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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선은 황홀하다

LIFESTYLE

하이엔드 호텔 아만사라(Amansara)와 캄보디아의 앙코르 사원. 안과 밖의 온도 차가 극명했다. 그런데 그 이질적 느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나의 첫 번째 앙코르 여행은 완벽한 이방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백일몽 같은 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 바라이 호수에 투영된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앙코르와트  2 프놈바켄과 함께 앙코르 사원 안의 일몰 명소인 프레룹  3 아만사라에 묵을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전용 툭툭

#1
캄보디아의 문화 중심지이자 고대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인 시엠리아프에 있는 아만사라 호텔에서 <노블레스>를 초청했다. 최고급 수준의 호텔 & 리조트만 선보이는 아만 그룹에 속한 세계 도처의 호텔은 국내에서도 ‘재력 있고 뭘 좀 아는’ 여행객이 즐겨 찾는 명품 호텔로 손꼽힌다. 에스닉하면서 독특한 어감의 ‘아만사라’는 아만 그룹 특유의 작명법으로 지은 이름.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라는 뜻의 아만(aman)에 각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단어를 조합한 이름을 짓는데, ‘천국’이라는 뜻의 고대 힌두어 압사라(apsara)를 합쳐 ‘아만사라’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고급스럽고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한 아만 계열 호텔답게, 아만사라는 시엠리아프 국제공항에 내려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남다른 서비스를 보여줬다. 여러 명이 함께 타는 미니밴이 아닌 1965년형 메르세데스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국왕이 타던 클래식 메르세데스 리무진이라니! 마치 옛 크메르 왕국의 우아한 왕족이 된 기분으로 차에 올랐다. 프놈펜에서 먼저 일정을 보낸 후 시엠리아프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지만, 우리를 태운 차는 여행객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흔히 이동하는 동선이 아니라 어렴풋하게나마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경로를 선택했다. 앙코르 사원의 실루엣과 그 앞 거대한 인공 호수인 바라이 호수가 어둑한 시야로 희미하게 들어온다. 이 미스틱한 분위기의 유서 깊은 도시에 자리 잡은 아만사라. 그곳에서 과연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호기심이 고조되는 순간이다.

#2
공항에서 차로 불과 15~20분 거리에 위치한 아만사라는 흔히 생각하는 도심 호텔의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조용한 교외 저택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곳은 1960년대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왕이 게스트 하우스로 쓰던 빌라형 별장이었다. 1970년 론 놀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난 시아누크 왕의 사유물이 정부로 넘어가면서 이 별장도 정부의 소유가 된 것. 그러다 2002년 아만 그룹이 인수, 2003년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야외 풀을 두고 사각 형태의 구조 안에 24개의 룸과 1개의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 등이 자리한다. 풀스위트와 스위트로 이뤄진 각 룸은 개인 빌라처럼 프라이빗하다. 풀스위트에는 작은 개인 수영장이, 스위트에는 테라스가 룸에 독립적으로 딸려 있는데, 외부와 완벽히 차단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유유자적 책 한 권 끼고 칵테일을 홀짝이며 선탠을 즐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룸 내부는 화려한 장식이나 색감 대신 화이트와 브라운 톤을 주조색으로 꾸며 여백의 미를 살린 절제된 모던함이 느껴진다. 샤워 시설과 화장실을 제외하곤 침대와 책상, 작은 다이닝 테이블과 소파, 세면대와 욕조까지 한 공간에 일렬로 배치돼 있는데, 신기한 건 오픈 구조임에도 모든 동선이 굉장히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이국에서의 완벽한 휴식을 배려하기 위해 TV를 없앤 점도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잘 정돈된 고급스러운 룸일 뿐이지만, 몇 시간 정도 머물면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의 세심함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체크인하기 전이나 외출했다 돌아오기 전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워놓는다거나, 뜨거운 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시엠리아프 관광을 위해 밀짚모자와 목에 두를 수 있는 스카프를 선물로 준비해놓은 것도 그렇다. 투숙 고객을 위해 제작한 앙코르 트래블 가이드북을 객실에 비치해 놓은 것도 아만사라의 세심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앙코르 사원 관광과 선셋 크루즈, 이벤트 등에 관한 맞춤 일정과 상세 내용을 적어놓은 것이다. 실내 다이닝 룸과 야외 테이블로 이뤄진 레스토랑은 시아누크 왕이 스크린 룸으로 쓰던 공간을 개조한 것. 메뉴는 모던함을 가미한 크메르 스타일과 유러피언 스타일 2가지뿐이지만 매일 다른 음식을 서빙한다. 중앙에 응접실처럼 꾸민 라운지 공간도 있다. 첫날 저녁에는 식사할 생각도 없이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가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직원을 보고 머쓱해졌다. 무심결에 사이드 테이블에 비치해놓은 머랭과 진저 쿠키를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밝은 미소와 함께 돌아온 직원의 대답. “그럼요, 여긴 당신의 집인걸요! 언제든지 편하게 즐겨주세요.”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지는 순간이다. 진정한 하이엔드 서비스란 이런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아만사라 호텔 안은 고급스럽고 아늑한 빌라형 구조를 띠고 있다.

1 아만사라의 레스토랑 내부  2 풀스위트룸  3 새콤달콤한 열대 과일로 구성한 아침식사 메뉴

#3
아만사라에서는 투숙하는 외국인 고객을 위해 각 개인의 일정에 맞춘 프라이빗한 여행 프로그램을 짜준다. 3일간 묵은 우리 일행을 위해선 신들의 도시라 불리는 앙코르와트,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인 앙코르톰, 피라미드 형태의 힌두 템플인 타케이 등의 유적지 관광과 그림자를 이용한 크메르인의 전통 연극인 스벡톰 공연, 선셋 크루즈 프로그램 등을 준비했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5시가 채 안 된 시각, 사원에 가기 위해 일어난 우리를 위해 각자의 룸에 간단한 메뉴로 구성한 아침식사를 내왔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서는 이유는 한여름이 아님에도 오전 9시만 되면 뜨거워지는 햇빛을 피하게 하려는 아만사라의 아이디어다. 해가 뜨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천 명의 단체 관광객 무리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이기도 하다. 처음엔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사원에 도착하니 조용하고 한적한 기분으로 찬찬히 둘러보기에 좋다. 드넓은 역사 유적이 우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분마저 든다.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전용 툭툭과 함께 호텔에서 고용한 캄보디아인 가이드는 역사에 해박할 뿐 아니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사원으로 향하는 길도 밀림에 싸인 유적지의 전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동선을 선택한 것이다.

앙코르 사원 콤플렉스만 해도 8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있지만 유적 관광의 백미는 앙코르와트다. 12세기 초 착공해 30여 년에 걸쳐 건축했다는 이 거대하고 웅장한 사원은 힌두교 신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곳. 중앙에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탑을 중심으로 주위의 5개 탑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존이 잘되어 있는 데다 건축물 자체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사원 주변을 바라이 호수가 길고 넓게 둘러싸고 있는데, 돌로 만든 참배로와 긴 다리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호수에 이 건축물의 형태가 데칼코마니처럼 완전한 모습으로 투영된다. 일출 즈음엔 황금빛 태양이 호수를 물들이며 숨 막히는 장관을 이룬다. 사원 뒤에는 또 다른 사원이 자리한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피사체로 자리하던 사원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곳곳에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앙코르와트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앙코르톰도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이다. ‘위대한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이곳은 앙코르 유적 중 유일한 불교 건축물로, 그중 핵심은 바이욘 사원이다. 탑에 올라가기 전 보이는 회랑 벽면의 정교한 조각 벽화부터 인상적이다. 그 당시 귀족과 서민의 일상을 섬세하게 새겨놓은 것이다. 반복적으로 중첩된 문 사이로 미로처럼 연결된 수많은 통로를 자세히 살피면 외부에 노출된 것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사원 곳곳의 거대한 사각 기둥 4면에는 ‘크메르인의 미소’라 불리는, 부처를 닮은 온화한 표정의 인면상이 새겨져 있다. 표정이 조금씩 다른 불상을 넋을 잃고 살펴보는 나에게 가이드가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포즈를 요구했다. 불상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려는 것이다. 역사 속 미지의 신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이 묘한 느낌을 준다. 앙코르톰의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타프롬은 앤젤리나 졸리가 멋지게 종횡무진하는 액션 영화 <툼레이더>를 찍은 장소로도 유명한 사원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수령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하늘로 뻗은 기이한 형상의 거대한 나무다. 아직도 계속 자라고 있다는 이 나무들은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발견된 사원의 비극을 짐작케 한다. 성곽의 담을 휘감으며 뿌리를 내렸는가 하면, 겹겹이 쌓인 벽돌에 몸을 기댄 것도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조각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외의 수많은 사원은 일견 비슷해 보이면서 전부 다른 미학을 지니고 있다. 1000여 년 전 아시아에 이토록 미학적이고 웅장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왕조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경이로운 전율이 흘렀다. 부서진 흔적마저 아름다운 이 사원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의 지원을 받아 지금도 한창 복원 중이다. 크메르 제국은 12세기에 절정의 문명을 꽃피우다 내정 불안과 집권층의 부패, 노예 반란 등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15세기에 이르러 태국의 시암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진 왕국은 400년 동안 열대 밀림 속에 묻혀 있다 18세기 프랑스인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후 일부 건축학자와 고고학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 건축물을 두고 “이것은 인간이 지은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린 작품이다. 만약 신의 작품이 아니라면 신의 명령을 따르는 거인들이 지어준 사원일 것”이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찬란한 영광과 비극의 흔적이 공존하는 크메르인의 거대한 유산 앞에서 한낱 작은 여행객일 뿐인 나는 잠시나마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비하고 장엄한 고대 왕국이 어떻게 생기고 사라져갔는지는 흘러간 역사만 알 뿐이다.

앙코르톰 한가운데 위치한 바이욘 사원

#4
툭툭을 타고 아만사라로 돌아왔다. 찬란한 과거에서 혼돈의 통로를 거쳐 다시 안락한 현실로 빠져나온 것 같다. 이 안에 들어오면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편안한 집에 온 느낌이 든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는 바라이 호숫가에 자리한 빌리지 하우스에서 멀리 앙코르와트를 바라보며 브런치 타임을 즐겼다. 아만사라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투숙객에 한해 식사와 쿠킹 클래스 등을 즐길 수 있다. 오후에는 역시 호텔에서 준비한 선셋 크루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루즈라곤 하지만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앤티크한 분위기의 2층짜리 통통배였다. 시엠리아프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대한 톤레사프 호수는 맑고 푸른 빛깔을 상상한 이에겐 실망으로 다가온다. 메콩 강에서 흘러든 흙 때문에 황톳빛을 띠고 있고, 수상 가옥과 그 안의 사람들, 배 위에서 고기를 잡는 캄보디아 주민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아만사라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는 캄보디아의 또 다른 현실을 목도한 기분이 들었다.

열대 과일과 시원하게 칠링해놓은 샴페인을 홀짝이며 석양이 지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호수가 붉은빛으로 일렁인다. 찬란한 유적, 크메르인의 후손을 자처하면서도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 그리고 고급스럽고 안락한 아만사라 호텔에 머문 시간. 그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풍경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게 그저 한낮의 황홀한 꿈같은 건, 내가 완벽한 이방인이기 때문일까?

선센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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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전영광  취재 협조 에이투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