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ving Relations
“패션과 예술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이 명제를 풀어내기 위한 갖가지 시도가 이어져왔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역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중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의 올해 전시 제목은 ‘Tra Arte e Moda (Across Art and Fashion)’. 지난 5월 19일부터 2017년 4월 7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오프닝에 <노블레스>가 다녀왔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렌체에 위치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본사
피렌체 국립도서관 내 전시 풍경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 내 전시장 전경
유럽의 많은 브랜드는 브랜드가 나고 자란 도시에 강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가 특히 그러한데, 출신 국가보다는 도시명을 브랜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은 도시의 환경과 역사로 인해 큰 혜택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및 가죽 액세서리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도 그렇다. 본사가 자리한 피렌체에 대한 rm들의 애정은 상상 이상이다.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유명 배우들의 슈즈를 만들며 성공을 거둔 그지만 어느 순간 미국에서는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품질의 슈즈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피렌체야말로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 장인정신을 대표하 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1929년 회사를 설립한 그는 1938년 피렌체 중심가의 팔라초 스피니 페로니(Palazzo Spini Feroni)를 구입, 현재까지 이곳을 본사와 박물관으로 사용하 고 있다.
본사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박물관은 브랜드 창시자의 이력과 철학, 그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1995년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서는 매년 독창적인 주제의 전시를 개 최하는데, 올해 역시 흥미로운 주제와 전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예술과 패션을 아우르며(Tra Arte e Moda)’. 이 전시가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몇몇 문화기관과 협업해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뿐 아니라 피렌체 국립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Centrale), 우피치 미술관(Gallerie degli Uffizi), 마리노 마리니 박물관(Museo Marino Marini), 프라토에 위치한 무제오 델 테수토(Museo del Tessuto)에서 색다른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다양한 공간에서 하나의 주제를 변주해 선보이는 이색 전시인 만큼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 관장 스테파니아 리치를 비롯한 4명의 큐레이터가 협력해 각 전시마다 독창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 관람 포인트.
Christopher Makos, ‘Altered Image’, 1981, 120 #4 Frame 14, 149.9×111.8cm
Silvestro Lega, ‘A Stroll in the Garden’, 1864~1868, 35×22.5cm, Oil on canvas
‘Garden Dress’, 이탈리아 제품, 1865
몬드리안에게 헌정한 이브 생 로랑의 칵테일 드레스, 1965~1966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호안 미로에게 헌정한 요지 야마모토의 ‘Menswear Jacket’, 1991~1992년 F/W 컬렉션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에 전시된 스웨이드 펌프스,‘Tirassegno’, 1958
패션과 예술의 다소 복잡한 관계
전시 관람을 위해 처음 찾은 곳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 창립자의 창조적 장인정신이 빚어낸 슈즈를 비롯해 패션과 예술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은 주목할 만한 사례가 즐비하다. 1950년대 미국 아티스트 케네스 놀런드의 영향을 받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펌프스, 1930년대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살바도르 달리와 협업해 만든 드레스, 몬드리안에게 영향을 받은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 후세인 샬라얀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나무로 제작한 코르셋, 앤디 워홀의 사진 작품과 영국 . 나이지리아 혼혈 아티스트인 잉카 쇼니바레의 설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과거 슈즈들이 주는 놀라움은 따라가지 못한다. 20세기 초의 슈즈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던한 디자인의 웨지힐, 코르크 같은 독창적인 소재를 사용한 샌들, 조형 작품 같은 슈즈는 브랜드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의 주제는 ‘패셔너블 19세기’. 19세기는 중산층과 산업적 생산 방식의 등장으로 패션이 귀족계급의 전유물이라는 카테고리를 탈피한 시기다. 당시 의 회화와 사진은 인물의 의상과 배경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특징이며, 예술가들은 패션을 새롭고 역동적인 현대성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 속 옷과 실제 옷을 나란히 전시해놓았는데, 그 둘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웅장한 피렌체 국립도서관에서 마주한 것은 20세기 이탈리아의 정기간행물. 예술과 패션의 관계를 당시 언론에서 어떻게 다루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1900년대 초반의 것부터 전시했는데, 잡지는 물론 다양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일러스트까지 포함했다.
마리노 마리니 박물관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계가 모호해지는 예술과 패션의 관계를 짚어본다. 1980년대 들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이브 생 로랑에게, 피렌체의 팔라초 스트로치가 살바토레 페라가모에게 문을 열었듯 이후 예술기관은 기꺼이 패션 디자이너들을 환영했다. 이브 생 로랑과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을 박 물관에 전시하는 트렌드를 전 세계적으로 퍼뜨린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런 트렌드는 새로운 분야의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와 전문 공간을 탄생시켰고, 예술가들 역시 단순 히 재정적 후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과 함께 유명해지고픈 욕구까지 더해 패션과 더 많은 결합을 시도하게 되었다. 당시의 이런 흐름과 요구를 반영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최근 한국의 이세현 작가와 협업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스카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피렌체를 떠나 들른 곳은 프라토에 위치한 무제오 델 테수토. 전후 예술가들이 창조한 패브릭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루치오 폰타나, 브루노 무나리, 조 폰티,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스카프, 텍스타일, 카펫 등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텍스타일이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기까지 밀라노 트리엔날레 엑스포가 결정 적 역할을 했는데, 수많은 이벤트가 예술가들이 서로 생각을 교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잉카 쇼니바레의 설치 작품 ‘Revolution Ballerina’, 2014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영향을 받은 펌프스 1930년대 살바토레 페라가모
루치오 폰타나의 ‘Spatial Concept, Expextations’, 1968, Water paint on canvas, 61×50cm, Private Collection
Fausto Melotti, ‘Graphic Project for Fabric for the 10th Milan Triennale’, 1954, 346×246mm
피렌체에 대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애정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시선을 끈 또 하나의 사건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우피치 미술관 복원 사업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16세기 이 지역의 대공인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에 의 해 착공, 1581년에 완공했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집무실이라는 뜻으로 두 채의 궁전과 이를 잇는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간 16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드는, 그야말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다.
5월 17일에는 선별된 VIP와 예술계 인사들이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후원으로 단장한 8개의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새 전시관에는 최첨단 공기 순환 장치와 조명 시스템을 장착했으며, 완벽하게 복원한 바닥과 보자르 박물관 스타일 천장이 특징적이다. 새롭게 단장한 공간에서 마주한 보티첼리의 작품 등은 그 전과는 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전시관 을 둘러본 후에는 우피치의 멋진 테라스에서 칵테일 리셉션이 이어졌다.
페루치오 페라가모 총괄 회장은 “피렌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한 도시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 림 복원을 후원한 것이나 우피치 미술관의 8개 방 복원을 후원한 것은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후원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라고 전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배려로 우피치 미술관 회랑을 따라 느긋하게 작품을 둘러보는 시간도 누릴 수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은 3층에 걸쳐 총 45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3개의 회랑이 두 건물을 잇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회랑에는 주로 조각 작품을 전시했는데, 어딘가 비밀스러우면서 아늑한 분위기와 탁월한 작품의 조화가 기억에 남는다.
우피치 미술관 테라스에서 열린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우피치 미술관 전시실 복원 기념 디너 전경
쿠사마 야요이가 드로잉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Marisa 토트백, 2008년 S/S 컬렉션

Talk with Mr. Ferruccio Ferragamo
패션과 예술에 관한 전시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예술과 패션은 동반자적 관계입니다. 5개의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다채로 운 시각으로 그 둘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많은 개인과 기관에서 작품을 대여했습니다. 흔쾌히 작품을 빌려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 고 싶습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박물관은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브랜드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 기관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전시를 개최하는데, 주제를 정할 때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겠죠.
살바토레 페라가모답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창립자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단순합니다. 아름답고 편안한 제품을 만드는 것. 고객의 이미지를 제품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창립자인 제 아버지는 고객이 슈즈 제작을 요청하면 그 사람의 발 치수만 재 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까지 고려했습니다. 메를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의 캐릭터가 서로 다르듯이 말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일 것,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을 것. 이것이 살바레 페라가모다운 것입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바라보는 패션과 예술은 어떤 관계입니까? 손잡고 같이 성장하는, 서로 협업하며 자극하면 시너지가 일어나고 가치를 상승시키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슈즈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에디터 | 이윤정 (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 살바토레 페라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