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타헤단, 수집을 넘어 히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컬렉터
중동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모타헤단 프로젝트의 수장, 모하마드 모타헤단의 컬렉팅은 미술을 향한 짝사랑에서 시작됐다. 그것도 아주 지극한 순애보. 그가 들려주는 컬렉팅의 진정성, 그리고 오랜 친구 제프 쿤스와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
1999년 뉴욕에서 개최된 모타헤단 컬렉션 전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전시장에서
세계적 컬렉터들이 예술 작품 컬렉팅을 시작하는 계기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예술에 대한 애정과 작가 후원, 그리고 경제적 논리도 빠질 수 없다. 중동 현대미술의 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모타헤단 프로젝트(Mottahedan Project)의 리더이자 이란 출신 컬렉터인 모하마드 모타헤단(Mohammad Mottahedan)이 컬렉팅을 시작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그는 경제적 여유에 따른 단순한 삶의 유희로서가 아니라 한 작가의 인생과 가치관,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그 예술 활동 전체를 컬렉팅한다. 그에게는 많은 작가의 작품을 두서없이 소유하는 것보다 신중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큐레이팅의 개념으로 컬렉팅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에서 성장한 모타헤단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선물 거래 중개인으로 근무했다. 끊임없이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그는 적극적으로 관련 공부를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작품 구입 이상으로 현대미술 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모타헤단 컬렉션의 시작인 셈이다. 재능 있는 작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후원하며 컬렉팅해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타헤단은 공공의 시각에서 예술을 바라볼 줄 아는 컬렉터다. 현대미술계의 빅 스타, 제프 쿤스와의 돈독한 우정도 이런 그의 애티튜드에서 비롯됐다. 초기부터 집중력 있는 컬렉팅과 교감을 통해 컬렉터와 아티스트를 넘어선 진정한 친구가 된 것이다. 기본에 충실해 더욱 흥미로운 컬렉션을 구축한 컬렉터 모타헤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막막하기만 하던 컬렉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 Peter Halley, DIrection No. 2 2013
2 Skyler Brickley, Meltdown 2013
3 Andrzej Zielinski, Stuck Shredder 2012-13
처음 컬렉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제가 직업으로 선택하기엔 너무 무지하고 막막한 분야였어요. 그러던 중 1980년대 초 제가 다니던 학교와 파리 소르본 대학이 진행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파리에서 잠깐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당시 파리의 미술 현장을 둘러보며 미술에 완전히 매료됐고 더 알고 싶어졌어요. 마치 누군가에게 강하게 이끌릴 때가 있는 것처럼,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미술이 저를 강렬하게 끌어당겼죠.
미술 관련 공부를 따로 시작하신 건가요? 관심이 생기니 자연히 미술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 일었고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싶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찾았어요. 다양한 미술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파리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들과도 친분을 쌓았죠. 미술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예술 세계의 여정도 시작된 셈입니다.
그럼 미국으로 돌아와서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파리에서 한 공부 덕분에 뉴욕 현대미술 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당시 NYU와 뉴스쿨에서 진행하던 특별 과정 수업을 들었어요. 프린스턴 대학의 미술사학과 교수 샘 헌터(Sam Hunter)와 미술평론가 제리 솔츠(Jerry Salts)의 지휘 아래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작가 스튜디오 등을 방문하면서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동시에 공부하는 과정이었어요. 저에겐 절호의 기회였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뉴욕 현대미술계에서 일하는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아티스트와 어울렸고 지속적으로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컬렉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1985년부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내가 어떻게 하면 현대미술계에 더 깊이 함께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고 제가 컬렉팅을 시작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난 시기였기 때문에 연도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 같네요. 그러던 중 1985년에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한 줄리언 슈나벨(Julian Schnabel)의 개인전을 봤어요. 뉴욕에서 한창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 슈나벨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 신선한 전시였는데, 거기서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어요. 바로 전시한 작품의 반 이상이 찰스 사치의 개인 컬렉션이었다는 점이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이거다. 나도 컬렉팅을 하자!’
사치 컬렉션이 전시 작품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가온 건가요? 그전엔 컬렉팅이 좋은 작품을 사서 집 안에 걸고 혼자 즐기는 것이라 여겼어요. 그때 처음으로 작가의 잠재적 가능성을 믿고 작품을 밀도 있게 컬렉팅해 의미 있는 미술관 전시에서 큰 몫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전자와 후자는 매우 차이가 큽니다.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장을 형성할 수 있는 컬렉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때 이미 컬렉팅에 대한 궁극적 목표를 세운 셈이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 작가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잠재성을 컬렉팅하는 것이죠.
찰스 사치를 롤모델로 삼으셨나요? 당시 보수적인 미술계에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던 커팅 에지 현대미술을, 그것도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구입한 다음 yBa라는 이름으로 브랜딩하고 전시를 열어 홍보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펼친 컬렉터는 사치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동시대 현대미술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고, 제가 20대부터 컬렉팅을 시작하도록 계기를 만들어준 분이기도 하지요.
처음 뉴욕에서 컬렉팅을 시작한 작가들이 궁금하네요. 제프 쿤스(Jeff Koons), 피터 핼리(Peter Halley), 캐럴 더넘(Carroll Dunham),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신디 셔먼(Cindy Sherman) 그리고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작품을 컬렉팅했어요.
미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컬렉팅하셨군요. 그때는 모두 젊은 작가였고 작품 가격도 월급쟁이인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웃음)
1 Jeff Koons, Jeff and Ilona, Made in Heaven, 1990
2 Skyler Brickley, Meltdown, 2013
다른 작가도 많았을 텐데 6명의 작가로 한정한 이유가 있나요? 앞서 잠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순간순간 맘에 드는 작품을 두서없이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라,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고 컬렉팅합니다. 이 작가가 동시대 현대미술 역사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에 대한 검증 작업을 매우 신중히 한 다음, 컬렉팅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그 대신 결정을 내리면 그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살펴보고 중요한 작품을 선정해 꾸준히 일관성 있는 컬렉팅을 이어나갑니다.
한마디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처럼 컬렉팅하시는군요.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제게 많은 영향을 준 미술사학자 샘 헌터는 말했죠. 컬렉팅을 할 때에는 순간적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정확한 목표와 전략적 시각을 갖고 신중히 판단한 후 해야 한다고요.
그때 교류한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평론가들이 지금의 모타헤단에도 꾸준히 영향을 끼친 것 같네요. 맞아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평론가, 미술사학자와 가까이하며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고 조언에 귀 기울였어요. 저는 미술이라는 장르가 너무 감성적인 면에 치우쳐선 안 된다고 봅니다.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들인 노력과 철학, 이론적 배경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할 때 오디오 가이드를 꼭 챙깁니다. 아는 만큼 더 보이기 때문이죠.
컬렉팅을 시작한 당시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들려주세요. 한마디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컴퓨터로 이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도 못 됐죠. 작품을 보려면 스튜디오에 가야 했고, 작가와 직접 만나 설명을 듣고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지금보다 큐레이터나 평론가의 비중이 커서 마켓보다는 다른 가치를 더 중요시했죠.
당시 작품을 컬렉팅한 작가들, 제프 쿤스와 피터 핼리, 캐럴 더넘 등과도 친밀한 사이셨겠네요. 특히 그 세 작가는 제가 깊은 맥락까지 이해하고 컬렉팅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품과 작가를 선정할 때 아트 마켓에서의 가치와 학계의 평가 중 무엇에 더 비중을 두시나요? 작품의 활동성과 학계의 비평적 평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예요. 작품의 상업적 밸류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전자가 꼭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밸런스가 항상 맞아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래서 컬렉팅이 더욱 스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란이라는 국가적 배경을 지닌 분으로서, 자국의 현대미술계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나요? 중동의 컬렉터들은 그 점을 매우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아니요. 예술은 정치적 이유를 포함해 어떤 구분도 있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물론 저도 후원하고 컬렉팅하는 이란 작가들이 있지만 그건 그들의 작가적 역량 때문이지 저와 국적이 같기 때문은 아닙니다.
좋은 컬렉터는 어떤 컬렉터일까요? 미술에 대한 배경 지식과 경험 그리고 분석적 견해를 지니고 있어야겠죠. 무엇보다 자신의 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거기에 치중하면 본인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데 많은 방해가 됩니다.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국제 아트 페어들에 꼭 얼굴을 비치시는데, 갤러리보다 아트 페어를 선호하시나요? 아트 페어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많이 다니는 편이죠. 그중에서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를 가장 좋아해요. 일단 환경이 아름답잖아요. 일 때문에 가는 것이지만 마치 휴가를 떠나는 기분이 들어요. 아트 페어의 퀄리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변 환경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은 갤러리가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많이 구입합니다.
1 Jeff Koons, Glazing Ball(Mailboxes), 2013
2 Pietro Poccasaiva, Just Married Machine, 2011
비엔날레나 미술관 전시 등 비영리 미술 행사에도 많이 다니시나요? 그럼요. 아주 중요하죠. 앞서 말한 제 컬렉팅 포커스와 같은 맥락이죠. 중요한 전시는 꼭 찾아가서 봅니다. 최근 전시는 아니지만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제프 쿤스가 발표한 ‘Made in Heaven’을 잊을 수 없어요. 그의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랑, 우주적 철학관이 작품에 가득 담겨 있었어요.
제프 쿤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것 같아요. 처음 제프 쿤스의 작품을 컬렉팅할 때 작품에서 강한 끌림을 느꼈나요? 아니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와 미술계에서의 잠재성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둘 다요. 특히 제프가 한 사람으로서 지닌 진정성, 관대함은 위대한 작가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프 쿤스와 얽힌 일화를 하나 들려주시겠어요? 제프의 작품은 그의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일시적 감정에 치우친 사랑이 아니라 과거의 허물도 자신의 일부로 승화해 보듬어주는 사랑이지요.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였던 그의 전처 일로나 스탤러(Ilona Staller)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베니스에서 발표한 ‘Made in Heaven’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제프는 부성애가 매우 강한 사람으로 많은 아이의 아버지가 되길 원했어요. 일로나와 이혼 소송 당시, 큰아들을 제프에게서 빼앗아가려 했을 때 물불을 안 가리고 당시 본인이 가진 모든 재산을 털어 재판했고 결국 아들을 되찾아왔어요. 그 당시 눈물로 마음 졸이며 제작한 작품이 ‘풍선 강아지’ 시리즈 입니다. 지금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가족애를 상징하는 작품 ‘Glazing Ball(Mailboxes)’을 제작하기도 했죠.
제프 쿤스에 대해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더욱 흥미롭네요. 이제 2010년 두바이에 오픈한 모타헤단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모타헤단 프로젝트가 기존의 갤러리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커미션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생산해내는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기존의 작품을 공간에서 보여주고 판매하는 형식이 아니라 제가 프로젝트를 선정, 작가와 함께 기획한 신작을 제작해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제 컬렉션으로 들어가는 거죠.(웃음)
굳이 두바이에 개관한 이유가 있나요? 아랍에미리트는 문화와 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를 구축했고, 국가 정책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곳이에요. 국제적 미술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한 곳이죠. 지금도 미술계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요.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세요. 미국의 색면 추상으로 유명한 작가 피터 핼리의 ‘카바(Al-Kabba, 아랍어로 사각 박스라는 의미) 프로젝트, ‘Direction’을 예로 들고 싶어요. 메카의 이슬람 성지에 카바라 불리는 검은색 사각 건축물이 있어요. 이슬람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죠. 카바의 모양을 상징하는 사각형은 미술사에 많은 의미로 등장해왔어요.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 1958년부터 1966년까지 8년간 예수의 열정을 상징하는 14개의 패널 추상 작업을 하기도 했고, 그전에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Black Square’(1913년)에서 세속적인 이미지를 미니멀하게 숭고화하기도 했죠. 비잔틴의 아이콘적 요소를 파괴하고 르네상스를 향해 관문을 연 조토(Giotto)의 작품에 등장하는 카바는 소위 개념미술이라는 장르의 근원이 됐어요. 피터 핼리는 카바의 건축적인 요소를 분석해 작품에 반영했지요.
재미있네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지금까지는 저의 미학적 감성이 뉴욕 쪽에 맞춰진 것 같아요. 런던에 살게 된 이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 계속 발굴해나갈 생각입니다. 더불어 모타헤단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계획이자 제 목표입니다.
에디터 고현경
현지 취재 구정원(JW STELLA Arts Collectives, 디렉터) 사진 제공 모타헤단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