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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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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았나, 세계 4대 진미. 어디, 이제 제대로 즐겨볼 텐가.

트러플, 푸아그라, 캐비아, 샥스핀. 세계 4대 진미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몰라도(아마도 일본일 것으로 의심한다) 트러플이 들으면 아주 섭섭할 것 같다.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상어 남획에 따른 제재 조치로 캐비아값이 많이 올랐지만 트러플에 댈 것이 아니다. 트러플은 어쩌면 ‘2등이 없는’ 고급 식자재의 왕이다. 서양의 고급 식자재상은 ‘가스트로노미’라는 이름을 달고 영업한다. 그물버섯이나 곰보버섯 등 자연 버섯류, 숭어와 참치의 알, 스페인의 하몽, 돼지 방광에 정강이 살을 채워 넣어 말린 쿨라텔로(프로슈토 따위 저리 가라 외칠 만한 햄의 제왕) 같은 것을 판다. 모두 놀랍고 귀한 재료이나 불이 났을 때 주인이 단 하나를 들고 나간다면 마누라 대신 트러플이다. 100g만 해도 수백만 원대이며, 1kg에 육박하는 거대 사이즈는 1억 원이 넘는다. 특히 프랑스 페리고르산 흑색 트러플과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백색 트러플이 최고 몸값을 자랑한다. 흑과 백의 대결에서는 백이 좀 더 우세한데, 워낙 생산량이 적은 데다 보존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수입업체가 있다. 지난해 늦가을 가격을 물어봤다. 담당자가 조금 미안해하며 말했다. “1만 원입니다. 1g에 말이죠.” 파스타에 좀 뿌리려면 10g은 써야 하고, 그렇다면 트러플 가격만 10만 원이다. 전채와 고기에까지 조금씩 뿌리면 그랑 크뤼 레드 와인 한 병 정도가 날아가버린다. 간혹 유럽의 공항, 파리나 로마 공항에서 트러플을 사 들고 오는 친구들이 있다. 기름이나 즙에 절인, 검고 반짝이는 양딸기 같은 그것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건 여름 트러플이라 부르는, 솔직히 트러플이란 이름을 쓰기 무색한 엉터리다. 아무 향이 없어서 표고나 양송이버섯보다 밋밋하다. 한 가지 덧붙이면, 트러플 오일은 대개 완벽한 인공 향이다. 더러 고급 제품은 트러플을 극소량 갈아 넣거나 트러플을 담갔다 빼내는 식으로 향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진짜 트러플과는 확연히 다르다. 좋은 트러플을 만나려면 제철에 산지에 가야 한다. 11월이 되면 피에몬테의 작은 마을 알바에서는 트러플 축제가 열린다. 텐트를 치고, 거리에서 하루 종일 트러플을 판다. 매년 값이 엄청나게 뛴다. 중국과 러시아인이 트러플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풍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 입에 들어올 수 있는 값이다. 호두알만 한 것이면 2명의 한 끼 코스 식사에 뿌릴 수 있고, 충분히 감동적이다. 잘 어울리는 요리는 따로 없다. 뭐든 좋다. 수프, 구운 감자, 붉은 살을 드러낸 소고기 스테이크는 물론 토마토 파스타에 넣어도 맛있다(고추장 불고기엔들 안 어울릴까). 곱게 다져서 약간의 크림과 섞은 후 고기의 소스로 써도 좋다. 요리가 단순할수록 더 빛난다는 게 정설이다. 트러플은 섬세한 식자재가 아니다. 마구 압도하며 치고 나가는 폭발적 향이 난다. 트러플은 재배가 불가하다. 떡갈나무, 참나무, 개암나무가 많은 숲에서 자생한다. 1년생으로 오래 둔다고 커지지도 않는다. 트러플은 돼지와 개의 후각을 이용해 사냥한다. 트러플이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이제는 푸른빛이 도는 비아그라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그 속설은 유효한 모양이다. 산지에서 트러플을 획득한 남자들의 표정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캐비아는 흔히 흑진주에 비견된다. 모양과 빛깔이 그렇고, 값 또한 그러하다. 트러플만큼은 아니지만 캐비아도 충분히 비싸다. 그것도 가장 알이 큰 벨루가라면 더더욱. 내가 한국에서 요리사 생활을 시작한 2002년 무렵 캐비아는 난공불락의 가격은 아니었다. 벨루가보다 한 단계 아래인 오세트라 정도는 언제든 작은 병을 하나 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조금 더 투자하면 벨루가도, 비록 립밤 케이스만 한 것이지만 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벨루가를 욕심낸다면 신용카드 한도액부터 확인해야 할 것이다. 최근 캐비아 양식이 활발하다. 국내도 충주 같은 곳에서 질 좋은 캐비아를 양식한다. 몇 해 전 그곳에 들러 철갑상어를 안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대한 녀석이 내게 안겨 가만히 있었는데, 이토록 순한 상어라니 놀라웠다. 그런데 조금 촬영이 길어진다 싶자 몸을 비트는데 내 팔에 강력한 에너지가 전해졌다. 아하,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마치 악어가 꼬리로 후려쳐 짐승을 잡듯 나 정도는 쉽게 동강 내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양식장은 특허 기술이 있었다. 보통 배를 갈라 알을 취하면 상어는 죽는다. 그러나 그 양식장에서는 특수 지퍼를 개발했다. 지퍼를 열어 알집을 꺼낸 후 닫으면 상어가 다시 유유히 물속에서 헤엄쳤다! 물론 농담이다. 작고한 일본의 러시아통(通)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농담을 빌려 쓴 것이다. 그런데 이게 반은 진담이다. 특수 기술로 산란을 유도해 알을 방출시키고 상어는 살리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어쨌든 캐비아를 먹을 때는 진미를 즐기는 일반적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 진미란 본래 복잡한 요리를 저어한다. 그 자체로 맛이 뛰어나므로 꾸미거나 더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이다. 트러플이 그렇고 캐비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러시아식으로 크림을 곁들여 호밀전병에 싸 먹는 것은 훌륭한 예가 된다. 나는 달걀을 추천한다. 반숙으로 삶은 달걀에 캐비아를 잔뜩 뿌리고 작은 수저로 떠먹는 것이다. 이것이 캐비아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진다.
샥스핀은 중국어로 위츠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 가오리나 홍어의 날개로 요리한 적이 있는데 주방장이 ‘저렴한 샥스핀’이라고 하더라.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가오리의 지느러미와 상어의 그것은 조성이 비슷하다. 샥스핀은 최근 어획이 제한, 혹은 금지되면서 값이 크게 뛰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요리 자체를 금지한 나라도 많다. 현재 국내에는 소량이 유통되고 있는 듯하다. 워낙 고가인지라 가짜도 많다. 인조 샥스핀은 상어의 몸통에서 얻은 성분으로 샥스핀의 질감을 모조한 것. 상당히 유사하지만 아삭아삭하며 부드럽게 감기는 샥스핀 특유의 질감을 완전히 모방하진 못한다. 샥스핀은 독특한 질감 외에 특별한 맛이 나는 재료는 아니다. 그래서 고깃국물 등으로 감칠맛을 더하는 요리가 일반적이다. 찜 요리는 그 형태상 최고로 비싸며 대개 냉채와 수프에 활용한다. 꼬들꼬들하면서 오도독한 질감의 연골과 부드럽고 진한 소스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다. 샥스핀은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식자재는 아니다. 청조의 서태후가 비로소 샥스핀을 즐기기 시작했고, 그 후 광둥 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한동안 홍콩의 대중적 딤섬집에서도 샥스핀을 팔았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푸아그라는 딱히 거위의 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심지어 내가 술을 진탕 마시고 초음파 검사를 하면 의사가 ‘지방간’을 선고하는데, 그 또한 푸아그라다. 푸아는 간, 그라는 살진(기름진)이란 뜻이기 때문. 세계 4대 진미는 트러플을 제외하면 윤리적 문제에 늘 봉착했다. 캐비아와 샥스핀은 잔인한 포획 방법과 남획, 푸아그라는 사육법이 그 이유다. 푸아그라 만드는 장면을 보면 누구나 입맛을 잃는다. 반론도 있다. 지방이 많은 소나 돼지, 닭을 사육하는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푸아그라는 그 치명적인 맛과 함께 늘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푸아그라를 중요한 식자재로 쓰는 지방에서는 그런 논의에 불쾌감을 표현한다. 알자스 같은 곳으로, 그런 곳에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지방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스트라스부르에 가면 대부분의 식당에서 전통 방식으로 조리한 푸아그라 요리를 팔며 아이들도 그것을 먹는다. 푸아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섬유질과 일부 단백질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기름으로 이뤄져 있다. 기름이 지나치게 유실되지 않도록 조리해야 하는데, 가볍게 찐 후 테린이나 파테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팬에 구워 달콤한 소스를 곁들이고 소테른 와인과 함께 내는 것을 최고의 미식으로 치기도 한다. 푸아그라는 거위의 것을 더 쳐주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대개 오리다. 생산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때 소량 수입하던 시절에는 값이 비쌌지만 이제는 웬만한 구어메이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이 많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박찬일(셰프) 일러스트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