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이의 방
어쩌면 그녀만이 유일하게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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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이 맘껏 편집하는 국내의 한 웹 백과사전에선 김소연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활동 초기 수많은 안티 팬으로 고생했지만, 점차 호감형 배우로 거듭나게 된 몇 안 되는 여배우.” 이 말은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틀릴까? 연기 경력 22년 차, 여전히 새 작품을 학수고대하는 여배우. 비가 세차게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 그녀를 작은 방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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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늘 촬영 컨셉은 따스한 볕이 드는 ‘소연이의 방’이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침부터 비가 내려 걱정했어요. 개인적으론 보여주신 컨셉이 오늘 같은 날에도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요. 그런데 사진은 마음에 드세요?
들고말고요. 그러고 보니 촬영 땐 제가 ‘예쁘다’는 말을 너무 아꼈죠? 맞아요! 좀 해주세요.(웃음)
사실 어려서부터 TV에서 봐온 연예인이 저편에 희멀끔하게 누워 있으니 입이 잘 열리지 않았어요. 요 몇 년 사이 얼굴이 알려진 여배우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르죠. 와, 정말요? 이거 칭찬인데?(웃음)
요즘 어떠세요? 이렇게 예능 프로에서 소연 씨를 자주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예능 프로엔 사실 이전에도 종종 출연하긴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진짜 사나이>(이하 진사)처럼 4~5주간 제 모든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에 나간 건 처음이죠. 지금 하는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도 그렇고요. 엄청 즐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당연히 <진사>의 좋은 반응이 또 다른 예능 프로의 출연을 결정하게 한 거겠죠? 크게 보면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그 둘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좀 달랐어요. <진사>를 결정할 즈음엔 절박감이 더 컸어요. 그땐 왠지 나이가 주는 압박감도 상당했죠. 30대 중반에 접어든 여배우로서 앞으로 주어질 역이 내 기대치에 못 미친다거나, 점점 포기해야 하는 배역이 생기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그런 것에 제 나름 준비해왔다고 자부했는데,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3>가 끝나자마자 그게 와르르 무너지더라고요.
그런 약간의 ‘자포자기’가 뭔가에 도전하게 했다는 얘기죠? 네. 게다가 ‘더 열려야 한다’는 얘길 들은 탓도 있죠.
열리다니요? 현장에서 더 자유롭게 연기하고, 자신을 깨고 나오는 거죠. 이전엔 그냥 막연히 ‘곧 열리겠지’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이 진지하게 들리더라고요. 내가 날 보여주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걸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진사> 출연을 결심했고, 그게 끝나고 드라마 <순정에 반하다>에 들어가니까 확실히 현장이 더 재미있고 연기에 대한 믿음도 생긴 경험을 한 것 같아요.
그거 신기한데요? 그러니까 뭐가 진짜 ‘열리긴’ 한 거네요? 대중에게 보란 듯이 민낯을 보여줬는데, 그걸 처음 본 이들의 반응도 재미있었고, 뭔가 제 안에서 저도 모르던 변화가 생긴 거죠.
<우결> 출연을 결정할 때는요? <우결>의 경우도 비슷했어요. ‘이번에도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어느 정도 있었고요.(웃음)
그건 너무 욕심 아니에요?(웃음) 중학생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배우가 또 뭔가를 찾으려고? 맞아요. 연기 생활 22년 만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부끄럽긴 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열린다는 게 뭔지 확실히 잘 모르겠거든요.
‘연기를 위한 연기’ 같은 것에 가까울까요? 어쩌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또 동료 배우나 선배님들이 하는 얘길 들으면 ‘연기는 좋은데 뭔가 내성적인 것 같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고요. 사실 전 지금도 이 부분이 숙제예요. 오랜 시간 숙제였죠.
근데 태생적으로 얌전한 이들이 있잖아요. 배우도 사람인데 굳이 그런 본성을 깨야 할까요? 그렇죠? 맞죠?(웃음) 맞는 말이긴 한데, 그간 전 스스로 그걸 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올 거라고 믿었거든요.
평소 모습은 어때요? <우결> 첫 방송만 보면 엄청 노심초사하면서도 상냥하던데. 실제로도 그래요? 99.9% 제 모습이에요. 근데 실은 제가 정말로 감추고 싶어 하는 모습이기도 해요.
왜요? 그게, 예능에 썩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거든요. 근데 제가 <우결> 팀이랑 첫 미팅 당시 ‘이 프로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그것과 관련 있긴 해요. 그들이 정말 방송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말했거든요. 우린 소연 씨의 평소 모습을 보고 섭외한 거니까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고.
예를 들면요? 만약 (남편이) 손을 잡았는데 그게 불편하면 빼도 된다, 이런 거?(웃음)
그래서인지 저도 정말 편하게 방송을 봤어요. 가끔 소연 씨 웃음소리가 ‘꺄하하’ 하고 튈 때도 참 좋더라고요. 푸하하. 그게 참 인위적으로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리액션도 심하다고 했고요. 근데 그것도 그냥 나오는 거거든요. 첫 방송 녹화 때만 해도 제 모습을 엄청 의식하던 제가 본방송에선 거리낌없이 막 행동하는 걸 발견하니 재미있는 거죠. 솔직히 제 나름 그게 ‘큰 소득’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예능 프로 속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건가요? 아니요. 실은 그 반대예요. 제가 모르던 제 모습을 다른 것도 아닌, TV에서 보게 되는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거든요. 요샌 겨우 20여 분 나오는 그 방송 때문에 매주 토요일이 완전 ‘블랙데이’예요.
사실 소연 씨 성격이 그렇게 수더분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어려서부터 다양한 곳에서 배우 생활을 해온 탓에 살짝 낯을 가릴 순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또 이상한 팬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고요. 그래서 더 실수를 안 하려 하고, 여전히 소심하고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글을 저도 읽은 적이 있어요.
네? 직접 한 인터뷰의 대답이 아니고요? 아마 팬들이 유추해 쓴 글일 거예요. 근데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아요. 전 그 정도로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 애가 어린 나이에 아무 도움 없이 연예인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당연히 알게 모르게 성격이 밖으로 드러나는 거죠.
예전 인터뷰 중에 20대 시절의 연기를 ‘부끄럽다’고 한 적도 많죠? 부끄럽죠. 지금도 사실 부끄러운데.(웃음)
근데 지금이니까 하는 질문이지만, 당시 착하고 예쁘기만 한 역보다 아예 ‘악녀’로 기억되는 게 더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김소연 하면 사실 ‘예쁜이’보단 ‘악녀’의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고요. 아니요. 당연히 예쁜 역을 하고 싶었죠. 20대였으니까요. 근데 당시 제겐 그런 역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물론 그 많은 센 역이 어린 제게 주어진 것도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행운이긴 하지만요.
말랑말랑한 역은 요새 많이 하고 있죠? <순정에 반하다>나 <로맨스가 필요해 3>가 예전에 제가 하고 싶던 배역에 가까워요. 사실 20대엔 제가 이런 로맨스물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혹시 그때 한 기도가 이렇게 이뤄진 건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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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김소연 씨 정도면 늘 여러 배역 중 하나를 고르는 입장인 줄 알았어요. 말도 안 돼요. 저를 포함한 많은 배우가 오늘도 학수고대하며 감독의 전화를 기다리죠. 제 20대 중 한때는 아예 그런 전화가 전멸한 때도 있는걸요.
많이 초조했겠죠? 전 지금도 초조해요. 오늘은 다시 오지 않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남들도 하고 싶어 하니까. 심지어 제 또래엔 좋은 배우도 많고요. 그래서 작품에 임할 때, 더 몰입해서 하게 돼요. 최근엔 <순정에 반하다>가 그런 부분에서 좀 심했고요.
가만히 얘길 들어보니, 20대 때보다 오히려 지금 연기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것 같아요. 아무래도 20대엔 ‘잘 안 풀리는 것’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10대 시절 워낙 꿈처럼 두둥실 떠다녔으니까요. 20대 후반에 ‘그 드레스’를 입기 전까진 정말 고민이 많았죠.
아, 그 드레스! 근데 매체에서나 그 드레스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드레스 얘길 하네요. (김소연은 지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슴만 살짝 가린 파격적인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 일로 그간 뜨뜻미지근하던 그녀의 이미지가 단숨에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이후 ‘드레소연’이라는 독보적 애칭까지 얻었다.) 너무 감사하죠. 그 드레스를 입기 전날까지 늘 고민의 연속이었거든요.
그럼 지금은 뭐에 대해 고민해요? 음, 제 또래 여자가 되면 당연히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하잖아요. 그게 결혼이 될 수도 있고요. 근데 지금은 솔직히 아무 고민이 없어요.
결혼에 대한 욕심도 없어요? 아직은 없어요. 그게 이상해요, 저도.(웃음)
예의 바르고 착한 연예인이라는 얘기, 근래 들어 많이 듣죠? 어때요? 그런 얘길 들은 지 정말 몇 년 안 됐어요.(웃음) 사실 예전엔 사람들이 제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해도, 조금만 웃어도 ‘가식’ 아니냐고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봐주시는 것에 너무 감사해요.
맞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군인들이 싫어하는 연예인 1위’ 이런 것에 뽑히고 그랬죠? 하하. 그러니까요. 이래 봬도 여잔데.
근데 영화엔 왜 그렇게 안 나와요? 아직은 특별히 찾아주는 데가 없어서겠죠. 몇 년 전 <가비>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흥행이라든지 여러 면에서 잘 안 풀리기도 했고요.
그 영화는 저도 참 아쉬워요. 정말 오랜만에 찍은 영화였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여운이 많이 남아,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스크린에 올린 영화관을 찾아가 보기도 했어요. 서울에서 수요일 조조, 한 타임이 있더라고요. 이전에도 수없이 본 영화인데,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걸 또 보고 싶어 갔다가 엄청 울고 왔죠.
또다시 영화를 택한다면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영화에선 제 얼굴을 이용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제가 둥글둥글하진 않잖아요. 제 얼굴에 음영을 주면 굉장히 강하게 나오는데, 그런 걸 이용한 작업을 하면 영화에서도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긴 질문을 하나 해볼게요. 김소연 씨는 지금의 20~30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로 활동했고, TV와 영화에서 그들과 함께 성장했어요. 물론 슬럼프도 있었고, 한동안 안티 팬에게 호되게 시달리기도 했지만요. 근데 지금은 다른 이들은 없고 김소연이란 배우만이 어쩌면 유일하게 그 자리에 계속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비슷한 글을 재작년 팬 카페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팬 한 분이 쓴 글인데, 거기에도 “이렇게 저희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로맨틱한 순간을 선물해줘서 감사하다”라고 쓰여 있었죠. 그걸 읽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곧바로 저도 자필로 “저야말로 이런 로맨틱한 순간을 선물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쓰고 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올렸죠.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 제가 한창 슬럼프를 겪던 때의 팬들에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들은 왜 내 팬을 해서 이렇게 마음 아픈 경험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 이 질문에도 마찬가지에요. 저 같은 여배우에게 그렇게 오랜 시간, 그리고 지금 또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갑자기 너무 감동 모드로 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하는 김에 하나만 더 물을게요. 이젠 웬만한 일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요. 계속 흔들릴 것 같아요. 제 성격상 말로는 편안하고 여유도 생겼다고 그러지만, 이 직업을 택한 이상 늘 흔들리면서 커갈 것 같아요.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흔들림이 그냥 흔들리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이겨내는 방법 또한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실제로도 이겨낼 수 있었고요.
일 외에 즐기는 취미는 있어요? 전 취미도 없어요.
게시판 같은 데 보면, 강남구청역 부근 카페에 몰래 모자 뒤집어쓰고 만화책 보러 다닌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하하. 진짜요? 맞아요. 전 그게 취미인데.(웃음) 근데 누가 그걸 봤대요?
봤대요. 실은 집이 그 근처거든요. 역 주변 카페 몇 곳이 일요일엔 주차비를 안 받는지라.
주차비 걱정도 해요? 그게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한 번에 2만 원도 내니까.
2016년엔 뭘 하고 싶어요?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현장에서 재미를 느끼는 덴 여전히 밝은 연기를 하는 게 좋더라고요. 현장도 밝고 즐겁고, 저 스스로도 재미있으니까요. 근데 2016년엔 오랜만에 좀 ‘센 거’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10여 년 만에 악마로 돌아온 김소연’, 이런 뉴스를 원해요? 그런 것도 좋죠.(웃음)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장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