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달린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E 클래스는 7년 전 선보인 9세대의 풀 체인지 모델이다. 한층 젊어진 외모도 시선을 끌지만 무엇보다 똑똑한 비즈니스 세단이 되어 돌아왔다. 운전자의 운전 실력만큼 자동차의 ‘성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이 차를 타고 머지않아 다가올 자동차의 미래를 엿보았다.
10세대로 풀 체인자한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E 클래스
E 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중추다. 콤팩트 세단인 C 클래스와 기함인 S 클래스 사이에서 오랜 세월 제 역할을 해온 중형 세단. 1947년에 170V 모델로 첫선을 보인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300만 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메르세데스-벤츠의 핵심 모델이다. 그사이 아홉 번의 리뉴얼을 거쳤지만 특유의 각진 형태를 유지한 탓인지 딱딱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차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그릴 가운데 세 꼭지 별이 크게 자리한 아방가르드 모델은 덜하지만 보닛 위에 작은 세 꼭지 별을 얹은 엘레강스 모델은 어딘지 모르게 점잖은 중년 신사처럼 느껴진다. 그런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카롭게 각진 이전 모습은 사라지고 좀 더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미래에서 온 듯 완벽에 가까운 자율 주행 능력을 겸비했다. 유럽의 서쪽 끝,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날아가 새로운 감각을 더한 더 뉴 E 클래스를 온전히 즐기고 왔다.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후 두 달 만인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매끄럽게 다듬은 뒤태
위아래 형제들과 닮은 패밀리 룩
빛바랜 벽에 주황색 지붕을 얹은 건물, 그리고 땡땡 소리를 내며 그 사이를 오가는 노란색 트램이 자아내는 그림 같은 풍경.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에서 보물찾기하듯 길을 찾아 헤매는 것조차 흥미로운 도시가 리스본이다.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시승을 위해 메르세데스-벤츠의 본고장 독일이 아닌 포르투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예쁜 엽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광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도 좋지만 자동차를 타고 둘러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라고, 이곳으로 초대한 홍보 담당자는 말했다. 사계절 내내 온화한 날씨라 여행하기 좋고, 가파른 언덕과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을 관통하며 시내를 도는 코스, 해안가 절벽을 따라 움직이며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 등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고. 또 유럽의 대표적 자동차 레이스 트랙 이스토릴(Estoril) 서킷이 있어 드리프트를 포함한 다이내믹한 주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래적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디스플레이
23개의 스피커와 부메스터 오디오
더 뉴 E 클래스를 처음 마주한 건 바다처럼 광활한 테주(Tejo) 강변에서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강의 눈부신 후광을 업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신차를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난 기분이랄까. 주선자에게 들은 인적 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심정으로 마음속 체크리스트를 꺼내 들었다. 일단 외모부터 살폈다. 중후한 느낌인 이전 얼굴을 단박에 지울 순 없지만 젊어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각진 외형의 기존 모델과 비교할 때 확실히 좀 더 매끄럽게 다듬었다. ‘나 좀 박력 있는 남자야’라며 스포티한 분위기도 풍기는데, 휠베이스를 65mm, 차체 길이를 43mm 늘리고 높이를 3mm 줄여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쿠페형 루프를 채택한 덕분이다. 점잖고 매너 좋지만 어딘지 모르게 재미없던 남자가 스타일을 바꾸고 여유와 위트를 장전한 느낌. “고급스러운 더 뉴 S 클래스를 닮았다”, “다이내믹한 C 클래스를 연상시킨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를 합치면 형제들과 빼닮은 패밀리 룩으로 변신했다는 결론이다.
한층 젊어진 외모와 달리 인테리어는 S 클래스의 축소판 같은 분위기다. 파도치는 듯한 곡선의 대시보드와 4개의 원형 송풍구 그리고 계기반부터 센터페시아 상단까지 하나로 이어진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그대로 가져왔다. 눈앞에 길쭉한 태블릿 PC가 떠 있는 듯 미래적 분위기를 풍기는 디스플레이는 속도와 rpm 등을 표기하는 가상 계기반과 내비게이션 정보 등을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화면을 나란히 띄운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첨단 기기로 보이지만 여전히 터치스크린을 채택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 대신 운전대 양쪽에 계기반과 멀티미디어를 조작할 수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터치 패드를 두었다. 운전대를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을 이용해 차량 전체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어 꽤 편리하다. 조명 하나 바꾼 것으로 차 안의 느낌이 얼마나 특별해지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트림 부품, 센트럴 디스플레이, 센터콘솔, 문손잡이 등에 LED 실내등을 장착해 차 안에 은은한 빛이 퍼진다. 컬러 스펙트럼도 넓다. 무려 64가지 색상의 앰비언트 라이트 덕분에 기분에 따라 차 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안팎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긴 했지만 패밀리 룩을 유지하느라 풀 체인지에 거는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친다. 하지만 제아무리 꼭 빼닮은 형제라도 성격은 다르지 않은가. 성능의 놀라운 변화를 기대하며 더 뉴 E 클래스 운전석에 올랐다.
패밀리 룩을 유지한 더 뉴 E 클래스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행 감각 퀼팅 패턴을 적용한 신형 시트는 한층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인체공학적이고 조각적인 형태로 만들었다는 설명처럼 S 클래스의 시트 못지않게 안락하다. 운전석에 앉고 보니 거대한 디스플레이와 시원시원한 내비게이션이 시선을 장악한다.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려고 나도 모르게 화면에 손을 댔다 떼며 터치스크린이라면 ‘정말 물건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스토릴 서킷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국내에서도 초행길일 땐 내비게이션을 따라 움직이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낯선 해외에선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더 뉴 E 클래스는 센터페시아의 내비게이션뿐 아니라 계기반과 헤드업 디스플레이까지 총 세 곳에서 각기 다른 뷰로 길을 안내해 이런 불편을 덜 수 있다. 테주 강 하구에서 출발한 차는 복잡한 골목부터 고급스러운 빌라가 밀집한 지역까지 시내 곳곳을 누볐다. 리스본의 민낯을 감상하다 보니 드는 생각. ‘아, 음악이 빠졌구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장르별 음악 리스트가 떴지만 아이폰과 연결해 애플 카플레이를 작동했다. 선곡은 앨런 워커의 ‘Faded’. 23개의 스피커와 3D 서라운드를 자랑하는 부메스터 오디오가 이 음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극대화해 몽환적인 라운지 바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렇게 귀에 익은 음악을 들으며 20분가량 시내를 누빈 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내가 탄 4기통 E220d 모델은 디젤엔진의 소음과 진동을 거의 잡아내 고속 주행임에도 상당히 조용했다. 뻥 뚫린 길을 만나자 내 안의 질주 본능이 꿈틀거려 가속페달에 올려둔 발에 힘이 들어갔다.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액셀러레이터를 깊숙이 밟으니 부드럽게 속력을 올린다. 벤츠 특유의 묵직함을 덜어내고 최대출력 195마력, 최대토크 40.8kg·m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다. 9단 변속기는 엔진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듯했다. 심지어 스포트 플러스 모드로 바꾸면 고성능 모델 AMG를 운전하는 것처럼 제대로 달리는 맛이 난다. 겁 없이 스피드를 올려봤지만 시속 120km로 달릴 때 가장 부드럽고 안정적이라는 결론. 그렇게 손과 발끝 감각에 집중하며 더 뉴 E 클래스를 몰고 이스토릴 서킷으로 이동했다.
계기반과 멀티미디어를 조작할 수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터치 패드
측면 충돌의 위험을 경고하는 능동형 사각지대 어시스트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하는 원격 주차 시스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첨단 기술
서킷에 도착하자 인상 좋은 인스트럭터가 우릴 맞이했다. “길고 짧은 직선 주행로와 복잡한 13개의 커브가 섞여 있어 자동차의 다양한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유럽의 대표적 자동차 경주용 트랙입니다”라고 짤막한 코스 소개를 덧붙였다. 컴포트, 세이프티, 파킹, 하이웨이까지, 신차의 특장점을 경험할 수 있게 구성한 4개 프로그램이란 말에 구미가 당겼다. 더 뉴 E 클래스를 똑똑한 세단이라고 말하는 데는 업그레이드된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한몫한다. 차선에서 벗어나는 걸 막아주는 능동형 차선 이탈 방지 어시스트, 운전자가 충돌 경고에 반응하지 않으면 스스로 제동하는 능동형 브레이크 어시스트, 측면 충돌의 위험을 경고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능동형 사각지대 어시스트 등이 그것. 실제로 능동형 브레이크 어시스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스트럭터가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풍선으로 만든 모형 자동차와 보행자를 향해 내달렸다. 일촉즉발의 상황, 시험이라는 걸 알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물론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차는 알아서 브레이크를 작동하며 충돌을 막았다. 직접 체험해보니 이런 기능이 활성화된다면 운전자의 실수나 방심으로 일어나는 숱한 사고를 막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동 주차 시스템도 꽤 흥미롭다. 주차장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주차 공간을 찾고 앞뒤를 오가며 빈 공간에 쏙 들어가고, 빠듯한 차고에 주차할 때는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 앱으로 차를 넣고 뺄 수 있다. 기존에 선보인 원격 주차 시스템이 차를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다면 이 차는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걸 피해 스스로 방향을 바꾼 다음 다시 이동해 한 단계 진보한 느낌이다.
마지막은 더 뉴 E 클래스의 자랑거리인 자율 주행을 확인하는 시간. 이 프로그램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서킷이 아닌 고속도로에서 체험하기로 했다. 서킷을 빠져나와 스피드를 올리며 부드러운 주행감을 즐기려는데, 옆자리에 탄 인스트럭터가 스티어링 휠 왼편 아래에 위치한 칼럼 시프트를 앞쪽으로 두 번 당기라고 지시한다. 이건 디스턴스 파일럿 디스트로닉 기능을 활성화해 그 순간부터 운전을 차에 맡기라는 의미. 요즘 중대형 세단은 대부분 주행 보조 시스템을 포함하는 추세다. 정확도의 편차가 있긴 하지만 앞차와의 거리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줄이거나 높이는 건 이제 대중적이다. 하지만 더 뉴 E 클래스에는 스스로 차선을 바꾸는 액티브 레인 체인지 어시스트가 포함됐다. 예를 들어 오른쪽 차선으로 이동하고 싶을 때 방향지시등을 켜면 옆 차선에서 달리는 차와의 거리를 파악해 알아서 차선을 바꾼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감탄이 쏟아졌다. 심지어 바로 옆에 차가 있으면 차선 변경을 지시해도 앞만 보고 달리다 그 차가 지나간 후에야 영민하게 움직인다. 단지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아 국내에 들어올 땐 차선 변경을 비롯한 몇 가지 기능이 제한된다는 점이 아쉽다. 처음엔 벌을 서는 것처럼 손과 발을 떼고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게 되지만 몇 번 반복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차에 주행 권한을 맡기게 된다. 그만큼 편리하고 제법 믿을 만하다.
회춘한 듯 젊어진 외모로 돌아온 더 뉴 E 클래스. 직접 체험해보니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최첨단·최신식 기술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담당자가 “Masterpiece of Intelligence!”라고 외친 것처럼 한층 정교해진 안전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일정 부분 운전도 대신 해줄 수 있는 똑똑하고 배려심 가득한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라면 믿을 만한 운전기사를 고용한 것처럼 자동차에 더 많은 역할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 문지영 (jymoon@noblesse.com)
사진 제공 | 메르세데스-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