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에는 새로운 미술관에 가자
오랫동안 기다려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11월 소격동에 문을 연다. 앞서 9월에 개관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세 번째 분관, 북서울미술관은 숲이 우거진 공원에 위치해 자연을 즐기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새로운 전시 공간이 속속 문을 열면서 일상에 미술이 스며드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가을이 왔다.
11월 소격동에 문을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소격동 165번지, 이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기무사, 정확히 말하면 국군기무사령부. 이 단어와 미술관은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말보다 10배쯤 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경복궁 옆 옛 기무사 자리는 세종 15년 종친부 시절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곳이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최근까지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이곳에 11월 1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단절된 공간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미술관으로 드라마틱한 변신을 맞이하는 것. 일제강점기 경성육군위수병원이던 이 건물은 치장벽돌을 입힌 근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단순한 멋이 깃든 모더니즘 양식을 살린 최초의 건물 중 하나다. 해방 이후 보안사, 기무사로 사용됐으며 2008년 기무사 본관은 등록문화제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삼청동 쪽 코너에는 1978년 국군수도지구병원을 신축, 최근까지 대통령 전용 병원으로 쓰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스테인리스스틸 패널 소재를 사용해 건축물 자체도 높은 가치를 지녔으나 현재는 허물고 미술관 부지에 편입되었다. 2011년 기공식을 하고 2년 만에 문을 열기까지 인근 문화재는 물론 이웃과 관련해 16개 심의를 32번에 걸쳐 받을 정도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많은 공을 들였다. 기무사 건물은 이제 미술관의 메인으로 변신해 입구이자 로비의 역할을 하며, 미술관은 조선시대 종친부 경근당을 중심으로 조성했다. 건축가 민현준의 진두지휘로 완공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마당. 열린 마당, 미술관 마당, 종친부 마당 등 6개의 마당은 어느 방향에서든 편하게 미술관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미술관 실내 전시 공간에도 다양한 연결 통로를 만들어 입장부터 관람까지 관람객이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진정한 개방형 문화 공간을 완성했다.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에 멀티 미디어 홀, 미디어 랩, 영화관, 디지털 미술 도서관, 미술 아카이브, 레스토랑, 푸드 코트와 북 카페를 모두 아우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처럼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11월 12일부터 내년 2월까지 한국 최은주(참여 작가 양민화), 미국 리처드 플러드(참여 작가 킴 존스), 독일 베른하르트 제렉세(참여 작가 마크 리) 등 국내외 큐레이터 7인의 협력 기획전 <연결_전개(Connecting_Unfolding)>을 개관전으로 준비 중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현대미술 전 부문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다.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터 위로 시간이 흘렀고, 시민들에게 다시 그 공간을 즐길 권리가 주어졌다. 우리는 되찾은 이 권리를 오롯이 누리기만 하면 된다.
1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개관전 <장면의 재구성>이 열리고 있다
2 나지막한 동산을 따라 만들어 산책하기 좋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미술관과 공원의 산뜻한 만남,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크고 작은 미술관이 늘어날수록 도심의 삭막한 공기는 줄어들고 일상이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여기에 초록빛 가득한 공원을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난 9월 24일 노원구 등나무문화공원에 문을 연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은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기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남서울미술관, 경희궁미술관에 이은 세 번째 분관으로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전시 공간이 부족했던 서울 동북부 지역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갈대언덕에서 연유한 노원(蘆原)이라는 지명을 반영해 나지막한 동산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외관부터 시선을 끈다. 마치 산자락에 안긴 듯 자연 친화적으로 지은 미술관으로 언덕을 거닐고 전시도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5개 전시실과 대형 수장고를 갖춘 북서울미술관은 아트 도서실, 어린이를 위한 상설 갤러리, 미술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민의 참여율을 높이는 지역 밀착형 미술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11월 24일까지 개관전 <장면의 재구성>을 열며 공공 미술의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작품 중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200여 점의 현대미술 작품을 모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 속에 진짜 숨을 쉴 수 있는 예술의 숲이 탄생했다.
1 수공예품 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보고재
2 갤러리보고재 개관전에 참여한 장정숙 작가의 장신구
여문 손끝에서 탄생한 수공예품의 가치, 갤러리보고재
모든 예술 작품이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지만 유독 수공예품 앞에 손 수(手)자가 붙는 것은 그만큼 여문 손끝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대량생산이 아니라 하나하나 섬세하게 만든 공예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예술이다!’라는 감탄사가 나오기 마련. 지난 6월 청담동에 문을 연 갤러리보고재는 현대 공예, 수공예품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대중과 더욱 친숙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보고재(寶庫齎)라는 갤러리 이름은 글자 그대로 보물 창고가 있는 집, 가치 있는 예술품 창고를 의미한다. 예술 장신구를 중심으로 순수미술, 디자인이라는 조형미술의 여러 분야를 아울러 현대 공예의 한계를 짓지 않고 동시대 예술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
국내외 장신구 작가, 공예 작가들이 참여한 개관전 < Transformed >, 첫 번째 기획전 < Vogoze Summer Object 2013 >에서도 예술성과 실용성을 균형 있게 다루며 보고재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줬다. 와인과 어울리는 금속공예품을 컨셉으로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금속공예 작가 이상민 개인전도 같은 맥락이다. 장신구, 유리, 금속 등 다양하게 변주된 작품을 보면 이제 수공예품이 낯설거나 고루하다는 생각은 지워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보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