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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성의 시간

LIFESTYLE

"올해로 일흔일곱. 윤대성은 극작가와 드라마 작가, 몇몇 대학에서 희곡 교수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와 비슷하게 살 것이다. "

얼마 전, 윤대성이 쓰고 이윤택이 연출한 대학로 연극 <첫사랑이 돌아온다>엔 60대 이상 관객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고령화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는 노인 치매를 다룬 극의 줄거리가 곧 다가올 자신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서로 사랑했지만 지금은 알아보지 못하는 두 노인. 한 노인의 딸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공연 내내 객석에선 ‘아아’ 하는 공감의 웃음과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배우들이 90분 내내 열연한 무대보다 객석의 온도가 조금 더 뜨거웠다.
2010년 황혼기 남성들의 모습을 그린 연극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에서 처음으로 노인과 죽음 문제를 다룬 윤대성은 이후 환갑을 넘긴 여성의 삶에도 에너지가 있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2011년), 죽음의 문턱에서 깨닫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 <동행>(2012년) 등을 발표하며 ‘노년 희곡’의 새 이정표를 썼다. 50여 년간 대중의 지지 를 받아온 극작가가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그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준비 없이 고령화 시대를 맞은 첫 세 대로서 우리 세대의 고민에 대한 증언을 남기고 싶었어요. 나와 내 또래들이 직면한 문제, 지금 느끼는 고독감과 절망감 그런 것을 쓰는 거죠.”
1950년대 후반 연세대학교 법학과 재학 시절부터 연극과 문학에 빠져 지낸 윤대성은 영문학자 오화섭 교수를 통해 처음 셰익스피어를 접했다. 이후 우연히 극작가 동랑 유치진 이 설립한 드라마센터에서 <햄릿>을 보고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의 머릿속엔 늘 연극 생각뿐이었다. 부모님의 등쌀에 밀려 은행에 입사해 6년간 직장 생활을 하던 와중에도, 그는 퇴근 후 어김없이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며 극작가를 꿈꿨다. 그렇게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 바로 <출발>(1967년)이 다. 이 작품은 그가 행원 시절 실제로 사랑한 한 여인, 그리고 사랑 대신 꿈을 좇다 버려진 간이역에서 좌초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이 당선된 날 헤어진 여자에게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자기 얘긴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어요.” <출발>은 이듬해에 유치진 연출, 드라마센터 1기 동기인 배우 신구와 민지환의 열연으로 드라 마센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40분 남짓한 공연 내내 관객은 숨을 죽였고, 윤대성은 주인공과 함께 마음속으로 울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윤대성이 쓴 희곡 작품은 주제의식과 표현 방법에 따라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되기도 한다. 등단 이후 다양한 연극 양식을 활용해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드러낸 <망나니>(1969년)와 <미친 동물의 역사>(1970년) 등 198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이 그 첫 번째고, 청소년에게 관심을 두고 <방황하는 별들>
(1985년)과 <꿈꾸는 별들>(1986년) 등의 ‘별’ 시리즈를 창작한 시기가 두 번째, 1990년대 이후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부부 관계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인 <두 여자 두 남자> (1992년)와 <이혼의 조건>(1994년) 등이 세 번째, 마지막이 현재의 ‘노인’ 시리즈다. 한편 연극을 쓰는 틈틈이 그는 TV 드라마에서도 활약했다. 1980년대엔 드라마 <수사반장 >과 <홍 변호사>, <한 지붕 세 가족> 등을 집필했고, 비슷한 시기 영화 <방황하는 별들>과 <그들도 우리처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을 쓰며 영화계에도 이름을 알렸 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올해도 과 사무실에 ‘금년까지만’ 수업을 하겠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째다. “1980년부 터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곧 40년이 되어가요. 그런데 아직도 저를 찾는 학생이 있다고 하니, 몸이 힘들어도 수업을 그만둘 수가 없어요.” 밀양연극촌에 있는 자택에 내려가 살겠 다고 그가 학교에 처음 알린 때가 예순일곱, 지금은 일흔일곱이다. “사실 옛날엔 69세나 70세가 되면 저도 죽을 줄 알았어요. 제 아버지도, 유치진 선생도 69세에 돌아가셨으니 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10여 년 전쯤 밀양연극촌에 집을 한 채 지었어요. 거기서 작품도 정리하고 느릿느릿 생을 정리하려고 했죠. 그런데 주변을 보니 (노인들이) 점점 더 오래 살아요. 안 죽어요. 부품만 갈아 끼우면 계속 살아요. 아,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그러면서 작품도 쓰고 어물쩍어물쩍하다 보니 저도 지금 같은 나이가 된 거예요.” 현재 그의 밀양 집은 연출가 이윤택의 제안으로 ‘윤대성극문학관’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그의 50여 년 문학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해 많은 이가 찾고 있다.
올해 그는 다시 한 번 연극 무대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대단한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얘길 진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여전히 전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삶에서 끄집어내려 해요. 그래야 언제 누가 무대에 올리든 생생하거든요.” 볕이 따뜻한 서재에서 그가 차분히 입을 열자 이런 질문이 떠올랐 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하나하나 아름답다 여긴다면, 그 원천이 되는 우리 삶도 실제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우리 삶은 아름답지 않고 재미도 없어요. 본래 모습이 훌륭하지 않죠. 그래서 연극을 만들 때도 극적인 효과를 빌려와야 돼요. 그래서 전 제가 하지 못한 일들을 극에 녹여내죠. 이루지 못한 이혼과 자살 같은 것 을 말이에요. 단, 그것도 물론 제가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합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내 얘기 같은데’하며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그의 시간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가끔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거나 치매가 오는 등 무너져가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봐요. 자연스레 ‘내 미래가 저기 있구나’ 하고 암담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도 결론은 늘 하나로 통일돼요. 우리 인생이 현재 이렇게 비참하더라도, 그간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은 있었다. 그 추억의 힘으 로 우린 견뎌낸다. 그것까지 말살하지 말자.” 그리고 그걸 공유할 수 있는 게 그는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무대는 방송이나 영화가 할 수 없는 걸 가능하게 해요. 살아 움직 이는 ‘실재’가 그곳에 있죠. 그곳에선 노년 세대의 불안과 모순, 부조리함, 외로움 등의 문제를 다 표현할 수 있어요. 전 제가 조금이라도 이 사회가 직면한 노인 문제를 연극을 통 해 해결했으면 해요.”
등단 이후 끊임없이 사회 현실에 천착해온 그의 작가 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머지않아 학교를 나와 어딘가로 떠날 테지만, 분명 그곳에서도 자신의 이야 기를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한국 사회 그리고 자신과 주변인이 직면한 문제를 결코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박용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