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from Lee Hyun Se_
만화가 이현세는 매일 불태우듯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면 젊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가 우리의 일상에 경종을 울리며 들려주는 두 번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나는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16년째 몸담고 있다. 학생들은 재능이 넘치고 영리하며 또 컴퓨터로 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이 자기 확신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교수님, 제가 만화가가 될 수 있을까요? 만화가가 되면 잘살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애태워도 메아리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물음에 대한 답은 단호하다. “너, 타본 적이나 있니?”
스무 살 즈음, 습작을 하던 시절 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라 그리고 싶은 욕망이 과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상과 망상의 연상 작용이 그 이유였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도 몰입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잠 따위는 오지도 않았다. 나는 매일 밤을 새웠고, 새벽 두부 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골목을 깨우면 비로소 다른 사람보다 많은 시간을 지배했다는 만족감에 젖어 잠이 들었다. 그러고도 두세 시간만 자면 비 온 뒤 죽순처럼 다시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잠은 충분했고, 하고 싶은 작업이 눈앞에 있었으며, 오늘 하루 또 나를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청춘은 그렇게 들뜨고 미쳐 날뛰는 열정이었다. 1968년 1월에 일본 만화 사상 최대의 성공작이라는 만화가 <주간소년> 매거진에 연재되었다. 가지와라 잇키가 글을 쓰고 지바 데쓰야가 그림을 그린 <내일의 죠>라는 이 권투 만화는 이후 일본 젊은이들의 영혼을 지배한다. 가지와라 잇키는 스포츠 신문 기자를 하다 전업 작가로 나선 스포츠 만화 전문 작가였고, 지바 데쓰야는 순정 만화를 그리던 작가였다. 두 작가의 야심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점점 야성을 잃고 거세되어가는 일본의 젊은이에게 진정한 남자의 의지와 투혼을 일깨워줬다. 주인공 야부키 죠는 떠돌이 건달에 형편없는 사기꾼이다.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던 죠가 어느 날 달동네에 온다. 아이들을 상대로 사기나 치는 죠에게 핵폭탄 주먹이 있다는 걸 발견한 술주정뱅이 단뻬이 관장은 그를 권투 선수로 키우려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긴다. 단뻬이는 한때 권투 선수였지만 지금은 달동네 권투 도장의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뱅이 관장이다. 하지만 죠는 그런 단뻬이를 이용해 다시 사기를 친다.
분노한 단뻬이에 의해 죠는 소년원에 가게 되지만, 그래도 죠의 재능을 아까워한 단뻬이는 편지를 통해 권투를 가르친다. 거친 성격과 핵폭탄 주먹은 당연히 소년원에서도 죠를 군림하게 만들고, 결국 소년원 내 폭력 사건으로 특별 소년원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바로 여기서 운명의 라이벌인 천재 복서 리키이시를 만난다. 이때부터 라이벌 리키이시를 좇는 죠의 끝없는 투혼이 시작되면서 목적 없이 세상을 떠돌던 야부키 죠에게 마침내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리키이시와의 대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죠와 어마어마한 체중 감량을 통해 죠의 결투를 기꺼이 받아주는 리키이시의 투혼이 거세되어가던 일본의 청소년을 충격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그것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지독한 의지와 투혼의 모습이었다. 결국 만화책 한 권을 몽땅 소비하는 지독한 난타전 끝에 무리한 체중 감량과 뇌출혈로 리키이시가 사망한다. 청소년에게 이 만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리키이시가 죽었을 때 그를 위한 실제 장례식이 열렸다. 만화 캐릭터 최초의 장례식이다.
죄의식과 상실감으로 방황하던 죠는 결국 자신의 삶은 투혼이고, 그 투혼은 아직 타오를 곳이 있다는 자각으로 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죠의 짧지만 긴 여정에서 마지막 도전은 당연히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이다. 상대는 권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인 남미의 카를로스 호세다. 오랫동안 맞는 권투를 해온 죠는 이미 펀치 드링크로 인해 몸이 망가졌지만, 이 시합 역시 만화책 한 권이 넘는 분량으로 난타전이 펼쳐진다. 비틀거리는 죠를 위해 단뻬이가 수건을 던지려 할 때, 이미 생명이 꺼져가는 죠가 독백처럼 조용히 단뻬이를 위로한다. “껍데기만 타다가 꺼져버리는 식으로 어설픈 젊음 따위는 보내고 싶지 않아.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눈부실 정도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거야. 결국 하얀 잿가루만 남겠지. 리키이시 녀석이나 저 카를로스 호세 녀석 역시 틀림없이 그랬을 테니까… 그래, 최후의 순간까지 불태워버리겠어. 아무런 후회도 없이 말이야.” 그리고 죠의 최후가 다가온다. 판정을 기다리며 링 코너에 앉아 있는 죠의 모습이 완전히 연소된 것처럼 하얗게 가라앉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 만화 역사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런 젊음이 과연 만화뿐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이런 젊음을, 이런 투혼을 또 기억하고 있다. 불타는 투혼, 그 때문에 죽음과 바꾼 청춘을. 1968년, 열세 살에 단돈 3000원을 들고 전북 옥구 깡촌에서 상경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구두닦이와 버스 행상 등을 하다 어두운 밤거리를 벗어나 빛이 되고 싶어 권투를 시작했다. 소년의 이름은 김득구다. 1982년,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김득구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얘기했다. “저는 권투를 했기 때문에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권투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아무 데서나 주먹을 휘두르는 깡패가 되었을 것입니다.”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특설 링에서 김득구는 꿈에도 그리던 WBC 라이트급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하게 된다. 챔피언 레이 멘시니는 핵폭탄 주먹을 지닌 역대 최강의 복서였고, 김득구는 동양 챔피언이라지만 모두가 말릴 정도로 아직은 풋내기 복서였다. 승률은 제로였다. 그러나 승부는 막상막하의 난타전이었고, 마침내 14라운드에 김득구는 쓰러졌다. 그리고 죽었다. 뇌출혈이 사망 원인이었고, 스물일곱 살의 불타는 청춘이었다. 사나이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신화를 남긴 김득구의 젊은 죽음이었다. 멘시니 역시 방황 끝에 비운의 복서로 남았다. 김득구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 전 작은 관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여줬다. 지고 살아서 링을 내려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김득구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죽음과 바꾼 투혼이었다.
젊은 시절, 스포츠 신문에 매일매일 연재를 할 때다. 담배를 끊임없이 피울 때여서 책꽂이 위에 촛불을 켜두고 스케치를 했다. 어느 날인가, 긴 원고지를 길게 밀어 올리고 마지막 컷을 스케치할 때 갑자기 머리 위가 환해지면서 불꽃이 우수수 쏟아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촛불에서 옮겨붙어 불길에 휩싸인 원고가 불꽃이 되어 눈앞으로 쏟아져내렸다.
가끔 기자들이 묻는다. 다시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또다시 이런 삶을 선택할 거냐고. 내 대답은 그래서 단호하다. “나는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 살고 싶지 않습니다. 마라톤 전 구간을 완주한 사람이 다시 뛰고 싶지 않듯이.” 불타는 청춘이 없다면 그것은 젊음이 아니다. 대량생산되어 소비되는 소비지상주의 삶에서 오늘 하루도 단지 살아 있으므로 감사하는 청춘이라면 젊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에디터 고현경
글 이현세(만화가)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