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s of Sensual Plate
당신의 삶에 요리는 어떤 존재인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음식? 혹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정찬? 각자의 상황과 사연 그리고 그때 음미하는 맛과 느낌은 전부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요리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지만, 요리에 얽힌 추억은 타인과의 교감을 떠올리게 하고 내재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1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총칭하는 코트다쥐르에 있는 아름다운 귀족적 취향의 호텔 ‘르 카프에스테르’의 레스토랑,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여인과 디너를 즐기는 풍경. 아페리티프 와인을 마실 땐 밝은 지중해 햇살이 비추고, 생햄과 모차렐라, 토마토,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냉채와 수프를 즐길 즈음 바다는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조개와 생선에 뿌린 비스크 소스의 섹시한 향기에 마음을 빼앗길 즈음 연분홍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바뀌는 하늘. 트러플이 듬뿍 든 부드러운 쇠고기를 먹고, 짙은 어둠이 깔릴 즈음 맛본 보르도 와인과 치즈.
A Plate of Assorted Salad with Truffle Sauce
트러플 소스를 곁들인 모둠 샐러드
프로슈토 햄과 살라미, 줄기 토마토, 살짝 데친 화이트·그린 아스파라거스, 리코타 치즈를 풍성하게 담고 다진 트러플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독특한 풍미를 돋운다.
A Grilled Beef Tenderloin with Bisque Sauce
비스크 소스를 곁들인 쇠고기 안심 구이
레드 와인과 올리브 오일을 뿌려 숙성한 쇠고기 안심 구이에 새우와 조개류 같은 해산물로 진하게 끓여 만든 비스크 소스를 함께 낸다.
Seafood Marinated in Lemon Vinegar Sauce
레몬 비니거 소스에 재운 해산물
백합과 가리비, 새꼬막, 스캠피 새우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힌 후 새큼달큼한 맛이 나는 레몬 비니거 소스에 재워 차게 낸 전채.
왼쪽부터_ 레드 와인글라스 2개와 모둠 샐러드를 담은 접시는 J.L 꼬께 제품, 스테이크를 담은 접시는 하빌랜드 제품. Yvedesign에서 수입, 판매. 투명 크리스털 보틀은 Pishon.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2
여행 중 헝가리인 여성 가이드와 동행한 주인공. 빈의 숲 속에 있는 호텔 다이닝룸에서 그들은 헝가리 요리를 먹는다. 살라미와 푸아그라, 사슴고기에 과육을 듬뿍 넣어 삶은 스튜, 무지개송어 뫼니에르 그리고 수프. 역사부터 개인사, 서로의 연애관까지 허물없이 다양한 얘기를 나누던 그들의 화제는 요리로 옮아갔다. 지금까지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던 중 그녀가 ‘마음이 깃든 어머니의 수프’를 꼽는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수프가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마음을 괴롭히던 외로움과 고뇌를 전부 잊어버렸다는 그녀의 고백.
Gulasch 굴라시
굴라시는 헝가리식 비프 스튜. 쇠고기 등심에 파프리카 가루와 케이언 페퍼를 넣어 볶은 후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끓인 냄비에 당근과 감자, 양파, 파프리카 등의 야채와 함께 넣고 다시 뭉근히 끓여낸다. 케이언 페퍼와 토마토 페이스트가 미각을 자극하는 붉은 빛깔을 낼 뿐 아니라 매콤한 감칠맛을 더한다.
Trout Meuniere Topped with Leek 대파를 올린 송어 뫼니에르
뫼니에르는 밀가루를 묻힌 생선을 버터에 구운 요리. 담백한 흰 살 생선 송어를 노릇하게 구운 후 서양식 대파(leek)를 얇고 둥글게 슬라이스해 얹어 산뜻한 봄 향기를 더했다.
스튜를 담은 볼을 받친 접시는 Imperial Porcelain, 촛대는 Pishon.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3
파리로 떠나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주인공.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인이 낡은 가죽 트렁크와 이 트렁크를 센 강 다리 위에서 버려달라는 메모만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 트렁크에는 퐁뇌프 다리를 그린 작은 유화가 한 점 들어 있었고, 그는 그 그림을 보고 가재의 맛과 함께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30년 전 짧은 파리 여행을 한 후 파리 풍경을 그리곤 한, 무명의 청년이던 아버지. 그는 아버지가 아마도 겨울 가재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트렁크도 화가 지망생인 그녀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남긴 트렁크에 이루지 못한 꿈을 넣은 채 센 강에 떠내려 보내고자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인생의 허무함을 먼저 알아버린 그녀 역시 바닷가재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친구의 말처럼 가재의 맛을 모르는 것은 세계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Lobster Papillote 랍스터 파피요트
파피요트는 유산지나 쿠킹 포일에 싸서 오븐에 굽는 조리법으로 식자재 본연의 신선한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붉게 물이 오른 싱싱한 랍스터와 펜넬, 대파 등을 포일로 감싼 후 오븐에서 구우면 랍스터 속살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담백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골드 테두리와 문양이 멋스러운 직사각 형태의 접시는 Sunhyuk Goody.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4
“모든 것은 바뀌는 거야. 매번 같은 메뉴의 요리라도 맛이 다른 법이니까.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로 같은 요리를 만들어도 다 다르지 않을까?” 롯폰기의 한 바에서 만약 지금 돈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뉴욕에 가겠다고 대답한 주인공. 그 말에 동조한 바의 마담은 뉴욕에서의 추억을 얘기하며 모든 것은 바뀌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리틀 이탈리아에 있는 어떤 레스토랑에서 일주일 내내 송아지 갈비만 먹은 것을 생각해낸다. 매일 그 음식을 먹으며 뉴욕에서 만난 한 소녀에게 느낀 욕망의 감정을 떠올린 주인공. 거칠거칠한 껍질 안, 녹은 치즈와 와인 향기를 풍기는 버섯, 피가 밴 고기. 송아지 갈비의 맛이 그를 뉴욕의 감상에 빠지게 만든다.
Roasted Veal with Tuna Sauce
참치 소스를 곁들인 송아지 구이
송아지 안심을 당근, 양파, 셀러리 등의 야채와 함께 구운 후 참치살에 마요네즈를 넣고 곱게 갈아 만든 참치 소스를 곁들여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와인글라스는 Pishon.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5
-자네, 트러플을 통째로 먹어본 적 있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그런 편이 좋아. 그런데 나는 통째로 먹어버렸어. 겉을 엷은 이파리로 감쌌는데, 무슨 이파리인지는 모르겠어. 그 안에 채소와 생선살이 들어 있었지. 중심부에 손가락 크기만 한 트러플이 있었어. 트러플 그 자체는 그렇게 강렬한 맛이 없다네. 단, 먹고 난 직후 격렬한 상실감이 엄습하는 거야. 옛날 노르망디 쪽에 트러플을 너무 많이 먹어 죽고 만 귀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더군. 트러플이란 놈은 상실감 그 자체야. 그것도 거의 공포에 가까운 상실감이라네. 그리고 물론 그 상실감은 트러플 이외의 것으로 메울 수 없어. (중략) 트러플이야말로 어떤 예술 양식도 미치지 못할 완벽한 미디어야. 즉 자립적이야. 배고픔과 공포와 지복을 연속적으로 생산하는 거지.
Endive Canape with Truffle, Caviar and Foie gras
트러플, 캐비아, 푸아그라를 올린 엔다이브 카나페
쌉싸래하면서도 달큼한 뒷맛을 남기는 꽃상추 엔다이브를 이용해 세계 3대 진미라 일컫는 트뤼프와 캐비아, 푸아그라를 올려 카나페를 만들었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6
바르셀로나, 가우디가 디자인한 벤치가 있는 공원에서 주인공과 우연히 마주친 한 여인. 그녀는 동경하던 가우디 작품의 실물을 직접 본 후 꿈에서 깨어난 듯 실망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가우디를 알려준 약혼자와의 이별을 예감한 후 홀로 여행을 떠나온 그녀를 데리고 어느 항구에 접한 레스토랑에 간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은 작은 새우찜과 왕새우튀김, 기다란 삶은 조개와 화이트 와인. 그리고 얕은 냄비에 크고 작은 새우, 조개나 생선으로 만든 수프를 넣고 볶듯이 자작하게 삶은 후 물기가 없어지면 새우, 생선, 조개를 전부 골라내고 맛이 밴 파스타만 오븐에 넣어 구운 요리. 그 파스타를 먹은 후 그녀가 말한다. “마치 바다를 먹는 것 같아요”라고. 그는 그녀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기 때문에.
Sea-Flavored Pasta 바다 맛 파스타
피꼬막과 새우에 샬롯과 마늘, 올리브 오일과 화이트 와인을 듬뿍 넣고 짭조름한 풍미를 낸 해산물 파스타.
#7
마르세유의 유명한 레스토랑인 ‘퐁퐁’을 찾아 혼자 식사하며 옛 사랑의 추억에 잠긴 주인공. 웨이터가 가져온 황갈색 수프에서 나는 바다와 사프란 향기. 그에게 그 부야베스는 감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무언가였으며, 바다의 향기와 용기가 가득 들어 있는 음식이었다.
Bouillabaisse 부야베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의 명물인 부야베스. 도미와 백합, 가리비 등을 푸짐하게 넣고 사프란 향료를 곁들여 뭉근하게 끓여낸 생선 수프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8
“오늘 난 여러 가지 것들에 취해버렸어. 바다에, 건물에, 꽃에, 이 방에, 와인에, 음식에, 그리고 당신을 만난 것도 그래.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스 쇼콜라야. 초콜릿은 좋아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많이 먹어보았지만 오늘 같은 맛은 처음이야. 정반대의 맛이 하나로 녹아서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그걸 먹으면서, 나의 사랑이나 인생이 아주 흔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어.”
Mousse Chocolat 무스 쇼콜라
무라카미 류가 소설에서 ‘달콤한 악마’라고 표현한 무스 쇼콜라.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달걀노른자와 시럽을 끓여 거품을 일게 한 후 불에 녹인 초콜릿과 달걀흰자를 휘저어 거품을 내고 설탕을 넣어 가볍게 구운 것을 재빨리 섞은 후 쿠앵트로를 넣고 그릇에 담아 식힌 것, 디저트의 왕”이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이창재 코디네이션 마혜리 요리 및 스타일링 박용일(yong style) 요리 및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남경현(yong style) 참고 서적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