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새로운 이름 셰익스피어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년을 맞아 올해 세계 곳곳에서 축제를 벌인다. 다양한 장르에서 색다른 해석으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4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모른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개최한 불꽃축제
지난 4월 23일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는 작가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다.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문학 애호가들은 이 작은 마을을 방문해 그의 생가 마당에서 펼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등을 관람하고, 그가 1564년 세례를 받은 트리니티 교회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이웃 나라 프랑스도 정부와 오데옹 극장, 소르본 누벨 대학교 등이 손잡고 4월 21일부터 27일까지 파리에서 일주일간 콘퍼런스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맥베스, 샤일록처럼 세대나 국적을 초월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시대에 따라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작품이 지닌 힘이다.”
1 제2회 셰익스피어문화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2 아름다운 아리아를 선사할 국립오페라단의 <오텔로>
많은 예술가가 사후에야 위대함을 인정받지만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에도 명성을 날린 극작가다. 요크 왕가의 왕위 쟁탈전을 그린 연극 <헨리 6세>는 이른바 셰익스피어의 출세작으로 통할 만큼 런던에서 흥행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그의 작품을 좋아해서 극단을 왕궁으로 불러 작품을 관람하고 “국가를 모두 넘겨주어야 하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못 넘긴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도 무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80개 언어로 번역돼 모든 연령층에서 읽힐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통계 자료를 제공하는 IMDb(The Internet Movie Database)에 따르면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전 세계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997편에 이른다. 그의 작품이 4세기가 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에 담긴 사랑, 배신, 질투, 복수 등 인간의 본질적 감정이 발산하는 매력 때문이다. 한국셰익스피어협회 김미예 부회장은 “셰익스피어는 우리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데 독보적 재능을 지녔다”며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심리학자만큼이나 인간을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난 셰익스피어는 햄릿, 맥베스, 샤일록처럼 독창적이면서 세대나 국적을 초월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대표작 <맥베스>, <오셀로>, <한여름 밤의 꿈> 등에서 사랑 때문에 갈등하고 욕심과 질투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 등장인물의 행동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탄생할 수 있는 점도 셰익스피어 작품이 지닌 힘이다.
지난 5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오필리어>는 원작 <햄릿>을 각색해 주인공 햄릿보다 그가 사랑한 여인 오필리어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서편제>에 출연하기도 한 연출가 김명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오필리어는 햄릿을 향한 사랑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햄릿 못지않은 고뇌를 하고 사랑에 대한 욕망을 당차게 드러내 현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450년 만의 3색 만남’ 중 4월에 무대에 올린 <노래하는 샤일록>은 <베니스 상인>을 토대로 만들었지만, 안토니오 대신 악역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받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딸의 행복만 바라는 그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을 연상시켜 색다른 감동을 줬다.
지난 작품을 놓쳐 아쉽다면 하반기에 계속 이어지는 셰익스피어 축제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은 2016년까지 205개국을 돌며 <햄릿> 투어 공연을 펼친다. 국내에서는 지난 2월부터 시작한 ‘제2회 한국 셰익스피어문화축제’가 충무아트홀과 게릴라극장에서 9월까지 이어진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작년 9월에 미리 열린 1회 축제를 잇는 이번 행사는 이채경을 포함해 신예 연출가가 나선 ‘셰익스피어의 자식들’, 중견 연출가 양정웅과 이윤택 등이 참여하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연극’ 2가지 주제로 기획해 각각 네 편의 연극을 준비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연극’ 중 6월 20일부터 28일까지 공연하는 알렉시스 부크의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은 무려 37개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97분 길이 한 편의 코미디로 엮어낸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극을 랩 음악, 요리 쇼, 스포츠 등으로 패러디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7월 1일부터 8일까지 관객 앞에 나서는 양정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의 대사와 운명적 사랑 이야기는 그대로 살렸지만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꾸는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모은다. 두 배우가 가난한 집 딸 로미오와 부잣집 아들 줄리엣으로 분해 가문 사이의 갈등보다 현대사회의 빈부 격차로 인한 문제를 보여준다. 축제 외에 문화계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연말에는 원작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아리아를 즐길 수 있는 국립오페라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10월)과 <오텔로>(11월)가 무대에 오른다. 올해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민음사의 셰익스피어 운문 전집은 2019년에 완간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대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감동과 위로를 얻었지만 입맛에 맞는 장르를 선택해 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세대만의 특권이다. 이제 시대를 아우르는 그의 유산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에디터 유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