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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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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나이가 들면 힘이 달린다. 세월의 흐름을 무리하게 거스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건 남자가 아니다. 남자의 자존심이 아니다.

지금 물 한 잔과 함께 아연이 함유된 프로폴리스, 약 파는 사람이 ‘천연’이라고 강조한 종합 비타민, 1000mg이라고 적힌 비타민 C를 먹었다. 유산균 알약도 두 알 먹어야 하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못 먹고 있다. 건강을 생각하면 먹어야 한다. 나는 약 박사가 됐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여기서 체력이란 물론 정력을 포함한다.
이런 얘기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난 한물간 것 같다. 사실 ‘한물갔다’고 적은 후에 지우고 ‘간 것 같다’라고 적었다. 자존심 때문에. 일단 간단한 예로 아침에 눈을 뜨면, 말 그대로 눈만 뜬다. 지금보다 젊을 땐, 참고로 나는 서른일곱 살이다, 다른 것도 불쑥, 불끈 솟아올랐다. 아, 힘이 있구나, 나는 힘이 있다, 아침마다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힘이 없었다. 상실감이 컸다. 실전에서도 그렇다. 뭐,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섹스를 하다가 문득 애인을 끌어안는 경우가 잦아졌다. 힘이 없어서다. 피곤하다는 게 뭔지 온몸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어떤 날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피곤하다. 어제 피곤했고 그저께 피곤했으니 오늘도 피곤하다, 이런 식인가? 몸이 피곤한 상태에 익숙해진 것 같다. 오죽하면 두 달 전쯤에 애인이 이렇게 말했겠는가. “오빠,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자자.”
그런데 나만 그런 건가? 궁금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다. 반반이었다. 오랫동안 여자친구가 없는 애들, 아직 쌩쌩하다. 그렇다면 여자친구 때문에 체력이 떨어진 건가?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 몸 쓰는 일을 하는 친구들 또한 쌩쌩하다. 걔들은 만날 힘들다고 하지만 체력이 아직 괜찮은가 보다. 역시 몸은 쓸수록 단련되나? 그런데 왜 섹스는 할수록 피곤하지? 이건 여담인데, 올여름부터 한의원에 다니고 있는데, 원장님이 “앞으로 1년 정도 섹스를 삼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귀에 대고 말했다.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침을 맞는 사람들이 들을까 봐 그런 것 같다. 체력이 좋은 친구들은 아직 섹스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나는 그게 없다. “힘들어….” 옛날엔 바람도 많이 피웠는데… 그때 너무 피워서 이렇게 됐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친구들은 모두 만성피로를 호소했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운동도 안 했다. 그리고 섹스도. 하면하고 말면 마는 식인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기가 눈을 뜨느냐고 물었을 땐 “아, 그러고 보니 아침에 거기를 의식해본 적이 없네. 서나? 안 서나?”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애처롭게. 나는 그 친구보다는 상태가 나은 것 같다. 주변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와중에 친한 소설가 형이 말했다. “우성아, 나는 상태가 심각해. 소변을 볼 때 마지막 몇 방울은 잘 떨궈지지 않아.” 그리고 웃었다. 그 형은 마흔한 살이다. 아씨, 너무 더러운 얘기를 했나. 하지만 다행이다. 아직 손가락을 움직일 힘은 있으니까. 잘 흔들어서 털어내면 속옷에는 묻지 않을 테니까.
허탈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TV에 나오는 젊고 날렵한 남자 아이돌을 보면 자꾸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물론 이런 초라함을 어제 오늘 느낀 건 아니다. 서른 살이 됐을 때 나는 자신에게 만족했다.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는데, 스무 살 남자애들이랑 함께 뛰어도 별로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서른한 살 때 체력이 갑자기 떨어졌다. 가까스로 뛰었다. 안간힘을 쓰면 스무 살 애들을 쫓아갈 순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면 그들은 순식간에 더 멀리 가버렸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그래, 서른한 살에 스무 살 애들이랑 같이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 라고. 서른두 살엔 포기했다. 함께 경기를 해도 나는 나대로 뛰었다. 나는 느리고 걔들은 빠르니까. 그렇게 되고 나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구나, 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섹스였다. 멀뚱히 길을 걷다가 여자들을 보았다. 예뻤다. 작업을 걸고 싶었다. 적어도 아직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쟤들에게도, 축구장의 20대 동생들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래서 나와 비슷한 또래나 형 중에서 아직 기운이 팔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봤다. 꽤 많은 사람이 아침을 먹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아침을 먹다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침을 먹은 적이 없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단백질 셰이크라도 먹어.” 그는 어느 브랜드의 단백질이 좋은 지도 알려주었다. 자신을 통해서 사면 자기 포인트가 올라간다고 했다. 혹시 나도 회원 가입을 할거냐고 물었다. 다단계인가? 나는 꺼지라고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몸에는 확실히 좋아. 보장한다.” 결국 그 친구에게 단백질을 주문했다. 아침마다 먹는다. 신기하게도 정말 좋다. 나는 눈이 항상 붉게 충혈되는 편인데 이거 먹고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변비가 생겼다. 그 친구는 식이섬유도 먹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식이섬유를 먹으면 몸속의 노폐물이 배출되지.” 그래서 나는 식이섬유도 주문했다. 물론 그 친구에게. 아침마다 셰이크 통에 물을 가득 붓고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넣는다. 그리고 흔들어서 마신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비싸다.
하지만 고작 이런 걸로 건강해질 리 없다. 일단 나는, 뭐,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밥을 잘 안 먹는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고,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도 많다. 이래선 건강해지기 어렵다. 뱃살도 안 빠질 거고. 나는 두 가지를 끊었다. 하나는 콜라, 다른 하나는 커피 믹스. 콜라는 하루에 한 두 병, 커피 믹스는 하루에 서너 개 정도를 먹었다. 스무 살 때 이후론 매일 그렇게 먹었다. 이걸 끊는 게 가능했구나. 나로선 놀라운 발견이다.
그리고 집 찬장에 있는 약을 전부 꺼냈다. 미국 출장 갔다가 사온 종합 비타민이 한 통 있었고, 엄마가 먹으라고 준 오메가3가 있었고, 홍삼이랑 ‘간 때문이야’라는 약이 있었다. 집에 이런 게 있는데도 왜 안 먹고 살았을까? 몇 번 먹다 만 것이다. 꾸준히 먹는게 중요할 것 같아서 매일 먹기로 다짐했다. 다 먹는 데 보름 걸렸다. 그리고 2주 전부터 천연 비타민, 비타민 C, 프로폴리스를 먹는다. 비타민은 식사하고 바로 먹는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그걸 먹는 걸 보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아, 나도 그런 거 챙겨 먹어야 하는데.”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먹어. 집에 찾아보면 다 있어.” 어떤 사람은 되묻는다. “먹으면 좀 나아?” 나은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몰라. 먹으면 지금보다 나빠지는 건 좀 막지 않겠어?” 대답하고 나서 생각했다. 그렇구나, 더 안 나빠지려고 먹는 거구나. 늙는 건 막을 수 없으니까. 나는 폼 나게 늙고 싶은데.
체력은 남자의 자존심이다. 체력이 좋아야 섹스도 두렵지 않을 거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졌다고 느낀다면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느 정도 정해진 운명이니까. 왕성한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매우 씁쓸하고 쓸쓸하다. 부인에게, 애인에게, 친구에게 기대면서 살아야 한다. 어쩌면 그건 별로 창피한 일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라고 가족이 존재하고, 그러라고 친구가 존재하는 거니까. 하지만 남자의 고독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남자는 언제나 강해지고 싶어 한다. 강해 보이고 싶어 한다. 약해지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이 지점에 서 있다면, 나는 기꺼이 약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늙어가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고. 그러나 그럴지언정 너무 쉽게 늙지는 말자.
꾸준히 아침을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은 덕분일까? 며칠 전부터 아침에 눈도 뜨이고 거기도 불쑥, 불끈 힘이 솟는다. 콜라와 커피 믹스를 끊은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내 몸에 네 주인은 나이며, 너는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한 것 같다. 운동도 시작했다. 매일 30분 이상 달리는 게 목표다.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는데, 수험생 특별 할인을 받았다. 매니저는 나만 해주는 거라고 말했지만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결제하는데 수능 시험을 막 끝낸 학생 같은 기분이 들었다. 러닝도 하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하지만, 허벅지 안쪽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집중적으로 한다. 왠지 그쪽 근육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센터엔 요가 강좌도 있다. 난 요가 강좌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수험생 할인으로 등록할 때 물어보긴 했다. “남자도 하나요?” 점장은 말했다. “남성 회원님도 많이들 하십니다.” 가끔 운동을 하다 요가 하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커다란 유리벽이 있어서 잘 보인다. 몸매 예쁜 여자가 있나 보는 것이다. 서너 명의 남자가 여자들 사이에서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보인다. 그럴 때면 나도 공연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나는 지금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확인해봐야겠다. 조만간 섹스? 나 아직 안 끝났다고!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우성(시인) 일러스트 김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