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 아니다
지난 6월 초, 세계적 권위의 아트 전문 매체 <아트넷>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에 (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이 선정됐다. 이미 2006년부터 9년 연속 <아트뉴스>의 ’세계 200대 컬렉터’에 꼽힌 그는 전 세계 미술계에 한국에도 슈퍼 컬렉터가 있음을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씁쓸한 건, 여전히 국내 미술계는 그를 비주류로 보고 그의 입에서 “나는 죽어야 인정받을 사람”이라는 탄식을 쏟게 한다는 사실이다.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 ‘Remembering 1963’ 앞에 앉은 김창일 회장
지난해에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씨킴(김창일 회장의 작가 활동 이름)의 여덟 번째 개인전
천안 ㈜아라리오 본사와 나란히 위치한 아라리오갤러리는 그가 제주도 하도리 작업실에서 완성한 다양한 설치 및 회화 작품으로 가득 찼다. 물, 공기, 햇볕 같은 자연 요소에 그대로 노출시킨 나무 패널을 이용한 연작 ‘무제’, 실제 색과 질감, 질량을 뒤틀며 관람객에게 재미난 질문을 던지는 물감총, 부표와 쇼핑백 같은 오브제 작품을 통해 씨킴이 현재 제주도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자 대형 극사실화 작품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브루스 윌리스, 숀 펜의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놀라운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의 숨은 그림 실력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 순간 한 기자가 갤러리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정말 직접 그리신 거예요?”
억양에 따라, 또는 어디에 붙여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해석되는 ‘정말’이라는 단어는 그가 사업가로 살면서, 그리고 아트 컬렉팅을 하고 작가를 겸하면서 자주 들어온 말이다. 해외 유명 작가의 ‘그 그림’을 샀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정말?”, 개인전에서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는 자리에서도 “정말?”이라고 물었다. 정말 그가 샀는지, 정말 그가 그렸는지 사람들은 거듭 묻는다. 보통 사람에겐 상처뿐일 이 질문에 김창일 회장은 보란 듯 한 방 날렸다. 2년 전 공간사옥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탄생시키며 개막한 첫 번째 컬렉션 전시 제목에 ‘리얼리?’를 갖다 붙인 것. 긴말 대신, “직접 와서 보라”는 뜻이었다. 1978년 천안터미널 사업을 시작으로 10년 뒤 백화점과 복합 문화 공간 ‘아라리오 스몰시티’를 조성한 후 아라리오갤러리와 뮤지엄을 순차적으로 설립하며 사업가이자 아 트 컬렉터, 작가로 살아온 김창일 회장.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번에 <아트넷>이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건 김창일 회장 자신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에도 분명 강렬한 지각변동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설치한 나와 고헤이의 ‘Pixcell- Double Deer #7’. 벽에 걸린 회화 작품은 조지 콘도의 2009년 작품 ‘The Arrival’
수보드 굽타의 ‘Everything is Inside’가 뮤지엄 공간에 무게감을 더한다. Subodh Gupta, Everything is Inside, Part of taxi, cast bronze, 2004, 162 x 104 x 276 cm
김창일 회장이 최근 구입한 추미림 작가의 ‘Cloud 1 Pencil’. 추미림, Cloud 1 Pencil, Acrylic on paper, 77 x 55cm, 2016
알바니아 출신 작가 안리 살라의 ‘In-Between the Doldrums(Pac-Man)’. Anri Sala, In-Between the Doldrums(Pac-Man), 2016
yBa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마크 퀸의 ‘Self’. 자신의 피를 뽑아 만든 작품이다.
<아트넷>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매체입니다. 그곳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컬렉터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리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번 리스트에는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헤지펀드 거물 스티브 코언,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미국의 부호 엘리 브로드, LVMH 그룹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도 있더군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어떠세요?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되죠? 좀 무서워요.
무슨 뜻이죠? 이야기하려면 좀 길어요. 천안에 처음으로 내려와 터미널 사업을 하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거든요.
1978년에 회장님 어머니가 빚 대신 넘겨받은 천안터미널을 어머니의 권유로 회장님이 운영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 이슈와 관련이 있나요? 당시 터미널에는 매점이 있었는데 모두 임대였어요. 현금만 통용되던 때라 일일 이 관리하기 어렵다 보니 임대료를 받고 위탁 경영을 넘기던 시절이었죠. 전국 터미널 매점이 모두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편법이 많이 일어났어요. 저는 ‘아, 이건 아니다. 나는 직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기존 임차인을 모두 내보냈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긴 것이니. 그리고 1989년에 백화점을 짓고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니 사람들이 또 저를 가만히 놔둘 리 없죠. 투서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검찰에서 들이닥치고, 국세청 세무조사가 나왔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 쭉.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수십억 원대의 미술품을 한창 구입하시던 시기니 그 배후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겠네요. 제가 구입한 작품이 신문에 소개되니까 더 그랬죠. 8개월 동안 조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사업을 하고 작품을 수집하면서 어떤 죄도 지은 적이 없어요. 왜냐, 제 꿈이 순수하기 때문에. 빼돌릴 돈이 있으면 그걸로 그림을 샀겠죠. 그래서 다시 말씀드리면 100대 컬렉터에 선정된 기분은, 아주 무섭습니다. 저에게 피해의식을 갖는 분들, 그리고 그분들의 따가운 시선이 더 심해질 테니까요.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에 설치한 우고 론디노네의 ‘Across Dark Stream of Shooting Stars’
다시 젊은 시절의 사업 이야기를 해보죠. 1978년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터미널 운영을 하면서 사업에 입문하셨습니다. 앞서 말씀하셨지만 매점 운영 방식을 직영으로 바꾸면서 연 수익이 1억씩 흑자를 기록했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백화점, 요식업 등 더 큰 사업을 벌이고 미술품을 수집할 수 있었죠.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당시 누군가에게 3억을 빌려주셨는데, 그분이 3억 대신 터미널을 넘겨준 거예요. 그걸 가지고 어머니가 “셋째야, 너 다른 사업 하지 말고 가서 터미널 사업을 해봐라” 하신 거예요. 저희 어머니는 철저한 사업가였어요. 저는 어머니께 매월 300만 원씩 월세를 주고 운영권을 얻었죠. 시장조사차 전국 터미널을 쭉 둘러보고 내린 첫 번째 결정은 매점을 임대가 아니라 직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직영으로 바꾸니 6개월 만에 적자가 해소되었고 이듬해부터는 순이익이 1억 원 이상 났습니다.
1980년대에 순이익이 억대라니 정말 대단한 수완이네요. 그때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2000만~3000만 원 할 때예요. 1억이면 아파트 다섯 채 값이었죠. 그래서 제가 그림을 샀죠. 도둑질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샀겠어요.(웃음)
첫 작품을 구입한 게 1978년이니 어느덧 40년을 향해갑니다. 초기엔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제가 다닌 휘문고등학교가 당시 현대그룹 계동 사옥 쪽에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사동 거리를 거닐면서 미술 작품을 봤죠. 처음 구 입한 작품도 대부분 인사동에서 구입한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청전 이상범, 이당 김은호 선생님의 작품이에요.
팝아트를 비롯해 지금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시작하신 건 언제쯤부터인가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예요. LA에 처갓댁이 있어 가끔 방문했는데 그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미나이(Gemini) 판화 공방이 있어요. 그곳에서 라우션버그, 릭턴스타인, 앤디 워홀, 브롭스키의 판화를 많이 구입했어요. 지금 제주도에서 전시하고 있는 리처드 세라 작품도 거기서 산 거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영국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묘하게 끌렸죠. 현지 갤러리를 통해 컬렉션하면서 데이 미언 허스트, 마크 퀸,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소위 yBa라 불리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언젠가 한국에서 함께 전시를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죠. 그리고 저는 뤼페르츠, 지그마어 폴케 같은 독일 작가의 페인팅도 좋았어요. 특히 틸로 바움게르텔 같은 라이프치히 작가들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습니다.
1990년대는 yBa 작가들이 막 뜨기 시작할 무렵이라 한국에선 아직 그들을 잘 모를 때 아니었나요? 그랬죠. 저도 사실 작가의 명성보단 제 감(感)을 믿고 구입한 거니까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치 갤러리를 통해 그 작가들이 점점 부 각되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다른 컬렉터도 그들의 작품을 사고 싶어 했어요. 근데 이미 내가 많이 샀잖아요. 그러자 유럽에서 저를 두고 “아, 이 사람이 미술품 컬렉션에서 남보다 앞서가고 있구나”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래서 독일 잡지 <모노폴>에서 선정한 100명의 컬렉터에도 꼽힌 거군요. 제가 당시 아트 바젤에 갔다가 잠시 쉬려고 VIP 라운지에 들어갔어요. 테이블에 <모노폴>이 있길래 넘겨보는데, 거기에 내 얼굴이 있더라고. 깜짝 놀랐죠.
세계적 컬렉터에 선정되는 건 여러 방면에서 검증이 됐다는 것인데, 회장님이 세운 컬렉션의 원칙은 뭔가요? 1990년대에 들어서 유명한 작가를 좇으면 안 되고 (비록 현재 유명하지 않은 작가라도) 좋은 작품을 좇아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야 내 미술관을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었으니까.
김인배 작가의 ‘Deller Hon Dainy’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김창일 회장
미술에 대한 관심이 그토록 많았는데, 전문적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공부죠. 다른 사람들은 이론을 공부하지만 전 직접 보고 느끼기를 수십 년째 하고 있잖아요.
컬렉션을 하다 이론적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나요? 느껴요. 특히 어떤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때 그 작가의 마스터피스가 아닌 다른 작품을 골랐을 때 그래요. 그런 경우엔 몇 주 동안 멘붕 상태가 되죠.
3700여 점의 컬렉션 중 절반 가까이는 실패작이라고 하셨는데,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실패가 그런 의미인가요? 그렇죠. 그 작가의 걸작을 골라야 하는데,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는 좀 힘들었어요. 특히 컬렉션을 전시할 때는, 그야말로 한자리에 펼 쳐놓고 관람객에게 평가받는 거잖아요. 그럴 때 그 작가의 걸작이 아닌 작품을 내놓는 건 저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죠. 제가 볼 때 좋은 작품은 구입한 후 약 5년이 지났을 때 정확히 판가름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공부와 훈련이 많이 필요합니다.
후회가 남는 컬렉션은 주로 초기에 구입한 작품인가요? 초기에 구입한 게 많지만 지금도 많습니다.(웃음)
그림을 구입할 때 꼭 실물을 보는 편이세요? 거의 그렇죠. 제가 그 작가를 잘 알 때는 이미지만 보고 구입하기도 합니다. 아, 제가 최근에 산 작품이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알바니아 출신 작가 안리 살라(Anri Sala)의 작품인데, 20만 달러 정도 주고 샀어요.
이 작품을 저희 책에 소개해도 될까요? 그럼요. 제 소유니까 괜찮아요.
컬렉터 중 몇몇 분은 공개하길 꺼리시더군요. 이런 것이 예술품을 수집하는 재미 중 하나인데요? 내 거라고 폼 잡고 자랑하는 대신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죠.
제주도에 오픈한 네 곳의 아라리오뮤지엄을 방문할 때마다 늘 느끼는 건 공간과 작품이 참 조화롭다는 겁니다. 미술관 레노베이션부터 내부 디자인, 작품 디스플레이까지 거의 회장님이 손수 진행하셨다는 것이 놀라워요. 저는 사업가와 아트 컬렉터 , 작가 이 세 가지를 사람들이 왜 구별해서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인스털레이션을 어디서 배웠겠어요. 사업하면서 수백 번 식당을 부수고 또 짓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게 바로 인스털레이션이죠. 그리고 제가 얼마나 많은 전시를 봤겠어요. 제 생각엔 저만큼 많 이 본 사람 없어요. 며칠 전에 비행기 티켓을 보니 지금까지 900번을 탔더라고요. 게다가 전 여행의 목적이 뚜렷한 편이에요. 사업 또는 전시죠. 해외에 재미난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선 직원을 통해 전시 리포팅을 받아봐요. 그리고 흥미가 생기면 그걸 보러 가 죠. 유명 관광지나 랜드마크는 사진으로 보면 되지만 그림만은 꼭 실물로 보고 싶거든요.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가장 값지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이승엽이 왜 뛰어난 타자일까요?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그렇게 된 거예요. 눈앞에 시속 140km로 날아오는 공을 쳐낼 때 의식하고 칠까요? 직관으로 치는 거죠.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 이거든요. 저도 그래요. 수많은 전시를 보니 제 몸도 무의식 상태에서 움직여요. 전 작품을 살 때, 한 작품을 10분 이상 보지 않습니다. 10만 달러든 100만 달러든 거의 5분 안에 결정하죠. 제 머릿속에는 이미 작은 우주가 존재해요. 맘에 드는 작품을 보면 머릿속 우주 에서 시뮬레이션되면서 이 작품을 살지 말지 결정할 수 있죠.
그게 전시를 많이 보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가요? 해외 출장을 가면 낮에 전시를 보고 저녁에 호텔로 들어갑니다. 그러곤 조용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그날 본 전시를 쭉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테이프를 감아요. 그러면서 ‘테이트 모 던 3층에 있던 그 작품을 왜 거기에 디스플레이했지? 이쪽에 걸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재배치해보거나 그날 본 작품 사진을 보면서 리뷰를 합니다.
현재 아라리오뮤지엄 전시도 회장님이 디스플레이하셨나요? 직원들이 나보고 해달라고 해요. 그게 가장 좋으니까.
공간과 작품의 조화를 꾀하는 회장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일례로 보통 작품을 설치하면 위에 수평자로 측정을 합니다. 그런데 전 그걸 쓰지 않아요. 왜냐하면 건물의 천장과 바닥이 똑바르지 않으니까. 전시팀에 늘 “눈으로 보는 걸 믿으라”고 가르 칩니다. 지금 제주 전시장에 조지 시걸의 조각 3점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놓여 있어요. 큐레이터가 처음에 그 간격을 너무 벌여놓아서 제가 15cm 당겨라, 다시 15cm 당겨라 해서 서너 번 옮긴 거예요. 사실 제가 그러고 있으면 좁쌀영감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는 데, 눈감으면 자꾸 그 작품이 생각나는데 어떡해.
모든 것에 완벽을 기하려면 디테일을 무시할 수 없죠. 맞아요. 그런 것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니까요.
바버라 크루거의 ‘Untitled(Endless War You will Live Forever)’. 왼쪽의 부식되어가는 나무 막대에는 ‘Endless War’, 오른쪽에 온전한 상태로 놓인 나무 막대에는 ‘You will Live Forever’라고 적혀 있다.
컬렉션 작품 수가 3700여 점에 육박하고 수장고 관리비만 1년에 수억 원에 달합니다. 많은 아트 컬렉터가 종국에는 미술관을 설립하는 경우를 보는데, 몇몇 분은 미술관 운영에서 수익을 따지기도 합니다. 미술관 운영에서 중요한 마인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 도라지와 인삼, 산삼을 비교해봐요. 도라지는 1~2년 안에 수확하는 것이고, 인삼은 6년 이상, 산삼은 10년 이상을 기다려요. 마찬가지로 미술관도 그래요. 적자라니! 적자라는 개념은 그런 곳에 사용하는 게 아니죠. 예를 들어 내가 식당을 운영하는 건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거예요. 식당을 통해 정신적 가치와 행복을 얻는 게 목적이 아니죠. 전 미술관을 보고 적자냐, 흑자냐 따지는 것에 굉장한 반감이 있어요. 미술관은 사람들의 정서적 만족과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고,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거예요. 도라지처 럼 짧은 시간 안에 평가가 나는 곳도 아니죠. 20년, 30년, 후세와 미래를 보고 운영하는 겁니다.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컬렉터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국내외 재능 있는 신진 작가 작품을 소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며칠 전에도 트렁크갤러리에 갔다가 추미림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구입했어요. 요즘 국내 미술계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꽤 선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백화점과 영화관, 갤러리가 들어선 천안의 복합 문화 공간 ‘아라리오 스몰시티’와 서울과 제주에 총 5개의 아라리오뮤지엄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회장님은 늘 5~6개의 미술관을 더 짓고 싶다고 하셨는데,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최근 부산에 미술관 으로 쓸 만한 좋은 공간이 하나 났는데, ‘지금 하고 있는 미술관부터 잘 관리한 후 다음 단계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접었어요.
부산의 어느 지역이었나요? 지금 국내 조선소 상황이 좋지 않잖아요. 부산의 조선소도 대부분 문을 닫게 생겼죠. 그런데 마침 조선소 창고가 하나 매물로 나왔어요. 제가 꿈꾸는 미술관 중 하나가 층고가 높은 큰 창고거든요. 그런데 매입 금액과 레노 베이션 비용을 생각하니 지금 당장 매입하긴 망설여지더라고요. 고민 끝에 이번엔 구입하지 않기로 했는데, 앞으로 그런 장소를 다시 찾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그런 형태의 미술관을 꿈꾸신다면 새롭게 짓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요. 그러면 ‘맛’이 없어요. 오랜 건물에서 풍기는 감동이 없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작품을 볼 때도 뭔가 몰입이 잘 안 돼요. 우리 미술관을 보다가 새롭게 지은 다른 미술관에 가면 뭔 가 건조한 느낌이 들죠.
앞으로 재단을 설립할 계획은 없으세요? 시기는 저 혼자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율 중이에요.
회장님의 삶의 모토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외에 지금의 회장님을 만든 다른 문장은 없나요? ‘열등감은 거름이다.’ 딱 내 경우가 그랬어요. 열등감이 새로운 에너지를 준 케이스죠. 아마 <노블레스>에 제 인터뷰가 나오면 늘 그랬듯, 미술과 관련 없는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재미있어하겠지만 미술계 사람들은 “저놈이 저기에 왜 끼어 있지?” 이러겠죠. 그런 시각은 여전히 절 힘들게 합니다. 전 너무나 미술을 사랑하고 그것에 열정을 쏟고 있어요. 그런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미술계에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아마도 제가 죽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을 것 같다는.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