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Mat Collishaw 맷 컬리쇼

ARTNOW

지난해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 설치된,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대형 조각이 주목을 끌었다. 아치형 지붕 아래 많은 새 조각이 움직이며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작품, ‘매직 랜턴’이다. 빅토리아 여왕 때 개관한 세계 최고 장식미술관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은 1년에 한 번씩 현대미술 작가를 선정해 현대미술과 장식미술 세계의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유럽 작가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프로젝트로 지난해에는 런던 미술계에서 다소 자극적인 작품 활동으로 유명한 맷 컬리쇼가 선정되었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영국 yBa의 주요 작가인 맷 컬리쇼

영국의 젊은 작가 그룹 yBa의 주요 작가로 데이미언 허스트가 1988년 큐레이팅한 <프리즈(Freeze)>를 통해 알려진 맷 컬리쇼는 악명 높은 ‘불릿 홀(Bullet Hole)’(1988년)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다. 2003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yBa 작가의 <센세이션(Sensation)>전을 통해 소개한 이 작품은 병리학 책에서 찾은, 송곳에 의해 상처 난 두개골 이미지를 확대한 후 15개의 라이트 박스를 배열해 완성한 사진 작품이다. ‘과연 이것이 미술 작품인가?’라는 회의를 품게 할 정도로 실험적인 작품이었지만 그 덕분에 <센세이션>전에서 주목받으며 맷 컬리쇼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금발 사이에 크게 난 상처 구멍을 극사실적으로 드러낸 ‘불릿 홀’은 세심하게 표현한 디테일 때문에 잔인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관람객에게 ‘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런던 미술계 안팎으로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맷 컬리쇼는 이처럼 악동 같은 모습으로 과감히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 숨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주제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 같은 작가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전시한 거대 설치 작품 ‘매직 랜턴’은 설치 장소부터 역사성과 장소성이 남달랐기에 더욱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많은 런더너가 맷 컬리쇼의 재치에 박수를 보냈고, 수개월간 그의 이름과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런던 시내 중심가의 하노버 스퀘어에 위치한 블레인 서던 갤러리(Blain Southern Gallery). 올 초 그곳에서 정말 오랜만에 맷 컬리쇼의 개인전이 열렸다. 특히 데이미언 허스트가 3년 전에 그에게 줬다는 페인트 박스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는 작가 특유의 대담하고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가 25년 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회화 작품을 선보여 더욱 관심을 모았다. 전시의 타이틀은 ‘이것이 탈출구는 아니다(This is not an Exit)’.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평범하게 수직으로 걸린 다이아몬드 모양의 ‘모노크롬’ 시리즈가 람객을 맞이했다. 이 이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의 주제가 보인다. 마치 모던 큐비즘처럼 보이는 이 회화 시리즈는 사실 코카인 가루를 담았던 종이에 남아 있는 흔적을 모티브로 했다. 종이는 회색과 하늘색을 오가는 컬러로 표현했고, 그 덕분에 모던 마스터의 미니멀리스트 작품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강렬한 컬러로 가득한 캔버스가 수직으로 걸려 있었다. 첫 번째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접힌 종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첫 번째 전시실과 달리 미니멀한 추상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눈과 머리카락, 피부 같은 사실적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패션 잡지에 바로 실어도 될 만큼 엄청난 양의 이미지가 편집되어 있었다. 이 또한 ‘모노크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마약상들이 잡지 광고를 이용해 마약을 팔던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시 오프닝도 매우 놀라웠다. 세라 루커스, 데이미언 허스트, 채프먼 형제 등 런던에서 가장 핫한 셀레브러티 군단이 모여 yBa 작가의 건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오프닝 다음 날 런던 예술계에 잘 알려진, 런던 캠버웰에 위치한 오래된 펍(pub)을 개조한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오랜만에 당신의 페인팅 작품을 봤다. 기존 작품과 경향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당신의 작품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말도 있다. 이번 페인팅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오일 페인팅은 정말 오랜만에 한 작업이다. 하지만 작품의 경향이 달라진 건 아니다. 작가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80년대의 분위기는 페인팅이었고, 그래서 나도 페인팅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미술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도 회화를 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오일 페인팅은 좀 구시대적 작업 방식 같은 느낌이었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제약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 중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광고지에 쌓여 있는 코카인 가루의 이미지를 대형 회화로 담아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그게 회화인지 잘 몰랐다. 사진 작품인 줄 알았다. 그렇다. 이번 작품은 조금 멀리서 보면 모던 회화의 큐비즘, 또는 추상 모던 회화처럼 보인다. 약간의 눈속임(trick of eye)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나는 이처럼 극사실적 회화를 통해 세상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도 ‘환영(illusion)’으로 잡았다. 우리 삶에 환영을 만들어내는 코카인이라는 아이템도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지난 20년간 당신의 작품을 보면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17세기 스페인 작가 벨라스케스를 좋아한다.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였던 그의 작품에는 많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는 왕의 초상이나 역사를 단순히 재현해 기록한 화가가 아니었다. 새로운 개념적 놀이(conceptual game)를 했다고 할까. 선택한 주제나 인물을 통해 다양한 메타포를 전달하는 그의 스타일이 좋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작가는 에두아르 마네다. 특유의 담대하고 자신감 넘치는 붓 터치가 좋다. 그가 표현한 유연하면서 강한 라인은 추상회화라는 장르를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미술관의 야경. 미술관 꼭대기에 조명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는 맷 컬리쇼의 ‘매직 랜턴’이 보인다.

당신의 작품과는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르지만 그 두 작가도 당시로서는 혁명적으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시도한 사람들이다.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7세기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바니타스(vanitas)’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같은 인생의 무상함, 순간성 등의 철학적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당신에게 ‘미’란 무엇인가? ‘미’라는 주제는 결코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유독 관심이 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살아 있음’을 ‘죽음’을 통해 모순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이 ‘미’의 개념을 때로는 ‘추함’, ‘악함’, ‘잔인함’ 같은 반대의 개념으로 드러냄으로써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편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매우 가까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당신에게 충격을 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 1985년 바운더리 로드에 있는 사치 컬렉션 전시장에서 본 제프 쿤스의 조각이다. 아주 반들반들한, 공장에서 막 나온 듯 흠 하나 없는 제품이었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처럼 다양한 이론을 접목해 작품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아트 스쿨을 갓 졸업한 내게 또 다른 도전 과제를 던져준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손길을 거쳐 수공으로 만들지 않아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오늘 yBa 작가들의 아지트인 283번지 스튜디오, 당신의 집이기도 한 이곳에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한 번도 한국에서 전시를 해본 적이 없고 방문한 적도 없지만, 최근 싸이가 등장하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궁금해졌다.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조만간 꼭 한국을 방문해보고 싶다.

1. 2 런던 캠버웰에 위치한 맷 컬리쇼의 스튜디오. 오래된 펍(pub)을 개조한 이곳은 yBa의 아지트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지윤(숨프로젝트 대표, 큐레이터) 사진 권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