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들의 건강법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의 미술관 레스토랑은 거의 교내 카페테리아 수준이었다. 최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해도 미술관 내 먹거리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세계적 경기 침체 이후 미술관들은 레스토랑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 수익원을 찾아야 했다.
1,2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Photo by Ellen Silverman
3 스타 건축가 안드레 키코스키가 디자인해 화제가 된 구겐하임 미술관의 더 라이트 레스토랑 Photo by David Heald
뉴욕 모마(MoMA)엔 프렌치 레스토랑 더 모던(The Modern)이 있다. 뉴욕의 여러 특급 호텔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쌓은 게이브리얼 크루더(Gabriel Kreuther)가 셰프로 있다. 미슐랭이 뉴욕에서 별을 매기기 시작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1스타 레스토랑을 유지하고 있다. 포크부터 스푼, 나이프, 테이블웨어까지 대부분 최고급 덴마크제를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지난해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레스토랑 평가에서도 별 3개를(최고는 별 4개) 받았다. 또한 2008년 뉴욕 아트 디자인 박물관(MAD)은 모마 맞은편 자리에서 컬럼비아 서클 앞으로 이전하며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박물관 빌딩 9층에 아메리칸 레스토랑 로버트(Robert)를 열었다. 야경이 특히 유명한 로버트는 연인의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을 정도다.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 <자갓(Zagat)>은 2010년 이곳을 미국에서 가장 멋진 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으로 꼽기도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도 2009년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더 라이트(The Wright)를 열었다. 나선형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특징인 이곳은 ‘절제의 미학’을 선보이는 스타 건축가 안드레 키코스키(Andre Kikoski)가 실내를 디자인해 오픈 전부터 화제가 됐다. 그는 레스토랑 중앙 천장에 원형으로 넓게 퍼지는 대형 캐노피 조형물을 설치해 점점 인기가 식어가던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놓았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이런 트렌드는 뉴욕에서 시작해 런던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1990년대 중반 현대미술의 흐름이 뉴욕에서 런던으로 옮아가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 꼭대기 층엔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Tate Modern Restaurant)이 있다. 자리에서 템스 강과 밀레니엄 브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스테이크와 고급 와인을 파는 이곳은 늘 손님들로 북적댄다. 이름난 와인 평론가 해미시 앤더슨(Hamish Anderson)이 헤드 소믈리에로 있고, 모엣 샹동이 주관하는 런던 레스토랑상(London Restaurant Awards)을 받은 와인 리스트가 와인 애호가들을 매혹한다. 2012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낸 연례 보고서를 보면, 테이트 모던 미술관 내 카페와 레스토랑의 2011년 한 해 순수익은 90만3000파운드(약 15억 원)나 된다. 이는 전해보다 50% 이상 오른 매출이다. 이쯤 되면 세계적 미술관들이 레스토랑에 부쩍 신경 쓰는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이 레스토랑에 신경 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역시 ‘수익’이다. 2008년 하반기에 시작된 세계적 경기 침체로 대형 미술관들은 기부금이 대폭 축소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 지원과 입장료 수익만으로는 계속 운영해나갈 수 없었다. 그들은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새 수익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해결책은 미술관 레스토랑의 업그레이드였다. 그들은 방문객의 눈과 입맛을 충족시키는 데 투자했다. 유명 건축가를 불러 레스토랑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수준급 셰프를 고용해 요리의 격을 높였다. 그 결과 이전에 보이지 않던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생각보다 재정도 빠르게 확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레스토랑을 통해 번 수익으로 새로운 작품을 사들이고 컬렉션도 업데이트했다. 또 화제가 될 만한 전시를 기획해 더 많은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끌어모았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이유도 있다. 바로 ‘더 나은 관람 환경 조성’이다. 작품 감상이라는 시각적 자극에 미각과 후각, 촉각 등의 자극을 더해 총체적인 오감 체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장기적으로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1,2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3 지난해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오픈한 레스토랑 카페 그라노
한편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 칼럼니스트 이나연은 “세계적 미술관들이 이전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 결코 레스토랑 시설의 업그레이드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괜찮은 미술관 레스토랑이 성공하는 이유로 미술관과 레스토랑의 연계 프로그램을 꼽았다. 그녀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예술작품 전문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의 단골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곳의 카페 사바스키(Sabarsky)에 자주 간다. 그녀가 사바스키에 가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라이브 공연 때문이다. 어퍼이스트의 고상한 부자들도 줄 서서 기다린다는 사바스키의 공연은 그 인기가 매우 높아 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독일 쾰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최선희 대표는 “미술관 레스토랑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전시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둘 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예로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와 그곳의 조르주 레스토랑(Georges Restaurant)을 들었다. 퐁피두 센터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조르주 레스토랑은 호텔 코스테(Hotel Costes)를 세계적 명소로 만드는 데 성공한 코스테(Costes) 형제가 내부를 디자인하고, 현재 파리에서 잘나가는 건축가 중 한 명인 도미니크 자콥(Dominique Jakob)과 브렌든 맥팔렌(Brendan McFarlane)이 인테리어를 맡은 곳이다.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인 이곳은, 그간 훌륭한 전시로 명성 높은 퐁피두 센터와 상부상조해왔다. 일례로 퐁피두 센터에서 특별전이라도 열리면, 온종일 구름 같은 관람객이 조르주 레스토랑에 몰려들어 크나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도 레스토랑이 하나 오픈했다. 카페 그라노(Caffe Grano)다. 서울 이태원과 청담동 일대에서 오랫동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해온 이탈리아계 캐나다인 셰프 산티노 소르티노가 열었다. 이곳은 뉴욕 모마의 ‘더 모던’이나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도쿄 국립 신미술관의 ‘브라스리 폴 보퀴즈(Brasserie Paul Bocuse Le Musee)’ 같은 외국의 유명 미술관 레스토랑을 롤모델로 한다. 미술관 레스토랑치곤 조금 넓다 싶은 115석의 좌석을 마련했고, 다년간 산티노 소르티노 셰프와 손발을 맞춰온 수준급 스태프들이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인다. 최상급 올리브 오일과 제철 식자재를 아낌없이 사용해 만든 이곳의 소시지 로제 소스 파스타와 파니니는 오픈 3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 그라노를 운영하는 빅벨리 그룹의 황경준 대리는 조만간 레스토랑에서 각종 미니 콘서트와 팝업 스토어 등을 열어 미술관 관람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순수한 미술관에서 웬 레스토랑 타령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미술관 레스토랑의 수준과 다양한 퍼포먼스가 그 미술관의 수준으로 평가되는 시대다. 세계적으로 성공했다는 미술관은 다들 수준급 레스토랑을 열어 이미지의 품격을 높이고 수익도 늘리는 일거양득의 마케팅을 해왔다. 미술관 레스토랑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미술관 레스토랑의 고급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을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