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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FASHION

따스한 햇살 아래 나비가 춤추는 평화로운 봄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여름날 풀 내음이 진동하는 정원까지. 수줍게 피어 화려하게 만개한 후 미련 없이 스러지는 꽃의 사계가 남자의 가슴속에 들어왔다.

1 Gucci  2 Dries van Noten  3 Les Hommes

남자의 옷차림, 그중에서도 패턴을 떠올려보자. 블랙, 브라운, 화이트, 네이비 등 단색 색종이 같은 단조로움 속에서 굳이 찾아낸다면 도트, 스트라이프, 체크처럼 규칙적인 형태가 주류였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좀 다르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꽃 패턴, 일명 ‘꽃가라’가 등장한 것. 물론 과거에도 잔잔한 플라워 패턴은 남성 셔츠에 종종 사용했다. 감성 충만한 남자들의 넘치는 개성을 표현하는 보조 수단으로 영화나 드라마 속 마초 역에 힘을 싣는 패션 아이템으로 이만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남성복에 등장한 꽃의 역할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층 순화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향긋하다. 이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성적 예감이다”라는 미국 소설가 수전 손택의 말처럼, 디자이너들이 남성 안에 숨은 ‘미’를 좀 더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대표적 모티브인 꽃을 끌어들여 성 정체성의 새로운 전환을 시도했기 때문. 이를테면 꽃향기 폴폴 나는 페미닌 패턴에 재킷과 팬츠 등 매니시한 아이템을 조화시켜 중성적 분위기를 연출, 성의 경계를 넘나는 다양한 느낌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1 Alexander McQueen  2, 3 Prada  4 3.1 Phillip Lim

대표 컬렉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꽃밭을 연상시키는 슈트 룩을 제안한 구찌,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정원에 블랙·화이트·크림 등 솔리드 컬러 아이템을 믹스해 숨통을 틔운 드리스 반 노튼, 레이스와 워시드 실크처럼 독특한 질감의 소재를 사용해 인조 꽃 형태를 재현한 알렉산더 맥퀸, 잔잔한 마이크로 플라워 패턴 셔츠를 컬러를 달리해 레이어링하는 실용적 스타일링을 제안한 버버리 프로섬, 1970년대의 복고적 감성을 오버사이즈 팬츠와 바이커 재킷처럼 캐주얼한 무드로 풀어낸 3.1 필립 림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프라다는 옷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백과 액세서리에도 플라워 패턴을 장식해 아직은 플라워 패턴이 낯선 이들에게 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이처럼 올봄 남성복 유행의 핵에는 ‘꽃’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는 보수적인 남성들이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패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철학자 뱅상 세스페데스의 말, “현대사회의 남자는 관습, 이데올로기에서 강요하는 남성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길, 남성성을 거부하는 남자답지 않을 권리에서 시작된다”에서 용기를 얻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