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오매불망
〈스타워즈〉는 조지 루커스가 미국인에게 선물한 신화이자 정서적 도피처였다. 그런데 이제 곧 그 판이 새롭게 바뀔 전망이다. 새 감독 J. J. 에이브럼스가 과거를 초월한 미래를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되느냐고? 더 말하면 입만 아프다.

쌍제이 감독을 직접 만난 건 2012년 겨울 도쿄에서였다. ‘쌍제이’는 한국 팬이 J. J. 에이브럼스(J. J. Abrams) 감독을 부르는 애칭이다. 당시 그는 그의 두 번째 <스타트렉> 연출작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행사장에서 일본 관객과 만나고 있었다.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무렵 그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연출 제안을 받았다. 그러니까 루커스 필름의 CEO 캐슬린 케네디가 그에게 <스타워즈>의 7편 에피소드 연출을 제안한 게 2012년 말이었다.
쌍제이 감독은 <스타트렉>을 부활시킨 주인공이었다. <스타트렉>은 <스타워즈>와 함께 1980년대 SF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리즈물이다. 1999년 에피소드 1을 공개하면서 리부팅에 성공한 <스타워즈>와 달리 <스타트렉>은 구시대의 유물로 뒤처져 있었다. 그는 2009년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통해 <스타트렉>을 회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방식이 파격적이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 <스타트렉> 시리즈를 초기화했다.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통해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다시 모험을 시작하도록 했다. 팬들에겐 수십 년간의 역사나 다름없는 시리즈 속 에피소드가 순식간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사실 그건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런데 성공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글자 그대로 전편의 역사를 다시 쓴 속편이다. <스타트렉 다크니스>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타트렉>은 막강한 팬덤을 거느린 작품이고, 과거의 팬덤에 기대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도 있었어요. 시리즈를 흔들지 않으면 팬들에게 욕도 먹지 않았겠죠. 그런데도 왜 안전한 선택을 하지 않은 거죠?” 그가 답했다. “시리즈의 전통에 안주하는 건 쉬운 선택이죠. 전 <스타트렉>을 리부팅하기 위해선 우선 전편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봤어요. 과거가 미래의 상상력을 제약하면 더 좋은 속편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 그는 <스타트렉>에서 과거를 초월해 미래를 상상해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옳았다는 걸 증명했다.
곧 개봉하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원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연출을 거절할 작정이었다. <스타트렉>의 파격이 <스타워즈>에선 어려울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스타워즈>는 <스타트렉>보다 팬덤도 크고 전통이 강한 시리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차례로 선보인 새로운 에피소드 1·2·3편은 과거 4·5·6편과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조지 루커스가 계속 제작을 맡긴 했지만 팬들의 마음속엔 이미 저마다의 <스타워즈>가 자리 잡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새 시리즈 7편을 연출한다는 건 정답 없는 방정식의 해를 찾는 것과 같았다. 이미 <스타트렉> 시리즈를 연출해본 감독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쌍제이 감독은 <스타트렉 다크니스> 도쿄 행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샌타모니카에서 캐슬린 케네디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케네디가 그에게 <스타워즈> 7편을 “텅 빈 캠퍼스 같은 영화”라고 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것은 그가 <스타트렉>에서 어렵게 실현한 방향이기도 했다. 바로 전설적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 말이다. <스타워즈>는 이미 제작자 스스로 새 시리즈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미래가 될 거라고 공언했다. 그는 거절할 수 없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타워즈>가 깨어난 순간이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엔 ‘BB-8’이라는 드로이드가 등장한다. 축구공처럼 생긴 몸체 위에 R2D2를 연상시키는 반원형 머리가 달려 있다. 공 같은 몸체를 회전시켜서 움직인다. BB-8은 쌍제이 감독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애니매트로닉스 전문가 닐 스캔런이 디자인했다. BB-8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스타워즈>를 대표하는 드로이드는 누가 뭐래도 R2D2와 C3PO이기 때문이다. R2D2와 C3PO는 <스타워즈>의 1편부터 6편까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존재다. 고작 ‘그것’이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스타워즈>의 모든 역사를 지켜봤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다분히 신적 존재다. 실제로 R2D2와 C3PO는 <인디아나 존스> 1편 <레이더스>에선 아예 신전의 벽화에 그려져 있다. <스타워즈>의 세계관에서 우주 역사와 지구 역사를 이어주는 매개체란 말이다.
어쨌든 쌍제이 감독은 자신의 <스타워즈>에선 R2D2에 도전하는 BB-8이란 드로이드를 만들어냈다. R2D2만큼 귀여우면서도 R2D2보다 활동적이다. BB-8이 기록하는 <스타워즈>의 역사는 R2D2가 봐온 역사와 다를 수밖에 없다. 쌍제이 감독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조지 루커스의 <스타워즈>와 다르다는 얘기다. 심지어 BB-8은 CG도 아니다. 실물로 존재하는 로봇이다. <스타워즈> 관련 행사에서 감독은 직접 살아 움직이는 BB-8을 무대 위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
쌍제이 감독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BB-8처럼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배제한 영화라고 알려졌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스타워즈> 1·2·3편보단 과거의 4·5·6편과 더 흡사할 거라는 뜻이다. 1·2·3편은 ILM의 특수 효과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인간적 감성을 잃어버렸다. 제다이들이 벌이는 라이트 세이버 검투 역시 4·5·6편에 비해 훨씬 현란해졌지만 사실적 오라는 놓쳐버렸다. 블루스크린을 앞에 둔 배우의 연기는 공허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4·5·6편처럼 아날로그적이면서도 1·2·3편처럼 디지털적으로 보이는 게 목표다. 과거를 수용해 과거를 뛰어넘겠다는 뜻이다. 그가 구태여 BB-8을 실물로 창조한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스타트렉 더 비기닝>처럼 전편의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건 아니다. <스타워즈>는 이미 미국의 신화니까. 역사가 짧은 미국인에게 <스타워즈>는 아시아와 유럽의 신화에 필적하는 문화유산이다. 미국인은 <스타워즈>에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찾는다. 감독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예고편에서 팬들을 열광시킨 건 한 솔로의 등장이었다. <스타워즈>의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밀레니엄 팔콘의 우주 추격 장면이 끝나면 한 솔로와 츄바카가 등장한다. 또 레이아 공주와 루크 스카이워커가 출연한다. 시간상으론 6편에서 3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앤도 전투로 은하제국은 붕괴됐지만 선과 악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솔로와 레이아와 루크는 <스타워즈>의 전통을 잇는다. 단, 주인공들은 한 솔로와 레이아와 루크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 조연이다. 전편에서 오비완과 요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진짜 주연은 그들의 아들과 딸. 한 솔로와 레이아 공주는 결혼해서 쌍둥이 남매와 아들 하나를 뒀다. 예고편에서 루크를 연기한 배우 마크 헤밀은 낮은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한다. “우리한텐 포스가 흐른다.”
아나킨과 루크로 이어진 포스가 다시 한 번 비극의 가족사를 만들어낸다. 쌍둥이 남매인 제이나 솔로와 제이슨 솔로는 각각 제다이와 시스가 되어 선악의 싸움을 이어갈 운명이다. 그들의 동생 아나킨 솔로는 사실 외할아버지인 다스 베이더의 포스를 그대로 물려받은 인물이다. 어쩌면 그가 포스의 균형을 되찾아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들 벤 스카이워커가 있다. 벤이란 이름은 물론 오비완 케노비에게서 따왔다. 쌍제이 감독이 연출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포스를 물려받은 사촌들이 벌이는 광선검 전쟁이라는 뜻이다. 과거의 캐릭터들이 배경처럼 등장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이 그들만의 싸움을 벌이게 된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장에 난데없이 스톰 트루퍼스들이 난입했다.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주제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제국군이 영화제를 접수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펼쳐지는 해운대 바닷가엔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을 전시한 거대 부스까지 세웠다. 탄소 냉동된 한 솔로의 모습부터 십자가 형태의 새 광선검까지 갖가지 소품이 백화점처럼 전시됐다.
사실 <스타워즈>는 한국에선 미국이나 일본에서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 시장의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었던 탓도 있다. 한국 관객에게 <스타워즈>가 마니악한 영화로 인식된 탓이 더 컸다. <스타워즈>는 할리우드가 창조한 미국적 전통 신화다. 단군신화에 미국인이 열광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미국에서 만든 신기한 볼거리 정도였다. 게다가 새로운 1·2·3이 <스타워즈>의 전통에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스타워즈>를 모르는 관객은 새삼 호기심을 느낄 기회마저 잃었다. 조지 루커스 감독에 이어 루커스 필름을 이끌고 있는 여걸 케네디가 쌍제이야말로 <스타워즈> 7편을 연출할 적임자라고 믿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워즈>가 미국적 신화를 넘어 지구적 신화가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전편의 전통을 파괴할 용기와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재해석할 상상력을 갖춘 감독이 필요했다. 전통만 고수해선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속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전통이 없는 미래는 졸부의 촌극일 뿐이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이미 백인뿐 아니라 흑인과 라틴계까지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지구적 인구 비율을 맞췄다. 이제 백인만의 혹은 미국만의 신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12월 개봉하는 <스타워즈> 7편은 <스타워즈>가 지구적 역사로 진화하는 첫 단추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예고편에서 한 솔로는 말한다. “츄이, 집에 왔어.” 마침내 <스타워즈>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대장정이 시작됐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신기주(저널리스트) 일러스트 정원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