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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와 승마, 그 아름다운 동행

FASHION

우리에게 피겨스케이트의 매력을 알려준 김연아가 새로운 프리 프로그램을 공개한 지난 12월 7일, 그녀의 움직임만큼이나 우아하고 매혹적인 또 하나의 스포츠 승마를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파리 북부의 빌팡트 전시 센터에서 진행한 구찌 파리 마스터스 2013에서 말이다.

스타일 & 컴페티션 자선 경기 장면

1920년대, 넓고 화려한 세상을 꿈꾸는 한 청년이 있었다. 고향 피렌체를 떠나 무작정 찾은 런던에서 사보이 호텔의 벨보이로 취직한 그의 이름은 구찌오 구찌(Guccio Gucci). 연극을 관람하거나 승마를 즐기고 호텔로 들어서는 스타일리시한 런더너들을 통해 접한, 모던함과 전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영국 상류층 문화는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피렌체 장인들의 손길로 유니크하면서 모던하게 재해석한 영국 특유의 귀족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를 창립한 것은 이런 생생한 경험 덕분일 것. 이렇게 시작된 구찌의 헤리티지 속에 영국 귀족의 대표적 스포츠 승마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0년대의 일이다. 유럽과 이스탄불을 연결하는 럭셔리한 기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일등석이나 유럽 주요 도시의 특급 호텔에 그린-레드-그린 컬러의 캔버스 소재 웹 디테일을 장식한 구찌의 고급 트렁크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 말안장을 고정하는 스트라이프 스트랩의 컬러와 소재에서 고안한 이 웹은 승마와 구찌의 인연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이후 말안장이 연출하는 우아한 곡선을 대나무 핸들로 재현해 뱀부 백을 만드는가 하면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을 형상화해 호스빗 로퍼를 탄생시킨 구찌. 가장 기품 있는 스포츠로 통하는 승마와 이탈리아 장인정신의 필연적 만남을 예감한 구찌오 구찌의 창의력이 지금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음은 당신의 옷장이 충분히 증명해줄 것이다. 당신 역시 뱀부 백, 호스빗 로퍼 아니면 그린-레드-그린 웹 장식 아이템, 그중 최소한 하나는 소장하고 있지 않은가.

스타일 & 컴페티션 자선 경기 장면

Pre-shows of Gucci Paris Masters
지난 12월 7일, 역시 신발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호스빗 로퍼를 골라 신었다. 구찌 파리 마스터스 2013이 열리는 빌팡트(Villepinte) 전시 센터에 가기 위해서였다. 20여 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승마장에 들어선 구찌가 매년 12월 파리에서 개최하는 파리 호스 쇼를 후원하는 동시에 인도어 인터내셔널 쇼 점핑 경기 구찌 파리 마스터스를 런칭한 것은 2009년. 마스터스라는 이름 그대로 세계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40여 명의 기수가 모여 열띤 경쟁을 벌이는 이 그랜드슬램 인도어 점핑 경기는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승마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구찌가 공식 후원하는 여성 기수이자 세계 10위에 랭크된 호주 출신의 에드위나 톱스 알렉산더는 물론 작년 구찌 그랑프리를 제패한 마크 호츠제거,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스콧 브래시를 포함한 출전 선수 리스트는 그동안 올림픽 기간에만 간간이 승마 경기를 접하며 얻은 얄팍한 지식이 민망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희석해준 것은 참석할 첫 행사가 ‘스타일 & 컴페티션’이라는 이름의 자선 경기와 갈라 디너였다는 사실.

마구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경주마들과 실제 승마 관련 캡슐 컬렉션인 구찌 에퀘스트리안 컬렉션의 대표작들이 마주한 상징적인 입구를 지나 행사장에 들어서자 구찌 파리 마스터스를 위해 마련한 구찌의 팝업 스토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브랜드 특유의 장인정신을 담은 승마용품뿐 아니라 아트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그린-레드-그린 웹 장식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 스카프를 소개하는 등 본격적인 경기 관람에 앞서 구찌의 제품을 통해 승마의 세계를 미리 만나는 시간을 제공했다. 구찌가 완성한 우아한 승마 부츠의 매끈한 라인을 감상하면서 승마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매력적인 경험!

1 에드위나 톱스 알렉산더와 프리다 지아니니, 기욤 까네 2 AMADE 몽디알을 위한 후원금을 전달 받고 있는 카롤린 공주 3, 4 그랑 프리 구찌 마스터스 경기 장면

The Style & Competition for AMADE
경기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일반 관중석을, 오른쪽에는 구찌의 VIP를 위한 갈라 디너 테이블을 아름답게 세팅한 구찌 파리 마스터스의 메인 홀로 들어선 것은 모나코의 카롤린 공주가 설립한 아동 보호 단체 AMADE 몽디알(AMADE MONDIALE/The World Association of Children’s Friends)을 후원하기 위한 자선 경기 ‘AMADE를 위한 스타일 & 컴페티션’의 시작과 함께였다. 사실 승마 경기를 통해 불우 어린이를 위한 후원금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AMADE를 위한 스타일 & 컴페티션’은 남다르다. 도도한 기수들이 이 순간만큼은 특유의 기품과 우아함을 내려놓고 어린이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어떤 우스꽝스러운 변신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 노란색 카브리올레를 타고 가발을 쓴 채 등장한 구찌 팀의 에드위나 톱스 알렉산더와 프랑스 영화배우 기욤 카네는 존 트래볼타가 주연한 영화 <그리스>의 주인공으로 변신했고, 역시 구찌가 후원한 두 번째 팀 제시카 스프링스틴과 모델 에디 캠벨은 영화 <블랙 스완>을 모티브로 위트 넘치면서 스펙터클한 경기를 선보였다. 아무리 말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우아한 분위기의 승마 경기장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을 것 같던 ‘강남 스타일’의 리듬에 맞춰 흥겹게 달리는 경주마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AMADE를 위한 스타일 & 컴페티션’이 제공한 유쾌한 퍼포먼스! 그룹 퀸의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비디오를 재현하며 하이힐 차림으로 점핑 경기까지 펼쳐 스타일 부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프랑스의 프로 기수 티에리 로지에와 그의 도발적인(?) 차림 앞에서 상금 수여를 위해 직접 등장한 카롤린 공주가 보인 민망한 웃음은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유쾌한 기운이 절정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브랜드에 영감을 준 승마에 대한 오마주를 이렇게 행복한 방식으로 전한 구찌. ‘AMADE를 위한 스타일 & 컴페티션’을 통해 얻은 수익금 18만 유로가 이날 갈라 디너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느낀 즐거움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전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일까. 행사장을 나선 순간 온몸을 감싸던 12월의 밤기운은 생각보다 훨씬 따스했다.

1, 2 우승의 영광을 기뻐하고 있는 케빈 스타우트 3 경기장에 참석한 프리다 지아니니와 그의 남편이자 구찌 CEO 파트리치오 디 마르코 4 구찌 파리 마스터스 2013을 기념해 제작한 스카프

Grand Prix Gucci Masters 2013
다음 날, 구찌 파리 마스터스의 하이라이트인 그랑 프리 구찌 마스터스를 관람하기 위해 빌팡트를 다시 찾았다. 전날의 행사를 통해 유쾌한 승마를 경험했다면 이번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실력을 겨루는 유일한 스포츠이자 기수와 말의 소통이 이루어내는 빠른 스피드 속에서도 특유의 우아함을 발산하는 승마의 진정한 매력을 느껴볼 차례. 점핑 경기로는 가장 높은 등급인 CSI 5로 평가되는 그랑 프리 구찌 마스터스는 1m 60cm 높이의 장애물을 곳곳에 놓은 코스를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완주하는 코스로 구성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특별히 디자인한 승마복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한 에드위나 톱스 알렉산더를 포함한 출전 기수 39명은 전날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과 달리 위엄과 품위를 되찾아 보는 이들의 기선을 당당히 제압했다.

스타트라인을 지나는 첫 번째 기수와 말의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가 카운트를 작동시키며 시작된 본격적인 경기. 역동적인 말의 움직임과 스피드, 그리고 말발굽 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현장에서 감상한 점핑 경기는 TV 중계로 봐온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생한 감동을 전했다. 높은 장애물을 함께 뛰어넘는 말과 기수의 비거리가 허공에 그려내는 아름다운 포물선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우아했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려는 말의 움직임을 빠르게 바꾸어 다음 장애물로 향하는 기수의 노련함은 탄성을 자아냈다. 빠른 스피드로 결승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던 말이 마지막 장애물을 떨어뜨렸을 때는 안타까운 탄식이,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빠른 시간 안에 코스를 완주한 기수와 말에게는 뜨거운 박수가 절로 터져나왔다.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감상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사였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은 장면은 따로 있다. 장애물 넘기를 거부한 말에게 경기 참여를 강요하지 않고 미련 없이 퇴장한 기수의 뒷모습과 우승 가능성의 여부를 떠나 열심히 뛰어준 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리던 기수들의 부드러운 손놀림. 그 속에 담긴 말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승마를 이토록 우아한 스포츠로 인식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 그 순간이야말로 구찌 파리 마스터스가 전한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그랑프리 구찌 2013년 에디션 우승의 영광은 프랑스의 케빈 스타우트와 그의 애마 실바나에게 돌아갔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와 CEO 파트리치오 디 마르코가 직접 그들에게 40만 유로의 상금과 트로피를 전달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 구찌 파리 마스터스를 뒤로하며 문득 2014년 말의 해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의 애마를 다독이는 기수만큼이나 승마를 존중하고 사랑해온 구찌에게 말의 해 갑오년 또한 뜻깊은 한 해가 되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말의 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구찌를 통해 승마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라는 것이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현지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