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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from Kim Sung Kun_ 두 얼굴의 리더

LIFESTYLE

미화, 정준, 희성 3남매에게 김성근 감독은 말없는 아버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경제 감각 없는 아버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 끊임없이 비판받는 아버지,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외로운 아버지다. 참 싫을 법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3남매는 이런 모습을 골고루 나누어 닮았다. 특히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아들 김정준은 김성근 감독 판박이다.

김성근 감독과 아들 김정준 야구 해설위원

“시간 날 때 놀러 오세요.” “응, 그럴게.” 우리 집 큰딸과 내가 주고받는 짧은 문자 내용이다. 1969년 야구 감독을 시작한 후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 식사와 잠자리를 걱정하는 큰딸이 그렇게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 내가 마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한 당시 큰딸 미화는 세 살이었다. 마산상고 감독 생활 중 둘째 정준이가 생겼고, 1972년 기업은행 감독 때 셋째 희성이를 갖게 되었다. ‘이건 하지 마라’, ‘저건 해라’, ‘이건 위험해’, ‘저건 괜찮다’ 등 지나친 간섭과 통제 속에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45년간 승부 세계에서 살아온 아버지를 보며 자란 탓인지 부모의 간섭 대신 아버지의 시합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성장했다.

하마는 새끼를 낳으면 20초 동안 밟아서 물속에 감금하는 행동을 취한다고 한다. 잔혹해 보이는 이 행위는 새끼에게 살아가는 법을 전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나도 그랬다. 아이들이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하는지, 절망의 순간엔 어떻게 하는지 ‘관심 속 무관심’의 시선으로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비빌 언덕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일절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행동했고 그 와중에 자기보호라는 본능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키워갔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도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문제는 늘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하지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길 바랐기에 한 번도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충고를 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정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 선수로 활약했지만 나는 아들의 시합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번 아무도 몰래 시합을 본 적이 있다. 연.고전 때였다. 그날 정준이는 대학 리그 최고로 손꼽히던 박동희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치며 맹활약했다. 너무 기뻐서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한턱 냈지만 지금까지 난 정준이에게 그날의 시합이나 홈런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온 정준이와 내가 경기에서 만난 건 딱 한 번이다. 내가 삼성 감독, 정준이가 LG 선수였을 때다. LG 유격수로 나온 정준이를 보니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정준이는 3루수 스타일이지 민첩성이 필요한 유격수 스타일은 아니었다.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정준이가 실수를 범했다. 시합 내내 타자들이 제발 유격수 방향으로 치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그날따라 우리 팀 타자들은 유달리 정준이 앞으로 강한 타구를 날렸다. 정준이는 또 실수를 했다. 아마도 내 앞에서 잘하고 싶은 의욕이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 대결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기 중에 실수하고 나를 쳐다보던 정준이의 시선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의 승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승리였다. 그러나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정준이와 나는 그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김성근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 출생.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야구감독이자 선수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스승이다.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을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꼽는 김성근 감독의 ‘포용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최근 여러 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정준이는 나를 꼭 닮았다. 내가 기업은행 감독으로 있을 때 막 서너 살 된 정준이는 포수 장비를 쓰고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놀곤 했다. 가끔 나한테 야단맞은 선수가 나 몰래 정준이 머리를 때려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옆에 가서 위로한 적도, 누가 때렸느냐 물어본 적도 없다. 정준이 역시 나한테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할 때도 한 번도 감독이나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야구 감독을 아버지로 둔 정준이는 동료들의 색안경 때문에 고통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정준이가 중학교 3학년 때 국가 대표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돌아오자마자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아버지 힘으로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고등학교 때 합숙훈련에서 심한 기합과 구타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적도 있다. 당시 삼성 감독으로 대구에 있었는데 아내와 큰딸이 “정준이가 완전히 돌았다”고 울면서 전화를 해왔다. 아버지로서 자식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지만 난 정준이에게 전화하지 않고 이틀 후 서울로 올라와 “학교 다닐래?”라고만 물었다. 정준이는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네 입으로 직접 감독에게 뜻을 전하라는 말과 함께 대면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감독은 내 후배였지만, 나는 감독에게 그리고 정준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준이는 3일간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을 정리한 정준이는 4일째 되던 날 감독을 찾아가 야구를 계속하고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야구부에서도 기합은 계속됐다. 선배나 다른 학부형의 시기와 질투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1990년대 서울에 대홍수가 나서 집 옆 여관으로 피난 갔을 때 정준이는 한 번도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자살하러 한강을 두 번이나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놀라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티 내지 않기 위해 정준이의 얼굴만 하염없이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김성근의 아들로 살면서 더욱 속이 깊어진 정준이는 내가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할 때 나를 따라 SK로 왔다. 일본 지바 롯데에서 제안이 왔지만 정준이는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감독 생활에 힘이 되고 싶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SK 감독 재임 5년 동안 내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정준이는 나를 격려하고 또는 질타하며 힘이 되어주었다. 어느 쪽이 아버지고 아들인지 구별이 안 될 때도 많았을 정도다.

막내 희성이도 지나온 시절이 녹록하진 않다. 대학교 시절 학생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희성이는 그 때문에 귀가 시간이 늦은 건 다반사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많이 마셨고, 학교 동아리방에서 자고 들어와 걱정도 많이 시켰다. 그러다 희성이 방에서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 발견되자 아내는 더욱 희성이를 들볶았다. 일찍 귀가해라, 당장 학생운동을 그만둬라, 농촌활동도 가지 마라…. 희성이가 하려는 모든 일을 아내가 반대할 때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용돈을 쥐여주었다.

아버지로서 딸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인생길이 험난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희성이 본인이 키워나가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수다. 결국 대학교를 졸업한 후 희성이는 주체사상에서 벗어났고 술도 끊었다.

사람이 뭔가 하고 싶어 미칠 때는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때가 되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싫어하는데 억지로 시키거나 못하게 하면 평생 스스로 결단 내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지키겠다는 보호본능이 너무 강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일방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주려 한다. 그런 행동은 자식의 판단력과 결단력 그리고 스스로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자주성과 자의식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 야구장에서는 실력이 안 되는 선수를 붙들고 될 때까지 지도하는 나지만 집에서는 자식들이 스스로 변해가기를 기다린다. ‘관심 속 무관심’이라는 말은 비록 비정하게 들릴지라도 그 밑에 깔려 있는 ‘기다림’은 가장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 시대의 부모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  일러스트 장재훈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