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Ramin Salsali 라민 살살리

ARTNOW

한국에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건국한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 이제 막 40대를 넘어선 이 신생 국가는 대한민국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UAE의 7개 주 중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두바이는 바다를 모래로 메워 일군 도시다. 중동의 홍콩이라 불리며 세계적 국제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두바이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향을 눈치채고, 두바이가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비즈니스맨이 있다. UAE의 부수상이자 두바이의 수장인 ‘셰이크 모함메드 빈라시드 알 막툼(His Highness 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이 수여하는 ‘Patron of the Arts’를 4년 연속 수상한 ‘라민 살살리(Ramin Salsali)’다.

이란 출신 컬렉터 라민 살살리와 두바이의 미술계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갤러리 밀집지역 알세르칼 애비뉴(Alserkal Avenue)의 디렉터 빌마 주르쿠테(Vilma Jurkute)

80% 이상이 외국인인 중동의 코즈모폴리턴 두바이에 2010년 처음으로 비영리 현대미술관 SPM(Salsali Private Museum)이 개관했다. SPM은 2017년 개관을 앞둔 아부다비 구겐하임(Guggenheim Abu Dhabi)이 있게 한 숨은 공신이며, 중동의 현대미술계에서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아트 컬렉터 라민 살살리가 설립한 사립 미술관이다. 이란 출신이지만 독일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온 디아스포라(자국을 떠나 서로 다른 사회, 문화, 정치적 환경을 가진 타국에서 사는 사람들) 라민 살살리는 20대에 독일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디 시트니(Kiddy Citny)가 베를린 장벽에 그린 벽화에 매료된 후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컬렉션을 시작했다. 이란 혁명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그 지역의 열악한 현대미술 환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것은 그가 중동 현대미술의 현장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800여 점의 현대미술 작품 중 마켓에 내놓아도 아무도 사가지 않을 작품이 꽤 될 거예요. 하지만 내가 그 작품들을 팔지 않으면 그 가치는 나에게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죠. 그럼 되는 거 아닌가요?”라며 수줍은 웃음을 짓는 그는 두 기업을 운영하며 동시에 미술관 관장과 컬렉터, 후원자, 때로는 큐레이터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인생을 건 야심작 ‘두바이 현대미술관(DMOCA: Dubai Museum of Contemporary Art))’ 건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컬렉터라는 타이틀 만으로 정의하기엔 많이 부족한 라민 살살리. 두바이도 멈추게 한다는 라마단 기간에 SPM에서 그를 만났다.

1 SPM에서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판테아 라흐마니(Pantea Rahmani)와 아미르 호세인 잔자니(Amir-Hossein Zanjani)
2 독일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키디 시트니의 베를린 장벽 페인팅. 라민 살살리는 20대에 이 페인팅을 처음 접하고 아트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인데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정말 우연찮게도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네요. 내일 함부르크로 가거든요.

어릴 적부터 이란을 떠나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고,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는 이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혁명 전 일찍이 유럽으로 와서 자랐지요. 지금은 독일도 이란만큼 중요한 제 고향입니다.

언제부터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셨나요? 스물한 살 때부터요. 동독과 서독의 도시를 오갈 때마다 베를린 장벽을 지났는데, 그곳에 독일 작가 키디 시트니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매료되어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잘 아시다시피 당시 독일은 베를린만 놓고 봐도 완전히 다른 2개의 정치적 규범이 공존하는 곳이었죠. 양쪽의 분위기가 너무나 대립적이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정말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어요. 그 장벽에 그린 시트니의 해학적인 인물 작품은 그런 긴장감을 완화했습니다.

그럼 독일 현대미술 작품으로 컬렉팅을 시작한 건가요? 시트니의 회화 작품이 현대미술로는 제 첫 번째 컬렉션이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독일 아티스트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점점 분야가 넓어졌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요나단 메제(Jonathan Meese), 안드레 부처(Andre Butzer)를 좋아해요. 처음 요나단 메제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독일 작품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의 거대한 중동 현대미술 컬렉션을 완성하기까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1964년 독일과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바로 이란 혁명이 시작되어 다시 떠나야 했죠. 그리고 20년 후에야 이란으로 돌아갔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유로 이란 국제공항에서 거의 심문과 비등한 검문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혁명 후 이란은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이란과 너무 달랐어요. 세계적 컬렉션을 자랑하던 테헤란 국립 현대미술관도 더 이상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대미술계 자체가 아주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어떤 의협심(?) 같은 거였죠. 전 거의 독일 사람이 다 됐지만 제 뿌리는 이란이고, 핏줄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이란 작가에게만 포커스를 두진 않아요. 다양한 중동 지역 작가들을 고루 리서치하고 숨은 가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살살리 뮤지엄(SPM)의 설립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요. 유럽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동감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내 모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입니다. 예를 들면 중동 여자는 매일 남편한테 맞으며 산다거나 하는 것 말이에요.

네, 저도 동감합니다. 저도 사우디 현대미술전시 준비로 중동의 도시들을 다니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매체를 통해 편집된 정보가 참 많다는 것을 저도 항상 느낍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우디인은 부인을 ‘my government’라 부르더군요. 매우 놀라웠어요. 맞아요. 유럽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저 같은 사람이 서양인의 인식을 바꾸어놓을 방법은 없어요. 제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변명이나 자격지심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죠. 하지만 유럽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어요. 예술을 통한 외교죠. 서양 미술의 역사를 보면 예술가는 정치나 종교적 대립 관계에 있는 나라에도 언제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었지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화가 루벤스가 그랬죠. 예술이라는 영역은 인간의 정치적·사회적·종교적 대립 구조와 긴장감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방구고, 미술관은 경쟁이나 편견은 물론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미술관이야말로 중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SPM의 모태가 되었죠.

이란 현대 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레자 데라크흐샤니 (Reza Derakhshani)의 전시 오프닝 현장

지금의 중동 현대미술이 있기까지 컬렉터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그 현장에 계신 분으로서 중동 현대미술의 현재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듣고 싶어요. 이 지역의 현대미술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건 순수한 열정을 지닌 작가와 그들을 믿은 컬렉터의 노력 덕분이죠. 아트 마켓은 존재했지만 미술을 제대로 연구하고 발전시킬 미술관이나 아트 인스티튜션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컬렉터들이 아트 파운데이션을 설립하는 등 그 역할을 대신해왔어요. 국립 미술관이 속속 문을 연 것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지난해 처음 살살리 뮤지엄을 방문했을 때 그 위치가 매우 흥미로웠어요. 베이징의 798처럼 두바이의 갤러리가 밀집해 있는 알코즈 상업지구의 알세르칼 거리에 자리 잡았더군요.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실험적인 미술 공간을 연상시키던데요? 두바이는 단연코 중동 현대미술의 중심지라고 봅니다. 그중 알코즈는 중동 현대미술 마켓의 허브입니다.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죠. 제 궁극적 비전은 두바이에 최초로 비영리 공공 현대미술 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입니다. 지금 두바이 지역 정부와 계속 논의 중이에요.

왜 두바이인가요? 아랍에미리트는 나이로 치면 저보다 어린 국가예요. 출장을 통해 아랍에미리트 중에서도 두바이를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도시를 느꼈어요. 두바이라면 현대미술을 소화하고 발전시킬 만한 원동력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곳에 현대미술관을 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두바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곳이죠. 그 덕분에 이제는 국제적 코즈모폴리턴으로 전 세계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고요.

그런데도 두바이에 실질적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한 편이죠? 그렇습니다. 두바이는 중동과 아랍의 모든 문화가 어우러져 있음에도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해요. 그런 면에서 미술관은 아주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죠.

건립을 앞둔 두바이 현대미술관(DMOCA)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Museum by People for People’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두바이 최초의 비영리 공공 미술관이에요. ‘대중을 위한 미술관’은 우리 미술관의 대표적 미션 중 하나입니다. 건축 디자인은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언제든 편히 와서 즐길 수 있도록 현대미술 라이브러리와 비디오 아트, 예술영화 상영관도 마련할 생각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에도 관심이 있으세요? 네. 그럼요. 이번에 홍콩 바젤에서 훌륭한 작품을 봤어요. 쾰른에 사는 작가라고 하던데,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상상력이 대단한 작가인 것 같아요. 좋은 한국 작가를 많이 소개해 주세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마지막으로 컬렉션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들려주세요. 두바이 컬렉터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두바이에 있는 모든 컬렉터를 한자리에 모아 서로 인사도 하고 진정한 컬렉터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컬렉터는 미술 작품이 값비싼 상품(commodity)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컬렉션에도 윤리(ethics)가 있어야 해요. 자본주의사회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트도 그 안에서 놀아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컬렉터의 생각 없는 행동이 미술계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컬렉터들이 알아야 합니다.

Manuel Bauer, Beten und Trainieren, Gelatin silver print. Ed. 1 of 5, 2004

Manuel Bauer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태어난 마누엘 바우어는 ‘Lookat photos’의 창단멤버로 여러 기관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가르친 작가다. 그와 티베트는 인연이 깊다. 1989년부터 그는 티베트 문화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서양에 알리기 시작했고 스위스와 독일 등 많은 도시에서 전시 < Tibetan Culture on Foreign Soil >을 열며 티베트인들을 향한 그의 애정과 노력을 사진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1 Reza Derakhshani, Titanic 1979, Mixed media on canvas, 680×180cm, 2013
2 Reza Derakhshani, The Rose and the Blackbirds, Black sand and gold paste on canvas, 2013

Reza Derakhshani
이란 현대 회회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작가 레자 데라크흐샤니는 유명 뮤지션과 시인들과의 협업을 즐기는 현대미술작가다. 최근 두바이에서 열린 그의 전시에서는 모국 이란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의 이란은 과거와 같지 않았다’는 그의 설명과 함께 아름다웠던 이란의 과거를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서 과거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상실한 이란인을 계몽하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테헤란,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Katayoun Vaziri, It Is Meaning Which Is Only an Ambiguous and Inconsequential Accident 12, Digital print on Moab bright white duo paper, 76.2×50.8cm, Ed. 3 of 5 Diptych, 2011

Katayoun Vaziri
이란에서 출생한 후 2005년 미국으로 이주한 카타욘 바지리는 두 국가 사이에서 느끼는 중동 문화와 서구 문화의 상반된 정서와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주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한다. 자신이 실제 경험한 이민과 그로 인해 느낀 문화적 소외감을 담아 비디오 작품 ‘encounter’를 제작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런던, 두바이 등에서 활발히 전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0년 퀸즈 뮤지엄에서 열린 ‘Handheld History’를 포함한 다양한 작품을 공동 큐레이팅하기도 했다.

1 Scheler Max, Farah Diba and Shah Reza Pahlavi in front of their official portrait, Tehran, Gelatin silver print, 107×75cm, Ed.4 of 5, 1967
2 Rahbar Sara, I lay in the darkness of an anonymous grave, stripped of you, I remain N.4, C-print mounted on aluminum behind plexiglass, 102×152cm, Ed. of 3, 2009
3 Amir-Hossein Zanjani, From oil workers series(4 men), Oil on canvas, 70×100cm, 2012

Amir-Hossein Zanjani
1980년 이란 출생. 테헤란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이란의 진정한 지역작가로서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근대미술과 추상화가 가지는 독특한 언어를 결합하는 아미르 호세인 잔자니는 한 대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주된 관심 대상은 동시대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 인간이 가지는 흥미와 불안, 꿈 ,기억 그리고 집착이라는 다양한 감정을 비롯해 그들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구정원 JW Stella(JW STELLA Arts Collectives 디렉터) 사진 제공 살살리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