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Message from Kim Sung Kun
리더의 비상식적인 도전

LIFESTYLE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리더만 있을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이 <노블레스> 독자를 위해 앞으로 석 달간 명불허전 리더십을 전수한다. 시작을 위한 ‘준비’에 관한 이야기로 그 포문을 연다.

김성근 감독은…
1942년 일본 교토 출생.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야구감독이자 선수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스승.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살리는 것’을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꼽는 김성근 감독의 ‘포용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최근 여러 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70세가 넘었지만 현재 국내 최초 독립 리그 야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맡아 오늘도 선수들을 향해 수백 개씩 펑고를 치는 김성근 감독이야말로 감독 중의 감독, 리더 중의 리더다.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2013년 프로야구 시즌도 막을 내렸다. 2013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프로 9개 구단 감독과 선수들은 2014년을 준비하기 위한 마무리 훈련에 이어 동계 전지훈련을 떠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독립 구단 고양 원더스도 현재 제주도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고, 1월이면 서울보다 따뜻한 일본 고치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2014년 새로운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감독과 선수 모두 올해의 실수와 잘못을 거울 삼아 내년 시즌 계획을 잘 짜는 것이다. 그래서 야구에서 다음 시즌의 성공 여부는 마무리 훈련과 동계 전지훈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계 전지훈련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나는 현역 시절 매년 1월 1일 홀로 행하던 의식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바로 을지로2가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주하기. 새로운 1년을 준비하기 위해 내 체력과 지구력,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한 자발적인 테스트였다. 나는 일부러 팔각정까지 가는 길 중 가장 경사가 심하고 힘든 ‘케이블카 길’을 골라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가기를 수년 동안 반복했다. 그것은 단순히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넘어 한계에 타협하지 않는 내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남들이 보면 지독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야구야말로 ‘한 점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감독이란 위치는 9회 말 스리아웃이 될 때까지 절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순간 최대한의 집중력으로 매 회에 맞닥뜨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상대방의 실수로 주어진 기회를 무조건 잡아야 하는 동물적 직감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에 무섭게 집중하는 정신력이다. 집중력과 더불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과거 새해 초마다 남산 팔각정 완주 의식을 해왔기 때문에 여전히 감독 인생 40년이 넘도록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같이 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내 좌우명은 1구2무(1球2武)다.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은 순간부터 평생 ‘어떻게 하면 순간이라는 기회를 살리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야구에서 순간은 승부와 직결된다. 순간을 다른 말로 하면 기회다. 기회를 포착하느냐, 놓치느냐는 그 순간을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어김없이 SK 감독 시절이 생각난다. SK 와이번스(이하 SK)에 몸담은 4년 6개월 동안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철저히 준비해 실행했고, 실수와 타협하지 않고 싸웠다. SK에 부임한 후 첫 훈련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팀으로 어떻게 야구를 하나’ 하는 것이었다. 2006년 시즌 SK의 성적은 전체 6위였다. 우선 나는 다음 시즌 우승을 목표로 삼고 그동안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2006년 SK의 총득점은 509점이었다. 한 게임당 4.03점의 낮은 득점력과 3.8이라는 낮은 투수 방어율에 주목했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해결 방법을 찾아갔다. 2006년 10월 30일부터 2007년 3월 7일까지 4개월에 걸친 마무리 훈련과 전지훈련에서 나는 우선 주자의 주루 능력 향상과 1점을 뽑기 위한 공격력에 중점을 둔 훈련을 시작했다.
주루 능력 향상을 위해 먼저 매일 하루에 1시간씩 슬라이딩 훈련을 시켰다. 슬라이딩은 말 그대로 몸을 날리는 것이라 부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머릿속에 ‘부상’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또한 나는 본래 홍백전(같은 팀에서 팀을 나누어 연습 경기를 펼치는 것)을 진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2006년 SK로 온 후 주자의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홍백전을 펼쳤다. 그 가운데서 ‘30cm의 중요성’도 느끼게 했다. 30cm라는 건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때 베이스 앞에서 아웃이 되느냐, 세이프가 되느냐의 기준이 되는 거리다.
투수 방어율을 높이기 위해 투수 훈련뿐 아니라 야수의 수비력을 향상시키는 훈련과 함께 송구의 기본부터 수정해나갔다. 여기서도 외야수의 30cm 송구의 정확성과 내야수의 수비 폭을 넓히는 데 중점을 뒀다. 수비 폭을 넓히는 데는 펑고만 한 것이 없다. 내가 치고 선수가 그 공을 잡아내는 펑고 훈련은 매일 1000개가 기본이었다. 매일 1000개의 펑고 훈련을 4개월간 계속한 결과 당시 오갈 데 없던 최정과 정근우는 한국 대표 내야수로 꼽힐 만큼 성장했고, 2군 선수였던 김강민과 박재상, 조동화 외야 콤비는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다.
드디어 2007년 시즌이 시작됐다. 지난겨울의 지옥훈련이 빛을 발해 SK는 78승 48패 5무, 총득점 603점, 게임당 4.78점 득점으로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전년 대비 100점 가까운 득점을 더 올렸고, 투수들 역시 야수 수비력의 향상으로 방어율이 전년도보다 0.56포인트 떨어졌다.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에 기뻐할 겨를도 없이 바로 2008년을 준비해야 했다.
부임 후 2년째인 2008년, 내 목표는 SK를 ‘지지 않는 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1년 동안 모든 선수의 특징을 파악한 나는 2008년 시즌 우승을 위한 준비로 3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 첫 번째는 홍백전을 계속해 선수의 시합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SK에 있는 내내 이 방법을 적용했고, 그 덕분에 매년 4월(개막월)에 7할 이상의 놀라운 승률을 보이며 시즌 초반 기선 제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역산법이다. 개막일을 기점으로 역으로 계산해 선수의 컨디션을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개막이 4월 5일이라면 거기서부터 거꾸로 스케줄을 짜서 전년도 11월 1일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식이다. 그리고 개막을 코앞에 둔 3월 15일부터 27일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방 시합을 다니면서 시즌 시작과 함께 버스 이동에 익숙해지게 했다.
세 번째 방법은 선수의 적재적소 기용이다. 2007년 감독을 맡은 첫해에 내 머릿속에는 김광현이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해엔 그를 어떻게 기용해 이기게 하느냐가 큰 테마로 떠올랐다. 전지훈련 중 나는 다른 팀의 1년 치 투수 선발 로테이션과 우리 팀의 투수 로테이션을 가상으로 만들었다. 김광현을 상대팀 에이스 대신 #3, #4와 맞붙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그 결과 광현이는 2008년 16승 4패, 2009년 12승 2패, 2010년 17승 7패의 좋은 성적을 보이며 내 계산대로 활약해주었다.

이길 수 없다, 선수가 없다, 부상자가 많다 등 하소연이 많은 팀일수록 다음 시즌의 준비 기간인 전지훈련을 엉망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수와 팀이 지닌 잠재 능력은 리더의 준비와 발상의 전환으로 빛을 볼 수도 있고 사장될 수도 있다. 1%의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을 준비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은 성공이라는 감동을 평생 느낄 수 없다.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봄까지 이어지는 5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감독은 선수를 성장시키고 팀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 속에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리더들은 비상식적인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즈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