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캘리포니아 작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미국 동부의 작가들이 최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부의 작가들이 동부 최고의 미술관을 하나 둘 점령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부 캘리포니아 작가들의 거침없는 진격을 눈여겨보자.
James Welling, Jack Goldstein, the Pacific Building, February 27, 1977, Inkjet print, 2012
잭 골드스타인의 조금 늦은 전시
뉴욕 미술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서부의 캘리포니아 작가들이 무서운 속도로 뉴욕 미술계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것. 현재 뉴욕 유수의 미술관은 그야말로 캘리포니아 작가의 전시 일색이다. 그 시작은 지난 5월 유대인 박물관(The Jewish Museum)에서 열린 잭 골드스타인의 미국 최초 회고전. 2003년 LA 외곽의 자택에서 57세의 나이로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잭 골드스타인은 한국에서도, 뉴욕에서도 어쩌면 생소한 이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셰리 레빈과 신디 셔먼을 포함한 1970~1980년대 픽처 제너레이션의 대표 주자로 미술사적으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애초에 2010년 LA 현대미술관(MoCA)에서 열리기로 한 그의 회고전이 디렉터가 바뀌면서 한 차례 취소된 적이 있다. 2년 동안 갈 곳을 못 찾아 길바닥에 나앉았던 전시가 지난해 6월 LA의 오렌지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리면서 대중에게 선보이게 됐다. 이를 계기로 유대인 박물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접근해 드디어 올해 5월, 잭 골드스타인의 회고전이 뉴욕에 상륙하며 그는 35년 만에 현대미술의 이슈로 떠올랐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 미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회고전은 현지 언론의 잇단 호평 속에 “좀처럼 찾기 힘든 천재적 작가의 회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9월 29일 막을 내렸다. 사실 올해 들어 골드스타인의 회고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비너스 오버 맨해튼 갤러리에서 < 잭 골드스타인은 어디에 있는가? >전이 열려 뉴욕 미술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사후 10년이 지난 2013년, 골드스타인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뉴욕에서 일고 있다. 천재 작가의 조금 늦은 전시, 그가 지금 살아 돌아온다면 대중의 뜨거운 관심에 무척 감사하고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1, 2, 3 Paul McCarthy, WS
4 Llyn Foulkes, Cow, Oil on canvas, 109.2×157.5cm, 1963
폴 매카시의 완전한 동심 파괴
때리고 부수고 먹고 흘리고 마시고 싸는 온갖 추접한 이미지를 까발리며 관람객을 불편하게 해온 현대미술가 폴 매카시가 올여름 뉴욕을 한바탕 뒤집어놨다. 지난 6월 뉴욕의 파크 애버뉴 아모리(Park Avenue Armory)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 < WS > 오픈일에 맞춰 전속 갤러리 하우저 & 워스의 뉴욕 지점(18번가, 69번가)에서도 그의 전시 일정을 늘리며 매카시 띄우기에 나섰다. 이번 전시 제목 ‘WS’는 1937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의 영어 제목인 ‘White Snow’의 약자. 백설공주를 비롯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디즈니 버전과 딴판인 매카시 버전이다. 젊고 예쁜 백설공주를 탐하는 난쟁이들의 남성적 욕망을 영상과 설치로 강렬하게 표현한 이번 전시는 17세 이상만 관람이 가능할 만큼 폭력적이고 성적인 코드 사용을 서슴지 않았다. 공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세트 설치뿐 아니라 미디어 영상, 괴이한 인형을 파는 아트 숍도 함께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특히 매카시 본인이 월트 디즈니 대표로 직접 분장해 영상 작업에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끈다. 디즈니 월드에서는 디즈니가 창조주이듯, 매카시 월드에서는 매카시가 창조주이자 주연이다. 이 캐릭터를 매카시는 ‘월트 폴(Walt Paul)’이라고 부르는데, 기묘하게도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 탓에 히틀러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하우저 & 워스 69번가에서 열린 < 라이프 캐스트(Life Cast) >전에서는 할리우드 최첨단 특수 분장팀의 도움으로 징그러울 정도로 실제 사람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큰 이슈를 낳았다.
James Turrell, Rendering for Aten Reign, Daylight and LED light, Site-specific installation,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2013
‘빛의 화가’ 제임스 터렐
자연의 빛과 인공조명을 적절히 이용해 ‘빛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받은 제임스 터렐. 지난 4월 LA 카운티 미술관을 시작으로 6월 휴스턴 미술관에 이어 9월 26일까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의 40여 년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렸다. 빛과 색,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전시라는 평을 들은 이번 회고전에서 그는 구겐하임 원형 홀의 웅장한 천장 공간을 활용한 신작 ‘Aten Reign’을 선보였다. ‘아톤의 시대(Aten은 이집트의 태양신)’라는 뜻의 이 신작은 1977년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로덴 분화구를 사들여 30여 년 동안 계속 이어온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에서 발전시킨 작품으로,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인공조명과 자연광이 번갈아 공간을 채우는 형식으로 연출해 관람객의 두 눈을 즐겁게 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제임스 터렐은 “빛이 좋은 LA, 그 선택받은 환경에 살면서 풍족한 빛의 혜택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라고 말해 미국 서부의 자연환경이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고백했다. 12월 29일까지 열려 2013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제이슨 로즈의 개인전까지 셈하면, 필자가 ‘진격의 캘리포니아 작가’라고 표현한 것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세계화 시대에 지역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유의미한진 모르겠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함축하면서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는, 문화의 변방 취급을 받던 미국 서부 지역 작가들의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면서 한국 작가들도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2013년 미국 동부에서 열린 서부 작가들의 전시
캘리포니아 개념미술 전시
< 마음의 상태(State of Mind: New California Art Circa 1970) >
브롱크스 미술관(6월 20일~9월 8일)
잭 골드스타인 회고전
< Jack Goldstein × 10,000 > 유대인 박물관(5월 10일~9월 29일)
제임스 터렐 회고전
< James Turrell > 구겐하임 미술관(6월 21일~9월 25일)
폴 매카시 개인전
< WS > 파크 애버뉴 아모리(6월 19일~8월 4일)
린 폭스 개인전
< Llyn Foulkes > 뉴 뮤지엄(6월 12일~9월 1일)
제이슨 로즈 개인전
< Jason Rhodes > 필라델피아 미술관(9월 18일~12월 29일)
에디터 심민아
글 이나연(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