내 고추간자짱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맵다. 맵기의 강도를 따지는 고추 마크가 8개쯤 필요하다(가장 매운 게 10개). 짜장면이 아니라 마치 청양고추를 맘껏 갈아 넣은 고추짬뽕 같다. 하지만 맛은 있다. 그러니 겪는 수밖에 없다. 식당 안 사람들도 모두 그걸 즐겁게 겪고 있다.

1 6.25때 일부가 파손된 이상범 가옥의 벽화. 작은 화분들과 벽화의 조화가 꽤 괜찮다.
2 우리 전통 보자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리모델링 했다는 대림미술관

서촌스러운 산책은 오직 서촌에서만 가능하다
인왕산이 그윽하게 보이는 필운대로를 빠져나와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선생의 가옥에 들렀다. 이상범 선생은 우리나라 특유의 산촌, 초가집, 숲, 냇물 등 예스러운 것을 아련하게 그려낸 근대 산수화의 대가다. 선생이 사망하기 전 43년간 살았다는 한옥엔 커다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우산처럼 처마를 덮고 있다. 집 안 마당엔 장을 담은 항아리가 5개, 이제 막 고춧잎을 피운 화분이 3개, 알록달록한 꽃 화분이 2개 있다. 마당 한쪽 툇마루에 앉아 선생이 그린 담장 벽화와 장독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갑자기 들어온 실바람이 조금 전에 본 것들을 한 번씩 만지고 사라졌다. 어떤 풍경은 늦게 먹은 점심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있다고 했던가(이성복의 ‘어떤 풍경은’). 마당에 온전한 그늘을 만든 회화나무는 회화나무대로, 장독대는 장독대대로 마냥 평화로웠다.
서촌엔 재래시장도 두 곳이나 있다. 아스팔트 포장에 현대화된 통인시장엔 언젠가 대학생들이 몰려와 가게마다 상품 관련 설치미술을 시도해놨다. 칼 가는 할아버지를 시장 한복판에서 오랜만에 봤다. 경복궁역 부근의 옥인시장은 포장도 안 된 맨땅 위에서 그대로 장사하는 중이다. 이곳의 떡볶이 할머니는 화덕 하나와 박스 몇 개가 가게 터다. 젊을 때부터 이 자리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팔며 늙었다고 했다. 오후 5시, 시장 안 술집들은 모두 분주하게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일찍부터 소주와 순댓국을 주문한 한 무리의 인부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저녁 어스름을 바라본다.

1 지난 1월 개관한 류가헌 갤러리의 사진책 도서관. 국내 사진 작가들의 거의 모든 사진집이 이곳에 있다.
2 꽃‘화(花)’자에 콩‘두(豆)’자를 쓴, 지극히 서촌스러운 이름의 카페 화두. 대부분의 서촌 산책의 시작점인 경복궁역 사거리에 있다.
3 인왕산 초입의 기린교는 옛 겸재 정선의 ‘수성동’에서도 그 모습이 뚜렷하다.

그런데 사실 서촌의 오래된 역사를 제대로 말하려면 인왕산의 산줄기가 끝나는 수성동계곡(인왕산의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여 조선시대엔 지금의 옥인동인 인왕산 초입을 수성동이라 불렀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산에서 시작된 물길이 계곡을 따라 암석들과 어우러져 예부터 시 좀 쓰고 그림 좀 그린다는 이들은 모두 수성동계곡 근처에 집을 지었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필운 이항복 등의 조선시대 인물이 그렇고,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박노수,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의 일제강점기 인물이 그렇다. 특히 겸재 정선은 ‘수성동’이란 그림까지 그려 이 동네 서촌의 아름다움을 탐미했다. 한편 서촌에 살던 화가와 시인, 천문학자 같은 중인은 1700년대 후반 정부에 벼슬길 등용을 강력히 요구해 어느 정도 그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들의 전통적 직업이 마침내 왕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후 지속적인 시 모임을 열었는데, 그 모임 장소가 바로 지금의 옥인동 꼭대기에 있는 수성동계곡이다. 이렇게 서촌엔 이제 사라져 없어진 줄 알았던 시간이 고여 있다.
오후 7시, 박노수미술관 앞 내리막길을 오전에 영추문길의 한 갤러리에서 본 여자가 쓱 지나간다. 점심때 영화루에서 본 정육점 남자도 가게 앞에서 바람을 쐬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 이 거리로 한 떼의 연인이 지나간다. 연인들은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어느새 단층 주택과 한옥, 빌라가 뒤섞인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휴대폰을 꺼낸다. 삶 대부분을 이 동네에서 보낸 시인 이상이 시 ‘오감도’에 “13인의 막다른 골목을 질주하는 아해”를 써 넣은 지점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한편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의 작은 술집에선 “여기, 살기 좋은 덴가요?” 하고 묻고 “제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살기 좋아요” 하는 소리도 새어 나온다. 좁은 술집 안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자 유모차를 끌고 산책 나온 옥인아파트 주민이 먼지 낀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 모든 것이 어딘가 정겹다.
서촌 골목길은 ‘2000년대의 서울’이란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옛것과 요즘 것이 서로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골 읍내에나 있을 것 같은 오래된 쌀가게가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가 하면, 어떤 밥집은 도쿄 시모기타자와에나 있을 법한 코드의 인테리어로 기분 좋은 이질감을 선사한다. 연립주택이 많은 골목으로 자정까지 마을버스가 부지런히 사람들을 나르는가 하면, 머리에 포마드를 바른 노신사가 밤늦게 나무 문을 열고 나온 집은 지은 지 100년은 됐음 직한 잘 꾸민 한옥이다. 생각할수록 기이하고 재미있는 풍경의 연속이다.
초록색 아이비가 건물을 뒤덮고 있는 경복궁역 사거리의 카페 ‘화두’에서 ‘시내’로 나가는 09번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서울이 과거를 외면하면서 자라왔다면, 서촌은 과거를 지키면서 살아왔다고.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슬레이트가 다시 콘크리트로 바뀌고, 단독주택이 아파트로 변해가는 시점에도 서촌은 예의 어떤 자존심을 지켜왔다고. 경복궁역을 끼고 세종로로 나오니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불법으로 헤드라이트를 개조한 대로변의 차들 때문에 잠시 눈이 부셨다. 광화문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