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의 숨결을 찾아서, 네덜란드
풍차, 튤립, 운하로 유명한 나라. 바로 네덜란드다. 여기에 또 한 가지를 추가하면,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장식한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 두 화가를 꼽을 수 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17세기 대가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 여정은 헤이그에서 델프트,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이어졌다. 그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 두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페르메이르,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 캔버스에 유채, 96.5×117.5cm, 마우리츠하위스 소장, 1660~1661년
두 대가의 마스터피스를 품은 헤이그
위대한 회화의 시대를 연 화가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예술의 최고 전성기인 17세기에 빼어난 걸작들을 남겼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희귀한 풍경화, 그리고 렘브란트 최고의 자화상을 한 점 한 점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 행정 도시 헤이그로 향했다. 인구 44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 헤이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깨끗하고 소박했다. 길거리에선 휴지나 담배꽁초 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들도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 환경을 배려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운하의 도시답게 곳곳이 운하로 연결되어 있고 운하를 따라 아기자기한 집들이 자리해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네덜란드 왕립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입구 곳곳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프린트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어 강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당대 최고 예술가인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의 작품이 잠들어 있는 이 미술관에는 네덜란드 궁정 화가 루벤스,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프란스 할스 등의 작품도 있어 네덜란드 미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우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살펴보면 모델의 살짝 벌어진 빨간 입술과 큰 눈이 에로틱하고 백치미까지 풍긴다. 검은 배경 속에서 튀어나온 듯 고개를 돌리고 있는 포즈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완벽한 구도와 섬세한 빛 처리, 독특한 색채 대비가 강렬한 오라를 뿜어낸다. 페르메이르는 풍속화뿐 아니라 모델의 표정이나 복장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는 인물화 ‘트로니(trony)’도 그렸는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여기에 속한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되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상상을 통해 그림 속 소녀의 터키식 터번과 커다란 진주 귀걸이 등을 강조했다. 페르메이르는 주로 부유층의 인물화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향 델프트에 대한 애정을 담아 2점의 희귀한 풍경화를 남겼다.
헤이그에 자리한 네덜란드 왕립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네덜란드 대표 화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주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자화상은 그의 상황이나 내면을 그대로 담아냈다. 행복한 순간은 물론이고 불행이 닥쳐 슬픔에 잠긴 모습까지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작품은 자화상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친절하게도 3점의 렘브란트 자화상이 시기별로 걸려 있어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중 23세 청년기의 ‘자화상(Selfportrait)’에서 렘브란트는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왼쪽 위에서 비추는 빛 때문에 얼굴의 절반가량이 어둠에 묻혔지만 밝게 빛나는 부분에서 그의 당당한 눈빛과 입매를 볼 수 있다. 당시는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였다. 그의 표정에서 성공에 대한 확신과 젊은이의 패기가 느껴진다. 또 31세에 그린 ‘모자를 쓰고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Hat)’에서는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의 절반만 보이는 특이한 모자를 쓰고 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모자의 장식이 그를 오만한 부르주아나 고위관료로 보이게 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 3년 전 그는 사랑하는 사스키아와 결혼에 골인했고,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반면 그가 죽음을 맞은 63세에 그린 ‘자화상(Selfportrait)’은 늙고 지친 모습이다. 터번을 쓰고 있는 주름진 얼굴에서 그의 입매는 예전과 달리 확신에 차 있지 않다.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역시 슬픔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 7년 전, 그의 두 번째 아내 헨드리케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아들 티투스도 죽고 말았다. 특히 아들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이자 충격이었다. 두 대가의 주옥같은 걸작을 실컷 감상했다면, 이제 그들이 나고 자라며 작품의 영감을 받은 두 도시로 걸음을 옮길 차례다. 대가들의 예술적 감성을 키워준 영감의 도시, 델프트와 암스테르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운하가 흐르는 고즈넉한 암스테르담 풍경
페르메이르의 영원한 뮤즈, 델프트
페르메이르 작품의 주요 배경인 델프트로 걸음을 옮겼다. 헤이그와 로테르담 중간에 위치한 델프트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도시로 꼽히는 곳. 페르메이르가 태어나 평생을 보낸 델프트는 그림 속 풍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델프트 역에서 운하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그의 작품 속 한가로운 풍광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도시 중심가에는 동화책에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운하와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시절 페르메이르가 반했을 멋진 풍광 앞에선 누구라도 할 말을 잃고 만다. 델프트에서 여인숙을 운영하며 화상으로 일한 페르메이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많은 그림을 남기지 못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은 그가 그린 풍경화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겨우 2점의 풍경화만 그렸다는 사실. 네덜란드 풍경화의 백미로 꼽히는 ‘델프트 풍경(View of Delft)’은 미술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 프루스트가 ‘최고의 풍경화’라고 치켜세운 그림이기도 하다.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면, 검푸른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과 수면에 비친 건물을 생생히 묘사했고, 운하 주변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특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밝게 비추는 부분과 그늘 속 어두운 부분의 색채 대비가 유독 돋보이는데, 이는 그가 빛을 다루는 데 얼마나 뛰어난 작가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1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The Milkmaid), 캔버스에 유채 45.4×40.6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1658~1660년경
2 페르메이르, 델프트의 집 풍경 (The view of houses in Delft), 캔버스에 유채, 44×54.3cm,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1657~1658년
3 렘브란트의 ‘자화상’
페르메이르의 또 다른 풍경화 ‘델프트의 집 풍경(The View of Houses in Delft)’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델프트 거리의 모습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구름 낀 차분한 하늘 아래 높이 솟은 붉은 벽돌 건물이 유럽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6세기 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은 하늘색 빈티지 나무 문이 포인트. 집 안에서 바느질하는 여인, 청소를 하다 잠시 멈춘 듯 보이는 여인, 그리고 집 앞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여인도 보인다. 풍경화 역시 사람들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 페르메이르 그림의 특징. 집 앞의 포장도로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세부 묘사에 뛰어난 페르메이르답게 이 작품 역시 극도의 세밀함이 돋보인다. 작품 속 델프트 거리와 집들을 속속들이 만나보려면, 골목골목 산책하는 것이 좋다. 페르메이르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구교회와 페르메이르의 옛 집터, 그리고 페르메이르 뮤지엄(델프트 페르메이르 센터). 그의 무덤이 있는 구교회 안 바닥에 페르메이르의 비문이 보이고, 생가터는 현재 가톨릭 교회의 일부가 됐다. 페르메이르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은 페르메이르 뮤지엄은 씁쓸하게도 그의 진품 작품을 한 점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연대별로 전시해놓은 작품은 전부 복사본. 아쉬운 마음을 안고 델프트를 빠져나왔다.
1 지난 4월 10년 만에 재개관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2, 3 고즈넉한 건물과 운하가 어우러진 암스테르담 거리
렘브란트의 걸작이 탄생한 암스테르담
17세기 그림 속 풍경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며 여행하는 것은 대단히 큰 즐거움이다.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정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어졌다. 델프트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17세기 세계 최대의 해항이었다. 당시는 산업 발달과 함께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시기로, ‘렘브란트의 세기(Le Siecle de Rembrandt)’라고 부를 만큼 렘브란트가 한 시대와 네덜란드를 대표할 만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걸작 ‘야경(The Night watch)’을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선 렘브란트뿐 아니라 페르메이르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 코스에서 렘브란트가 23세를 맞은 1639년부터 1658년까지 기거한 ‘렘브란트의 집’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 ‘야경’이 탄생했다. 1층은 주거지, 2층은 작업실, 그리고 다락방에선 제자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건물 곳곳에 렘브란트의 손때가 묻어 있는데, 특히 렘브란트가 에칭 작업에 몰두한 방이 볼만하다. 그의 주요 작품은 현재 국립박물관 등으로 옮겨졌지만 렘브란트의 흔적을 좇는 이들을 위해 250여 점의 에칭과 스케치, 그리고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경’
렘브란트의 집에서 느낀 감흥이 채 사그라지기 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 4월 10년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연 박물관은 암스테르담을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르는 명소다. 1885년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박물관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띌 만큼 웅장하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고의 걸작 ‘야경’은 제목이나 그림의 조명 상태만 보면 밤에 그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낮에 그린 것이다. 그림 속 모델들은 암스테르담 민병대. 당시 네덜란드 시민은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했고, 이는 남성들의 사교 클럽 역할을 했다. 16명의 민병대가 등장하는 이 작품엔 빛과 어둠을 다루는 대가의 솜씨가 잘 드러나 있다. 그림 중앙에서 무언가 지시하는 사람이 바로 민병대의 코크 대장, 그 옆에 선 사람이 부관이다. 배경 속 인물들은 긴 창과 구식 총, 칼을 든 대원. 이들의 얼굴에서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데, 당시 네덜란드에서 부흥하던 중산층 상공업자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The Milkmaid)’도 박물관 방문 시 꼭 봐야 할 작품. 가까이서 보니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 너머 극적인 명암 대비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역시 ‘빛의 화가’답다. 바로크 시대를 장식한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동시대 화가이면서 ‘빛의 효과’를 이용해 네덜란드의 자연과 사람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표현해 냈다. 대가들의 손끝으로 그려낸 네덜란드의 일상과 풍경은 여행자들을 유혹할 만큼 이렇듯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에디터 심민아
글·사진 최상운(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