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일어난 일
큐레이터의 시작과 끝이 ‘전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미술관에서는 신나는 공연도 하고 인문학도 가르치고 작가의 살아생전 추억이 깃든 도시나 마을로 답사도 다닌다. 미술의 문턱을 낮추려는 큐레이터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다양한 아이디어는 이제 미술관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1, 2 아트선재의 예술 연구자 그룹.
큐레이터(curator)의 어원은 라틴어 ‘curare’로 무언가를 돌보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큐레이터는 전통적으로 문화유산을 관장하는 곳, 예를 들어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에서 소장품 관리와 자료 수집을 해왔다. 하지만 현대 큐레이터는 더욱 포괄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기획자의 역할을 맡게 됐다. 세계의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로 꼽히는 영국의 데이비드 엘리엇은 “우리는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하고 생각하길 원한다. 예술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우리의 문화이자 생활이다”라고 말했다. 즉 큐레이터가 전시 기획뿐 아니라 사람들이 예술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아트선재센터와 환기미술관, 대림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대중과의 친밀한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을까?
아트선재 큐레이터의 ‘진지한 예술 탐구’_ 아트선재 예술 연구자 그룹
아트선재에는 예술을 연구하는 ‘예술 연구자 그룹’이 있다. 예술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담당 큐레이터는 “사실 전시 관람객 대부분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과 작가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예술 연구자 그룹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3개월에 걸친 아티스트 토크, 워크숍, 작품 창작 과정 참관 등을 통해 예술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예술 학습을 통해 참가자들은 각자 그 결실을 전시하거나 출판하는 등 완성된 결과물을 내놓게 되죠.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예술의 개념을 참가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예술가들과 함께 고민해나가는 겁니다”라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한다. 아트선재 예술 연구자 그룹은 국내외 명망 있는 작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와 스튜디오 방문, 작품 설치 과정 참관 등을 통해 예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소극적인 전시 감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맞춤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www.artsonje.org
1 환기 미술관의 인문학 특강과 답사 프로그램.
2 아트센터 이다의 나도 아티스트이다 체험 프로그램.
3 대림 미술관의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
환기미술관 큐레이터의 ‘역사 껴안기’_ 인문학 특강과 답사 프로그램
올해 수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환기미술관은 다양한 기획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중에서도 인문학 특강과 답사 프로그램은 김환기를 단순히 ‘작품’이나 ‘작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환기미술관 채영 학예사는 “환기미술관은 수화 김환기 선생님의 유지가 깃든 곳입니다. 선생님이 살던 성북동 일대는 작가들의 사랑방 같은 동네였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문화 예술인 동네라는 유산을 이어받아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서울 하늘 아래서 성북동 특유의 고집스러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환기 집터를 중심으로 근대 문화 예술인의 집결지인 성북동 일대를 둘러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한다.
첫 번째 시리즈는 성북동이었다. ‘수화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성북동 김환기 집터에서 출발해 근원 김용준과 상허 이태준 자택, 만해 한용운과 구보 박태환의 집터를 둘러보고 서울 외곽 산성으로 코스가 이어진다. 다시 성북동 언덕길을 돌아 혜곡 최순우 옛집, 오원 장승업 집터와 간송미술관에서 마무리하는 이 코스를 걸으며 참가자들은 수화 선생과 작가들이 나누었을 정겨운 담소를 상상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두 번째 시리즈는 부암골.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부암동 일대는 미술관과 함께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 4대 소문 중 유일하게 남은 창의문(자하문) 등 문화재와 예술이 공존하는 동네다. 다양한 참가자들과 함께 과거 문화 예술의 거리를 걷고 작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누는 인문학 특강과 답사 프로그램. 단연코 성북동과 부암동에서만 누릴 수 있는 예술 인프라가 아닐까?
www.whankimuseum.org
아트센터 이다 큐레이터의 ‘아티스트 변신’_ 나도 아티스트이다 체험 프로그램
‘아트센터 이다’는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미술관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비롯해 세계 유수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왔다. ‘경계 허물기’를 주제로 기획한 ‘나도 아티스트이다’는 전시장을 체험한 관람객이 미술관을 아틀리에로 활용하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인 체험 워크숍의 경우 간단한 작품 감상에 이어 전시장과 구분된 공간에서 진행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전시장 전체를 체험과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꾸민다. 더 특이한 점은 프로그램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 관람 시간 내내 진행한다는 점. 인원수의 제약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참가자들은 전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을 모티브로 나만의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전시를 완성한다. 체험 프로그램 아틀리에는 3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다양한 색의 혼합과 분리를 배우는 ‘Coloring Atelier’, 다채로운 소재를 체험하며 창의성을 키우는 ‘Making Atelier’,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를 매개로 감성을 자극하는 ‘Healing Atelier’를 통해 작가들의 테크닉적 요소를 학습할 뿐 아니라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감성을 몸소 느끼게 해준다. 아트센터 이다의 큐레이터 팀은 이렇게 말한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저희 미술관 특성상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즐기는 놀이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은 점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하죠.” www.artcenterida.com
대림미술관 큐레이터의 ‘놀이터 만들기’_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
“전시 외에도 부담 없는 가격으로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대중과 더 친밀한 소통을 이어나가기 위한 열정입니다.” 대림미술관 큐레이터 팀의 프로그램 운영 철학에서도 느껴지듯, 대림미술관은 부담 없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곳을 지향한다. 대림미술관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디자인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는 미술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용히 전시만 관람하고 가는 전통적 미술관의 형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신나는 놀이를 제공해 함께 즐기고자 한다.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은 미술관이 추구하는 복합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패키지라는 이름처럼,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아트 패키지는 대개 전시에 맞춰 콘텐츠를 구성하지만 기본적 테마는 ‘Lecture + Concert + Artists’, 이렇게 3가지다. 렉처에서는 전시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콘서트에서는 전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며, 마지막으로 아티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공유한다. 최근에 패션 디자이너 스티브 제이와 요니 피(Steve J & Yoni P)가 ‘Love what you do, Do what you love’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와 싱어송라이터 슬로우 쥰의 공연은 대림미술관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의 인기를 다시금 실감케 한 자리였다.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 시작 1시간 전부터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은 이제 매회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 됐다. ‘대중과 더 친밀한 소통을 이어나가기 위한 열정’이라는 프로그램 큐레이터 팀의 구호처럼, 아트 패키지 프로그램은 대림미술관이 일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www.daelimmuseum.org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장윤정(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