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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 한번 좋구나

LIFESTYLE

젊은 건축가 박천강, 권경민, 최장원 3명이 만든 프로젝트 팀 ‘문지방’을 앞으로는 친근한 건축가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대중의 문지방을 슬쩍 넘어 함께 놀자고 부르는 그들의 ‘신선놀음’이 가까이 다가올 테니까.

왼쪽부터_ 최장원 2012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졸업, 2013 Korea Refugee Week 난민주간 공간 디렉터, 2014 건축농장 프로젝트 기획 권경민 2008 숭실대학교 실내건축학과 졸업, 2008-2013 매스스터디스, 2013 이재하 건축사무소 박천강 2004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 석사 졸업, 2009-2012 뉴욕 SO-IL 근무, 2013 박천강 건축사무소 설립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경험해본 이는 없어도 어떤 느낌인지 누구나 상상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구름 속을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올 초여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관 마당’에서 실제로 가능해진다. 건축가 프로젝트 팀 ‘문지방’의 작품 ‘신선놀음’ 덕분이다. 이들은 어떻게 미술관 마당을 찾아왔을까?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은 뉴욕 MoMA, 현대카드와 함께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Young Architects Program)’을 선보였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MoMA의 또 다른 미술관 PS1에서 매년 열리는 것으로 젊은 건축가를 발굴해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시아 지역에선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우승자가 바로 프로젝트 팀 문지방. 몇 년 전 매스스터디스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참가한 문지방의 박천강, 권경민, 최장원 3명의 건축가는 말투부터 좋아하는 성향까지 한눈에 봐도 많이 달라 보인다. 팀의 맏형인 박천강이 조곤조곤 팀 이름을 문지방으로 정한 이유부터 프로젝트 전체 컨셉까지 설명해주는 섬세한 캐릭터라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형들에게 먼저 제안한 막내 최장원은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스타일이다. 이들의 의견을 듣고 주로 마지막에 의견을 덧붙이는 둘째 권경민은 매스스터디스에서 근무한 당시 여러 차례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무 능력이 강점이다. “많이 다름에도 좋은 걸 보고 좋다고 하는 지점은 같다”는 문지방은 공통분모를 찾기보다 각자 잘하는 것과 지금까지 경험해온 작업이 달라 서로 보완할 수 있고 균형을 잘 이루는 팀이다.

젊은 건축가 팀인데 이름은 참 한국적인 문지방, 그리고 작품명도 ‘신선놀음’이다. “한옥의 문지방은 경계로 작용하지만 벽이나 문처럼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낮은 경계죠. 형태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도 마음에 들었어요.” 뉴욕 소재 건축사무소 SO-IL(Solid Objectives-Idenburg Liu)에서 근무하고 돌아오면서 한국적이면서도 동시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 한국인이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드러난 건축을 추구하고 싶었던 박천강의 마음이 담겨 있다. 문지방은 또한 3명이 팀 활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개인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등 활동 영역을 열어놓는 자세를 보여준다.

프로젝트 팀 문지방의 <신선놀음> 컨셉 이미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주어진 쉼, 물, 그늘이라는 공통 주제를 놓고 문지방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관 마당이 넓게 트인 공간이지만 햇볕이 강해 관람객이 오가지 않고 가장자리에만 머물며 대부분 비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미술관 마당이 옛 국군기무사령부와 신축 건물,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종친부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장소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 쌓인 역사와 아픔을 드러내기보다 사람들이 포용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종친부를 등지고 인왕산을 볼 때 마당 위로 구름 한 줄이 피어 있는 걸 떠올렸어요.” 개성 강한 건물 사이에 구름이 피어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경복궁과 인왕산을 마주 보고 있는 위치까지 고려한 결과다. 컨셉 이미지를 보면 마치 전래 동화 속 신선이 노닐던 신비로운 풍경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구름은 에어벌룬 형태로 실현하고 사이사이에 미스트를 뿌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사람들은 구름 아래 그늘에서 쉬며 책을 읽고, 위로 올라와보기도 할 것이다. 구름과 산, 나무는 건축계에서 무수히 활용한 소재지만 ‘신선놀음’은 장소의 특성을 반영해 한국적 시선으로 새롭게 본 결과물이다. 서로 부딪치는 건물과 바닥에 돌을 깐 마당의 딱딱함을 완충해줄 수 있는 부드러운 오브제를 넣어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이들의 의도가 잘 살아 있다.

‘신선놀음’은 컨셉 이미지를 봐도, 설명을 들어도 건축가가 아닌 설치미술가의 작품처럼 보인다. “건축도 아니고 설치미술도 아니기에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예술 작품이 아니니 미술관 밖에서 공공과 만날 수도 있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철거되는 특성을 지닌 파빌리온 프로젝트지만, ‘신선놀음’에서 노닌 시간이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최장원이 설명을 덧붙인다. 건축과 예술의 경계 실험에 성공한 이 작품은 그래서 미술관에 더 잘 어울린다.

문지방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기분 좋게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후 각자 건축가로서 그려가는 그림은 다른 모양새다. “우리는 모두 집에 살죠. 사람이 사는 집,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어릴 때부터 꿈꿔온 건축가의 꿈을 이룬 권경민은 한 달 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사무소를 오픈했다. 주택, 공공 건축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가 하면 건축가가 건물을 지어 보여주는 것 외에 대중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에 관심이 많은 최장원은 건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전시회, 워크숍, 출판 등 경계를 두지 않고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재개발 지역, 소외된 약자들의 거주 공간과 인권 문제도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이기도 하다. 박천강은 동료 그래픽 디자이너와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미술관 로비를 새로 만드는 컬래버레이션 작업과 광주 아시안문화전당의 창조관을 기존의 화이트 박스가 아닌 색다른 형태의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건축물에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를 더하길 좋아하는 그와 잘 어울리는 행보다. 이처럼 셋은 경계를 넘나들며 문지방의 브랜드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모두가 말하는 트렌드를 지양하고 보다 근원적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하고, 한국 사람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해외 유명 건축가의 이름이 자주 회자되는 요즘, 젊은 건축가 3명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면 이들이 초대한 신선놀음에 기꺼이 응하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는 신선놀음은 빡빡한 도심 속에 갇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될 테니까.

에디터 고현경
사진 이영학(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