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버츠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런던에 사는 스코틀랜드 출신 부동산 사업가다. 종종 영국의 슈퍼 컬렉터 찰스 사치와 비교되긴 하지만, 이들의 아트 컬렉팅 철학은 확연히 다르다. 그에게 컬렉팅은 단순히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사회적 성장 혹은 그 문제들을 함께 살펴보는 방대한 리서치 같은 작업이다. 따라서 그가 설립한 데이비드 로버츠 아트 파운데이션은 단순히 그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이 시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다양한 담론을 나누는 대화의 장이다. 여름의 태양이 뜨거운 지난 7월의 어느 날, 영국 런던의 아름다운 피츠로이 광장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데이비드 로버츠 아트 파운데이션’의 설립자이자 영국의 손꼽히는 컬렉터 데이비드 로버츠
데이비드 로버츠는 데이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같은 소위 yBa 작가의 작품부터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신디 셔먼, 앤서니 카로, 폴 매카시, 아이웨이웨이 등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지점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25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작품 수집과 아트 재단 운영에 대한 열정, 그리고 꺼지지 않는 예술의 힘에 대해 그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과 영화, 미디어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융합시키는 사이먼 후지와라(Simon Fujiwara)의 ‘The Unwritten Erotic Saga of the Fujiwara Family’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독일의 대표적 회화 작가 마르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의 ‘Untitled(Caesars Palace)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데이비드 로버츠 아트 파운데이션(David Roberts Art Foundation)은 이제 영국에서 주요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미술관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2007년에 현재의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미술관을 처음 열었습니다. 하지만 운영 초기부터 이미 그 공간이 너무 작다는 걸 알아버렸죠. 적당한 장소를 찾던 중 런던의 캠든(Camden)에서 지금의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전시를 개최해왔고요. 내년이면 데이비드 로버츠 아트 파운데이션도 벌써 창립 10주년을 맞습니다.
어떤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젊은 시절 스코틀랜드에 살 때 제 친구 하나가 미술 교사였어요. 당시 저는 그녀와 에든버러에 있는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미술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죠. 그녀는 전시장에서 늘 ‘이건 야수파 작가 누구의 그림’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사실 전 당시 ‘야수파’가 무엇인지조차 몰랐어요. 하지만 전 그녀의 설명에 늘 귀 기울였습니다. 그러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작품이 팔리는 작가들에 대해 듣게 됐고, 후에 그것이 언젠가 그녀와 함께 미술관에서 본 대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죠. 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그때 이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처음 미술관을 개관할 당시 재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재단 설립 당시 저는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그리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전시 공간을 마련했으니 게스트 큐레이터를 초청해 제 컬렉션을 보여주겠다는 순진한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죠. 하지만 미술관 개관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런 운영 방식은 그리 흥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촉망받던 젊은 큐레이터 뱅상 오노레(Vincent Honore)를 영입해 그에게 모든 프로그램 기획을 일임했죠. 그는 정말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떨 땐 제 컬렉션과 전혀 무관한 전시도 열었죠. 일례로 수년 전 1970년대에 활동한 남미 작가 그룹전을 열었을 때 제 컬렉션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거든요.(웃음) 하지만 저는 그런 점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뱅상은 또 퍼포먼스 아트를 전시에서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 그런 전시는 우리 재단의 기획전 중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죠. 매년 늘 크고 작은 퍼포먼스가 미술관에서 이어지고 프리즈 아트 페어 기간엔 ‘퍼포먼스 나이트’란 기획전까지 미술관에서 벌인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재단 미술관이 현재 캠든 지역에선 아주 중요한 아트 센터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간 재단이 미술계에 기여한 업적은 무엇인가요?
그걸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게 쉽진 않네요.(웃음) 사실 데이비드 로버츠 아트 파운데이션은 런던 시내의 다른 기관에 비하면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죠. 영국엔 많은 공공 미술관이 있고, 그 미술관 중 적지 않은 수가 기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기금 마련은 방문객 수와 깊은 관련이 있죠. 다시 말해 미술관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큐레이터는 그 문제로 무언의 압박을 받죠. 하지만 우리 재단은 적어도 그런 부분에선 자유롭습니다. 공공 기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죠. 이렇게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이엔드’라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들에게 특정 전시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기획팀에 자유를 주고, 제가 원하는 전시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들은 늘 좋은 전시를 기획하죠. 저는 런던의 여느 미술관과 기관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할 때 우리는 우리만의 신념을 지속적으로 고집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관 비즈니스가 아닌, 개인 컬렉션의 성격은 어떤가요? 이를테면 당신과 마찬가지로 영국에 기반을 둔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같은 유명 컬렉터의 컬렉션과 비교해볼 때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컬렉터들과 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저는 제 컬렉션을 팔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컬렉션은 2500여 점에 달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고작 30여 점의 작품만 팔았을 뿐이죠. 저는 한번 소장한 작품을 다시 파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수장고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 작품이 있어 다소 유감스럽긴 하지만 그건 다른 미술관도 마찬가지죠. 저는 투자를 위해 작품을 사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제가 10년 전에 산 작품을 보고 그 가치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면 물론 저도 인간이니 기분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컬렉션을 하는 첫 번째 기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는 당장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걸 멈춰야 할 테지요.
최근 눈에 띄는 젊은 작가가 있나요?
종종 갤러리스트나 어드바이저가 제게 좋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때론 순전히 우연에 의해 좋은 작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지금 한창 떠오르는 신예 작가 데일 루이스(Dale Lewis)는 우연히 갤러리 전시에 갔다가 디너 자리에서 만난 경우죠.
컬렉션 과정에서 ‘실수’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아무래도 갤러리 전시 후 디너가 끝날 무렵 작품을 산다면 그게 ‘실수’가 되지 않을까요?(웃음) 몇 잔의 와인을 마신 후 ‘와, 정말 멋진 그림이네!’ 하면서 작품을 사고 다음 날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런데 이건 그 실수를 빨리 알아차리는 경우고, 간혹 몇 년이 흘러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 혼자 보는 건 좋지만 다른 이에게 공개하는 건 꺼려지는 작품도 있죠. 물론 이런 경우 굳이 ‘실수’라고 할 순 없지만요. 하지만 10년쯤 후에 ‘내가 이 작품을 왜 샀을까?’라고 생각한 작품도 있긴 해요. 취향은 늘 변하니까요.
작가에 대한 공부는 꾸준히 하시는지요? 미술관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작가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아니요. 모르는 작가가 수두룩합니다. 간혹 컬렉터들의 디너에 참석하면 옆자리의 누군가가 자신이 소장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묻는데,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죠. 물론 제가 소장한 작가에 대해 그가 모르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그건 미술계가 그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그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합니다.
현대 회화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Fuji’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페미니즘 시각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로제마리 트로켈(Rosemarie Trockel)의 ‘Oh Mystery Girl 3’
Courtesy of the Artist, DACS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혹시 작품을 살 때 그 물리적 규모에 제약을 받는지요?
저는 그게 좋으면 바로 사는 편입니다. 작품이 너무 크다고, 혹은 걸어둘 자리가 없다고 불평하는 건 늘 아내죠. 보통 아내가 불평하는 작품은 미술관 전시에 대여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수장고에 보관합니다. 대형 조각도 마찬가지죠.
오랫동안 컬렉션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나 유의 사항 같은 게 있나요?
제가 뭔가를 살 때 고민하는 경우는 주로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작품을 볼 때입니다. 이전부터 그런 작품을 사왔지만, 그중 고장 난 것은 거의 손을 쓸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죠. 테크놀로지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이전에 쓰인 기술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왁스로 만든 작품도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하죠.
아, 석고나 석회로 만든 조각 작품도 아주 약하기 때문에 특별 관리가 필요합니다.
친구 중에 작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할 때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제가 미술계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작가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알고 지내는 이도 많지만,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경우도 있죠. 일례로 캐나다 출신인 로드니 그레이엄(Rodney Graham)이 그렇죠. 그가 가끔 유럽에 올 땐 꼭 마중을 나갑니다. 그의 아내하고도 친하고 무엇보다 제가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하죠. 또 젊은 작가인 찰스 에이브리(Charles Avery)도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휴가철이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시간을 함께 보내죠.
작품 구입은 주로 갤러리에서 한다고 하셨는데 간혹 경매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나요?
자주는 아니지만 더러 있어요. 제 컬렉션에 꼭 포함했으면 하는 작품이 나오는 경우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매 시스템을 맹신하진 않습니다. 저와 응찰 경쟁을 벌이는 이가 순수 바이어인지, 작품 가격을 올리기 위한 사람인지 모를 때가 간혹 있거든요. 하지만 대체로 그간 계속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해온 작가의 작품 가격 경쟁은 신용하는 편이에요. 반대로 갑자기 가격이 막 오르는 작가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자문하게 됩니다.
2009년에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미술계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간다는 얘길 했죠. 그의 말대로 현재 아시아 미술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요. 유럽에서도 이를 감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이에요. 전 인도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계에 대한 서양 미술계의 관심이 이미 10~15년 전에 태동했다고 봅니다. 당시 스타였던 아시아 작가들이 한동안 서양 미술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죠. 이전과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현재의 아시아 작가는 서양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의해 보다 안정적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현대미술 시장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크게 성장했고, 2009년부터 침체되었다가 요 근래 다시 대형 갤러리들이 주요 도시에 분점을 내는 등 활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 데이미언 허스트와 커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250만 달러(약 28억4500만 원)에 작품을 판 직후라 무척 흥분해 있었죠. 제가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작품이 그리 쉽게 팔린 것에 의아해하니 그가 “그런 때일수록 왜 돈을 은행에 묶어두겠느냐”고 답하더군요. 이처럼 점점 많은 이가 미술 시장을 투자 관점(speculative view)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사면 그만큼 위험 요소는 줄어들겠죠. 화이트큐브나 가고시안 같은 대형 갤러리가 미술 시장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저는 약간의 우려를 느껴요. 그로 인해 중간 규모의 갤러리들이 위기를 맞기 때문이죠. 소규모 갤러리야 늘 생겼다가 사라지고 하니 그렇다 쳐도 중간급 갤러리들은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죠. 예전엔 2만~5만 달러(약 2200만~5600만 원)의 중진 작가 작품을 사는 컬렉터가 많았기에 작가나 갤러리나 이익을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 모두 몇백만 달러에 달하는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죠. 문제가 없다곤 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컬렉터가 아닌 미술가가 되고 싶을 때도 있었나요?
저는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건 좋아하지만 직접 나서서 뭔가를 창조하는 것엔 흥미가 없습니다. 많은 이가 미술관에 걸린 그림 앞을 지나치며 “내 아이도 이 정도는 그린다”라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주로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 작품 앞에서 지나치게 쉽게 그렸다고 말하죠. 하지만 전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누가 하얀 캔버스와 붓을 쥐여주며 나한테 이런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참 황당하겠다’고요.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작가들은 아주 똑똑하거나 혹은 미쳤거나 혹은 계산적인 이들이라는 겁니다.
미술의 범위를 갈수록 확장시키는 아이웨이웨이의 2006년 작품 ‘Marble Door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AI WEIWEI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의 미술가이자 건축가이며 독립 큐레이터, 설치미술가 등 지금도 계속 예술의 개념을 확장해나가는 작가다. 젊은 시절 베이징에서 아방가르드 예술 단체를 공동 결성하기도 했고, 오랜 미국 유학 생활 후 고국으로 돌아가 중국의 중앙집권제와 문화사 등에 대한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반체제 중국인 아티스트’로 알려졌지만, 정치적 수난이 후광 효과를 일으켜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투기 작업’으로 잘 알려진 피오나 배너(Fiona Banner)의 ‘Every Word Unmade’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Photo: Tim Bowditch
색채의 유희가 황홀한 다니엘 뷔랑의 2006년 작품 ‘On Two Layers’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Daniel Buren
프랑스 태생의 세계적 아티스트 다니엘 뷔랑은 흔히 추상화가 혹은 미니멀 아티스트로 분류된다. 초기엔 전통적 회화에 가까웠지만, 이후 다양한 공공장소에서의 스트라이프 작업으로 알려졌다. 198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프랑스를 대표했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에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과 협업하며 예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추상과 구상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앤서니 카로의 ‘Pin up Flat
Courtesy of the Estate of Anthony Caro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각과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으로 알려진 크리스 마틴(Kris Martin)의 ‘Mandi VIII’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Anthony Caro
영국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앤서니 카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전설적 건축가 헨리 무어를 만나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1963년 런던 화이트채플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국제적 호평을 받았고, 관람자가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조각상의 받침을 없애고 바닥에 놓아 전통적 전시 방식에 도전했다. 추상과 구상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각적 순수성과 구상 조각의 서사적 전통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로드니 그레이엄의 ‘Basement Camera Shop circa’. 조각적·영화적 장치가 특징인 그의 작품은 1970년대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David Roberts Collection, London Photo: Matthew Booth
Rodney Graham
사진, 영화, 비디오, 음악, 조각, 회화, 책 등을 매체로 작업하는 로드니 그레이엄은 캐나다 출신 작가로 1970년대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국립 미술관 등에서 굵직한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는 여러 도구를 이용해 조각적·영화적 장치가 돋보이는 설치미술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데, 그런 노동 집약적 작업은 문학과 음악 등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최선희(아트 컨설턴트) 사진 제공 David Roberts Collection