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음악을 향한 고백
현재 클래식 음악계의 움직임과 한국 연주자들의 활약에 대해 김대진 교수만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연주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커다란 존재감을 지닌 그와의 대화는 콩쿠르, 한국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의 제자인, 작년 가을 동양인 최초로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인터뷰에 함께했다.

무대 위에 오른 김대진의 여러 모습을 봐왔다. 홀로 건반 앞에 앉은 모습이나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무대 중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 많다. 오랫동안 피아니스트로 만나왔기 때문인지 오는 11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로 독주회를 열 계획이라는, 이제 막 들려온 신선한 뉴스도 무척 반갑다. 물론 최근 더 자주 만난 건 지휘자로 선 그의 모습이다. 지난봄 그가 이끄는 수원시향은 작년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전곡 연주를 담아, 한국 교향악단 최초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실황 음반 을 발매했다. 올해 김대진과 수원시향은 한층 높아진 악단의 위상을 증명하듯, 7월에는 독일 헤렌힘제 페스티벌, 9월에는 오스트리아 브루크너 페스티벌과 이탈리아의 메라노 페스티벌 등 국제 무대에 연이어 초청됐다.
정상에 오른 피아니스트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휘자, 여러 세계적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클래식 음악이란 큰 범주 안에서 수십 년간 다채로운 변주를 시도해온 그는 뜻밖에도 자신의 역할을 단 한 가지로 명료하게 정의했다. 항상 ‘선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 역할을 달리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전문 연주 자의 길을 걷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비롯해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연주자들이 국제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는 성과는 대단하다. 작년 제60회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서 우승한 이후 현재 전 세계의 수많은 무대에 오르고 있는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그중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주자다. 큰 화제가 된 건 최근이지만 2012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14년에는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등 이미 몇 년 전부터 남다른 두각을 보여왔다. 김대진은 그녀를 두고 “본인이 타고난 천성대로 차분하고 깊은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라 했다. 2008년 문지영이 중학교 1학년 때 영재캠프에서 김대진 교수를 처음 만나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고, 그 인연은 그녀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센 장맛비가 막 그친 7월의 어느 날, 문지영은 도쿄에서 연주를 마치고 귀국한 참이었다.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협연 무대를 소화하고 있는 그녀는 이틀 뒤 멕시코행 비행기에 오르고 그 뒤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김대진 교수 역시 수원시향을 이끌고 곧 유럽으로 향할 참이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이 한국에서 교차하는 몇 시간을 공유하며 깊은 음악 이야기를 나눈 건,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스승과 제자를 넘어 젊 은 음악가가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어른과 나눈 이야기는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두 사람의 태도를 반영한 듯 깊고 진중했다.

문지영(이하 문)_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신 이야기부터 여쭤보고 싶어요. 2013년 한국인 최초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신 데 이어 두 번째인데, 그런 세계적 콩쿠르에서 연주자들의 연주를 감상하고 평가하는 게 어떤 경험일지 궁금합니다.김대진(이하 김)_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본선에는 백건우 선생님도 심사위원으로 오셨어요. 11명의 본선 심사위원 중 한국인 심사위원이 2명이나 위촉됐으니 한국의 음악 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거죠. 긴 시간 집중해서 연주를 계속 감상하며 심사하는 게 긴장도 되고 어려운 일인데, 시간이 지나 본선으로 갈수록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힐링’이란 단어가 어떨까 싶어요.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오히려 재충전하고 돌아온 것 같아요. 콩쿠르 후반부에는 대부분의 후보가 기본적으로 좋은 연주를 하기 때문에, 그쯤 되면 평가보다는 그들과 뭔가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죠.
문_ 저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무엇보다 연주 기회가 많아졌어요. 선생님은 평소 콩쿠르의 본질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죠.김_ 우리나라에 문지영 같은 뛰어난 인재가 있다는 사실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방법이 바로 콩쿠르죠. 자기를 소개하고 기회와 자 격을 얻는 것. 콩쿠르는 본래 그런 의미인데 아시아권에서, 특히 요즘 한국에서는 변질된 느낌이에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 적어도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콩쿠르가 무엇이고 왜 출전하는지 그 목적의식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콩쿠르가 단순히 결과를 만드는 곳은 아니죠. 한국에서는 콩쿠르에 대한 높은 관심이 하나의 사회현상처럼 됐지만, 사실 세계적 매니지먼트에서는 콩쿠르에 출전하지 않은 아티스트들도 좋은 연주를 한다고 판단하면 직접 발굴하기도 합니다. 꼭 본선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발탁될 수 있는 기회는 많죠. 오히려 콩쿠르에서 상을 타지 못해도 네트워크를 넓히는 등 다양한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어요.
문_ 선생님은 제 나이 때 음악에 어떻게 접근했으며,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김_ 지금은 SNS나 동 영상으로 곡을 선택해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그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었죠. 곡을 탐구하는 방법이 많지 않았어요. 가장 큰 목표가 LP판으로 들은 곡을 배워 서 연주하는 거였죠. 내가 프로코피예프를 치니까 친구들이 와서 처음 듣는다며 악보를 보자고 하더군요. 자연히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학구적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만큼 음악 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감동도 컸어요. 그때는 나뿐 아니라 다른 음악도들도 곡을 배우는 것 자체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고, 연주하고 싶은 열망이 높았어요. 돌아보면 곡에 대 해 고민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걸 진심으로 느낀 낭만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문_ 연주자로서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나요?김_ 난 슬럼프가 없었어요. 뭔가 힘든 시기가 와도 그걸 슬럼프라 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곡을 쓰진 않았을 테고 머릿속의 멜로디를 곡으로 완성하기까지 고통이 따랐겠죠. 고생을 거쳐 가는 게 곧 음악을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본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가 없을 때 그걸 슬럼프라 하는 것 같은데, 연주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 길을 택했다면 당연한 일이에요.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 훌륭한 연주가 나오죠.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연주를 망치는 일 정도는 당연히 겪어내야 하는 거고, 갑자기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면 그건 슬럼프가 맞겠죠. 그런 면에서 슬럼프가 남용되는 단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문_ 연주자, 지휘자, 교육자 중에서 항상 스스로를 선생이라 말씀하시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김_ 그건 앞으로 도 그럴 거예요. 1994년 귀국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부임했고 그때 이미 가르치는 게 내 존재 이유였을 정도로 정체성이 명확했어요. 이제 22년 정도 됐는데 돌아보면 시 행착오도 겪었지만 이 일로 내 열정을 이어가고 있어요.

문_ 신기하게도 제가 치고 싶은 곡 목록을 적어보면 선생님이 연주해보라고 제안하시는 곡과 일치할 때가 많았어요. 연주자 개개인의 스타일이 다른데 선생님은 어떻 게 다르게 가르치시죠?김_ 가르치는 방식은 환경이 바뀌며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새로운 곡을 배우는 것도 혼 자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까. 동영상으로 누구의 연주든 찾아서 들어볼 수 있으니 어렵게 악보를 구하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혁명적인 발전이에요. 그러니 곡을 가르치는 건 더 이상 필요 없는 일이 됐고, 난 연주를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해요. 개인의 여러 가지 경험이 다 연결돼 연주로 드러나는데 난 그걸 ‘생긴 대로 연주한다’고 표현해요. 타 고난 것이 특정 곡에 잘 맞으면 좋은 연주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 그 연주자가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요. 어느 정도 연주 수준이 높은 학생들은 대부분 나와 오래 공부한 이들인데,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선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니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죠.
문_ 음악을 보다 넓게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고민하곤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김_ 간단 해요. 사람이 넓어져야죠. 그러기 위해서 연주자들이 다양한 책을 보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거죠. 이번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심사하며 백건우 선생님과 일주일 동안 같 이 지냈잖아요. 백건우라는 거장이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본선이 저녁에 진행되는데 낮 시간엔 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니고 신기한 건물이 보이면 다가가서 벽돌을 만 져보고 사진도 찍더군요. 지방의 성당을 찾아가고, 다녀와선 그곳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풀어놓아요. 이번에 그분을 보고 감탄했어요. 생긴 대로 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결 국은 자기 체험이에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강숙 초대 총장님은 ‘자기 내면의 화학작용’이란 표현을 자주 쓰세요. 많은 체험이 컴퓨터의 아이콘처럼 각각 자리 잡는다고 해도, 화학작용을 통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이 생기고 언젠가 발산되죠. 책 읽는 것뿐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 다양한 체험이 곧 한 사람을 넓게 만드는 거예요.
문_ 선생님의 음악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김_ 2008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건 운명 같은 일이에요. 내 손으로 악기를 통해 소리를 만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지휘를 통해 알게 됐어요. 피아노를 치는 것도 손과 악기의 스킨십을 통해 소리를 내는 건데,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이제야 느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은 아니고 수원시향을 지휘해온 9년 동안 서서히 다가온 것 같아요.
문_ 그 시간 동안 수원시향은 어떤 성장을 했을까요?김_ 한국에서 훌륭한 독주자가 많이 나왔지만 그만큼 명 망 있는 오케스트라는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좋은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는 오케스트라 강국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나로서는 수수께끼 같은 일 이고 책임의식도 있었어요. 일본만 봐도 우리와 달라요. 눈에 띄는 독주자는 적은 반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나 오사카 필하모닉 등 세계적 수준의 교향악단이 여럿이에요. 좋은 악단을 위한 기본적 전제 조건은 간단해요.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악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우리 주위에 많은 실력 있는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의 위상이 낮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원시향의 발전을 통해 한국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먼저 서울시향이 큰 역할을 했고, 수원시향도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죠.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봐요.

문_ 음악가로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게 있다면 뭘까요?김_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물 론 소신이라는 건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많은 경험을 한 뒤에야 음악적 소신이 생기죠. 음악을 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단어가 몇 개 있어요. 대 중, 매너리즘. 요즘은 거기에 콩쿠르도 추가해야 할 것 같네요. 클래식 음악은 대중이 선호하는 것과 음악가의 소신 사이에 격차가 커요. 항상 그럴 수밖에 없는 분야죠.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다 보면 나중엔 반드시 자신을 잃어버리게 돼요.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화려함 이면에 진지한 예술성이 있 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랑랑을 흉내 내다가 망가지는 피아니스트가 나오는 건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타성만 좇다가 자신의 독창성을 잃기 때문이죠.
문_ 대중이란 단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클래식 대중화’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김_ 클래식 인구를 넓혀가자는 것일 뿐, 클래식은 결코 대중화될 수 없어요. 포장을 새롭고 눈에 띄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속에 반드시 순수 클래식을 담는다는 원칙이 바뀌면 안 되죠 . 클래식의 대중화와 크로스오버의 구분이 모호해진 적도 있는데 그런 불분명한 관점에서는 클래식이 변질될 수도 있어요. 클래식을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만드는 음악회의 방 향이 잘못됐다면 그 또한 다시 살펴봐야 할 일이죠. 클래식 대중화라는 말이 오해를 산 적이 있어서 그 뒤론 대중의 클래식화라고 바꿔서 표현해봤어요. 홈 콘서트를 열 수도 있 고 동네 정자에서 음악회를 할 수도 있죠. 다만 그 내용은 100% 순수 클래식이어야 해요.
문_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음악의 진정한 힘은 뭘까요?김_ 음악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고유한 일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가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는 그 순간보다 더한 ‘오리지널’은 없죠. 그리고 음악은 화합을 이끄는 힘이 있어요. 바렌보임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중동 지역에 화해와 평 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건 오직 클래식 음악만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 김잔듸
헤어 & 메이크업 | 송춘희
의상 협찬 | 소니아 바이 소니아 리키엘, 에스카다, 마놀로 블라닉
어시스턴트 | 현국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