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for Take-off
융커스 F13이 돌아왔다. 비행에 대한 오랜 열망을 품어온 한 기업가가 이끄는 여행 가방 회사에서 이 비행기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 연구와 정성을 바쳤다. 그냥 융커스 F13이 아니다. 더 뉴 리모와 융커스 F13이다.

시카고에 갔다.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숨을 깊이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도시의 8할은 바람, 그리고 2할은 아마도 건축. 고개를 꺾어 까마득한 끝을 올려다보니 학창 시절 근대건축사를 배울 때 익히 보던 풍경이 펼쳐졌다. 기하학의 향연, 반원형 모티브, 화려한 직선 금장식…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시카고에 마천루가 들어서던 그 시절을 풍미한 아르데코의 흔적이다.
리모와 융커스 F13
나는 프리미엄 여행 가방 브랜드 리모와가 선물한, 아직 매장에선 구할 수 없는 신상 에디션 트렁크를 끌고 있었다. 리모와의 전매특허인 굴곡진 알루미늄 보디에 융커스(Junkers) F13 형체를 새겨 넣고 핸들과 모서리 부분에는 검은 가죽을 덧댄 모델이다. 융커스 F13이라, 라이트 형제만큼 비행기에 애정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동차를 제외한 탈것엔 별 관심 없는 평범한 여자(성을 구분해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여자에게 더 취약한 분야가 아닐는지!)에겐 설명이 필요했다. 리모와의 소재 개발에 영감을 준 비행기라고 했다. 정확히 어떤 영감?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지만 차차 듣기로 했다. 최종 목적지인 위스콘신 주 오시코시(Oshkosh)에서.


오시코시 비행장에선 세계적 에어쇼가 열리고 있었다. 맨몸보다 날렵한 비행기의 공중 곡예를 감상하는 것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동시에 내집 안마당에서 튜닝한 것 같은 각종 수제 비행기가 드넓은 비행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진풍경도 목도했다. 세상에, 이렇게 비행기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많은지 몰랐다. 미국인의 스케일이 남다른 취미에 감탄하고 있을 때 리모와가 나를 또 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비행장 한편에 위치한 한 격납고다. 비행기를 보관하거나 정비하는 장소. 그런데 문을 여니 예상한 휑한 창고 느낌이 아니다. 컴컴한 입구를 헤치며 들어가는 동안 라이브 밴드의 흥겨운 재즈 음악이 크레센도 박자에 맞춰 귀를 울렸다. 그곳은 작은 파티장이었다. 컨셉을 철저하게 1920~193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에 맞췄다. 블랙 & 골드의 화려함, 볼드함, 기하학적 간결함… 실내장식에(환영 문구의 서체마저!) 오롯이 묻어났다. 리모와 융커스 F13이 베일을 벗는 자리였다. 리모와 가방 고유의 알루미늄 패널을 뒤집어쓴 고전적 디자인의 소형 비행기가 실물을 드러내자, 디이터 모르첵(Dieter Morszeck) 리모와 회장은 “지난 수년간 우리의 연구와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적 비행기 융커스 F13을 내년에는 하늘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감회를 전했다. 리모와 전속 모델인 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Alessandra Ambrosio)와 요하네스 휘블(Johannes Huebl)이 등장해 리모와의 오랜 꿈을 실현한 것에 대해 축하 인사를 전하며 멋진 포즈로 융커스 F13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만찬을 진행하는 동안 리모와 융커스 F13 탄생을 기념하는 공연이 이어졌다. 20세기 초 황금기를 보낸 스윙재즈에 맞춰 남녀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당대 유행한 헤어와 메이크업, 패션으로 완벽하게 아르데코 스타일을 재현한 모델이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라인, 이른바 융커스 F13 에디션 슈트케이스를 크기별로 들고 나와 패션쇼도 펼쳤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아홉 번이나 수상했다는 노라 존스의 라이브 무대까지. 시대적 배경이 동일한 <위대한 개츠비>의 사교 파티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한층 정제된 우아함을 더해 21세기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문득 먼 길 돌아 시카고를 거쳐온 이유를 깨달았다. 이번 여정의 키워드는 한결같았다. 1920~1930년대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로의 회귀. 그 가운데 비행기와 여행 가방, 그리고 알루미늄 공학 예술과 아르데코의 만남이 있었다.
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와 요하네스 휘블

리모와 융커스 F13 에디션 슈트케이스 패션쇼

디이터 모르첵 리모와 회장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 디이터 모르첵
융커스 F13은 어떤 비행기인가? 1919년 6월 25일은 항공 산업 분야에서 라이트 형제의 처녀비행만큼이나 역사적인 날이다. 융커스 F13이 6명의 승객을 태우고 하늘로 처음 날아올랐기 때문. 이 비행기의 특별한 점은 몸체 전체가 금속으로 이뤄진 최초의 상업 비행기라는 것이다. 이를 만든 이는 독일 기술자이자 사업가 휴고 융커스. 군사용이 아닌 민간 항공기로 평화로운(?) 하늘길의 미래를 열어보겠다는 꿈을 담은 역작이다. 상업적으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려면 효율적인 유지와 보수를 위해 안전하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가 필요했다. 기존의 비행기는 나무로 만든 뼈대에 캔버스 천을 뒤집어쓴 형태였는데 날씨에 취약했다. 바람이 불면 휘청거리고 비에 젖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금속이었다. 가볍고 튼튼하며, 반짝이는 은빛 갑옷을 입은 그의 비행기는 일대 혁신이었다. 초기에는 양쪽에 날개가 하나씩 있는 이른바 단엽비행기로 4명의 승객(수화물이 없다면 6명까지 가능)이 겨우 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는 곧 배와 기차에 의존하던 장거리 여행 문화를 빠르게 바꿔놓았다.
그 금속이 알루미늄인가? 리모와의 토파즈에도 사용한? 정확히 말하면 두랄루민(duralumin)이라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다. 1906년 독일 금속공학자 알프레트 빌름이 개발한 이 소재는 매우 가볍지만 불안정해 건축물에는 사용할 수 없던 알루미늄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구리, 마그네슘, 망간 등을 혼합해 순수 알루미늄보다 훨씬 안정적이며, 강도 또한 한 차원 높였다. 물결치듯 주름진 형태의 패널 제작이 가능했는데 이 덕분에 융커스 F13은 더욱 역동적으로 보인다. 융커스 F13이 탄생하고 30년이 지난 후 내 아버지 리차드 모르첵(Richard Morszeck, 리모와라는 브랜드명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Richard Morszeck Warenzeichen, 리차드 모르첵의 브랜드라는 뜻)이 바로 이 두랄루민으로 여행 가방을 만들어 선보였다. 열과 습기에 강하고 벌레(특히 흰개미) 침투까지 막아주는, 슈트케이스의 혁신! 이것이 토파즈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리모와를 대표하는 상징적 제품이다.

리모와 융커스 F13 제작 과정
융커스 F13을 왜 다시 만들었나?융커스 F13은 1925년 국제적 항공교통에서 40%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1932년까지 330대 이상의 비행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교통이나 비행기 관련 박물관에서 겨우 몇 대를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뮌헨 독일 박물관을 종종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날개 꺾인 F13을 보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언젠가 이 비행기가 다시 하늘을 나는 걸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내게 비행기는 빠르고 편안한 운송 수단 그 이상의 감성적 존재다. 실제로 수년간 개인 소유의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며 비행과 비행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특히 융커스 F13에 담긴 휴고 융커스의 개척자 정신과 혁신에 대한 욕망은 기업가인 나에게 항상 영감을 주었다. 오리지널 융커스 F13을 다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건 2009 AFHA(Association of Friends of Historical Aircraft)를 통해서였다. 융커스 비행기에 대한 기술을 보유한 스위스의 유(Ju) 항공이 우리의 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휴고 융커스는 계획 후 착수 1년 만에 비행기를 띄웠지만, 우리는 밑그림을 완성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렇게 실물을 보여주기까지 또 2년을 인고하며 보냈다.
새로 만든 리모와 융커스 F13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다시 날 수 있다는 것. 단순히 박물관의 복제품을 만드는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랄루민으로 덮은 6인승 단엽비행기로 외양은 과거의 전통과 향수를 따르지만, 그 안에 오늘날 항공기 생산과 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기술을 담았다. 비행기의 동력원은 1930년대 미군 수송기에 사용하던 캐나다 프랫 & 휘트니(Pratt & Whitney)사의 R-985 엔진이다.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가장 작은 크기의 방사선 형태 엔진으로 450마력을 발휘한다. 튜브형 금속 프레임을 리벳 연결 방식으로 고정해 뼈대를 완성했다. 과거 융커스 F13의 조종석은 햇빛을 가려줄 작은 윈도 스크린만 달린 오픈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운 리모와 F13은 속도 측정기와 고도계, 컴퍼스 등 현대적인 비행 조종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막힌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객실은 커버 시트와 루프 라이닝에 알칸타라를 적용, 고급 세단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리모와 가방을 만드는 것처럼 각 파트에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어 협력했다. 리모와 융커스 F13은 현재 사전 예약 주문이 가능하다. 내년 3월까지 정식 비행을 위한 승인 절차를 마무리하고 시범 비행을 할 예정으로, 5월부터 인도받을 수 있다.
에디터 |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 리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